361화 거래 (2)
암흑가의 왕좌와 로아프라의 지배권이 탐난다면서 덤벼들었던 로메르.
호기롭게 내기를 걸었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방 안에 들어왔음에도, 문옆에 딱 붙어 서서 쭈뼛거리기까지…… 무게중심을 뒤꿈치에 잔뜩 실은 걸 보니, 여차하면 도망갈 기세였다.
베르덴이 로메르를 직시했다.
“거기 계속 서 있기만 할 건가?”
“아, 아니, 나는 아티팩트만 받고 가면 돼서…….”
“용건 있으면 앉아.”
위압적인 권유에, 로메르가 당장 맞은편에 착석했다.
절로 뒷목에 식은땀이 흐른다.
작게 침을 삼키고는 눈꺼풀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유골룡의 뼈에 꿰뚫렸던 어깨가 강하게 욱신거렸다.
‘아, 괜히 왔나.’
나중에 찾아오면 아티팩트를 돌려준다고 해서 눈 딱 감고 찾아오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나 귀하디귀한 걸 미련 없이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마주하고 나니…… 문득 여러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말을 믿었나? 순진하군. 죽어라.
───다른 아티팩트는 없나? 없다고? 그럼 죽어라.
───가진 걸 전부 내놔라. 그게 단가? 그럼 죽어라.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허무하고 무참한 최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물론 과한 상상일 수도 있다.
다만 살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상황은 부정적이다.
하다못해 그 나중이 지금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아티팩트를 빼앗아 간…… 아니, 반강제로 빌려 간 잿빛 머리의 사내는 괴물이다.
무려 언데드 초월종과 맞붙고도 살아남는 데 그치긴커녕 토벌에 성공한 마도사다.
여러 조력이 있었다고는 해도 말도 안 되는 업적임은 매한가지.
로메르는 가까이서 초월적인 광경들을 목격했다.
난생처음 보는 원소 마법.
그건 마치 파괴, 그 자체가 형태를 갖춘 것처럼 무지막지했다.
단언컨대 로메르 자신의 방패술로는 잠시도 막아 내지 못하고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동대륙이고, 중앙 대륙이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야……!’
개인 간의 힘의 격차가 너무도 압도적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로메르였기에 피부 너머로 선명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는, 자신이 만난 그 누구보다도 강대하다고.
그때, 베르덴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눈에 익은 푸른 입방체가 탁상 위에 놓였다.
“여기 내가 빌린 아티팩트 [아르케오]다. 돌려주지.”
“아, 고마───”
“하지만 그 전에.”
황급히 손을 뻗던 로메르가 우뚝 정지했다.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
“거래, 라면.”
“나에게 이 아티팩트를 팔 생각은 없나? 값은 제대로 쳐주지.”
말 그대로였다.
베르덴은 가격을 후려치거나 깎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히려 로메르가 원한다면 웃돈을 쥐여 줄 용의도 충분히 있었다.
베르덴이 중상을 입고 잠시 기절한 사이, 레이라와 함께 유골룡의 공격을 막는 데 한 팔 거들긴 했으니까.
나름의 호의였다.
다만, 로메르의 반응이 상당히 시원찮았다.
“아, 근데 돈은 좀, 그런데.”
“뭐?”
“솔직히 돈이야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벌면 그만인데…… 실용적이거나 멋있는 아티팩트는 막대한 재산이 있어도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로메르가 이마를 긁적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눈치는 보면서 제 할 말은 한다. 의외의 부분에서 심지가 굳다.
베르덴이 약간 미간을 좁혔다.
‘돈이 싫다라. 그럼 어떻게 한다.’
대신 현물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전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애당초 금액적인 가치의 문제가 아닌 걸로 보이니.
‘실용적인’이나 ‘멋있는’이라는 단어들을 언급한 걸 보면…… 실전에서 쓸 수 있냐, 혹은 자신의 취향에 맞느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인다는 건가.
말인즉슨 자신에게 필요한 걸 달라는 의미였다.
“…….”
외로운 늑대, 로메르.
검과 방패를 다루는 전사.
개중에서도 방패술이 특기인 걸로 보인다.
그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 아공간에 수납한 소지품 중에 교집합에 해당하는 걸 고른다면…….
