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57화 (357/366)
  • 357화 하루의 끝

    산 자도, 죽은 자도 구별하지 않고, 닿아 있는 사물을 모조리 분살(焚殺)해 버리는 광기의 화염.

    성벽의 잔해, 성문 부근의 거리, 바닥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 스산한 겨울의 공기…….

    베르덴의 전면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것이 붉게 타오르며, 녹아내리고 증발한다.

    허공에 드리운 용의 얼음까지도.

    콰아아아아아아!

    유골룡이 가장 단단한 두개골을 들이밀어 맹렬한 불길을 막아 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반응이 전혀 달랐다.

    극한까지 밀도를 높인 유성이 추락했을 때도, <원소화>의 화염에 노출되었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동요를 드러내고 있다.

    비단 7위계 화염 마법이 지닌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녀의 기적에 당한 유골룡의 목숨은 일종의 시한부와도 같다.’

    시시각각 파열된 뼈에서 떨어지는 자그마한 뼛가루.

    어디선가 막대한 사기(死氣)를 보충하여 신체를 수복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둬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체가 무너져 내릴 터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끌면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럴 만한 몸 상태도 아닐뿐더러, 놈이 채 소멸하기 이전에 세크리드는 멸망하고 말 테니까.

    ‘그러니 내가 직접 끝내 버린다.’

    어느 모로 보나 유골룡의 골격은 상당히 파괴되어 있는 상태.

    철옹성과 같던 기존의 저항력은 빛을 잃었고, 가장 경계하고 있었던 거대한 날개는 송두리째 사라졌다.

    물론 베르덴 또한 못지않게 만신창이였다.

    평소에 비해 가용 가능한 마력이 그리 많지 않다.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부담이 겹쳐 호흡조차 불편하다.

    위계의 벽을 없애고, 7위계의 마법을 쓸 수 있는 현재를 오래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조제프 대주교가 말했던, 그 잠깐이라는 시간 정도는 충분하리라.

    화르르륵…….

    이윽고 <헬파이어>의 불길이 가라앉는다.

    전신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유골룡이 용암 위를 기어 왔다.

    두 눈을 이루는 푸른 불꽃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살기가 들이닥쳤다.

    놈의 신경이 오직 베르덴에게만 집중되었다.

    ‘가능한 거리를 두고 싶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격렬한 <비행>을 펼치기에는 부상이 심각하다.

    심호흡을 한 베르덴이 기꺼이 지글거리는 대지를 거닐었다.

    오른손으로는 오리엔트를 다잡았고, 왼손으로는 복부의 상처 안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

    치이이익.

    [아인베르]의 저항력이 닿지 않는, 손상된 체내를 차갑게 얼렸다.

    오히려 체력을 대거 빼앗는 자해에 가까웠으나, 단기전을 치르는 동안 출혈을 억제하려면 이 방법 외에는 없다.

    턱에 힘줄이 돋았다.

    시퍼런 안광을 번뜩인 베르덴이 마력을 집중했다.

    <아퀼로>

    먼 옛날, 어떤 초월자가 바람 계열의 특징인 자유로움을 버리고, 오직 위력만을 집중시킨 끝에 만들어 낸 7위계 마법.

    기류가 위협적으로 휘몰아친다.

    스태프의 첨단에 모여든 바람이 응축되며 입체적인 원을 형성했다.

    이윽고 두 존재가 서로의 지척에 도달했다.

    망설임 없이 각자의 팔을 휘두른 끝에, 극한의 폭풍과 유골룡의 발톱이 격돌했다.

    ───!

    근방을 휩쓰는 충격파, 그를 뒤따르는 파공음.

    세크리드 전역이 흔들렸다.

    * * *

    마법계에서는 고위계 마법에 관한 대부분의 서적에 대한 엄격한 열람제한을 걸었다.

    마탑이 정한 법률이었다.

    범인은 감히 이해하지 못할, 아주 수준 높은 마법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걸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한 작용으로 인해 고위계 마법에는 자연히 희소성이 부여되었다.

    안 그래도 타고난 재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마법사가 더욱 특별해지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6위계 이상의 마법들은 마탑을 경유하거나, 암시장과 같은 불법적인 거래처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한눈에 고위계 마법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는, 마법사라고 해도 드문 편이다.

    물론 상위 마탑의 후계자쯤 되는 위치에 있다면 예외였다.

    퍼어엉! 우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앙!

    화염, 바람, 대지 그리고 뼈.

    원소와 유기물 간의 무지막지한 충돌이 이어진다.

    굉음이 수차례 공간을 울렸다.

    평범한 사람들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다.

    압도적인 광경 속에서 할디른이 유골룡과 접전을 이루고 있는, 잿빛 머리의 마도사를 응시했다.

