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섭리 (2)
마법전에 있어서 상대방의 마법적 역량을 가늠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자세다.
어떤 계열의 마법을 쓰느냐에 따라 생각을 전환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니까.
기상천외한 마도를 고려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미지의 마법 물품 혹은 아티팩트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힘이 가진 논리의 증명, 죽고 죽이는 전투.
어떤 상황인들 그러지 않겠냐만 적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일 순위다.
물론 상대방이 전력을 내보일 때까지 무조건적으로 구석으로 몰아넣거나, 지지부진하게 물고 늘어지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최선은 속결(速決)이다.
상대방이 뭔가를 하려고 하기도 전에, 인지의 간극을 파고들어 단숨에 끝장을 내 버리는 것.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베르덴의 사고방식은 그러했다.
그래서 일부지만 먼저 비장의 수단을 드러냈다.
공간 속성의 반작용을 견디며 강력한 마법을 발동했다.
레그리트에게서 모방한 <원소 융합>까지 사용하여 빈틈을 잡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일격으로 아크 리치의 머리를 단숨에 쪼개 버렸다.
와해(瓦解)의 급류, <디스트럭션>.
6위계 중력 마법에 속한, 마력으로 구현된 물리적인 힘의 파동.
그 위력은 순수한 마법 저항력만으론 온전히 견뎌 낼 수 없다.
물리적인 충격을 경감할 수 있는 대책이 없는 마법사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아무리 죽음에서 태어난 언데드라고 해도 마찬가지.
그렇게 계획대로 숫자를 줄인 베르덴은 마도를 이용해 푸른 번개로 화했다.
케실루스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공간이 깃든 마력의 창날이 놈의 몸통을 관통했다.
‘그리고 베고, 뭉개고, 불태우기까지.’
확실한 끝맺음이었다.
인간의 범주 내에서는 감히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그런데 네 번째 하인, 케실루스는 심장이 찢어지고 머리가 갈라졌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쿠득…… 쿠드득…….
불길에 일그러졌던 피부가 꿈틀거리며 제 모습을 되찾는다.
부러진 뼈는 어긋남 없이 자리를 잡았고, 반으로 쪼개졌던 머리와 상반신이 이어 붙었다.
어떠한 틈새조차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중력 속성에다가 공간 속성. 마법의 궤적에 간섭하는 마력의 파동과 더불어 원소 그 자체가 되는 마법이라. 그야말로 다채롭기 그지없군. 이런 식으로 무력하게 죽을 줄은 몰랐어.”
목소리에서 발음이 샌다.
자리에서 일어선 케실루스가 스스로의 턱을 이러저리 비틀었다.
빠각. 뼈가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얼굴의 하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모든 치명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리저리 손상된 로브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아니, 조금은 달라졌다.’
베르덴의 통찰력이 미세한 변화를 포착했다.
여러 나이가 뒤엉켜 있던 회색의 피부가 조금 더 창백하게 변했다.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질감이 약간 더 자글거렸다.
그렇다는 건…….
“죽음을 회피하는 대가로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노화…… 그게 네가 개척한 마도인가 보군.”
“눈썰미가 좋구나.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건 아닌데 말이지.”
케실루스가 섬뜩하게 웃었다.
마도 <사환死還>.
이를 개방한 순간 케실루스는 설령 몸이 가루가 된다고 해도 부활할 수 있다.
그러한 강력한 힘의 대가는 죽을 때마다 찾아오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노화.
오직 신체적인 노쇠로 인한 자연적인 죽음만이, 케실루스가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최후다.
“네 말대로 죽음에서 되돌아오는 것이 내가 개척한 마도다. 그리고───”
그에게서 기묘한 힘이 일렁였다.
적지 않은 마력과 함께 불길한 기운이 전신을 잠식했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갑작스레 지면에서 솟아오른 새하얀 뼈들이 케실루스를 옭아맸다.
질서정연하다.
규칙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진다. 마치 유골로 이루어진 갑옷을 두른 듯한 모양새.
마지막으로 등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팔뼈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변화를 마친 케실루스의 눈동자에서 언데드 특유의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나는 죽음을 거듭할수록, 죽음이란 개념과 가까워지지.”
이전보다 강대한 마력이 감지된다.
한마디로 죽었다 깨어날수록 마법적 역량이 높아진다는 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무한한 부활이라…….’
상대하기 성가신 마도임에도 베르덴은 일말의 감정 변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오리엔트를 말아 쥐며 자세를 잡았다.
“그럼 몇 번을 죽여야 죽는지, 한번 세어 보도록 하지.”
<레빈 페이탈>
파지지직!
날카로운 암석 파편이 번개처럼 날아가 케실루스의 복부를 관통했다.
