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3화 (343/366)

343화 집결 (1)

벨디른 공화국의 서쪽에 위치한 원시적인 환경, 일명 ‘닿지 않는 숲’.

평균 높이가 약 8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들로 인해 하늘이 가려져 햇빛은 거의 닿지 않는다.

사방에 어둠이 가득하다.

약육강식의 세계다.

간간이 사냥감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치는 자연이지만 오늘은 사뭇 달랐다.

닿지 않는 숲에 자리한, 오래전에 원형을 잃어버린 유적지.

그 안에서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쿵. 쿵. 쿵.

성직자들의 보조 아래, 성기사들이 진군한다.

빛의 기적으로 둘러싸인 그들이 그림자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신성력은 기본적으로 흑마법의 천적.

빛이 사방을 훤히 밝히자, 허공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영향을 받은 흑마법진이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감춰져 있던 건축물이 나타남과 동시에 주검의 영광에 속한 존재들이 드러났다.

교전은 즉시였다.

<본 스피어>

<애시드 자벨린>

<다중 얼음 화살>

<어스본>

…….

급습이었으나 동요하는 기색은 없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물질계 흑마법과 원소 마법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정신계 흑마법은 신성력에 특히나 약하기에 배제했다.

콰앙! 콰앙! 쾅!

거대한 신성 보호막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린다.

하나 여전히 견고하다.

이내 목표 거리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한 교인들이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무구한 광명으로!”

신의 영광을 부르짖으며 주저 없이 돌진하기 시작한 성기사들이 검광을 번뜩였다.

날아오는 마법을 부수고 피한 그들이 근접전에 돌입했다.

“컥!”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의 칼날이 가슴뼈를 부수고 꿰뚫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성기사 또한 실시간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나 전투에 지장은 없다.

“루아스시여, 당신의 검을 지켜 주소서.”

레나 주교를 필두, 후열의 성직자들이 치유의 기적을 기도하며 철저하게 보조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홀리 서번트>

소환된 빛의 하인들이 원거리에서의 충격을 감당한다.

공격, 방어, 지원.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다.

그렇기에 명확한 약점이 없는 것이 바로 루아스교의 전투 방식.

물론 결코 무적은 아니다.

콰지직!

언데드의 일격을 막느라 미처 피해 내지 못한 저주의 송곳이 성기사의 목을 관통했다.

“끄륵, 끄르륵…….”

기도에 피가 고인 탓에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호흡이 불가능하다.

뼈와 신경이 손상되었고, 치유를 저해하는 저주가 신체 깊숙이 파고든 터라 기적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푹.

이어서 언데드의 검이 복부에 깊은 자상을 내기까지.

목을 움켜잡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즉사에 가까운 치명상. 본래라면 뭘 해 보지도 못하고 수 초 내에 절명했으리라.

하지만 여기엔 대주교가 있다.

“저들의 악의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조제프의 손끝에서 기적이 펼쳐졌다.

고고한 신성력이 저주와 함께 근방에 있던 언데드를 지워 버리고, 성기사의 상처를 완전히 복구했다.

한순간에 멀쩡해진 성기사는 다시금 검을 들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성위(聖爲)의 대주교, 조제프.

그는 그 자체로 난공불락의 성벽과도 같다.

조제프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함께한 이들 또한 무너지지 않으리.

단신으로 전황을 이끄는 존재.

이것이 세계 종교의 대변자인, 7인의 대주교가 가진 기적이었다.

“루아스시여!”

죽지 않는 성기사들이 더욱 가열차게 맹공을 가했다.

거리가 좁혀진다.

상당한 마력을 소모한 흑마법사들의 저항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라! 전부 죽여! 저 거짓된 신앙을 믿는 자들을 죽이란 말이다!”

“끄아악……!”

“위대한 주검의 영광을 위해!”

단말마의 비명이 귓가를 스친다.

그렇게 머지않아 고요한 정적이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루아스교는 사망자 하나 없이, 주검의 영광이 자리한 거점 하나를 초토화하는 데 성공했다.

저벅, 저벅.

성기사들이 유적지 내부를 점령했다.

면밀한 수색을 마친 팔라딘, 레일버가 조제프에게 보고했다.

“분부하신 대로 몇몇 흑마법사는 교전 도중에 도주시켰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완전히 토벌하지는 않았다.