‘그래, 그게 좋겠군.’
결정을 내린 베르덴이 아티팩트 [플로티드]를 소환했다.
삼각 형태의 금속 조각.
전 암흑가의 왕, 그론드가 사용하던 무기 중 하나였다.
순간 로메르의 표정에 흥미가 이는 게 보였다.
“이 아티팩트의 이름은 [플로티드]. 간단히 말하자면 공방일체의 ‘방패’다.”
“방패?”
“한번 보도록.”
베르덴이 임의로 [플로티드]를 조작했다.
각 모서리가 분리된다.
그것들이 거리를 둔 채 삼각 대열을 이루자, 안쪽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다음 보호막 대열을 벗어난 금속 조각들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로질렀고, 마지막으로는 출력을 내어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사고의 흐름과 직결되는 즉효성.
그것이 [플로티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단점은 명백하다.
보호막은 지속적인 충격에 약하다든가, 6위계 이상의 마법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든가.
공격 또한 그리 위력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강대한 존재들과의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르덴에게는 애물단지에 가까운 물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사소한 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와…….”
로메르의 주황색 눈동자에 이채가 가득히 서린 걸 보면.
후웅.
베르덴이 [플로티드]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로메르의 앞에 놓았다.
“이거라면 물물교환으로 썩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로메르?”
외로운 늑대가 벌떡 일어섰다.
“바꿀래! 아니, 바꾸겠습니다!!”
“거래 성사다. 그럼 가져가도록.”
“넵!”
입꼬리를 씰룩거린 로메르가 냉큼 플로티드를 챙기고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복도를 거닐며 슬쩍 [플로티드]를 조작했다.
처음이라 미숙하긴 했지만 조금은 임의대로 움직인다.
눈앞에 떠 있는 세 개의 금속 조각들을 보니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방패라니.
“……멋있다.”
[아르케오]보다 근사하다.
심지어 보다 직접적인 실용성을 겸비했다.
히야. 로메르는 진심으로 동대륙에 오길 잘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서던피트에서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았던 악몽 같은 기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깊은 휴식을 취하던 조제프 대주교가 마침내 깨어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너무 무리를 했더니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더군요. 옛날에는 팔팔했는데. 허허허.”
주름진 얼굴에는 피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특유의 자비로운 목소리와 고고한 분위기는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격전에 의해 손상된 대주교복 대신 평범한 루아스교의 의복을 입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조제프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팔라딘, 셰인과 레일버.
그중 셰인의 왼쪽 팔은 러스트러스 추락 사고로 사라졌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어 있다.
신체 결손마저 치유하는 빛의 기적.
그것이 7인의 대주교가 위대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할디른이 물었다.
“꽤나 피곤해 보이는군. 그런데 쉬지 않고 우리를 불렀다는 말은…… 유골룡의 사체 정화 작업을 전부 마쳤다는 건가?”
“그리 양이 많지 않기에, 다행히 저 혼자서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흠, 고생했군.”
“허허, 별말씀을. 그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러분들께도 보여 드리도록 하죠.”
조제프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일버가 성큼 걸음을 옮기며 거대한 상자를 움직였다. 뚜껑을 열고, 거대한 탁상 위로 새하얀 유해들을 하나둘씩 올렸다.
자연스레 베르덴, 아드리안, 할디른, 레이라, 레나 주교, 위 다섯 사람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생각하셨던 것보다는 많이 작을 겁니다. 손상이 크기도 했을뿐더러, 언데드의 유체 특성상 정화에 의해 상당 비율이 소멸해 버린 탓이죠. 살아 있는 드래곤이었다면 온전히 부산물을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랬다간 다 죽었겠지.”
할디른이 건틀릿을 절그럭거리며, 깨끗해진 용의 뼈를 툭툭 두들겼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유골룡이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성녀의 기적이 효과적으로 먹히지 않았을 테니.
그러한 특수성 없이 능력을 전부 발휘하는 용을 상대한다면, 초월자라고 해도 혼자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그건 베르덴도 인정하는 바였다.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닙니다. 루아스교에게도, 다크 워튼에게도, 개인에게도 말이죠.”