관통당한 상처에서 선혈과 육편이 떨어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
충격이 큰 만큼 정신이 흔들리고 몸이 휘청거리는 건 당연한 반응.
그런데 부동(浮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뼈로 형성된 두 개의 팔.
케실루스가 마법에 적중당했음에도, 그것들은 정확히 베르덴을 겨냥하고 있었다.
<격통의 부름>
지면에서 불쑥 솟아난 두 개의 두개골이 입을 쩍 벌렸다.
공기를 진동시키는 끔찍한 비명이 직선으로 쏟아졌다.
“……!”
근방에 있던 대지의 표면이 움푹 파였다.
가까스로 베르덴이 <아케인>으로 강화된 마력 방벽을 형성하여 막아 냈다.
초 단위의 공방.
순식간에 마법이 교차했다.
“궤를 달리하는 연산력에다가 마법진이 새겨진 눈까지……. 그래, 인정하마. 나 혼자서는 어떤 수단을 쓰든 간에 네 마법에 온전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케실루스의 복부에서 적지 않은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되받아친다면 어떨까.”
어깨에 자리한 두 팔뼈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케실루스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렇기에 복부가 뻥 뚫리는 동안에도 오차 없이 마법을 발동할 수 있었던 거겠지.
“목숨을 내주고, 내 살을 자르겠다는 건가. 무식하기 짝이 없군.”
“내 마도를 목도한 이들은 다들 그러더군. 그리고 예외 없이 전부 땅에 묻혔지.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문득 그가 깜빡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나저나 다른 곳은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예를 들자면 세크리드라든가.”
세크리드?
“그곳에 누가 갔는지 알고 있을 텐데.”
“그래. 다크 워튼의 후계자, 할디른이 갔지. 예상했던 대로───”
순간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앞으로 뻗었다.
<크리메이트>
파괴의 열선이 직선을 불태운다.
그와 거의 동시에 위력적인 흑마법이 베르덴을 덮쳤다.
콰드드득.
저주의 창을 튕겨 낸 베르덴이 밀려났다.
양다리가 지면에 상흔을 남기긴 했으나 상처는커녕 이렇다 할 피해조차 없었다.
그에 비해 케실루스는 상반신이 통째로 녹아내렸다.
그것도 잠시, 곧 제 모습을 되찾은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복부에 있던 부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대화 도중에 화염 마법이라니. 예의가 아닌 것 같다만.”
고통조차 없다는 듯 멀쩡하다.
아까보다도 조금 더 늙은 것 빼고는.
‘오직 죽음으로만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건가.’
저게 허점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별개로 베르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죽일 수 없는 이상, 아무래도 녀석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선택지는 없다고.
“그럼 이어서 말하지.”
케실루스가 태연한 모습으로 양팔을 펴 보였다.
“애셔, 궁금하지 않나? 왜 우리가 다른 곳도 아닌 카일리언스를 이용했는지, 그리고 굳이 아인종을 조종했는지.”
뭐라 묻기도 전에, 놈이 제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카일리언스에서 발생한 아인종 출몰은 우리가 일으킨 게 아니다. 그건 [생명의 기둥]을 사용하기 이전부터 시작된 거니까. 그리고 너희들이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사체 운반 또한 부가적인 요소일 뿐.”
“……뭐?”
“아인종이 날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노린 건 그 현상을 일으킨 중심축이지. 뭐, 발견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긴 하다만.”
언데드와 같은 눈빛이 베르덴을 직시했다.
“그 ‘괴물’은 나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힘을 품고 있다. 7위계 흑마법이 저장된 스크롤로도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고, 본능을 억제하는 게 전부였으니.”
말 그대로 특수한 개체.
과연 그러한 존재를 할디른이 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글쎄, 나는 회의적이군.”
케실루스가 낮게 웃었다.
* * *
한겨울임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
중천에 뜬 해에서 따사로운 빛이 가득히 쏟아지고 있는 도시, 세크리드.
“도착했군요.”
할디른, 레이라, 브릴런 최고 의원이 탑승한 공화국의 비행정이 마침내 목적지에 당도했다.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도중 주검의 영광이 비행정을 습격하는 일도 없었고, 아래로 보이는 세크리드 또한 평화로워 보이니.
레나 주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네요…… 아직은요.”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지.”
후우우웅.
비행정이 급격하게 고도를 낮췄다.
다급하게 들려오는 정지 경고를 무시하고 내곽 중심부에 있는 전용 선착장에 강제로 진입했다.
병사들이 몰려들었으나 경계심만 가득할 뿐 섣불리 선공을 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행정에 보란 듯이 새겨져 있는 최고 의원의 표식 때문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할디른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도시에 들어서니 이제야 느껴지는군. 지하 곳곳에 죽음의 기운이 응축된 게 감지된다. 예의 사체들이 쌓여 있는 듯하군.”
