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2화 (342/366)
  • 342화 폭군 (4)

    예전, 비정상적인 체격을 가진 거한이 있었다.

    무려 2미터를 아득히 넘는 키.

    타고난 근력만으로도 사람을 장난감처럼 찢어 죽이는 게 가능한 사내였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알맞은 견고한 갑옷을 입고, 거검(巨劍)을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전투 마차가 따로 없다.

    기형적인 맷집으로 온갖 충격을 무시한 채 돌진하여, 전력을 다해 무지막지한 일격만을 휘두르는 단순한 전투 방식.

    결코 기술이라고 칭할 수도 없었으나, 제대로 버텨 낸 사람이 하나 없었다.

    맞닿는 순간 검은 검대로, 방패는 방패대로, 마법은 마법대로 박살 났으니.

    ───크하하하핫! 아무나 덤벼라! 산 채로 뭉개 줄 테니까!

    중앙 대륙에서 발생한 수많은 분쟁 속에서 짐승처럼 날뛴다.

    누가 저 거한을 막을 수 있을까. 눈치만 보던 그때, 로메르가 나섰다.

    서로 덩치 차이는 압도적이다.

    근력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무기를 쓸 필요도 없이, 로메르를 한 방에 때려죽이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단 한 수에 결판이 났다.

    하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수직으로 날아오는 거대한 검을 방패로 흘린다.

    동시에 검 끝에 기를 집중시켜 전력으로 팔을 내질렀다.

    푸욱!

    ───컥…… 커억…….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투구의 틈새를 넘어 오른쪽 눈을 관통했다.

    직후 이어지는 연격.

    무시무시한 살육을 벌이던 거한은 울부짖으며 쓰러졌고, 그대로 재기 불능이 되었다.

    이것이 로메르가 가진 힘.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다.’

    위력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자그마한 변화에 뒤틀리는 법이다.

    그렇게 만들어 낸 빈틈을 온 신경을 다한, 정교한 일격으로 베고 찌른다.

    전투 경험, 유연성, 탄력, 근력, 반사 신경, 판단력 등이 합쳐진 기교.

    반격은 로메르의 전매특허였다.

    그런데.

    ‘무, 무거워!’

    금속을 울리는 강력한 파동.

    도저히 받아넘길 수가 없는 충격량이다.

    제대로 자세를 잡았음에도, 고작 일격에 양 무릎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미증유의 압력이 방패를 짓누르기까지.

    “끄으윽, 끄읍……!!”

    죽어라 밀어내고는 있는데 어찌 된 게 꿈쩍하지가 않는다.

    오히려 점차 밀렸다.

    부여 마법 그리고 중력 마법.

    직전의 전투에서 그를 확인하긴 했지만…….

    ‘이건 아니야.’

    직감이 경고한다.

    쓰러지면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끝장이다. 웃음기를 지운 로메르가 기를 끌어모았다.

    이를 꽉 물었다.

    천천히,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가까스로 간격을 만들었다.

    그러다 지면에서 무릎이 살짝 떨어질 때쯤, 일시에 전력을 폭발시켰다.

    “으아아아아아!”

    로메르가 기립했다.

    죽일 듯이 짓누르던 압력도 사라졌다. 체력 소모가 커 호흡이 흐트러졌지만 상관없다.

    ‘이제 반격할 시간───’

    더블 캐스팅.

    <데몰리션>

    지근거리에서 형성된 중력 구체가 로메르의 상체 갑옷과 충돌했다.

    울컥, 숨을 토한 그가 가도 위를 굴렀다.

    여긴 서로의 자웅을 겨루는 무대 따위가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베르덴은 쓸데없이 시간을 축낼 생각이 없었다.

    * * *

    건물 외벽과 바닥에 남아 있는 여러 검흔과 마법의 흔적.

    그리고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사람들.

    서던피트의 중앙 광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처형자의 리더, 헬가르.

    그의 턱 끝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표적은 하나다.

    암흑가의 왕 본인도 아닌, 고작 호위에 불과한 자.

    헬가르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공화국이 고용한 숫자의 폭력으로 간단히 치워 버렸어야 정상일 텐데…….

    “끄으으윽…….”

    “포션…… 아무나 포션 좀……!”

    되레 절반 이상이 당했다.

    대체로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사망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놈이 경고했듯, 광장의 왼쪽으로 넘어가려 시도했던 자들은 전부 절명했다.

    그동안 헬가르와 처형자들이 해낸 것이라고는, 상대의 로브 자락을 두 번 정도 스치듯 벤 것뿐.

    ‘거기다 암흑가의 왕을 쫓던 처형자들은 소식이 없다.’

    당한 건가.

    만약 그자가 저 호위보다 강하다면 자명하리라.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전력을…… 잘못 파악했다.

    그때, 주변을 흘겨보던 아드리안이 말했다.

