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8화 (348/366)

348화 섭리 (1)

아드리안이 황폐화된 성터 근처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시야가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음에도 하늘색 눈동자는 적의 움직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있다.

반 박자 리듬을 높였다.

급격하게 방향을 튼 그가 놈의 빈틈을 향해 마검을 휘둘렀다.

하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거대한 칼날이 경로에 끼어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

그대로 허리를 젖혀 검을 흘려보내곤 몸을 회전시켰다.

유연하게 놈의 머리에 발차기를 꽂아 넣은 아드리안이 곧장 거리를 벌렸다.

‘느낌은 있었는데.’

힘은 제대로 실었다.

아무리 투구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충격이 안쪽까지 전해졌을 터.

[…….]

그런데 언데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플람베르크의 검 끝을 아드리안에게 겨냥하고 있을 뿐이다.

종말의 기사라고 했던가.

마치 견고한 성벽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상성이 좋지 않군.’

아드리안의 특기는 쾌검이다.

적이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단숨에 베어 버리는 것이 그가 쌓아 온 검술의 정수다.

그런데 이번 상대는 최상위 언데드.

인간처럼 급소를 찌르거나 베는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기괴한 갑옷 탓에 검격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고.

어떻게 처리할까.

아드리안이 고민하던 찰나였다.

[종말은. 재래한다.]

종말의 기사가 땅에 검을 내리꽂았다.

소름 끼치는 암자색의 파동이 주변을 휩쓸자 자연이 시들기 시작했다.

숲과 대지의 생기가 종말의 기사에게 모여든다.

더욱 강맹해진 흉악한 기세.

쿵. 한차례 진동이 울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

허공을 향해 쏘아진 불길한 검기.

회색으로 변한 나무들과 함께 죽은 대지가 쩍 갈라졌다.

스치듯 피해 낸 아드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위의 생명을 흡수해서 힘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인가.’

또한 그 생명이란 범주에는 인간 또한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뭔지 모를 기분 나쁜 기운이 아드리안 자신의 몸속을 시시각각 파고들려고 하는 걸 보면.

저항은 어렵지 않으나 일반 병사라면 어떻게 됐을까. 순식간에 생명력을 모조리 강탈당했을 게 분명했다.

종언을 흩뿌리는 존재라.

종말의 기사.

어째서 그런 개체명이 붙었는지 자연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

그의 신경이 잠시 뒤로 향했다.

회색빛 상공에 드리운 암운.

불규칙적으로 우레 소리가 들려오고, 그 아래에서는 용오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중심엔 서 있는 존재에서 전율을 일 정도의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베르덴. 이게 주군이 가진 전력……!’

발로크에게 정신을 지배당했을 때 그에게 대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치열하기는 했다.

하나 당시 아드리안의 힘으로는 베르덴의 본 실력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주군의 경지가 초월자에 가깝다는 사실이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애초에 의심한 적도 없긴 하지만.

베르덴이 구축할 세력, 각성을 통한 초월, 그렇게 보헤미른 마탑을 무너뜨리기까지.

아직 복수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갈 길이 멀다.

‘그럴진대 한낱 언데드 따위에게 발목 잡힐 수는 없지.’

아드리안이 전력을 드러냈다.

살기 어린 안광을 번뜩인 그의 뒤꿈치가 지면에서 떨어졌다.

쩌어엉!

[……!]

어느샌가 아드리안이 종말의 기사를 지나쳤다.

뒤늦게 파공음이 따라온다.

미처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한 종말의 기사의 갑옷에 커다란 흠집이 생겼다.

급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관없다.

‘약점이 없다면 만들어 내면 그만이니.’

아드리안이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며 크게 기예를 펼쳤다.

신월新月.

보랏빛 초승달이 종말의 기사를 향해 쏘아졌다.

* * *

트리플 캐스팅.

<인페르노>

진홍의 벽이 지상의 일면을 송두리째 불태웠다.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를 집어삼키며 사방으로 화염을 확산시켰다.

치이이익!

석재조차 오래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릴 정도의 강렬한 열기다.