    그리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7위계……?”

    그도 7위계 원소 마법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다.

    하나 당장의 위력으로 보면 틀림없었다.

    모든 위계 마법은 공통적으로 마법별로 등급이 분류되어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7위계 이상은 하나같이 각 계열의 궁극에 가까운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한낱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다시 말해 7위계란, 오직 초월자처럼 인간을 벗어난 마법적 존재만에게 허락된 위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문득 하나의 가설을 떠올린 할디른이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애셔는 초월자가 아니다.’

    단호한 확신이다.

    훗날이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각성이라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그의 스승과 비슷한 초월적인 격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이해가 따라가지 않았다.

    통상적인 6위계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는 마력량.

    특이한 마법진이 새겨진 눈동자.

    본디 연산이 불가능한 7위계의 구현.

    하나같이 의문투성이다.

    게다가 7위계 원소 마법에 대한 지식은 어디서 구했는가.

    그것도 한 가지 속성도 아니고.

    마탑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면 마탑 출신 마도사의 제자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 교집합에 해당하는 후보를 애써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원소 계열의 마법을 취급하는 마탑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니까.

    ‘보헤미른 마탑.’

    할디른이 서대륙의 마탑 중 하나의 이름을 떠올리던 그때였다.

    “할디른! 저를, 저기 있는 러스트러스로 보내 주시겠습니까!”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제프 대주교였다.

    무너진 성벽 아래로 하강한 할디른이 그의 어깨를 부축하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물었다.

    “옮겨 주긴 하겠다만, 저 망가진 비행정으로 뭘 하려는 거지?”

    “애셔가 유골룡을 도시와 멀리 떨어뜨려야 한다더군요. 그래서 성물을 폭주시켜 볼까 합니다.”

    “……뭐?”

    “그러니까, 할디른.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 *

    세크리드의 성문이 있었던 외곽 성벽 근방.

    수많은 외지인이 왕래했던 거리는 원형조차 남지 않았다.

    오직 잿더미, 잔해, 얼음만이 남아 있는, 초토화된 일대.

    그 중심에 있는 베르덴이 즉각적으로 정면을 향해 마력을 일으켰다.

    <단철의 격벽>

    경도만을 아득히 높인 대지가 솟아올라 베르덴을 보호한다.

    그 위를, 유골룡의 꼬리가 채찍처럼 후려갈겼다.

    콰아아아아앙!

    단번에 장벽이 박살 났다.

    놈의 일격을 차단하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몇몇 파편들마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전신에 엄습하는 충격.

    오른쪽 볼이 날카롭게 베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베르덴이 토혈했다.

    “……쿨럭, 쿨럭!”

    시야가 흐릿하다.

    마안에서는 굵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냉기를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혈류를 감속한 복부의 상처에서도 결국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 방대한 마력조차 더는 버티지 못할 정도.

    이제 7위계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이다.

    그 외의 남은 마력은 쓸데가 있었기에.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대한 마법에 의해 신체 곳곳이 무너진 유골룡이 양발을 내리찍었다.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사방을 얼린 혹한의 한기가 여지없이 들이닥쳤다.

    베르덴이 양손으로 스태프를 잡아 앞으로 뻗었다.

    <아르도르의 불길>

    그의 육신이 홍염에 휩싸였다.

    이윽고 화염과 냉기가 맞부딪쳤다.

    포식자와 포식자.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한 힘 겨루기 속에서는 수증기조차 일지 않았다.

    그저 소멸을 반복할 뿐인, 그야말로 접전.

    그러던 그때였다.

    ‘다행히, 제시간에 왔군.’

    쿠구구구구구구───!

    유골룡의 뒤쪽에서 거대한 물체가 재빠르게 움직인다.

    선체가 심각하게 훼손된, 대주교의 비행정, 러스트러스.

    그것이 광활한 신성을 내뿜으며 지상을 질주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지금입니다, 할디른.”

    “알고 있다.”

    조제프의 신호에, 할디른이 마도를 개방했다.

    사전에 건네받은 대주교의 생명력을 자신의 저주에 깃들게 했다.

    <성영의 주박>

    흑마법과 신성력의 조화.

    성물의 신성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물질계 저주의 완성,

    촤르르르르륵!

    왼손과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어둠의 사슬이, 각각 러스트러스의 성물과 유골룡의 꼬리를 휘감았다.

    “하아아아압……!!”

    할디른이 전력을 다해 안쪽으로 팔을 굽혔다. 어깨의 상처에서 격통과 피가 터져 나왔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완전히 맞대는 데 성공하자, 유골룡과 성물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목적은 달성했다.

    할디른이 서둘러 조제프를 데리고 러스트러스에서 벗어났다.

    [?!]