거점 급습은 어디까지나 시선 끌기.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계획을 진행하는 동안 최대한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것’의 흔적은 발견했습니까?”

주검의 영광이 찾고 있는 그것들.

루아스 교국이 주검의 영광을 막아야 하는, 조제프가 교황과 성녀의 명을 받아 동대륙에 직접 파견된 이유.

진중함이 묻어난 대주교의 물음에 레일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미 할디른에게 발각된 거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그래도 아직 저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건 확실하니…….”

조제프가 목걸이를 어루만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봉인이 풀리기 전에 반드시 그것을 회수해야 합니다. 저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든 간에…… 주검의 영광을 이끄는 하인들을 토벌하는 건, 그 이후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베르덴이 조작하는 마차가 상공을 비행했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아드리안 한 명뿐. 아직 잭은 풀어 주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사정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게다가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체불명의 흑마법이 잭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니.

조제프 대주교에게 데려가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판단이었다.

그때, 아드리안이 물었다.

“주군, 혹시 그 잭이라는 자와 아는 사이십니까?”

타당한 의문이었다.

베르덴은 존재감과 기척만으로, 잭이 봉인되어 있음을 확신했기에.

“그래, 알고 있다.”

단순히 마주친 정도가 아니다.

검과 마법.

4위계였던 베르덴과 공식적으로 맞부딪치기까지 했다.

“재작년에 리비안트의 공국의 대행사에서 시합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결승전에서 만났지.”

“당연히 주군께서 이기셨겠군요.”

“우승 상품으로 이걸 손에 넣었지.”

베르덴의 손을 장식하고 있는 반지 중 하나, 혹한의 반지(모조품).

이걸 손에 넣은 이후로, 얼음 마법은 시종일관 강화된 상태다.

뭐, 지금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미미한 효과이기는 하다만.

“그리고 2위인 잭은 강완의 허리띠를 받았고.”

리비안트 공왕에게, 누가 무엇을 받았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잭과 나눴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공국 왕성의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잭이, 베르덴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벨디른 공화국에 갈 생각 없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당연히 베르덴은 거절했다.

글러트니와 마찰을 빚고 있기도 했고, 공화국으로 갈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뜻밖의 만남이다.

딱히 반갑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럴 정도의 친분을 쌓은 적이 없으니.

어쨌든 이대로 잭을 데리고 쿼레일로 돌아가면 끝.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할 일은 전부 마친 것이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 * *

동대륙 중심부 지도.

그중 카일리언스의 도시, 서드밀을 손가락으로 짚고 푸른 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도시가 하나 나온다.

헤인강을 비롯한 여러 강이 연결된 중심지이기에, 온갖 선박과 물자들이 오가는 번잡스러운 장소.

그 탓에 물비린내가 심하긴 하지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주민에게는 일상이었다.

다만 겨울의 날씨만큼은 예외였다.

“아이고, 추워라……!”

항구 관리인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왔다.

두꺼운 털옷을 벗기도 전에 작년에 큰맘 먹고 장만한, 생활용 매직 아이템에 마석을 넣어 작동시켰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자, 실내가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

그제야 외투를 벗고, 편안히 의자에 몸을 누였다.

꼬르르륵.

아까까지는 몸만 데울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는데 막상 그러고 나니 이제는 허기가 졌다.

“이래서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건가. 으음, 이럴 때 매콤한 생선 스튜 한 접시만 먹으면 진짜 여한이 없겠는데…….”

근처에 식당이 있긴 하다.

그런데 안락한 이곳을 버리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는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일생일대의 고민.

“그래, 나가자.”

결정을 내린 항구 관리인이 벌떡 일어섰다.

마음먹은 이상 거칠 게 없다. 쭈욱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엉?”

웬 그림자가 앞을 막았다.

동시에 그의 머리통을 붙잡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소리를 지를 새도, 반응할 새도 없었다.

“최근 수개월 이내, 카일리언스에서 온 선박 목록을 전부 가져와라.”

저주가 내면으로 파고든다.

한순간에 정신을 장악당한 항구 관리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가져온 총 세 개의 서류를 <염동력>으로 띄운 할디른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내용을 읽어 내려 갔다.

‘이건가.’

누락된 배를 찾았다.

리버런그에서 아인종과 인간의 사체를 싣고 왔어야 했던, 애셔 일행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그 선박.

