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이변 (2)
[아인종, 놀(Gnoll)의 진화는 통상적으로 여섯 개의 뿔을 가진 헥사 호른이 끝이다.]
[여타 최상위 개체가 그렇듯 무척이나 강하고 희귀하기에 발견되는 경우는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의 0%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자연적인 요인으로 다섯 마리의 헥사 호른이 한 영역에 모이게 된다면 기현상이 발생한다.]
[바로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마치 본능처럼.]
[……그렇게 피로 얼룩진 살육전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한 개체만이, 일곱 개의 뿔을 가진 셉타 호른이 된다……고 보여진다.]
모험가 길드 본부에 보관되어 있는, 어떤 수첩에 실린 내용.
셉타 호른이 남긴 발자취와 흔적은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했으며, 그에 따른 타당성 또한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기에 필체와 끝 맺음에는 확신 대신 미약한 주저함이 남아 있었다.
47년 전, 셉타 호른을 토벌한 뒤, 그 탄생 배경을 쫓던 흑요 등급 모험가가 직접 남긴 수기였다.
우드득.
셉타 호른이 사람의 몸통만 한, 다섯 개의 발톱을 번뜩였다. 대기를 찢어발긴 칼바람이 저편에 있는 건물을 조각내었다.
스치듯 피해 낸 모험가, 버민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야이…… 막았으면 두 동강 날 뻔했잖아?! 뭔 위력이 저래!!”
“그러니까 조심해, 멍청아!”
같은 파티원 루비나가 소리치며 활시위를 당겼다.
기예를 펼치자,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두 개의 화살. 정확히 셉타 호른의 눈을 노렸으나 눈꺼풀에 가볍게 튕겨져 나갔다.
“칫, 미스릴제 화살인데 전혀 먹히지가 않아……!”
“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항력이 장난이 아니에요.”
흑갈색의 가죽과 털.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이다.
최상위 금속이 일부 포함된 갑옷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정면에서 뚫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할 만해.’
광장에 모인 토벌대는 서로 합을 맞춘 적은 없었지만, 엉키는 일 없이 나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 사망자는 전무.
크고 작은 부상이 생길 때마다, 레나 주교를 포함한 성직자들이 그 자리에서 치유의 기적을 발휘했다.
그리고 특히나, 최전선에 선 두 사람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카아아앙!
로메르의 방패가 셉타 호른의 일격을 비스듬히 흘려보냈다.
그야말로 완벽한 패링(parrying). 거의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그로 인해 셉타 호른의 중심이 순간 휘청거렸다.
빈틈을 놓치지 않은 핏빛검, 레이라가 쇄도했다. 회전하며 잔상을 그린 발차기가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콰아아앙!
[카아악……!]
마침내 반응이 왔다.
그로부터 토벌대는 셉타 호른의 공략법을 깨달았다.
아마도 놈의 약점은 머리.
그리고 외부가 아닌 내부를 노려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셉타 호른의 팔다리를 묶어야 한다.’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
토벌 가능성을 엿본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예, 마법, 기적 그리고 평생 동안 갈고닦은 기술까지.
필사적으로 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파괴되는 광장 속에서 정신없이 셉타 호른을 몰아붙이던 바로 그때였다.
기회가 왔다.
“시야를 빼앗으시오!”
미스릴 등급 모험가 파티, 만하가 먼저 움직였다.
이들은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베르덴과 토벌을 함께하며 정령, 블루를 상대했던 모험가들.
이미 실력은 검증되었다.
“으랏차!”
버민과 루비나가 각각 방패를 던지고 화살을 쏘아 보내 일순간 셉타 호른의 눈을 가렸다.
클레릭, 케디언이 신성 소환의 기적을 일으켰다.
“루아스의 하인이여, 우리의 적들을 분쇄하소서!”
모습을 드러낸 성스러운 빛의 하인이 셉타 호른의 몸을 뒤에서 붙들었다.
더해서 레나 주교와 성직자들이 펼친 <신성주박>의 기도가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봉쇄했다.
“X발, 부숴 버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앙! 쾅! 콰아앙!
