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51화 (351/366)

351화 섭리 (4)

굽이치는 마력, 마치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거센 흐름.

노사의 죽음에서 본 적이 있다.

‘저건 그림 리퍼의 <아스트랄화>를 봉쇄한…….’

위계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마도에서 파생되었기에 효과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정황상 봉인 계열의 일종일 거라 판단한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경계했다.

혹여 마도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지도 몰랐기에.

그런데 지금 상태로는 피할 방법이 전무했다.

판단은 즉시였다.

케실루스가 마력을 과부하시켜 자신의 심장을 포함한 내부를 폭발시켰다.

여지없는 즉사.

곧장 부활을 마친 그가 다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콰과과과과과!

마력의 혜성이 케실루스의 좌반신과 함께 허공을 관통했다.

막대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튕겨져 나가며 바닥을 구른 끝에 <비행>으로 제동을 걸었다.

“……?!”

별의 잔흔.

흐름을 거스르는 별무리에 의해 마력이 흩어졌다.

허공에서 떨어진 케실루스가 눈을 부릅떴다.

당장 파훼할 방법은 없다.

마도왕의 분신인 관리자처럼, 그를 해석하여 완전히 몸에서 분리시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 케실루스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

<어스 자벨린>

<아웃버스트>

콰지지지직!

바람의 폭발을 더한 대지의 창이 케실루스의 머리를 관통했다.

주체를 잃은 몸뚱이가 쓰러졌다.

직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육체 조각들이 다시금 뭉쳤다.

부활의 징조였다.

“역시 마도를 무력화하는 건 불가능한 건가.”

베르덴이 약간 아쉬움을 표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래도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군.”

케실루스가 또다시 일어섰지만 변화는 현격했다. 죽음에서 되살아난 그는 직전보다 훨씬 더 노화되어 있었으니.

네 번째 하인이 별이 머물고 있는 왼팔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마력의 흐름이 방해된 탓에 대가가 더 커진 것인가……. 한마디로 목숨이 줄어든 셈이군. 게다가───”

다른 기척이 가까워졌다.

차분히 시선을 높이자, 잿빛 마도사의 옆에 짙은 남색을 띤 도검을 든 검사가 있다.

여기저기 베이고 얻어맞은 흔적이 보였으나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

“설마 단신으로 종말의 기사를 토벌할 줄이야. 정보가 부족했다고 하지만, 저자의 경지 또한 예상을 벗어날 줄은 몰랐는데.”

태연히 말했지만, 이로써 패색은 완전히 짙어졌다.

그리고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던 베르덴과 아드리안은 주저하지 않았다.

케실루스를 상대하는 방법, 그 첫 번째인 무력화는 실패했다.

그러니 두 번째 차례다.

부활과 죽음을 반복한다면, 그 간극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 * *

원소 마법을 견제하며 사방에 저주를 흘뿌렸다. 정면에서 흑마법을 양단한 마검이 목을 잘랐다.

한 번.

무수하게 쏟아지는 검기를 죄다 짓이겨 버리고, <종혈의 창>으로 검사의 목숨을 끊으려 했다.

직전,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낙뢰가 정수리를 강타했다.

두 번.

별무리가 사라졌다.

되찾은 전력으로 일대를 날려 버리고, [원한의 형상]으로 무기를 만들어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앞뒤에서 날아온 마법과 검기가 각각 심장과 머리를 으깨 버렸다.

세 번.

그리고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죽음을 거듭할수록 케실루스가 눈에 띄게 늙어 갔다.

본래라면 더욱 많은 죽음을 감당할 수 있었으나, 라레니아에 의해 지불한 대가가 너무도 컸다.

‘죽음이라.’

케실루스는 자신의 생명이 다해 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당연히 두려움 따위는 일절 없었다.

이전에 말했듯 죽음이란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하니까.

오른손에 없는 약지의 부재가, 여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승패에 대해서도 감흥은 없었다.

사실 마법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이미 패배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애셔, 저자는 초월에 닿아 있다.’