듣던 대로 기름이 실려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배에 대한 모든 걸 가져오도록.”

“네…….”

항구 관리인을 비틀거리며 관리실 곳곳을 뒤적거렸다.

때론 넘어지기도 했다.

정신계 흑마법 수준이 높았다면 능률이 더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할디른의 마도는 다른 계열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도 단서는 잡았다.

피아리티 상회.

선박의 내용물을 직접적으로 운반한 자들.

항구 관리인이 말하길, 특수 개조 한 거대 마차를 사용한다고 하니 분명했다.

‘오우거의 사체 같은 걸 옮기려면 일반 마차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테니까.’

상회의 위치는 도시에서 떨어진 장소에 있는 한적한 마을.

후욱.

어둠에 스며든 할디른이 곧장 도시를 벗어났다.

다크 워튼의 고유 흑마법.

짧은 거리에서는 효율이 극히 떨어지나, 장거리 이동에서는 5위계 <비행주파>를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에 도착했다.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

상회의 건물을 식별한 그가 망설임 없이 내부에 진입했다.

‘……조용하군.’

산 자의 기운이 전혀 없다.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가득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희미하다.

방치된 건가.

‘아니, 방치당한 거군.’

할디른이 건틀릿을 벗고, 복도 중앙에 손을 짚었다.

마도를 개방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무 판자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핏방울이 올라오며 손끝을 적셨다.

할디른이 혈흔을 문지르며, 안에 담겨 있는 죽음을 감지했다.

‘흑마법에 의한 타살인가.’

입막음을 당한 모양이다.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다음으로 피아리티 상회의 정보를 수집하고 추적하면 될 터다.

하지만 할디른이 누구인가.

죽음의 이해자라 불리는 초월자의 유일한 제자.

그 마도에서 파생된 마법 중 일부를 전수받았다.

‘아직 부족하긴 하다만…….’

상대가 기도, 마력도, 신성력도 깨우치지 않았다면, 또한 살해당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면 충분하다.

판단을 내린 할디른이 눈을 감으며 극한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나지막이 핏방울을 향해 말했다.

“생전의 기억을…… 보여 다오.”

섬뜩한 마력이 휘몰아친다.

이내 붉은빛이 손끝에 모여들며 피를 감싸더니, 그와 함께 피부에 스며들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른다.

애써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할디른의 의식이 죽은 자의 기억 속으로 향했다.

* * *

베르덴 일행이 쿼레일로 돌아왔다.

세 개의 계획 중 가장 이동한 거리가 멀긴 했지만, 서던피트에서의 일이 하루 만에 끝났기 때문에 예정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최심부에 위치한 성채로 향했다.

직전과 비교해 보니 루아스교의 숫자가 줄어들어 있었다.

“우리가 먼저 온 건가?”

“거점 토벌에 속해 있었던 성기사가 있는 걸 보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설마 사망자가 나왔나.

즉각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바로 내심 고개를 저었다.

다름 아닌 대주교가 참가했으니.

‘그렇다면 부대를 나눴다는 게 합리적이겠지.’

기존 계획에 없던 상황이다.

대주교가 이곳에 없는 걸 보니…… 모종의 사태라도 발생한 걸까.

복도를 거닐며 루아스교의 책임자를 찾았다.

그때, 소란이 들려왔다.

───아무리! 아무리 루아스교라도 해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이건 공화국을 무시하는 처사요!

───일단 지, 진정하세요, 앵그랑 최고 의원님!

───진정은 무슨!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두 사람이 보였다.

잔뜩 인상을 찡그린, 콧수염이 길게 늘어진 중년의 사내.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손사래를 치는 레나 주교.

베르덴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 애, 애셔 님! 일찍 돌아오셨네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던 그녀가 베르덴과 아드리안을 보며 활짝 웃었다.

눈시울까지 글썽인다.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이윽고 사내가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너희들이 뭔데 함부로 의원이 있는 방에 쳐들어와! 어! 루아스교하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야! 당장 치워 버리고 얼씬도 못 하게 해!”

침을 튀기며 윽박지른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예의 따위는 없었다.

“네, 앵그랑 최고 의원님.”

사내에게 명령을 받은, 서던피트의 처형자들과 같은 차림을 한 그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베르덴을 끌어내기 위해서.

“이 새끼들이…….”

아드리안의 이마에 핏대가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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