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59화 (359/366)

359화 이명

7위계 이상의 마법은 오직 초월자만의 전유물.

인간이라는 범주 내에서, 마법사가 가장 높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는 상식적으로 6위계가 한계다.

그렇기에 마법계에서는 이를 ‘도달자’라 칭하고, 거기에 마도가 더해지면 ‘마도의 도달자’라 일컫는다.

다크 워튼의 후계자, 할디른 데이라스.

(전) 에스티리아 왕국 최강, 레오닐 베르타나스.

미들로스 자치령에서 간접적으로 마주했던 두 마탑의 간부.

네 번째 하인, 케실루스가 그 예.

말 그대로 마법사 혹은 마도사의 극단에 도달한 자를 뜻하는데, 드높은 위상과 경외가 담겨 있는 총칭이다.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흔히 쓰는 호칭은 아니고.

주로 통용되는 건 마법계의 영향력이 강한 중앙 대륙이나, 서대륙의 일부 지역이라고 알고 있다.

이제껏 동대륙에서는 딱히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다만 중앙 대륙과 공간 이동진으로 연결된 이곳 벨디른 공화국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 모양이다.

‘마도의 도달자…….’

베르덴이 내심 그 명칭을 곱씹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도사였다.

간단히 활동 비중을 따져 보면 공국과 왕국의 그레이에서 의뢰를 받아, 용병 비슷하게 일을 한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소울 트리 토벌과 글러트니와 협력한 가드란 후작가의 멸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긴 했지만…… 누구나 알 법한 유명세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건 베르덴이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은 개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비교적 제대로 된 다수에게 힘을 보인 건 암흑가 로아프라가 전부.

결국 세간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뒷세계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크리드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서 공공연히 유골룡을 상대했을뿐더러 끝내 토벌에 성공했으니…….

베르덴이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2주 동안 명성이 퍼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6위계 마도사로 특정되어 알려진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7위계 원소 마법을 사용했다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테니.

마법의 위력에 의구심을 갖는 이가 아예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보다는 마도라고 치부하는 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었다.

7위계란 그런 것이다.

베르덴은 이름 모를 마법사의 인사를 간단히 받은 뒤,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세크리드의 교회.

문밖을 나서기 전,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맞은편에서 공화국의 상징이 새겨진 마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 멈춰 섰다.

문이 열리며, 정갈한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애셔 백작. 무사하신 것 같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브릴런 케이란스.

루아스교와 협력하고 있는, 벨다른 공화국의 최고 의원.

이곳저곳을 오가며 엉망이 된 세크리드를 수습하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불필요한 혼란은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도시를 안정시키고, 이렇게 마중 나올 시간도 생겼고요. 그리고 별개로…… 백작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용건이 있음을 밝힌 브릴런이 공손히 마차를 가리켰다.

“그러니 함께 식사라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권유였으나, 베르덴은 거절하지 않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 * *

“주검의 영광이 세크리드의 지하 곳곳에 쌓아 놓은…… 카일리언스와 다른 곳에서 운반해 온 사체들은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워낙 사기에 더렵혀져 있어서, 신성력과 닿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군요.”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밀실에 베르덴과 브릴런이 자리했다.

미디엄 레어로 익힌 두 개의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브릴런이 손수 유리잔을 채웠다.

상표를 보니, 억대를 호가하는 중앙 대륙산 와인.

반대편에 앉은 브릴런은 자신의 곁에 처형자를 비롯한 어떠한 호위도 두지 않았다.

“그 사체 더미들 안에는 넬로니안 최고 의원이나, 세크리드의 시장, 덤브레드를 따르는 의원들과 그의 직속 처형자들로 추정되는 시신들도 있었습니다. 하, 다섯 최고 의원 중 세 명이 죽다니…… 이는 훗날 공화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남을 겁니다.”

브릴런은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 조직에 의해 국가 수뇌부의 태반이 날아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사태의 위험성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은 결과라고 여기곤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마음이 편할 터였고, 실제로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최악으로 가정했을 때, 특수 개체, 셉타 호른과 유골룡이 전국적으로 원 없이 날뛰었다면…… 토벌이고 뭐고, 공화국의 존망이 위태로웠을 테니.

으적.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킨 브릴런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희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희소식?”

“어젯밤까지 이어졌던 조사 결과, 지반에 묻혀 있던 유골룡의 골격 일부를 확보했습니다. ”

“……!”

그 말에 베르덴이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용의 뼈라고는 하지만, 성녀의 기적에다가 초신성의 폭발에 정통으로 노출되었음에도 형체가 남아 있었을 줄이야…….

“죽었다고는 해도, 언데드인 이상 사기가 남아 있었을 텐데. 운반 도중에 문제는 없었습니까?”

“고위 모험가 몇 명이 죽을 뻔하긴 했습니다만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조제프 대주교님께서 팔라딘을 대동하시고 직접 나서 주신 터라.”

“치료에다가 정화까지. 7인의 대주교라고 해도 견디기 어려운 부담일 텐데.”

“예, 많이 지친 모습이시더군요.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저 같은 범인으로서는 가히 상상키 어려운 의지로…… 지금은 세크리드의 교회에서 푹 쉬고 계십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브릴런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가 서두였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론? 유골룡의 뼈가 전부가 아니었던 건가?

베르덴은 애써 묻지 않고, 식사를 이어 나가며 잠자코 경청했다.

“솔직히 말해 루아스교만이 아닌 백작, 할디른 공, 이를 모를 검사님과 레이라 님의 조력이 없었다면 필연적으로 세크리드는 멸망했을 겁니다.”

브릴런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내곽에서 전투, 아니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저는 말주변으로 살아가는 정치인이나, 반드시 갚아야 될 은혜는 갚는 사람입니다.”