“그럼 각개격파를 하는 게 좋겠네요.”
레이라의 의견에 할디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크리트 전역에 퍼져 있어서 하나하나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응축된 사기가 흐르고 있는 장소를 없애 버리는 게 낫겠지.”
“거기가 어디죠?”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
차가운 금속 건틀릿이 근방을 가리켰다.
곁에서 경청하고 있던 브릴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시청이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들은 제가 맡도록 하지요.”
브릴런이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최고 의원의 직속 부대인 공화국의 처형자들이 주변을 장악했다.
“브, 브릴런 최고 의원님?! 아, 아니, 기, 기 기별도 없이 여긴 어쩐 일로……!”
그를 알아본 세크리드의 기사단장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로픈 기사단장.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은 물러나 주십시오.”
“저, 하지만 절차라는 것이…… 그리고 이곳엔 덤브레드 최고 의원님께서도 계신지라…….”
주검의 영광과 손을 잡은 덤브레드가 이곳에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제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네, 네?”
“벨디른 공화국의 최고 의원으로서 명령합니다.”
스르릉.
대기하고 있던 처형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권위를 무시하면 베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박.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기세가 선착장에 모인 사람들을 압도했다.
서늘함이 감도는 분위기 속 브릴런이 단언했다.
“당장 비키십시오. 반란을 저지를 게 아니라면.”
* * *
이후는 속행이었다.
툭, 툭, 철컹.
감히 최고 의원의 명령에 불복할 수 없었던 내곽 근위병과 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내려놓고 물러섰다.
전의는 없다.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전부였다. 주검의 영광과는 무관하다는 뜻이겠지.
만약 그랬다면 필사적으로 막아서려고 했을 테니.
타다다다닥.
토벌대가 신속하게 시청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장악했다.
할디른과 레이라, 레나 주교와 성직자 그리고 소수의 처형자를 이끈 브릴런이 위로 올라갔다.
“주의하십시오. 넬로니안 의원을 수호했던 처형자들은 큰 위협이 아니지만, 덤브레드가 데리고 있는 처형자들은 위험합니다.”
덤브레드는 최고 의원 중에서도 가장 노령인 데다가, 삶의 절반 이상을 의원직에 종사해 왔다.
“세월로 인해 쌓인 부와 권력만큼, 그를 지키는 자 또한 강대합니다. 무려 절기를 깨우친 기사와 마도를 개척하지 못했다고 해도 6위계 하위의 마법사가 처형대에 속해 있으니.
6위계 마법사. 이상할 건 없다.
5위계 혹은 6위계에 오른다고 해서 모두가 마도를 개척하지는 못하니까.
전체적인 분포를 따지면 마도사의 비율은 소수.
스스로의 길을 찾고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관없다. 내가 처리할 테니.”
“저도 거들게요.”
미스릴 등급 모험가는 차치하고, 루아스교의 상위 주교와 마탑의 차기 주인이 있다.
그렇기에 브릴런은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조용한데요?”
레나 주교의 말대로였다.
건물 전체가 어둡고 고요하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청 내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일말의 꺼림칙함을 품에 안고 최고층에 도달했다.
이 역시 누구도 막아서는 이가 없었다.
“저곳이군.”
할디른이 마력을 번뜩였다.
충격파가 일며 굉음과 함께 시장실의 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덤브레드 최고 의원, 단 한 사람만이 있었다.
“덤……브레드……? 당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시장실은 복잡하고 수많은 마법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피로 새겨진 것들이었다.
덤브레드는 방의 중심,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아, 브릴런. 루아스교하고 손잡았다는 얘긴 들었는데 용케도 여기까지 찾아왔군.”
“내가 묻잖습니까!! 당신 대체 뭐 하는 거냐───”
그때, 할디른이 낮게 팔을 들어 브릴런을 제지했다.
그러곤 작게 말했다.
“……마법진은 이미 발동했다.”
이어 할디른이 눈짓했다.
섣불리 움직이거나 놈을 자극하지 말고, 피의 마법진을 분석할 때까지 시간을 끌라는 뜻이었다.
그래, 흥분할 때가 아니다.
겨우 격정을 가라앉힌 브릴런이 숨을 내쉬고는 차분하게 물었다.
“덤브레드, 어째서 루아스교를 배신하고 사악한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은 겁니까.”
“…….”
“왜 수십 년간 다스려 온 벨디른 공화국을 제 손으로 더럽히고 있냐 물었습니다.”
덤브레드는 청렴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국을 위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브릴런은 그의 여러 업적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그랬냐라. 그야…… 두려웠으니까.”
