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41화 (341/366)

341화 폭군 (3)

거의 강제와 다를 바 없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게르본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협조했다.

솔직히 말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놓고 협력하라는 것도 아니고, 서던피트 전역에 암흑가의 왕에 대한 소문을 몰래 퍼뜨리는 게 전부였으니.

게르본의 부하들은 거리 곳곳에 퍼져 쉴 새 없이 입을 떠들었다.

확실한 증거 하나 없는 소문은 연쇄적으로 연결되며 진실이 되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은 죄다 중심부에서 도망쳤고, 해당자들이 베르덴과 아드리안의 앞에 모여들었다.

계획대로.

‘과연 누가 잭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을까.’

광장에 모인 인파, 그 가장 앞 열에는 탐욕이 어린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자들이 있다.

서던피트의 현상금 사냥꾼.

몸이 근질거리기라도 하는지, 무기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곤 불규칙적으로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저놈들은 아니겠군.’

이유는 간단했다.

게르본이 언급했던 세 개의 세력 중 가장 저열해 보였으니까.

특히 옆에 있는 공화국의 처형자에게 정보든 무력이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남은 건 둘.’

마주한 것만으로 후보가 하나 줄었지만 아직 확정하기에는 이르다.

또한 중앙 대륙에서 온 두 명이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

누가 가장 유력한지는 이제 알아봐야겠지.

“대답해라. 네가 애셔인가?”

처형자의 리더가 되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무게중심이 미세하게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물론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굳이 말해야 아나?”

“…….”

짧은 답변에 처형자들이 검집을 움켜잡았다.

엄지를 펴서 날밑, 크로스가드(Cross Guard)를 밀었다. 시퍼런 도신이 일부 드러나며 햇빛에 반사되었다.

긴장감이 술렁인다.

현상금 사냥에 나설 생각이 없는 구경꾼들이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핫핫핫핫! 역시! 역시! 듣던 대로군!”

그때, 회색 수염이 듬성듬성한 노인이 껄껄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만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도, 그것도 처형자들을 상대로 태연한 모습이라니! 암흑가의 왕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담대해! 모두들 그렇지 않나?”

오른손에 쇠뇌를 든 현상금 사냥꾼.

그의 이름은 모론.

진즉에 은퇴했어야 할 나이지만, 사냥의 쾌감을 잊지 못하고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술집을 전전하며 과거를 시끄럽게 떠벌리는 관심 종자이며, 그걸 누군가 방해하면 화살로 머리나 가슴을 뚫어 버리는 광인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수많은 시선이 향해 오자, 모론이 가슴을 펴며 양팔을 벌렸다.

“이번에는 내가 묻지. 빈테르트를 이끄는 자가 여긴 무슨 일이지?”

“…….”

“핫핫! 이거 거들떠도 안 보는군. 민망하게시리. 하기야 로아프라의 악명이 동대륙에 자자하고, 당신은 퍽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니…… 나 따위야 하찮기 그지없겠지. 하지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먼.”

퉷.

그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로아프라는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마치 깊은 개미굴과도 같지. 그러나 이곳 서던피트는 달라.”

여기는 지하 도시가 아니다.

회색 성채의 성벽도, 빈테르트도, 그에 충성하는 조직들도 없다.

당장 왕을 보호할 병정개미는 고작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굴속에서는 떠받들어진다고 한들, 굴 밖으로 꺼내지면 사냥될 뿐이지.”

모론은 소인배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것만을 믿고, 그 외의 것은 부정한다.

심지어 초월자란 존재도 불신할 정도니.

그래서 로아프라에서 들려온 소문은 대부분 믿지 않았다.

‘단신으로 로아프라를 함락했다고? 그것도 마법사가? 지랄.’

상식과 완전히 위배된다.

그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르본처럼 직접 보지 않고서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모론이 씨익 웃으며 선언했다.

“애셔, 여기서 당신은 왕이 아니다.”

동시에 팔을 쳐들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강철 볼트가 세차게 날아간다.