모험가와 용병들이 돌진하며 괴물의 양다리를 온 힘을 다해 가격했다.
모든 충격이 오로지 관절에 집중된다. 결정타는 로메르의 검이었다.
신음한 셉타 호른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지금입니다!”
겔톤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마력과 함께 지팡이와 스태프를 겨냥했다.
<파도>
<프로즌 오브>
<겨울 돌풍>
<크라이오>
각종 물과 얼음 계열 마법이 쏟아진다.
짙은 한기에 셉타 호른과 빛의 하인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콰지직.
우악스러운 힘에 신성력과 얼음의 일부가 박살 났다. 다시금 기적과 마법을 연산하여 신경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뻐어어어억!
만하의 리더, 스칼드와 레이라가 동시에 셉타 호른의 양쪽 관자놀이를 있는 힘껏 강타했다.
양손 도끼와 뒤꿈치.
셉타 호른의 입이 벌어지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뒈져라, 이 X새끼야!”
기다리고 있던 최상급 용병이 당장에 검을 쑤셔 박았다.
제대로 들어갔다.
손맛이고 뭐고, 검기가 서린 칼날을 깊숙하게 찔러 넣었으니 최소 치명상일 터.
[카아아앗…….]
쿠웅.
셉타 호른이 꺽꺽대며 뒤로 쓰러졌다.
입에 검이 꽂힌 채로 말이다.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놈의 호흡과 심장 소리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자, 잡은 건가?”
그제서야 누군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고 셉타 호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지성이 있는 개체를 상대할 때의 기본이었다.
다만…… 내심 안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아악!
세크리드의 상공에서 광활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저게…… 뭐지? 빛?”
“신성력인가?”
이 정체 모를 기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극소수였다.
고개를 든 채 눈시울을 붉힌 레나 주교가 양손을 모았다.
‘드디어 조제프 대주교님께서 오셨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위대한 7인의 대주교와 팔라딘이 나선다면 세크리드는 반드시 구원받을 테니까.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아인종과 마수는 감히 상대도 되지 않으리라.
교인으로서의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절망으로 뒤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차 빛이 잦아들며, 눈에 익은 비행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심각하게 훼손된 선체.
전면부가 완전히 얼어붙은 그것이 곧 중심을 잃고 앞으로 기울었다.
이윽고 대각선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러스트러스가, 추락한다.
* * *
시시각각 고도가 떨어진다.
성물의 동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으나 제어가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였다.
점차 지상과 가까워지는 비행정을 본 기사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비, 비행정이다! 비행정이 이곳을 향해 추락한다!”
“모두 거기서 피해!!”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양옆으로 물러났다.
잠시 후, 삽시간에 들이닥친 러스트러스가 성벽의 윗부분을 무너뜨리고는, 아인종과 마수가 득실거리는 전장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 광경을 목격한 레나 주교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레이라 님……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왜 러스트러스가……!”
“…….”
레이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분함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당혹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때였다.
우드득, 우드득, 우드득.
느닷없이 금속을 짓이기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광장에 있던 모두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뭐, 뭐야…….”
“죽은 거 아니었어?”
분명히 숨이 멎어 가고 있던 셉타 호른이 어느샌가 기립했다.
뭔가를 우물거리던 놈이 최상급 용병을 보며 이죽거렸다.
불길한 직감.
“자, 잠깐───”
[크롸아아아아!]
퍼버버버벅!
포효에 날아간 검 조각들이 용병의 몸을 분쇄했다.
후방에 있던 5위계 얼음 계열 마법사 또한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피와 고기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에 흐르는 선혈을 짓밟은 셉타 호른이 움직였다.
“?!”
콰자자자작!
레이라의 갑옷을 찢고 몸을 베어 가르는 커다란 발톱. 직전의 일격과는 전혀 달랐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삽시간에 나가떨어진 그녀가 건물에 처박혔다.
셉타 호른이 붉게 물든 발톱을 핥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캇. 카캇. 카캇. 카캇.]
희열에 찬 비웃음이다.
분명 약해지고 있었던 숨소리와 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차게 박동하고 있다.
