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6화 (346/366)
  • 346화 대면 (1)

    세크리드는 벨디른 공화국의 특색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도시다.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도시 운영에 참여하고, 중앙 대륙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흘러 들어온다.

    동대륙의 주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

    거기다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익숙함을 찾는 중앙 대륙 출신의 사람들까지 찾아온다.

    그야말로 관광 명소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하하! 두 번째 오는 건데도 이 거리는 질리지가 않는군! 안 그렇소, 루비나?”

    “뭐, 돈은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게 재밌는 거니까. 그나저나 겔톤! 매직 아이템 좀 그만 둘러보고 빨리 따라와! 밥 먹으러 가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좀…….”

    분주한 거리에는 모험가들도 더러 섞여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랑객, 용병, 상인, 귀족 등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여가를 만끽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 많은 만큼 거리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서로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해 대는 광경도 드물진 않았다.

    “히끅, 내가 동대륙…… 그것도 마법사한테 스태프로 두들겨 맞았다고? 아티팩트도 뺏기고? 이거…… 꿈이겠지…… 그래, 꿈일 거야…….”

    또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가게 구석에 앉아 술에 취한 채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고.

    이처럼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이 한데 모여 있었다.

    “언제나처럼 사방이 활기로 가득하군.”

    세크리드는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외곽 구역과 내곽 구역으로 분리된 구조를 띠고 있다.

    그중 내곽 중심부에 자리한 시청 꼭대기에서, 덤브레드 최고 의원이 거리의 정경을 굽어봤다.

    “그리고 여전히 세크리드에 있는 루아스교의 교인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 뭐랄까, 실로 유쾌해.”

    대단해 마지않던 세계 종교의 이목을 감히 속인다는 것.

    그건 한낱 인간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뭐, 설령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이미 늦어겠지만 말이야. 뭐가 됐든 간에 우리의 거래는 순조롭게 끝날 테니. 그렇지 않나?”

    “물론입니다.”

    그늘진 벽 뒤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흑마법사가 작게 허리를 숙였다.

    “의식은, 곧 거행될 겁니다.”

    “믿고 있네. 자네들은 여태껏 믿기 힘든 저력을 보여 주었으니.”

    덤브레드의 시선이 세크리드의 동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루아스교의 교회 꼭대기에 설치된 정십자가가 보였다.

    불경스럽게 흘겨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영원한 삶이라…….”

    자연히 전율이 흐른다.

    일생의 염원을 입에 담는 순간, 증오스럽기 짝이 없던 다 늙은 육신마저도 오늘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머지않은 미래를 떠올리던 덤브레드가 어깨를 들썩였다.

    이내 최고 의원의 체면 따윈 벗어던진 채 광소를 터뜨렸다.

    야욕이 깃든 웃음소리를 뒤로한 흑마법사가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둥지’는 준비되었습니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반응한다.

    마력회로를 타고 흐르는 저주를 통해 상대방의 존재가 느껴졌다.

    “이제 루아스교를 끌어들여도 무방하다 사료됩니다. 명하신다면 미끼가 될 단서를 더 풀도록 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흑마법사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겉으로 보면 자문자답하는 것으로 보이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두 명이었다.

    “나머지는 폐기하라.”

    “폐기…… 말씀입니까? 하오나 그렇게 하면 미끼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루아스교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예상컨대 세크리드만이 아닌, 내가 있는 장소까지 파악했을 터.”

    저주 너머에 있는 존재, 네 번째 하인이 단언했다.

    “필시 애셔의 짓이겠지. 그자는 어떠한 단서도 없는 상황 속에서 비올라와 노사를 정확히 추적한 바 있으니.”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알 방도가 없으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궁금하지도 않았으니까. 작금의 상황은 오히려 바라던 흐름이었다.

    “그러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

    마침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출 시간이 다가왔다.

    * * *

    일대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돔은 다수의 흑마법진이 복합적으로 얽힌 끝에 형성된 결과물이다.

    <비행주파>로 속도를 높이고 있던 베르덴이 즉각적으로 마법진을 해석했다.

    고도의 은폐와 보호.

    돔과 일정 간격 내로 가까워지면 강력한 환상을 일으켜 불청객의 정신을 현혹하기까지.

    ‘견고하군.’

    레이라가 잡아 온 퀸터 호른, 그 아인종의 정신에 간섭하던 흑마법진을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 수준이 높다.