사방에 흩뿌려진 마력 탓에 혼동되는 마법적 감각. 피어오른 아지랑이는 시야 전반을 어지럽혔다.

‘……온다.’

재빨리 반응한 케실루스가 고목 지팡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망혼의 장막>

닿는 자에게 무작위 정신계 저주를 부여하는 방어계 흑마법.

불길 속에서 나타난 베르덴이 아랑곳하지 않고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콰지지지직!

중력의 속성이 실린 충격파에 장막이 박살 났다.

이는 예상한 바였으나 케실루스는 다음 마법에 대응할 수가 없었다.

<혼명>

마안을 통해 비올라의 전력을 정면에서 날려 버린 파괴 마법이 발해졌다.

───콰아아앙!

암청색의 파동에 휩쓸린 케실루스가 낡은 성벽에 처박혔다.

머리 위로 잔해가 쏟아진다.

저항력이 높은 로브를 두른 덕분에 상처는 없었으나 충격까지 완전히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 잠깐의 빈틈.

베르덴이 근방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려던 순간, 아크 리치가 끼어들었다.

[하등한 인간, 얼어붙어라.]

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에 아크 리치의 책이 명멸했다.

난기류 속에서 발생한 혹한의 소용돌이. 그에 맞서 베르덴이 거대한 암석을 쏘아 보냈다.

폭풍을 짓이긴 바위가 낙하했다.

굉음이 들려온 직후 다음 마법이 부딪혔다.

후두두둑.

그사이 케실루스가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자, 아크 리치가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드리웠다.

‘<망혼의 장막>에 닿았음에도 저주가 통하지 않았다.’

정신계 저주가 먹히지 않는다.

거기다 뭔지 모를 마법진이 새겨진, 마법 연산과 거리를 무시하는 기이한 눈.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저것이 지닌 능력은 비올라와 노사의 죽음을 통해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문제는 마력량과 경지로 형성된…… 강대한 존재감이다.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존재란 개념에는 명확히 규명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인간.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단순히 전력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억압하고 기류를 변화시키는 등 외부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경지의 상승으로 인하여 격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기, 마력, 신성력을 집중시켜 상대를 위압하는 작용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존재의 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바로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비강제성이다.

‘애셔의 존재에 의해 하늘이 술렁이고 있다.’

저절로 세상이 반응한 것이다.

범위가 좁기는 해도, 초월자가 아닌 이상 저런 현상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할 텐데…….

‘설마…….’

케실루스가 미간을 좁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위계 흑마법을 연산함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 모았다.

* * *

한 명의 준초월자.

각각 6위계 중위 및 상위에 위치한 아크 리치와 케실루스.

세계를 통틀어도 결코 많지 않은 국가급 전력들이 전력으로 충돌했다.

그 여파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고대에 존재했던 성터의 대부분이 깡그리 날아갔으며, 움푹 파인 대지에는 냉기와 화염이 뒤엉켰다.

베르덴이 달아오른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까다롭긴 하군.’

언데드와 인간.

두 명 이상의 6위계급 마법사와 맞붙는 건 처음이다.

심지어 놈들은 교묘하게 사각만을 노리고 있다.

한 명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한 명이 멀리서 뒤를 노리는 양상.

아무리 마안을 사용한다고 해도, 두 명이 전부 시야에 담기지 않으니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기가 어려웠다.

‘나름의 대처법이라는 건가.’

괜히 루아스교와 대립하고 있는 조직이 아니라는 거겠지.

장기전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자신은 있지만 굳이 번거롭게 그럴 생각은 없다.

둘 중 하나를 먼저 없애 버리는 것. 그게 가장 간단한 해답이다.

베르덴이 스태프로 지면을 두들겼다.

<지형 조작>

쿠구구구구구……!

순식간에 뻗어 나간 마력에 의해 땅이 들썩인다.

이내 다수의 흙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대지의 해일을 형성했다.

“<지형 조작> 같은 저위계 마법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인간이 아니군.”

작게 중얼거린 케실루스가 아크 리치와 동시에 같은 마법을 시전했다.

쿼드라 캐스팅.