국소적이긴 해도 세상을 전율시킬 정도의, 끝을 모르는 방대한 마력량.

저건 분명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준을 아득하게 벗어나 있다.

초월자이되 초월자가 아닌 경지.

긴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불가능한 경우다.

한데 이렇게 눈앞에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당연했다.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는, 초월에 위치한 존재를 감히 넘볼 수 없는 법.

그게 세상의 순리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다.’

케실루스의 목숨 또한 계획의 여러 갈래 중 하나.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한 예비 퍼즐 조각이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쿠드드득, 쿠드득.

케실루스가 다시금 부활했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여느 때보다 죽음에 가까워진 그가 새로 얻은 전력으로 고위계 저주를 난사하며 끝까지 대항했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색의 검기와 뇌광(雷光)이 케실루스의 몸을 관통했다.

* * *

네 번째 하인, 케실루스는 명백한 강자였으나 베르덴에게 닿지 못하고 몇 번이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 아드리안이 전력으로 가세했으니…… 아무리 죽을수록 강해진다고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이건 시합 따위가 아니다.

하물며 애당초 숫자의 우위를 점했던 건 주검의 영광이다.

비겁하다는 말에 의미는 없다.

그저 케실루스가 더 약했을 뿐.

반론할 여지가 없는 아주 간단한 이치다.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내가, 아직 개화되지 않은 어린 마도사에게 이런 꼴이 된 것처럼.”

케실루스가 부서진 바위에 기대어 섰다.

그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거무죽죽하게 변한 피부색과 그 위를 뒤덮은 주름들. 젊음이 사라지고 늙음만이 감돌았다.

투둑, 투두둑.

암석 파편에 꿰뚫린 상처에서 검게 죽은 피가 흘러내렸다.

마도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던 케실루스가 베르덴을 마주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땅한 섭리이기도 해. 오직 내 힘만으로는 초월에 닿아 있는 존재를 넘는 건 불가능하니까. 안 그런가?”

“유언치곤 자조적이군.”

베르덴이 스태프를 겨냥했다.

살기가 만연하다.

그럼에도 케실루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애셔, 너는 초월자의 종류에 대해 알고 있나?”

“……?”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초월자가 있다. 하나는 계단을 오르듯 경지를 이룩함으로써 각성한 자, 다른 하나는 타고날 때부터 초월을 품은 자…….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지. 마치 애셔, 너와 초월자의 차이처럼.”

오리엔트의 오브에 마력이 집중된다.

“둘 사이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건, 오직 극소수만이 가능한 일. 그렇다면 초월에 닿아 있는 자와 타고난 초월자가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까?”

허공에 떠오른 암석에 강렬한 벼락이 깃들었다.

“단언컨대 애셔, 너는 죽을 것이다. 극복할 기회도 없이. 그게 섭리니까.”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베르덴이 싸늘한 시선으로 케실루스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저주 중에 가장 불품없군.”

<레빈 레탈리스>

콰아아아앙!

섬전처럼 날아간 암석이 단숨에 바위를 꿰뚫었다.

살 조각이 피와 함께 나뒹군다. 입가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본래라면 너희의 죽음을 바쳐야 했지만…… 괜찮다. 결국 내 죽음으로써…… 퍼즐은 완성되었으니…….”

상반신의 태반 이상이 날아간 케실루스가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나의 부재는…… 다른 하인들께서…… 채우시겠지.

툭.

힘겹게 쥐고 있던 고목 지팡이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주저앉은 그가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위대한 주……검의…… 영광을…… 위해…….”

목소리가 멎었다.

눈동자에 머물던 언데드의 불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끝내는 마력마저 사그라들며 존재감이 옅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카일리언스와 벨디른 공화국에서 암약하던 주검의 영광.

그를 이끄는 네 번째 하인, 케실루스는 이곳에서 분명한 죽음을 맞이했다.

후두둑.

아드리안이 마검 케덴스에 묻은 피를 털고는 소리 없이 납도했다.

“죽여도 죽지 않는 마도사라. 언데드보다 더한 놈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존재가 네 번째 하인이라니…… 주검의 영광의 규모를 쉬이 가늠하기 어렵군요.”