    “생각과 달리 조용하군. 그리고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고 보낸 자들도 이 정도니…… 최고 의원의 직속 부대라고 해서 내막을 아는 건 아닌가.”

    서던피트엔 흑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검의 영광이 개입한 흔적이 감지되지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공화국의 최고 전력을 보낸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단정할 수는 없으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반응에 헬가르가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감히……!”

    모멸감이 엄습한다.

    치욕이다.

    벨디른 공화국의 처형단 중 하나를 이끄는 자신이 농락당하다니.

    하나 냉정을 유지한다.

    중요한 건 그따위 감정이 아니라, 임무의 수행이다.

    공화국을 위협하는 두 수배범을 잡는 것. 그게 전부였다.

    눈동자에 핏발이 선 헬가르가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헬가르 님?!”

    다른 처형자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였다.

    어차피 크게 다를 건 없으니까.

    목표물에게 조금이나마 검이 닿은 건 헬가르의 순수한 실력 덕분이었다.

    카앙───카가가가강!

    쌍검과 바스타드 소드가 연이어 맞부딪친다.

    눈으로 좇는 것조차 힘든 접전.

    아드리안이 전력을 내지 않고 있다고 하나 제법 합을 나눈다.

    그리고.

    뻐어억!

    사각에서 날아온 발차기가 헬가르의 턱을 후려쳤다.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겨우 의식을 붙잡은 그가 함성을 내질렀다.

    “하아아아아아!”

    수축하는 근육, 끓어오르는 피.

    숨을 극한까지 들이마신 헬가르가 펼치는 기예.

    격철擊鐵.

    용수철의 탄성처럼 폭발적인 찌르기가 심장을 노렸다.

    지면을 박차며, 허리를 비튼 아드리안이 회전과 함께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회피와 반격.

    부드러운 궤적을 그린 검이 헬가르의 허벅지를 갑옷째로 베었다.

    “큭……!”

    자세가 무너진다.

    이것으로 승패는 갈렸으나 포기하지 않고 내던지듯 검을 휘둘렀다.

    발악이었다.

    이내 헬가르가 제압당하려는 순간, 멀리서 톱날처럼 이가 빠진 단검이 날아왔다.

    가볍게 뒤로 훌쩍 물러선 아드리안이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면상에 짐승의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는 불쾌한 남자가 서 있었다

    “도망치려는 기색이 없기에 잠시 놔뒀더니. 구경은 이제 끝났나, 도노반?”

    “다른 대륙에서 내 본명을 듣자니 기분이 이상한걸. 날 알고 있나?”

    “수인족을 사냥해 가죽을 벗긴다는 소문은 들었지.”

    도노반이 유쾌하게 웃었다.

    “잘 알고 있군. 내 예비 고객이신가? 아쉽게도 장신구 판매는 잠시 휴업 중이다. 수인족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대륙을 옮겼거든. 지금은 임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바로 인간 사냥이다.”

    그가 목걸이를 보였다.

    사람의 뼛조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딱히 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수집욕을 채우기에는 적당하지. 네 손가락도 여기 함께하기에 적합해 보이는군.”

    도노반이 낄낄거린다.

    무익한 대화였다.

    아드리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두 개의 검을 다잡았다.

    ‘아직 죽이면 안 된다.’

    적당히 상대해야 한다.

    치명상은 조금도 입히지 않는 선에서 제압해야 하니.

    * * *

    로메르 핸스니아.

    어릴 적부터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비슷한 급의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런 로메르는 자신을 외로운 늑대라고 칭했다.

    주된 이유는 멋있어서.

    본래 이명이란 것이 남이 지어 주는 게 일반적이긴 하나, 이처럼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는 실력자로서, 중앙 대륙에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전장에서 활약했다.

    때론 모험을 하며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따금씩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는 해도 역경이나 고난 같은 건 없다.

    대체로 순탄하게 승리하고 또 쟁취했다.

    한편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며 젊음을 구가했다.

    로메르는 주인공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에서는 그러했다.

    그리고 오늘, 괴물을 만났다.

    ───콰아아아앙!

    튕겨져 나간 로메르가 버려진 건물에 처박혔다.

    기둥이 부러지며 지붕 전체가 폭삭 내려앉았다.

    뭉게뭉게 피오르는 먼지구름 속에서 로메르가 필사적으로 기어 나왔다.

    온몸이 먼지와 땀투성이다.

    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그나마 있던 방패로 바닥을 짚으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허억, 허억, 허억…….”

    정신이 멍하다.

    체력이 부족한 건지, 하도 얻어맞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쉬운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접전에 접전을 벌이다가, 끝내는 자신이 이길 거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닿지도 못한다고……? 내가?’

    저항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막기에 급급할 뿐 반격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기예? 그런 걸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직접 경험하고도 믿을 수 없는 격차다.

    ‘설마 외견을 속이고 있는 건가? 어쩌면 속은, 나이 지긋하게 먹은 고명한 마법사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로메르가 눈을 깜빡이며 힘겹게 시선을 들었다.