    갑작스러운 인력에 의해 유골룡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상체를 굽히고 지면을 붙잡았다.

    본래라면 능히 힘으로 이겨 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우지지직.

    지면에 박아넣은 놈의 앞발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났다.

    안 그래도 망가지기 시작하던 거체가, 베르덴 탓에 손상이 가중된 결과였다.

    콰드드드드득……!

    저항은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유골룡이 그대로 비행정에 의해 끌려갔다.

    발톱으로 지면에 커다란 상흔을 남기던 놈이 삽시간에 세크리드와 멀어졌다.

    쿠웅.

    잠시 후, 폭주하던 성물이 힘을 다하며 러스트러스가 멈춰 섰다.

    덩달아 유골룡 또한 정지했으나 상관없다.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했으니.

    ‘이 거리면 충분하다.’

    베르덴이 하늘로 솟구쳤다.

    남은 마력과 의식을 전부 집중하고, 마안마저 발동하여 최후의 마법을 펼쳤다.

    천체의 영역, 영성(領星) 알헤나.

    성신 마법의 세 번째 별.

    세크리드의 상공이 어둠에 휩싸이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수많은 빛이 반짝거린다.

    ‘유골룡에게는 유성우(流星雨)의 위력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오직 하나의 별이다.

    베르덴이 왼손을 폈다.

    의지에 따라 알헤나의 공간이 술렁이더니, 무수한 별들이 원의 궤도를 그리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소용돌이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빛이 꺼진 밤하늘.

    베르덴의 손에는 유일한 빛만이 남아 일렁였다.

    조용히 왼팔을 뻗었다.

    하나로 융합된 별이 공간을 격하며 유골룡에게 쇄도했다.

    [가아아아아아아아!]

    최후의 포효.

    본능적으로 끝을 직감한 유골룡이 남은 생명력을 끌어모아 브레스를 발했다.

    극저온의 숨결과 회색의 별.

    둘이 충돌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베르덴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격화激化

    체력을 비축하고 있던 아드리안이 절기를 펼쳤다.

    자색의 잔상을 남기며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간 그가 온 힘을 다해 마검을 휘둘렀다.

    속도의 극을 넘어선 무형의 검기.

    저 멀리, 알헤나의 바깥에 있는 구름이 갈라진다.

    지상도 마찬가지다.

    수직의 궤적에 있던 모든 것이 단절되었다.

    쩌적.

    수백 개의 금이 새겨져 있던 유골룡의 어깨가 일격에 절단되었다.

    중심을 잃은 강대한 숨결이 하늘로 치솟았고, 동시에 베르덴의 별이 유골룡의 몸체에 닿았다.

    그리고.

    별의 폭발, 초신성(超新星).

    ───!

    회색의 섬광이 점멸한다.

    인지를 벗어난 폭발이 알헤나의 어둠을 지우고, 범위 내의 반경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직후 막대한 힘의 파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

    그와 대조적으로 뿌리째 뽑히는 나무들과 뒤집히는 대지가 시야에 비쳤다.

    등골이 서늘하다.

    눈을 부릅뜬 기사 하나가 양옆 병사의 뒤통수를 짓누르며 소리쳤다.

    “전원!! 엎드려어어어어어!!!”

    숨이 붙어 있는 모두가 다급하게 바닥과 밀착했다.

    여력이 있는 전사와 마법사, 성직자는 각각 기막과 장막, 신성 보호막을 펼쳐 충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초신성의 후폭풍이 세크리드에 닿았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건물에 있는 창문들이 모조리 박살 났다.

    고층 건물은 버티다 못해 무너지며 중층 이상이 거리로 추락했고, 끝내는 도시 내곽의 성벽마저 일부 금이 갔다.

    마치 거대한 폭풍에 직격당한 듯한 광경이었다.

    기나긴 찰나였다.

    그래도 다행히 한순간에 불과했다.

    …….

    고요함이 찾아왔다.

    덜덜 떨고 있던 모험가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이어 다른 사람도 아주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켰다.

    저 멀리, 겨울의 석양이 보인다.

    샛노란 빛이 세크리드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대낮에 시작된 아인종 급습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 사람의 그림자가 시야에 드리웠다.

    베르덴 또는 애셔.

    노을을 등진 그가 천천히 내려와 지면에 착지했다.

    기진한 모습이었다.

    곳곳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치명적인 상처가 가득하다.

    감겨 있는 오른쪽 눈 아래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피로감이 심하다.

    작게 고개를 든 베르덴이 턱 끝에 맺힌 피와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지치는군.”

    죽음에서 탄생한 초월종, 유골룡(遺骨龍).

    토벌 성공.

    수많은 시선 속에서, 베르덴이 하루의 끝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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