조제프가 이 자리를 만든 목적은 전리품을 나누기 위함이다.
분배의 역할은 루아스교가 맡기로 했다.
러스트러스를 성물째로 희생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서대륙으로부터 성녀의 기적을 불러들이지 않았더라면 승산은 거의 없었을 터였기에.
유골룡 토벌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흐음…….’
베르덴이 조용히 용이 남긴 잔해를 훑어봤다.
말로만 듣던 궁극의 소재가 코앞에 있다.
다만 전부가 동일한 건 아니다. 각자마다 지닌 특징이란 게 있다.
척추와 갈비뼈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고, 다리뼈는 골밀도가 높으며, 발톱과 이빨은 마법조차 찢어발기는 예리함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제일인 건 바로 두개골.’
용을 구성하는 골격을 통틀어 압도적으로 견고한 부위다.
성녀의 기적, 베르덴의 초신성, 정화에 의한 소실…… 그 모두를 견디고도 능히 원형이 남아 있다.
크기가 건장한 성인 남자 두 명이 웅크린 것과 비슷할 정도로 작아지긴 했지만.
‘저건 루아스교가 가져가겠군.’
딱히 아쉬움이랄 건 없었다.
애초에 조제프가 아니라면 이런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아주 당연한 흐름이었다.
베르덴은 용의 뼈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
그랬는데.
“애셔, 그대의 몫입니다.”
조제프가 선뜻 두개골을 통째로 가리켰다.
잘못 지목한 게 아니었다.
잠시 눈을 깜빡이고 있던 베르덴이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세크리드를 등 뒤에 두고, 유골룡과 단신으로 맞서는 그대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 활약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라는 건 자명하지요. 교황 성하와 성녀께서도 허락하신 바이니 부담 없이 가져가시길.”
이미 교국과도 얘기가 끝났다는 건가.
“감축 드립니다, 주군.”
아드리안은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레이라, 할디른, 레나 주교도 마찬가지였다.
두개골의 소유권에 대해서 어떠한 이의 제기도 없었다.
할디른이 조금 부러운 시선을 보내 왔지만, 마법에 몸담은 이상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베르덴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과한 겸양과 거절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이어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유골룡의 뼈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다.
루아스교, 다크 워튼 순서로 진행되었고, 아드리안과 레이라는 합의하에 동등하게 나눠 가졌다.
그렇게 각자의 소유권이 정해진 뒤, 조제프가 비교적 크기가 작은 용의 발톱 두 개를 각각 베르덴 일행과 레이라에게 건넸다.
“이건…….”
“카일리언스에서 약속했던 의뢰의 보수입니다. 다른 걸 고려해 봤지만, 이 이상 적합한 게 없더군요. 물론 마음에 안 드신다면 바꿔 드릴 수도 있습니다.”
주검의 영광을 상대해 준 보답.
서로 시선을 마주친 베르덴과 레이라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용의 발톱이면 차고도 넘쳤다.
조제프가 턱을 당겼다.
“이것으로 분배는 끝났습니다. 이제 바깥으로 나가면, 세크리드의 사태가 전 대륙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애셔와 레이라의 이름도 널리 퍼지겠지요. 다만 문제는 드래곤의 소재에 대한 행방입니다.”
용의 뼈를 탐하는 이는 가히 셀 수도 없이 많다.
만약 소재를 개인에게도 분배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곳곳에서 불청객이 찾아올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
아주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루아스교와 다크 워튼에서 모든 소재에 대한 소유권을 가져갔다고 공개하고자 합니다.”
“전 찬성이에요.”
레이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바쁜데 온종일 추적당하는 건 사절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건 오직 악마뿐이었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저도 찬성입니다만, 그에 대해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실존하지 않는 상단을 만들어, 소재 일부를 대리로 판매한다고 공표할 수 있습니까?”
“그건…… 예, 물론 가능합니다. 실제로 대리인을 이용하여 자금을 마련하는 건 루아스교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허위 상단이라…… 혹시 암암리에 소재를 판매할 계획입니까?”
“뭐, 비슷합니다.”
기껏 얻은 용의 소재를 팔겠다고? 그것도 마법사가?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스럽다는 시선을 보내 왔다. 아드리안도 당장 들은 게 없기에 비슷한 반응이었다.