<대지의 죽음>

총합 여덟 개의 흑마법.

저주가 깃든 대지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며, 지형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그대로 와해된 거대한 파도가 쓰러지듯 침묵했다.

막대한 무게에 의해 대규모 지진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때,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 사이로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높이 들었다.

명멸하며 하늘이 물들인 푸른빛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이런……!”

케실루스가 다급하게 뼈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어 냈다.

콰과과광! 콰과광! 콰과과광!

수많은 낙뢰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와 더해서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담겨 있다.

“……! ……!”

[이, 이 필멸자 따위가……!]

끝내 해골 벽이 박살 나고 전격이 그들을 강타했다.

당장 <비행>을 펼쳐 낙뢰가 없는 지대를 찾아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피하지 못한 충격은 어떻게든 저항력으로 견뎌 냈다.

이윽고 범위를 벗어난 그때였다.

기다리고 있던 베르덴이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려와라.”

<중압>

───쿠웅.

갑작스럽게 강해진 중력에 의해 케실루스와 아크 리치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하나같이 당황에 물든 반응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이로써 둘 모두가 범위에 들어왔으니까.

<그라비티오>

공간 속성을 결합한 6위계 중력 마법.

막강한 인력이 주위 공간을 통째로 잡아당겼다.

“……?!”

양쪽에서 케실루스와 아크 리치가 끌려왔다.

저항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놈들이 제각기 필사적으로 마법을 연산했다.

<부정의 빛>

<부패의 선율>

왼쪽과 오른쪽.

두 마법의 속도를 가늠한 베르덴이 인력을 해제했다. 곧바로 마력 제어를 활용하여 부정 광선의 궤적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맹독의 기류 속으로 주저없이 몸을 던졌다.

[저열한 판단력이군. 그대로 녹아내───]

아인베르의 첫 번째 성능, 생츄어리.

그 주인인 베르덴은 모든 독성에 대한 면역을 갖고 있다.

손쉽게 마법을 통과한 베르덴이 회전하며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어.]

그게 아크 리치의 마지막이었다.

<디스트럭션>

콰아아아아아앙!

아크 리치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언데드라고 해도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주체를 잃은,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가 쓰러지며 로브와 함께 서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케실루스뿐이지만───

“그런 식으로 아크 리치를 처리할 줄이야. 놀랍긴 하나 악수였군, 애셔.”

케실루스의 지팡이가 정확히 베르덴의 머리를 겨냥했다.

<종혈의 창>

감염의 저주와 압도적인 속도 및 관통력을 자랑하는 예기.

조금이라도 치명상을 입은 순간 그대로 절명하는 고위 흑마법이다.

아크 리치를 처리하기 위해, 베르덴의 중심은 앞으로 쏠려 있는 상태.

확실히 이대로라면 피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 무한한 마도를 개척하지 못했다면.

<원소 융합>

베르덴의 육체가 빛으로 변형되었다.

수많은 갈래의 푸른 벼락이 사방으로 확산하며 다시금 뭉쳤다.

그리고.

콰직.

마력의 창날이 케실루스의 몸 정중앙을, 등 뒤에서 꿰뚫었다.

“크억?!”

울컥, 놈이 피를 토했다.

베르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태프를 짓쳐 들어 머리를 포함한 상반신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이어 자그마한 중력의 구체에서 폭발한 충격파가 케실루스의 몸을 강타했다.

사방에 있는 화염이 솟아올라 허공을 뒤덮었다.

초열의 비.

<라그나크>

불지옥이 떨어졌다.

일대를 녹여 버린 맹렬한 화염.

힘을 잃고 쓰러진 네 번째 하인의 육신이 지글거리며 타올랐다.

…….

잠시 후, 불길이 사그라졌다.

절반쯤 갈라진, 불에 탄 시체가 벽안에 담겼다.

죽음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치명상이다.

하지만 베르덴이 가진 특유의 직감이 속삭이고 있다.

놈은 아직 살아 있다고.

차갑게 케실루스를 응시하던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죽지 않는 것. 그게 네 마도인가?”

순간 내려앉은 정적.

시체나 다름없던 케실루스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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