거기다 달라진 움직임까지.
셉타 호른은 인간 이상의 높은 지성을 갖고 있다.
먹잇감을 찾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때로는 공포에 떠는 피식자를 보는 즐거움, 때로는 식감과 맛.
갖가지 이유로 직접 사냥에 나선다.
무리를 냅둔 채 홀로 세크리드에 침입한 것도, 일부로 죽은 척 연기를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마디로 포식자의 유희였다.
“이런…….”
셉타 호른이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토벌대가 적응을 마쳤던 것과 현격하게 다른 기민함.
최상급 용병의 사망과 레이라의 부재 등 여러 악조건이 겹친 상황이다.
“끄아아아악!”
“제길, 파낙스가 당했다!”
“내가 막을 테니, 모두 물러나시오!”
“스칼드, 앞으로 나서지 말고 당장 빠져! 피하라고! 기예고 뭐고, 막으면 죽어!!”
“우왓?!”
단번에 진형이 깨졌다.
놀라운 방패술을 보이던 로메르조차 제대로 흘려 낼 수 없는 일격이 쏟아졌다.
“끅, 사, 살려 줘!!”
“미친, 저 괴물 새끼가 인질을…….”
도중 셉타 호른이 토벌대원 한 명을 붙잡아 인질로 삼더니, 끔찍한 웃음소리와 함께 보란 듯이 찢어 죽였다.
시시각각 비명과 함께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루아스교의 성직자들도 대응하지 못할 만큼.
“크읍…….”
잔해 더미에서 레이라가 몸을 일으켰다.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
얼굴을 가린 투구 안쪽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그래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얼굴에 새겨진 악마의 저주는, 자가 치유력까지 품고 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셉타 호른의 지성이 상정했던 수준을 벗어났다.
거기다가 조제프 대주교에게 발생한 이변까지.
‘……이대로는 안 돼.’
어금니를 깨문 레이라가 다시금 광장에 발을 디뎠다.
“레나, 주교님.”
“레이라 님, 괜찮───”
“제 저주를…… 최대한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눈을 동그랗게 뜬 레나 주교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그랬다간 레이라 님의 자아가 먹혀 버릴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저 괴물을 토벌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렇다 한들 레이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떻게든 제어해 볼 테니까.”
“하지만…….”
“그리고 셉타 호른을 상대하는 건 저만이 아니에요.”
토벌대는 와해되었다.
그래도 완전히 실패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반드시 필요했던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기에.
“으, 으아아아악!”
“겔톤, 안 돼!!”
바닥에 넘어진 겔톤이 죽임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갑작스레 광장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셉타 호른의 밭밑에 있던 어둠이 폭발했다.
[?!]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
일순간 비명을 지른 놈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연기 따위가 아닌, 진심으로 고통을 느낀 것이다.
“그 잠깐 사이에 난장판이 됐군.”
드디어 할디른이 참전했다.
그가 광장에 착지한 순간, 후방에서 신성의 빛이 일었다.
저벅, 저벅.
섬뜩한 존재감을 드러낸 레이라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아, 하아…….”
숨이 가파르다.
힘은 차고 넘치나 탈진한 듯한 괴리감. 머릿속은 이리저리 뒤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라는 검을 쥔 채 셉타 호른과 대치했다.
할디른이 말했다.
“그 힘…… 악마의 저주로군. 감당키 어려워 보이는데.”
“상황이, 심각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대주교의 비행정이 모종의 이유로 추락한 데다가, 눈앞에는 놈들이 데려온 아인종까지 있으니.”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다.
“레나 주교, 여기 있는 모두를 데리고 전선에 합류해라. 그리고 조제프를 구출하도록.”
“네, 넵!”
활성화된 마력회로에서 마력이 흘러넘쳤다.
주변에 만연해 있던 선혈과 뼛조각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저주를 매개체로 한데 뭉쳤다.
“저 괴물은 우리가 도시 밖으로 몰아내겠다.”
<골육의 재액>
할디른이 피와 뼈로 이루어진 저주의, 흑색의 창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