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58화 (358/366)
  • 358화 다시, 한 걸음

    초신성은 성신 마법을 바탕으로, 무한의 마도를 통해 탄생시킨 베르덴의 별.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마력을 소모하는 대신, 그 위력은 가히 초위 마법에 필적한다.

    베르덴이 고개를 틀어, 세크리드와 마주 보고 있는 자연을 바라봤다.

    본디 따뜻한 겨울의 숲.

    그 중심에는 낯설고 광활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사막 한복판의 풍경처럼 황량한 대지였다.

    별의 폭발.

    그것은 나무, 풀, 성물을 품은 러스트러스 등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마찬가지로 유골룡의 존재감 또한……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다.

    ‘다행히 계산은 정확했다.’

    베르덴으로서도 초신성을 실제로 구현한 건 지금이 두 번째.

    이전엔 마녀, 실리스가 만들어 낸 정신적 세계에서 사용했었기에, 현실에서 시전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만약 방금처럼 거리를 확보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세크리드의 반 이상이 날아갔으리라.

    그리고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가볍게 무시했어야 할 브레스를 막은 건 최악의 판단이었다.

    돌이켜 봐도 자명하다.

    하나 이후의 흐름은 베르덴 스스로에게 있어 최고이자 최선의 결과였다.

    ‘아무리 신중하더라도 언제나 완벽한 선택을 내릴 수는 없다.’

    때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최악이라고 여겼던 것이 최고의 결과를 자아낼 수도 있고.

    세상은 딱딱 들어맞는 퍼즐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 따위는 조금도 믿지 않는다.

    손에 닿지 않는 모든 걸 고려하여 조율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변수가 나타나든 간에, 능히 상황을 주도하여 끝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머쥐면 그뿐이다.

    그것이야말로 베르덴이 살아오면서 독자적으로 구축한 가치관이었다.

    더 이상 주검의 영광에 의한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벨디른 공화국에서의 일이, 루아스교와 다크 워튼과의 공조가, 긴 하루가 마무리된 것이다.

    이로써 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아.”

    베르덴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여닫았다.

    숨기지 못할 정도로 피로감이 매우 짙다.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드물게 수면욕이 그를 강하게 자극했으나, 그 전에 유골룡에게 당한 상처를 처치해야만 한다.

    아직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에는 일렀다.

    베르덴이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갑작스레 비명이 터졌다.

    두려움이 섞인 음성이다. 한 명도 아니고 다수.

    방향은 정면.

    다시금 감각을 높인 베르덴이 시선을 들었다.

    “…….”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 한가운데에 레이라가 있었다.

    찢어지고 망가진, 덕지덕지 피로 물들어 있는 검붉은 갑옷을 입은 그녀가 서 있었다.

    그런데 기이했다.

    실에 걸린 인형처럼 힘이 없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자세였다.

    “대주교님! 팔라딘님!! 아무나 도와주세요!! 신성력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요!!”

    레이라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레나 주교.

    그녀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며 신성력을 발하고 있다.

    이윽고 침묵하고 있던 레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쩌저적.

    내구도가 한계에 다다랐던 투구가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감춰져 있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흐, 흐아아아악!!”

    “끄어억…….”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졸도했다.

    하나같이 눈이 뒤집혀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정신계에 영향을 주는 건가?’

    미간을 좁힌 베르덴이 왼쪽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어떠한 영향도 없이 레이라의 얼굴을 직시했다.

    선혈이 묻어 있음에도 새하얀 피부, 흠잡을 것 없는 미형이다.

    그녀의 머리칼과 같은,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황금색의 눈동자에 노을의 빛이 반사되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과 다르게 양 눈의 흰자가 아주 검게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금안(黃眼)이자, 역안(逆眼)이다.

    레이라가 입술을 달싹인다.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이내 그녀가 정확히 베르덴을 노려보았다.

    [넌. 누구지?]

    이형의 것에 가까운 목소리다.

    그 의지 또한 레이라의 것이 아니었다.

    위협적인 기색은 없다.

    오직 순수한 의문만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기괴했다.

    베르덴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눈을 감은 레이라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당장! 당장 저주를 완화해야 해요! 제가 말할 때까지 신성력을 거두지 마세요!”

    “네, 넵. 주교님!”

    시급히 달려온 성직자들이, 레나 주교와 함께 신성력으로 레이라를 에워쌌다.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악마와 관련된 것 같다.

    이전에, 그녀의 얼굴에 악마의 저주가 깃들어 있었다고 들었으니.