차라리 그럴 거라면 다크 워튼에서 매입하겠다고, 할디른이 말하려 했지만…… 결국 목소리로 내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기에.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겨 있던 조제프가 이내 수락했다.
“음, 알겠습니다. 전혀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까요. 차후 허위 상단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면, 그대로 세간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소재의 분배도 끝났고, 보수도 해결되었다.
이야기가 서서히 끝나려던 도중, 레나 주교가 슬쩍 손을 들었다.
“저, 근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저를 왜 이곳에 부르셨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레나 주교도 열심히 세크리드와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애쓰긴 했다.
다만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부외자에 가까웠다.
용의 뼈에 대해 발언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조제프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레나 주교를 이 테이블에 앉힌 건, 모두의 앞에서 그대의 노력을 치하하기 위함입니다.”
“네?”
“그대는 이제부터 루아스 교국으로 갈 겁니다.”
“……!!!”
카일리언스에서부터 벨디른 공화국까지.
레나 주교는 격변하는 상황과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상위 주교로서 모범을 잃지 않았다.
마땅히 상이 주어져야 하리라.
“앞으로 그대는 교국의 상위 주교로서 심화 과정을 밟게 될 겁니다. 결코 순탄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거절해도 좋습니다.”
“아, 아뇨! 갈게요! 꼭 가고 싶어요, 대주교님!”
“좋습니다. 이후 그대는 저와 함께 본국으로 복귀하게 될 겁니다.”
분홍빛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낸 그녀가 입술을 머금었다.
교국이라니. 루아스교의 본산이라니.
어린 나이에 상위 주교에 오른 것도 모자라, 이와 같은 출세 가도를 달리는 교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축하해요, 레나 주교님.”
“고, 고마워요…… 레이라 님……!”
레나 주교가 감격해 마지않았던 그때였다.
“아, 혹시 카일리언스에서 성직자 한 분을 같이 데려가도 될까요? 워낙 저를 잘 보살펴 주셔서…….”
부임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그녀를 전심으로 보좌해 준 성직자.
불가항력이긴 했지만, 그를 혼자 리버런그에 두고 온 건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어떠한 이해타산도 없는 순전히 진심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는 아주 다르게 들렸다.
“호오.”
조제프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대주교님에게…….”
“감히 청탁을……?”
팔라딘, 셰인과 레일버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저 여자, 이전부터 제정신이 아니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주군.”
“그래, 보기완 다르게 대담하군.”
“저건 대담한 게 아니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닐까.”
“어, 이건 좀…….”
아드리안, 베르덴, 할디른, 레이라가 순서대로 감상을 전했다.
레나 주교가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이윽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는 기겁하며 의지를 박찼다.
“저, 저, 저, 그게, 그러니까, 이건, 처, 청탁이 아니라……!”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횡설수설한다.
이내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까지 가고 나서야 조제프가 웃어넘겼다.
“허허허, 농담입니다, 농담. 어차피 보좌진을 한 명 두어야 하니까요. 본래라면 대주교가 임의로 지명하지만, 이 건은 제가 특별히 허락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레나 주교가 훌쩍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진이 다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가련한 주교에 대한 보상도 전달했다.
“애셔, 할디른, 레나, 레이라, 이름 모를 분까지. 7인의 대주교 중 하나로서, 필수적인 사항에 대해 모두 전달드렸습니다. 이로써 사태의 완전한 종료를 선언하겠습니다.”
조제프가 기립했다.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 *
카일리언스와 벨디른 공화국에서 암약한 주검의 영광에 대한 토벌전은 끝이 났다.
여전히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었으나, 그들을 뿌리째 뽑는 건 루아스교와 다크 워튼의 역할이었다.
베르덴은 아드리안과 복수의 여정을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이전보다는 명확해진 방향성과 함께.
이제 브릴런 최고 의원이 약속했던 보수를 받으면, 그 길로 동대륙을 떠날 예정이다.
아직 베르덴 일행을 실을 공화국의 비행정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며칠 이내에 올 터.
그동안 베르덴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인연과 마주했다.
“건강해 보이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애셔 님.”
베르덴에게서 다중 연속성 이론을 가르침받은 겔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