자체적으로 개조한 쇠뇌의 위력은 판금 갑옷조차 견디지 못한다.

얇은 로브 따위야 한낱 거적때기에 불과할 터.

“……응?”

그런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진즉에 상대의 무릎을 관통했어야 할 볼트가 갑작스레 허공에 멈추더니, 이내 화살촉의 방향이 반대로 뒤집혔다.

그리고.

───콰지직!

인지를 넘어선 속도로 모론의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 * *

석재로 마감된 바닥에 단단히 박힌 석궁 화살.

털썩, 모론이 주저앉았다.

“어, 어…….”

꿀렁꿀렁 흘러나오는 피.

이루 말할 수 없는 작열감이 서서히 다가온다.

모론이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움켜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흐아아아아아악!!”

뒤늦게 터져 나온 비명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공기가 차갑다.

비단 겨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늘한 분위기가 전염병처럼 확산되었다.

잠시 후, 비명이 잦아들 때쯤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잭이라는 사내를 찾고 있다.”

그러자 인파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잭? 잭이 누구야?”

“글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내막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분명히 있었다.

개중 셋.

두 명은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베르덴의 통찰력을 감히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비교적 격한 반응을 보였고.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중앙.

차례로 시선을 던진 베르덴이 벽안을 빛냈다.

“그러니 협조해라.”

이름을 호명할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본인들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광오하군.”

처형자의 리더가 날카롭고 무거운 기세를 드러냈다.

“싫다면.”

“협조당하게 되겠지.”

과정만이 다를 뿐, 결과는 같다.

그 답변에 가볍게 웃던 처형자의 리더가 표정을 싹 지우며 검을 들었다.

“잡아라.”

타다닥.

두 명의 처형자가 돌진한다.

남자와 여자.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검을 들고는, 신체를 강화했다.

“…….”

아드리안이 앞으로 나섰다.

마검도 들지 않은 맨손으로, 상대의 수준을 가늠했다.

칼날에 맺힌 붉은 검기와 움직임 틀 자체는 서로 동일하다.

으레 있는 유서 깊은 기사단처럼 공통된 훈련을 거친 모양. 검을 몸 가까이 당긴 채, 중심에서 급소와 관절을 겨냥하고 있다.

‘대인전에 특화된 자들인가.’

정형화되었기에 다채롭지 않다.

오직 살인이라는 목적에 치중된 무게중심.

쉬익───!

검끝이 목을 노린다.

허리를 틀어 피해 내자, 복부를 향해 두 번째 칼날이 날아왔다.

상체의 정중앙.

어떻게 피해야 할지, 본능조차 망설이게 하는 정교함이다.

저들과 동급 혹은 하수라면 그대로 절명하겠지.

물론 아드리안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검 면에 손바닥이 맞닿는다.

가볍게 밀어내자 검격의 궤도가 비틀리며 허공을 갈랐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검기를…… 맨손으로?’

한순간의 동요.

그 탓에 반응이 늦었다.

쩌어어억!

팔꿈치가 처형자의 안면을 강타했다.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의 충격.

그녀와 손목을 교차시킨 아드리안이 검을 빼앗고는 반 바퀴 회전했다.

칼등을 앞세운 검격이 반월을 그리며, 등 뒤에 있던 다른 처형자의 손목을 강타했다.

“윽……?!”

처형자가 놓친 검을 아드리안이 낚아챘다.

고작 세 번의 교차.

아드리안에겐 쌍검이 생겼고, 두 처형자는 부상을 입은 채 물러났다.

실력의 격차가 완연하다.

주변에서 경악성이 들려왔으나, 아드리안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처형자의 대답은 확실히 들었다.

나머지 외로운 늑대와 박피꾼은…… 여전히 지켜보고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또한 하나의 답이었다.

대화는, 결렬이다.

“내가 왼쪽을 처리하겠다. 그러니 너는 오른쪽을 맡도록.”

베르덴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오브가 첨단에 박힌 스태프, 오리엔트를 손에 쥐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제외하고, 앞으로 나서는 놈들은 적당히 정리해라. 선을 넘으면 죽여도 좋다.”