    ‘갑작스럽군.’

    베르덴의 감흥은 그게 전부였다.

    점점 레나 주교의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아, 위험한 고비는 넘긴 듯싶었으니.

    “주군.”

    그러던 도중, 뒤늦게 소란을 듣고 아드리안이 찾아왔다.

    가파른 호흡과 불규칙적인 발걸음. 손가락이 몇 개쯤 부러져 있다.

    유골룡과의 격전으로 인해 그도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명 소리를 들어 찾아왔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혹시 남은 적들이…….”

    “그건 아니지만,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고개를 저은 베르덴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만 쉬러 가지.”

    당장의 진심이었다.

    * * *

    신성력이 일으키는 치유의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다.

    카일리언스에서 레나 주교가 온 힘을 다한 끝에, 반병신이었던 아드리안을 며칠 사이에 완치했던 것처럼.

    물론 상위 주교인 레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기적이라고 해도, 그를 기도하는 성직자의 경지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니.

    이러한 부분에서는 기와 마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유골룡에 의해 발생한 상처는 일반적인 경우와 차원이 달랐다.

    언데드계의 초월종이 내뿜는 냉기와 사기의 영햑력은 물질적 본질을 넘어섰다.

    쉽게 말해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일지언정, 실질적인 내상은 제대로 치유되지 않는 것이다.

    아드리안, 할디른, 레이라, 로메르 등…… 그러한 중상자가 다수.

    찢어진 근육과 살, 부러진 뼈, 동상에 의한 괴사, 관통상 등 부상의 종류가 다양했다.

    그 탓에 조제프는 최소한의 신성력을 회복하자마자 곧장 기도를 올려야만 했다.

    대주교급의 신성력은 그나마 효과가 있는 편이었기에.

    그 외에도 수많은 부상자가 있었다. 아인종과 마수, 전투의 여파에 의해 다친 사람들이었다.

    루아스교의 성직자들은 쉴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어둠이 내려앉았음에도 세크리드의 내곽은 여전히 부산했다.

    “…….”

    베르덴은 내곽 어딘가에 있는 건물 꼭대기 층에 있었다.

    브릴런 최고 의원이 내어 준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다른 부상자들처럼 교회는 가지 않았다.

    기적의 의한 치료는, 그리 큰 중상은 아니라며 거절했다.

    ‘애초에 소용없으니까.’

    베르덴의 육체적 특석상 신성력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대주교의 기적을 받은 적은 없으나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아인베르]의 착용을 해제했다.

    손상이 꽤 심하지만…… 뭐, 알아서 수복되겠지.

    유골룡의 영향 탓에 평소보다 오래 걸릴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풀썩.

    상반신을 드러낸 베르덴이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약간이나마 회복한 마력을 끌어모았다.

    마력 제어로 마력의 바늘과 마력의 실을 구현했다.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역천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육체…… 그 복부에 깊게 찢어진 상처가 눈동자에 비쳤다.

    베르덴이 강하게 왼손으로 상처를 쥐어, 가장자리를 좁혔다.

    후두두둑…… 뚝…… 뚝…….

    갑작스러운 압력에 적지 않은 피가 새어 나온다.

    피부를 타고 흐른 새빨간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푹.

    주저 없이 새파란 바늘과 실로 절창을 봉합했다.

    아주 꼼꼼하게.

    직후 그 위로 최상급 포션을 뿌리고 또 마셨다.

    “……!”

    작열감을 비롯한 격통에, 베르덴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그뿐이다.

    실험체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했다.

    그렇게 10분 간격으로 최상급 포션을 복용하기를 다섯 번째.

    베르덴의 육체는 마법적으로 완성되어 있다.

    그런 덕분에 마력이 깃들어 있는 포션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유골룡의 뼈에 꿰뚫렸던 오른팔의 상처마저도.

    부러진 늑골 또한 제자리로 돌아가며 접합이 되었다.

    물론 내상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당분간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완치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평범한 인간답지는 않군.’

    베르덴이 생각해도 그러했다.

    균열이 생기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작용…… 치유력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완전성에 가까웠다.

    지금만이 아니라, 관리자와의 마법전이 끝나고 난 뒤에도 멀쩡하게 회복할 정도니.

    ‘초월자는 다 이런 식으로 회복하는 건가?’

    <아케인>을 전수받을 당시에 의문을 표한 적은 있으나, 기억의 일부만을 받은 관리자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들은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염동력>

    베르덴이 허공에 거울을 띄우고는, 마안이 있는 오른쪽 눈을 살폈다.