고기 기름이 묻어 있는 그릇을 옆으로 밀어낸다.

양손을 식탁 위에 올린 브릴런이 진지한 얼굴로 깍지를 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레이라 님의 모험가 권한을 통해, 중앙 대륙으로 향하는 공간 이동진을 이용하고 싶으시다고. 다른 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허가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일리언스와 공화국에서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데. 문제는 없는 겁니까?”

“그 또한 현재 진행형으로 수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던피트에서처럼 현상금 사냥꾼이 달려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 처리가 빠르다.

듣던 대로 2주 동안 아주 바쁘게 움직인 모양이다.

“그리고 공화국 차원의 입장으로서, 보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보수라면…….”

“가능하다면 돈으로 준비해 드리고 싶지만…… 의원들의 사망과 세크리드의 복원 때문에 예산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공화국의 국고에 있는 현물을 지급해 드리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티팩트라든가.”

“선택권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임의로 가져가실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보수를 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감사의 개념. 필요 없는 걸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벨디른 공화국이 모아 둔 보물을 꺼내겠다는 건가. 그것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다니.

상당히 크게 나왔다.

“백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야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최고 의원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에스티리아 왕국을 혐오하는 앵그랑 최고 의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었던 그라면 흔쾌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

“……앵그랑 최고 의원이 훼방을 놓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연한 태도였다.

애당초 이와 같은 공화국의 보수를 딱히 고려한 적은 없었기에, 뭐든 간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여, 브릴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직후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나눌 대화는 없다고 판단한 베르덴이 일어서려던 찰나, 브릴런이 깜빡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참, 혹시 소문은 들으셨습니까? 거리에 애셔 백작에 대한 말이 자자합니다.”

“……?”

“누군가는 용살자, 누군가는 대마도사라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작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브릴런이 나지막이 말했다.

“신성(新星), 애셔.”

갑작스레 나타난 새로운 별.

세크리드에서 시작된, 베르덴의 새로운 이명이었다.

* * *

베르덴이 떠나고 난 뒤, 밀실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

말없이 빈자리를 응시하고 있던 브릴런이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잘게 떨리는 손으로, 뒷목에 흐르고 있던 식은땀을 닦아 냈다.

철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

브릴런 최고 의원의 직속 처형대의 리더, ‘우드거드’가 안으로 들어와, 브릴런의 옆에 섰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조금 힘겹기는 합니다.”

브릴런이 헛웃음을 지었다.

직전까지 태연했던 얼굴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래도 대화는 순조로웠습니다. 제가 제시한 보수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공화국에 있어서는 막대한 지출이긴 합니다만.”

“평소의 각하답지 않으셨습니다.”

우드거드의 말 대로였다.

이제까지 브릴런은 교묘한 화술로 상대를 속여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해 왔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말이다.

타고난 정치인.

그것이 브릴런의 평가였다.

그런데 방금의 식사 자리는 어땠는가.

상대방이 생각지도 않았던 이익을 주어, 자신의 손해를 더욱 키웠다.

마땅한 보수를 줘야 한다는 건 찬성이지만 다수의 아티팩트를, 그것도 임의로 지급한다는 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브릴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6위계의 마법사는 이 근방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 중앙 대륙이 더 매력적이니까.”

에스티리아 왕국, 리비안트 공국, 벨디른 공화국, 카일리언스.

이들이 있는 동대륙 중앙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태다.

그에 비해 중앙 대륙은 어떤가.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고, 약육강식의 지역이 만연하다.

혈기를 잃지 않은, 도달자급의 강자들이 날뛰기 좋은 대륙인 것이다.

“애셔는 그런 그들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있는 마도의 도달자입니다. 하물며 공화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에스티리아 왕국의 명예 백작. 심지어 루아스교의 대주교와 친분이 있고, 다크 워튼의 2인자와 대작(對酌)하는 자입니다.”

너무도 무거운 신분이다.

게다가 성녀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언데드인 초월종의 숨통을 직접 끊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도 세크리드의 태반을 날릴 만큼의 위력을 지닌 마법으로.

“세크리드를 구원했던 영웅적인 모습은 잊으십시오. 수려한 겉모습도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그는 단신으로 도시를 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브릴런이 평생 동안 어기지 않았던 철칙.

그가 손을 말아 쥐었다.

“……‘지배자’에게는 계산기 두드리는 거 아닙니다.”

암흑가의 폭군(暴君).

브릴런이 애써 입에 담지 않았던, 서던피트를 쑥대밭으로 만든 베르덴의 또 다른 이명이었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세크리드의 교회로 간 베르덴은 아드리안, 할디른, 레이라와 만났다.

다들 겉모습은 그대로인 데다가 거동 자체는 하고 있지만, 아예 정상은 아니었다.

목발을 하거나, 삼각건을 둘러 팔을 고정하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다.

유골룡에 의한 내상 때문이었다.

“……애셔, 너는 왜 벌써 멀쩡해진 거지? 분명 부상이 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겉모습만 그럴 뿐이고, 너희들처럼 내상은 남아 있다. 다행히 최상급 포션으로도 상처 자체는 아물긴 하더군.”

“흠…….”

할디른이 기묘한 시선을 보냈다.

그의 로브 안쪽에는 어둠밖에 보이지 않아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베르덴이 아드리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회복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교회 신세군.”

“하하, 그러게 말압니다. 그래도 저번처럼 반병신까지는 아닙니다.”

아드리안이 손을 들었다.

부러졌었던 손가락이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이었다.

“…….”

줄곧 입을 닫고 있던, 안면 전체를 덮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레이라가 슬쩍 베르덴의 소매를 당겼다.

휠체어가 들썩였다.

“애셔, 잠시 저하고 대화 좀 해요.”

톡톡.

레이라가 가면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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