공화국의 처형자와 박피꾼은 생포.

그 외에 간섭하는 현상금 사냥꾼 등의 생사여탈권은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예, 주군.”

분위기가 고조된다.

긴장된 침묵 속,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다름 아닌 베르덴이었다.

활성화된 마력회로.

오차 없이 진행되는 연산 과정.

<섬뢰>

푸른 빛줄기가 대각선을 관통하며 쇄도했다.

목표는 중앙 대륙에 온, 외로운 늑대라는 이명을 가진 남자, 로메르.

“아니, 갑자기 뭔……!”

그가 황급히 방패를 꺼내 들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반사 신경이 상당하다.

파지지지직!

주위로 확산하는 전광.

그대로 마법의 충격을 버텨 낸 녀석이 아래로 낙하했다.

정확히 인파 속으로.

<비행>을 시전한 베르덴이 곧장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처형자의 리더, ‘헬가르’가 즉각 소리쳤다.

“죽여도 좋으니, 놈들이 서던피트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처형자들이 움직인다.

공화국에 의해 고용된 현상금 사냥꾼이나 용병까지도.

수십억 엘크라는 액수는 목숨을 걸어 볼 만했기에.

‘어쩌면 운 좋게 날린 화살이 상대에게 맞을 수 있는 법이기도 하고.’

집단으로 인한 자신감이다.

벨디른 공화국을 등에 업은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당장은.

“그리고 나머지는───”

말을 잇던 헬가르가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카아앙!

묵직한 검격에 의해 뒤로 물러났다.

손아귀가 저리다.

억지로 충격을 지워 낸 헬가르가 송곳니를 보였다.

“네놈…….”

“한 번만 말하지.”

쌍검을 든 검사가 광장의 중심에 섰다.

“처형자, 박피꾼 그리고 나머지 전부.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딱히 너희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왼쪽으로 넘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아드리안이 경고했다.

* * *

한 호흡에 <육체증폭>으로 신체 능력을 높이고, 네 번째 호흡에 6위계 <인텐션>으로 부여 마법의 성능을 강화했다.

서던피트를 파괴할 계획은 없다.

의미 없는 학살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기에 광범위한 고위계 마법 사용을 배제했으나, 그러한 제약은 방해조차 되지 않았다.

“쏴, 쏴라!”

지붕 위, 집 안, 골목 사이에서 화살이 빗발친다.

공화국의 처형자들이 미리 고용한 용병들을 대기시켜 놓은 모양이다.

예상대로.

<염동력>

그대로 멈춘 화살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주 빠른 속도로.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죽은 사람은 없다.

죄다 팔과 다리와 같은 사지에, 움직일 수 없을 만큼의 상처가 생긴 게 전부였다.

다음은 근접전.

사방에서 놈들이 달려들었지만, 주위로 휘몰아친 작은 폭풍에 십수 초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숫자 이전에 실력의 문제였다.

‘눈속임은 여기까지인가.’

잔챙이가 떨어져 나간 순간 마법 반응이 느껴졌다.

동시에 숨어 있던 처형자 세 명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기로 신체를 강화하고, 부여 마법으로 방어력을 높였군.’

제법 전술적이다.

베르덴이 오리엔트로 가볍게 지면을 두들겼다.

<중압>

사방에 퍼져 있던 마력에 중력이 깃들었다.

그대로 노출된 처형자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일제히 바닥에 처박혔다.

“……?!”

“아아…… 악……!”

“끄…… 윽……!”

거대한 압력이 폐와 숨통을 짓누른다.

서서히 호흡이 멎는다.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거친 자라고 해도 의식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다.

끝내 손에 힘이 풀리며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위에서 처형자 한 명이 낙하했다.

아군을 발판으로,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잡았다.’

사각을 점거했다.

매직 아이템으로 기척을 지우고, 마법사의 능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간격까지 거리를 좁혔다.

휘두른 검에 확신을 품었다.

그게 결정적이었다.

후웅.

어이없게 검격이 빗나갔다.