“루아스교와 정면으로 대적하고 있는 집단이니, 어쩌면 케실루스 위에 초월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넓으니까.”

어쨌든 할 일은 마쳤다.

이제 루아스 대주교와 합류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군, 공간 이동진이…….”

주검의 영광의 근거지와 황폐화된 성터를 연결하고 있던 입구가 불규칙적으로 명멸하고 있다.

문 자체는 그대로다.

파손된 흔적조차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그 아래에 있는 지축이 상당히 뒤틀린 상태. 베르덴과 케실루스의 마법전으로 인한 여파였다.

베르덴이 유심히 문을 살피며 마법적으로 해석했다.

“지반의 수평이 흐트러지면서 불안정해지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군. 공간 좌표를 재설정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다.”

마법진은 베르덴의 전문 영역이다.

심지어 초월자가 개척한 공간의 마도를 접한 적이 있는 데다가, 실제로 공간 마법을 터득하고 있기까지.

복잡한 구성의 공간 이동진에 간섭하여, 직접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 * *

얼음에서 물로 융해되면 열을 흡수하고, 수증기에서 물로 액화되면 열을 방출한다.

이처럼 상태가 변화할 때는 힘의 이동이 존재한다.

생명 또한 마찬가지다.

삶에서 죽음, 죽음에서 삶.

그 과정 속에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들이 오간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그런데 만약 이에 간섭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죽음에서 발생한 힘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수개월 동안 카일리언스와 공화국에서 발생한 죽어 나간 존재들. 그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죽음까지.

과연 그렇게 쌓인 힘이 얼마나 방대할 것인가.

이것이 그 대답이다.

───꿈틀.

공화국 어딘가의 산맥이 들썩거린다.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지진이 발생하며 산 전체가 맥동하기 시작했다.

아인종, 마수, 짐승.

너 나 할 것 없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다급하게 달아났다.

그러던 도중 갑작스레 흔들림이 멈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강렬한 충격과 함께 흙기둥이 솟구쳤다.

작은 돌조각부터 시작해, 큼지막한 바위들이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며 지면에 내리꽂혔다.

한겨울의 산.

그 정상에 감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새까만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쿠웅.

거대한 파충류의 손뼈가 지상 위에 드리웠다.

* * *

“전원! 발사아아아!!!!”

병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하늘에 수놓인 화살과 마법들이 곡선으로 떨어지며 지상을 강타했다.

[키에에에에엑!]

[케르르륵!]

고블린을 비롯한 아인종 수십 마리가 달려오다가 목숨이 끊어졌다.

<지형 조작>

그사이 4위계 대지 마법사가 온 힘을 다해 성문의 빈자리에 암벽을 세웠다.

이어 다른 마법사들이 힘을 더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경도를 강화했다.

“성문은 막았습니다!!”

“좋아! 전원, 도시에 더러운 괴물 따위가 들어오게 하지 마라!”

“세크리드를 지켜라!”

병사, 기사, 용병 그리고 모험가들이 성벽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따금씩 포레스트 와이번 같은 비행 개체들이 급습하는 걸 가까스로 막아 내며 맞서 싸웠다.

그러나 희생은 필연적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이런 미친, 마수가 올라왔다!”

성벽을 타고 오른 마수가 단숨에 병사 셋을 찢어발겼다.

기사들이 직접 나서서 맞대응했다.

검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 끝에, 목이 잘려 나간 마수가 도시 바깥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버텨 내고는 있었다.

적어도 처음의 위기는 어떻게든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건, 도시에 머물고 있던 강자들 덕분이었다.

…….

바깥 성벽과 어느 정도 떨어진 세크리드의 외곽 중심부.

바짝 마른 목과 입술.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 끝에 맺혔다.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X발…….”

침을 삼켜 봤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

서늘한 긴장감이 흐른다.

잔뜩 긴장된 육체가 마치 얼어붙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침묵이 감도는 광장의 중심.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숨죽인 채 셉타 호른과 대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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