    동대륙 암흑가의 정점.

    선명한 벽안을 마주한 그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윽!”

    털썩.

    박살 난 나무 판자에 다리가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

    햇빛 너머로 그림자가 길어진다.

    어느샌가 다가온 베르덴이 로메르를 굽어봤다.

    그러곤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칠 듯이 요동치는 심장.

    손끝이 잘게 떨린다.

    이번에는 어떤 마법이 나오는 걸까. 뭐가 됐든 간에 무지 아프겠지.

    이런 몸으로는 막지도 못할 것이다.

    “잠깐, 잠시만…….”

    반사적으로 제지했지만 베르덴은 멈추지 않았다. 주황빛 눈동자에 비친 마력의 빛이 서서히 강해진다.

    그렇게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구현하려던 순간, 로메르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져, 졌어! 내가 졌다고! 그러니까 그만해!”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전의를 상실한 로메르의 모습에, 베르덴이 마력을 거두었다.

    “그래서 잭의 위치는?”

    느닷없는 제안부터 결판까지.

    지극히 짧은 시간이긴 했으나 거래는 유효하다.

    “걔는 여, 여기 있어.”

    “여기?”

    “내 가방에…….”

    로메르가 황급히 공간가방을 뒤적거렸다.

    안에서 손바닥만 한 면적의, 푸른빛의 정육면체를 꺼내 보였다.

    마법에 관련된 물품이다.

    베르덴이 마력을 눈에 집중시켰다.

    <감정>

    입방체의 내력을 읽는다.

    그를 확인한 베르덴이 드물게 놀라며 흥미를 보였다.

    “아티팩트군. 이걸 어디서 손에 넣었지?”

    “옛날에 우연히 들어간 유적을 탐험하다가…… 발견한 건데.”

    아티팩트는 어느 것이든 희귀하다.

    그런 걸 우연히 손에 넣다니,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저나 공간을 이용한 봉인형 아티팩트라.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서 사용하긴 까다롭긴 하지만…… 조건만 맞춘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군.’

    특히 현상금 사냥처럼 사람을 생포할 때는 말이다.

    어쨌든 이 아티팩트 안에 누군가 봉인되어 있는 건 분명하다.

    과거에 기억하고 있던 존재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잭이 확실하다.

    “자, 가져가…… 약속대로.”

    로메르가 손을 뻗었다.

    이미 의욕이 사라진 그는 서둘러 서던피트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 베르덴이 아티팩트를 통째로 집어 들었다.

    “어? 자, 잠깐만! 아티팩트를 가져가란 말이 아닌데!”

    알고 있다.

    다만 베르덴은 이 아티팩트에 관심이 깊었다.

    ‘뭐, 이대로 소유권을 가져가도 문제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베르덴은 적대자의 것을 빼앗아 왔다.

    그게 당연했으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로메르는 상당히 애매했다.

    ‘날 죽이려 한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니니.’

    다시 말해 로메르는 베르덴이 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아티팩트를 손에 넣으려면 거래가 정석이긴 한데…… 당장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러니.

    “이 아티팩트는 잠시 빌려 가지.”

    “뭐?!”

    “나중에 찾아오면 돌려주마.”

    “그게 무슨───”

    나중으로 미룬다.

    터엉!

    중력의 폭풍에 날아간 로메르가 잔해 더미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

    중상을 입히지는 않았으니 조금 있으면 깨어나겠지.

    베르덴이 발걸음을 돌렸다.

    하늘을 날아, 잔당들을 무시한 채로 서던피트의 광장으로 돌아갔다.

    “오셨습니까, 주군.”

    아드리안이 먼저 반겼다.

    심문을 하고 있었는지 처형자들과 박피꾼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특히 박피꾼은 만신창이였다.

    “목적은 달성했다. 이만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아드리안이 검을 휘둘렀다.

    쓰러져 있던 박피꾼, 도노반의 목이 뎅겅 잘렸다.

    따로 원한이 있었나?

    “제가 아는 지인 중에 수인족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

    딱히 상관할 바는 아니다.

    베르덴은 아드리안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약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때, 헬가르가 검을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아무 데도…… 못 간다……!”

    훌륭한 정신력이다.

    자신의 힘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막아서는 걸 보면.

    따악.

    베르덴이 손가락을 튕겼다.

    사방에서 몰려든 바람이 한데로 뭉치고는 헬가르에게 쇄도했다.

    퍼어어어엉!

    충격파에 날아간 헬가르가 건물 외벽에 처박혔다.

    죽지는 않았으나 한동안 일어나지는 못하겠지.

    이제 쿼레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유유히 서던피트를 벗어났다.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들이 찾아와 하루 사이에 남긴 것은 흙먼지가 치솟는 거리과 피로 물든 광장뿐.

    그야말로 폭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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