예상 밖의 상황에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회피와 함께 몸을 회전시킨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어떻게…….”

처형자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콰아앙─── 콰앙───!

스태프에서 방출된 충격파가 옆구리를 강타했다.

멀리 나가떨어진 처형자는 건물 벽을 부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근방에 있던 몇몇 용병들이 주춤했다.

“처, 처형자가 저렇게 쉽게…….”

서로 눈치를 봤다.

이거 자칫하면 본전도 못 찾는다.

그를 깨달은 자들이 전의를 잃고 곧장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리가 한적해졌다.

머지않아 다른 추격자가 오긴 할 테지만.

“그나저나.”

베르덴이 앞에 있는 건물을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작정이지?”

몇 초간의 정적 뒤에, 창문에서 누군가가 기척을 드러내며 뛰어내렸다.

“하, 암흑가의 왕이라더니. 동대륙 출신치고는 제법 이름값을 하잖아? 경고도 없이 다짜고짜 마법도 날리고.”

세련된 검과 방패를 든 사내.

베르덴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얼굴로, 전체적으로 어두운 은빛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하고는…… 음, 외모 차이가 많이 나네. 엄청 흉악할 줄 알았는데, 나하고 비슷한 얼굴일 줄이야. 좀 많이 깨는걸?”

“네가 로메르군.”

“오, 설마 동대륙까지 내 이름이 퍼졌을 줄은 몰랐는데. 맞아, 내가 로메르다. 이명은 외로운 늑대.”

코끝을 문지른 로메르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네가 찾고 있는 잭을 데리고 있는 장본인이지. 현상금 받으려고 내가 먼저 잡았거든.”

잭을 잡았다?

“그걸 알려 주는 이유는?”

“그래야 조금은 공평하니까.”

로메르의 눈빛에 생기가 깃들었다.

“듣자 하니 널 ‘죽이면’ 암흑가의 왕이 된다면서? 로아프라란 지하 도시가 손에 들어오고. 거기에 관심이 생겼거든, 꽤 많이. 하지만 난 사람 죽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그래서.”

“그러니까 일종의 내기라고나 할까. 네가 이기면 잭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게. 진짜로. 반대로 내가 이기면 네 자리하고 이명을 갖는 거고. 어때?”

느닷없는 제안이다.

속임수인가 싶었지만…… 로메르의 태도는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 일대일로 맞붙자고 하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서로 대립하던 두 귀족의 여식들을 동시에 건드리는 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그와 별개로 나쁘진 않다.’

어차피 제압할 상대였기에 밑져야 본전이다.

혹여 잭의 위치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게 되는 셈이고.

저 치기 어린 제안에 어울린다.

베르덴은 보다 목적에 집중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하! 보기보다 호쾌한데? 좋아, 그럼 한번 붙어 보자고. 중앙 대륙과 동대륙, 어디가 더 강한지 말이야.”

텅! 텅!

로메르가 검으로 방패를 두들겼다.

마치 대륙의 대표라도 된 듯한 모양새다.

‘미친놈이군.’

로메르를 그렇게 기억하며 앞으로 발을 디뎠다.

간단히 처리하고 끝낸다.

판단을 내린 베르덴이 <비행>으로 쇄도하며 오리엔트를 당겼다.

“마법사가 근접전 벌이는 건 신기하긴 한데! 그건 나한테 안 통해!”

로메르는 방패술의 달인.

방패의 성능을 제외하고 기교만으로도 대부분의 충격은 손쉽게 흘려 넘길 수 있다.

여태껏 그의 방패를 넘은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윽고 마력이 집중된 오리엔트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로메르가 무릎과 상체를 굽혔다.

비스듬하게 방패를 세우고는 다음 수에 대비했다.

그리고 충돌.

콰아아아아아앙!

굉음이 서던피트 한복판에 울렸다.

막대한 충격파가 거리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로메르가 딛고 있던 가도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일부가 움푹 내려앉았다.

“어.”

육체가 비명을 지른다.

로메르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뭐야, 이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