    전도유망한 인재가 많은 마법계라고 해도, 저것과 견줄 수 있는 마법진을 작성할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베르덴에게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그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진의 권위자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으니.

    ‘파훼는 간단하다.’

    마력의 실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환상을 일으키는 흑마법진이 상대라면.

    쐐액───!

    거리가 가까워진다.

    어느새 속도가 기준점을 넘어서자, 황금빛의 원이 베르덴의 몸에 떠올랐다.

    [아인베르]의 광환.

    빛이 더해진 속력에 의해 주위 풍경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그러고는 부여 마법을 연산하여 신체 능력을 강화.

    이어서 마력을 세밀하게 제어하여 오리엔트의 첨단에 푸른 창날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마력 자체에 속성을 더한다.’

    선택한 것은 공간 마법.

    물론 최고위 속성인 만큼 자유롭게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아크의 초월자가 가진 공간의 마도를 경험하기도 했고, 여유가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하기도 했지만 숙련도는 한참 부족하다.

    그래도 일부라면 다룰 수는 있다.

    베르덴에겐 원소 마법의 특징만을 추출할 수 있는 아티팩트 [삼원색의 중심]이 있었으니까.

    집중력을 극한까지 높였다.

    찰나의 순간 마력의 창날에 미약한 보랏빛이 맺혔다.

    직후 베르덴이 흑마법진의 영향권 내에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

    갑작스레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자, 세상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시야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처음 겪는 마법적 허상이다.

    생소하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정신력 이전의 이야기다.

    마도왕의 로브는 소유자가 환영을 보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아인베르에서 황금빛이 명멸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강력한 반발력이 흑마법진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쩌저저저적, 아인베르의 격을 감당하지 못한 돔 전체에 무수한 금이 새겨진다.

    안광을 번뜩인 베르덴이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며 스태프를 내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강대한 절단력이 깃든 마력이 여지없이 흑마법진을 관통했다.

    내부 진입은 성공.

    그제서야 불길한 기척을 감지한 베르덴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언데드 군단, 그 사이사이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

    주저 없이 급강하한다.

    그런 베르덴의 모습을 본 흑마법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물리적으로 그분의 마법진을……?!”

    당황을 금치 못하면서도 지시를 내린다.

    언데드로부터 발하는 마법.

    뼈로 이루어진 화살과 발리스타.

    교묘하게 경로를 예측하여 날아오는 각종 저주들까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요격망.

    회피 기동조차 펼치지 않은 베르덴이 그대로 돌파하여 지면에 착지했다.

    <화염 폭풍>

    언데드는 열기에 약하다.

    활활 타오르는 소용돌이가 언데드 군단의 중심부에 휘몰아쳤다.

    가까스로 장막을 펼쳐, 스스로를 지킨 흑마법사들이 지팡이를 들었다.

    <불사의 화염>

    일시적인 화염 면역.

    기어코 불길을 넘어선 망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접근했다.

    물론 <불사의 화염>의 효과는 절대적이지 않다.

    보다 위계를 높인다면 놈들의 면역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화염 속성은 어디까지나 베르덴을 이루는 일부분일 뿐.

    특히나 광범위 섬멸은 그의 장점 중 하나였다.

    가볍게 스태프를 회전시킨 베르덴이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유린이 시작됐다.

    콰과과과과과과───!

    중력의 파동이 대기를 진동시킨다.

    허공에선 거대한 암석이 연이어 쇄도하고, 불길이 스며든 지면에서 자그마한 화산이 폭발했다.

    <군뢰>

    남색의 구체가 밀집된 언데드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압축되어 있던 열화가 터져 나오며 수백 갈래의 번개 줄기가 시체들을 집어삼켰다.

    연쇄적으로 퍼져 나가는 폭발에 사방이 빛에 휩싸였다.

    일방적이다.

    숫자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본래 루아스교와의 전면전을 기다리고 있었던 주검의 영광의 전열은 몇 분 사이 궤멸에 이르렀다.

    “쿨럭, 쿨럭……!”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일대.

    몸의 절반이 번갯불에 타 버린 5위계 흑마법사가 숨을 헐떡였다.

    “애셔…… 확실히 비올라 님과 노사님을 죽일 정도는 되는구나……! 하지만, 네놈은 공화국에서 결코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 말 그대로 네 번째 하인에게 전해 주지.”