    시야는 보이지 않는다.

    고작 명암을 희미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영구적인 손상은 아니다.

    이토록 과부화된 마안도 시간이 지나면 무사히 회복할 것이다.

    지금 상태로 무리하면……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아무튼 위급한 중상은 처리했다.

    룬의 반지, 엑시드로 강화되어 있는 내장 감각으로도, 치명적이라 느껴지는 부위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

    베르덴이 왼손을 들었다.

    동시에 심장의 잠들어 있는 마력이 술렁인다.

    마력회로를 따라 마력이 질주했다.

    화아악.

    피투성이의 손에 검붉은 마력이 맺혔다.

    작지만, 강렬하게.

    * * *

    벽안에 비친, 정체불명의 마력.

    베르덴이 지금 스스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게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간단하게라도 알아보려고 한다.

    미지에 대한 고찰.

    지극히 마법사다운 태도였다. 들이닥치는 피로감은 애써 뒤로 물렸다.

    먼저 이 마력은 잠시나마 위계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없애 버릴 수 있다.

    말인즉슨 베르덴이 일시적으로 7위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마력의 성질은 어떨까.’

    만약 검붉은 마력 자체에 7위계로 향하는 힘이 담겨 있는 거라면…… 혹시 이것을 이용해 7위계급 마법진을 작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해지면 공간의 구애에서 벗어난다.

    보헤미른 마탑에서 탈출했을 때처럼, 공간 마법진을 통해 장거리 이동을 하면 될 테니.

    하지만 아쉽게도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런.”

    파지지직.

    허공에 간단한 마법진을 그리자, 곧 명멸하며 강력한 반발력이 있었다.

    제어를 시도할 틈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물을 새겨 넣는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검붉은 마력이 닿는 순간, 바닥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재빨리 거두지 않았다면 층째로 무너졌으리라.

    마지막으로 마석을 이용했다.

    기왕 실험할 거, 가장 좋은 재료를 준비했다.

    수억 엘크는 가뿐히 넘는 최상급 마석을 매개체로, 검붉은 마력을 조작했다.

    ……마석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파멸했다.

    ‘기존의 마력이 가진 성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베르덴이 알고 있는 마법적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파괴, 난폭, 무질서.

    이 이질적인 마력은 단적으로 말해 파멸적이었다.

    문득 마도왕의 무덤에서 나누었던 관리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검붉은 마력…… 그럼 그것이 제 진정한 마도란 말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정황상으로 봐도 타당하지. 아무래도 아득해진 정신이 일시적으로나마 육체와 조화를 이뤘기에 발현된 모양이니.

    검붉은 마력.

    과연 그의 말대로 이것이 진정한 마도일까.

    관련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이나, 이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초월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아직 정신적 깨달음을 확실하게 얻지 못했다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베르덴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려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무엇을 계기로 이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손을 움켜쥐었다.

    날뛰고 있던 검붉은 마력이 가라앉는다.

    동시에 막연하게 그려 왔던 그림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그래.

    어떤 깨달음을 통해 초월을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보헤미른 마탑에게 복수할 수 있는지.

    이제야, 조금씩 명확해진다.

    * * *

    부상 상태가 호전되고 있음을 밝힌 베르덴은 한동안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의향에, 누구도 되묻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마다, 호화로운 식사가 카트째로 문 앞에 준비될 뿐.

    도중에 아드리안이 목발을 짚은 채로 한번 방문했던 걸 제외하면, 베르덴은 누구와 만나지도 않았고, 일절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을 청하며, 오직 내상을 회복하는 데 전념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난 시점.

    철컥.

    마침내 베르덴이 바깥을 나섰다.

    깔끔하게 수복된 아인베르를 착용한 채.

    아직 내상과 마력이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았으나, 거동이 불편할 때는 지났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도시 내곽의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

    발걸음을 옮기자, 기하급수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향해 오기 시작했다.

    갖가지 감정이 섞여 있다. 놀란 눈으로 제각기 수군거린다.

    때마침 근방을 지나고 있던, 나이 든 마법사와 마주쳤다.

    순간 놀라움을 드러낸 그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마도의 도달자를 뵙습니다.”

    마도의 도달자.

    중앙 대륙의 마법계에서 6위계 마도사를 이르는 총칭.

    일면식 없는 마법사가 태도로서 존중을 표한다.

    공포와 떨림, 그러한 것들을 아우르는 감정.

    그건 경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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