“뭐가 그리 두려웠습니까. 주검의 영광이 협박이라도 한 겁니까?”
“나는 루아스교가 두려웠다.”
“……!”
뒤에 있던 레나 주교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와 함께 있던 성직자들도, 브릴런도 마찬가지였다.
덤브레드가 말했다.
“루아스교의 경전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지. 삶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과정이고, 그를 이루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오직 깨끗한 자만이 빛의 신 루아스의 곁으로 갈 수 있다고.”
그 기준은 두 가지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신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늘그막에 곰곰이 생각해 봤지. 과연 나는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답은 바로 나왔다.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이 되지 못해. 아무리 생각해도 죽어서 루아스의 곁으로 갈 만한 인격자가 아니란 말이지. 뒤늦게 선이든 위선이든 베푼다고 해서, 갑자기 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는 것도 아니고.”
젊었을 때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노환이 들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그 이후로 나는 죽은 뒤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죽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자니, 주검의 영광이 접촉해 오더군.”
“그게…… 전부입니까? 영생 때문에 놈들과 손을 잡았다고?”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만?”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브릴런이 주먹을 떨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흔해 빠진 욕망이니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니까.
하나 그를 위해 공화국을 타인에게 휘둘리게 한 건, 최고 의원으로서 감히 범해서는 안 될 대역죄였다.
“……당신을 지키던 처형자들은, 세크리드의 시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네 번째 하인이란 자가 직접 처리했지. 제물로서. 지하에 있는 사체들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런 짓을 벌이고도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나는 이 죽어 가는 몸을 버리고 새로운 육신을 갖게 될 테니까.”
생명의 연장.
그런 거래였다.
옛적에 잃어버린 젊음이 코앞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반복한다면 영원 또한 꿈이 아니다.
“너희는 날 찾지 못할 거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마법진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새빨간 핏빛이 시장실을 가득 메웠다.
기묘한 공기가 술렁인다.
마침 마법진의 해석을 마친 할디른이 혀를 찼다.
“이런. 당했군.”
“네? 그게 무슨───”
“꺄악!”
할디른이 마력을 발해 다른 사람들을 시장실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 순간 마법진에서 붉은 줄기가 무수히 뻗어 나왔다.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린 그것이 안에 있던 두 사람을 옭아맸다.
“음?! 이, 이게 뭔……! 분명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잠깐, 잠깐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 끄아아아아아악!”
발버둥 치던 덤브레드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직후 강하게 조여든 피의 줄기에 의해 덤브레드가 산산이 조각나고, 그 피가 마법진에 흡수되었다.
덤브레드가 죽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영생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할디른 또한 위험할 터.
“할디른 공!”
“나는 문제없다. 고작 이런 걸로는 감히 날 어쩌지 못하니.”
뚜둑.
할디른이 손쉽게 줄기 하나를 끊어 냈다.
“다만 푸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 그리고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이런 더러운 저주 따위가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놈들이 사체를 모으고, 세크리드에 지하에 쌓아 놓은 건 고도의 흑마법진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덤브레드란 자의 영생을 위한 건 더더욱 아니지. 제물을 통해, 단순히 혈향을 광범위하게 퍼뜨리기 위한 용도다.”
“혈향……?”
레이라가 코를 씰룩였다.
그러고 보니 갑작스레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왔다.
“고작 피 냄새를 흩뿌리는 게 전부라니. 대체 목적이 뭐길래……?”
“이건 미끼일 거다. 무언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먹잇감. 내 생각엔…… 놈들의 목적은 아인종 혹은 마수라 생각되는군. 아니면 둘 다거나.”
아인종? 마수?
“진짜 문제는 바깥에 있다.”
할디른은 옆을 향해 턱짓했다.
그를 따라 모두가 복도 끝 창가로 향했다. 활짝 창문을 열고 세크리드를 바라봤다.
거리는 이전과 같다.
그러나 성벽 바깥은 아니었다.
[크르르르르…….]
[크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인근 숲에서 아인종과 마수가 잔뜩 기어 나온다.
그 수는 수백을 아득히 넘는다. 아니, 수천을 훌쩍 넘었다.
하위종에다가 상위종까지, 죄다 눈에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당장이라도 도시를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마, 맙소사……!”
레나 주교가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만한 숫자가 세크리드에 들이받는다면…… 그렇게 놈들이 성벽을 넘는다면 어떤 대참사가 일어날지 뻔했기에.
쿠구구구구……!
피에 이끌린 수천의 괴물이 집결한다.
아인종과 마수의 급증으로 인해 시작되는 대규모 습격.
일종의 자연재해 중 하나, 스탬피드(Stampede)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