    콰직.

    벼락과 함께 암석이 머리를 꿰뚫었다.

    자그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흑마법사가 절명했다.

    다만 이제 시작이다.

    돔의 중심부에서 수백의 언데드가 몰려왔다. 마법과 화살 그리고 뼈로 이루어진 투사체와 함께.

    ‘힘을 빼려는 건가.’

    단순한 마력 소모는 베르덴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다.

    선봉의 역할은 여기까지.

    등 뒤에서 여러 검기가 쇄도했다.

    베르덴을 향해 날아오던 투사체를 모조리 베어 버린 아드리안이 최전선에 섰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성스러운 빛이 내리쬐었다.

    러스트러스가 지면에 가깝게 고도를 낮췄다.

    갑판 위에서 전황을 바라보던 조제프가 명령했다.

    “순리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섬멸하십시오. 여신 루아스의 이름으로.”

    “무구한 광명으로!”

    루아스교가 참전했다.

    팔라딘, 셰인을 필두로 성기사들이 언데드 군단을 향해 돌격했다.

    * * *

    전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위험 따위는 없었다.

    단숨에 주검의 영광의 후속대를 전멸시킨 그들이 앞으로 전진했다.

    베르덴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의 자침을 따라서.

    지극히 순조로웠다.

    하나 결국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나 흑마법사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정확히 흑마법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드넓고 황량한 공터.

    그곳엔 거대한 두 개의 문이 대칭을 이루고 서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베르덴이 눈썹을 씰룩였다.

    ‘공간 이동진?’

    아니, 조금 결이 다르다.

    기존의 공간 이동진은 임의로 발동하는 것.

    그와 달리 이 두 개의 문은 각기 다른 공간과 ‘실시간’으로 이어진 상태다.

    왼쪽 문은 회색의 하늘로 뒤덮인, 황폐화된 성터로.

    오른쪽 문은 빛바랜 유적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을 남긴 의도가 대체 무엇일까.

    베르덴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갈 곳은 정해졌다.

    블랙 아워의 나침반은 왼쪽 문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하지만…….

    ‘대주교는 아닌 것 같군.’

    베르덴이 슬쩍 뒤를 살폈다.

    조제프는 두 명의 팔라딘과 함께 오른쪽 문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눈빛에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놀라움 혹은 당황스러움, 둘 중 하나였다.

    혹시 저곳에 루아스교가, 주검의 영광을 추적해야만 했던 목적이 있는 걸까.

    정황상 그것 외에는 없었다.

    여러 생각이 뒤얽힌다.

    신중히 사고하던 베르덴이 조제프에게 다가갔다.

    “여기서는 방향이 특정되지가 않는군요. 그러니 저희가 왼쪽을 맡겠습니다.”

    병력을 나눈다.

    그런 베르덴의 제안에, 조제프는 고민하는 척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택지가 없군요. 그럼 성기사와 성직자의 일부를 데려가십시오.”

    “저희 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베르덴의 마법적 능력은 무척이나 범위가 넓다.

    자칫 상황이 과열되면 그에 휩쓸릴 수도 있으리라. 그런 타당한 이치에 조제프가 턱을 당겼다.

    “……확실히 애셔, 그대가 방금 보여 준 힘이라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또한 곁에 있는 이름 모를 분도 남 못지않은 강함을 갖고 계신 듯하니.”

    고민은 짧았다.

    조제프가 곧장 판단을 내렸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조제프와 베르덴.

    그들은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었으나, 서로의 목적은 달랐다.

    이러한 사실은 둘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 어느 누구도 묻지 않았다.

    각자의 목적이야말로 최우선이기에.

    후에 이곳에서, 또는 세크리드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며 길을 달리했다.

    루아스교의 병력들이 오른쪽 문 너머로 사라진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베르덴도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하지.”

    “앞장서겠습니다.”

    마검을 든 아드리안이 공간을 이동했다.

    그를 뒤따른 베르덴이 낯설고 스산한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마주했다.

    “역시 네가 나를 찾아왔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언데드 기사와 언데드 마법사.

    그 가운데에 기척이 불분명한 사내가 존재했다.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애셔.”

    주검의 영광을 이끄는 네 번째 하인.

    강대한 흑마도사가 베르덴과 아드리안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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