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폭군 (2)
사람은 모이면 모일수록 그림자가 생긴다.
그것은 도시나 국가 단위가 되면 저들만의 법칙이 있는, 암흑가와 같은 명칭으로 불린다.
도덕과 윤리보다 힘과 돈을 중시하는 뒷세계.
온갖 살벌하고 악랄한 자들이 득실거리긴 하나 당연하게도 한계는 있다.
모여 봤자 결국 일개 조직에 불과하다.
나라에서 군대를 동원한다면, 가늠할 필요도 없이 마법 폭격, 비행정, 고도의 전술에 의해 당장 궤멸이다.
하나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이득보다 손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벌레를 잡자고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로아프라는 특별했다.
폐쇄된 지하 도시를 기반으로 삼아 비대해진 거대 암흑가의 영향력은 국가에게 양립을 강요할 정도.
그렇기에 동대륙의 음지에서는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로아프라의 지배 세력인 빈테르트가 왕국에 그치지 않고, 타국의 암흑가까지 손을 뻗는다면 집어삼켜질 테니까…….
피와 폭력은 필연적으로 뒤따를 터.
“암흑가의 왕,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겁에 질린 게르본이 용기 있게 질문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훤하다.
혹여 서던피트마저 로아프라 꼴이 될까 봐 우려스러운 거겠지.
‘원래는 왕국에 눌러앉을 생각은 없었기에 필요 없는 권좌였는데.’
정확히는 있으나 마나 했다.
그래서 로베르트의 억지를 굳이 거절하지 않고 여전히 로아프라의 정점으로 남아 있있던 거고.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가치 있다.
이래서 세간에서 명성이 중요하다는 건가.
‘아니, 악명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뭐라 하든 간에 상관은 없겠지.
중요한 건 게르본의 반응이다.
더군다나 분쟁이 싫다고 하니…… 어떻게 이 패를 써야 할지 직감이 왔다.
베르덴이 턱짓했다.
어느새 차를 다 마신 아드리안이 답을 대신했다.
“그럼 용건을 말하지. 우리는 최고 의원을 살해한 자를 찾고 있다.”
“최고 의원이라면…….”
“서던피트에서 한자리 꿰차고 있다면 알고 있을 텐데. 특별 회담장에서 발생한 테러에서 중상을 입은 최고 의원 중 하나가, 최근 자신의 호위에게 참살당했다는 걸.”
물론 게르본은 알고 있었다.
그 사건, 정확히는 그 범인 때문에 최근 서던피트는 하루가 다르게 술렁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로아프라에서 왜 그자를 찾는 거지?’
국가에서 직접 요청을 받은 건…… 분명 아닐 터다.
그랬다면 여기 앉아 있을 게 아니라, 공화국의 처형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을 테니.
그럼 무엇일까.
모르는 내막이 숨겨져 있나?
그게 아니면 의원 살해자가 애셔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건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봤지만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상대의 목적을 전혀 모르겠다.
하나 회피나 침묵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가늠할 때가 아니다.
그런 게 통할 존재가 아닐뿐더러, 게르본은 자신의 거리가 파괴되는 걸 추호도 바라지 않았기에.
본능에 가까운 판단 끝에, 그는 사건과 관련하여 알고 있는 모든 걸 실토했다.
“먼저, 호위의 이름은 ‘잭’이라고 하오. 전신에 흉터가 가득한, 중검을 다루는 자로 서던피트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마 지금쯤 잡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소.”
“누구에게?”
“워낙 쫓고 있는 자들이 많아서 특정하기가 어렵소. 이 거리는 제 밥그릇 챙기는 자들이 많아, 정보를 선뜻 공유하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도 크게 분류하자면 총 세 개의 세력으로 나뉘오.”
게르본이 말을 이었다.
“대표적인 건 최고 의원들의 직속 부대요.”
공화국의 처형자.
오직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들로, 그들의 표적이 되면 대부분 죽는다고 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호시탐탐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돈 귀신들이고.”
서던피트의 현상금 사냥꾼.
돈이라면 부모나 아내, 자식까지 가져다 팔 만큼 이기적인, 상종하지 않는 편이 이로운 놈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중앙 대륙에서 온 두 손님이오. 듣기로는 각각 ‘박피꾼’과 ‘외로운 늑대’로 불린다고 하던데, 내가 중앙 대륙에 대해서는 잘 모르긴 해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모양이오.”
“박피꾼 그리고 외로운 늑대라면…….”
아드리안이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베르덴이 물었다.
“아는 이름인가?”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먼저 박피꾼, 도노반.
인간과 수인족의 분쟁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베테랑 용병이다.
“놈은 자신이 잡거나 죽인 수인족의 가죽을 벗겨 장식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구입하는 애호가층도 있다더군요.”
“악취미군.”
겉모습은 다르다고 해도, 수인족은 여러 면에서 인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피부를 벗겨 팔다니.
어지간히 인간성이 결여되지 않고서는 벌일 수 없는 패악이다.
“그럼 외로운 늑대라는 자는?”
“이름은 로메르. 제가 활동할 당시 시끄럽게 들려오던 신인이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족 간의 결투에 고용된, 검과 방패를 다루는 전사.
노련한 기사를 손쉽게 제압하는 것으로 두각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 아니었다.
“결투에서 승리한 귀족과 패배한 귀족, 둘의 여식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우, 저런.”
게르본이 질겁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그가 흠칫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간단히 사과를 받은 아드리안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강제가 아닌 합의이긴 했지만, 당연히 귀족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대립하고 있던 두 귀족이 서로 힘을 합쳐서 추적대를 보냈지만, 놈은 가뿐히 포위방을 벗어나 멀쩡히 달아났다고 하더군요.”
“정신이 나갔군.”
“그래도 이 정도는 준수한 편입니다. 뭐, 박피꾼은 예외입니다만.”
중앙 대륙은 대체 어떤 곳일까.
하기야 가장 큰 대륙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할 테지만.
뭐, 아무튼.
‘저 세력 중 하나가 잭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가.’
단서는 좀 더 명확해졌다.
대신 그만큼 길이 세분화되었다.
어디가 목적지로 향하는 경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놈들을 한곳으로 유인하면 간단해지겠군.”
“하, 한곳에 말이오? 대체 어떻게…….”
미끼는 있다.
잭을 쫓는 자들의 공통점은 고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있다는 것.
“이 자리에 있는 현상금만 합쳐도 총 60억 엘크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이목은 쏠리겠지.”
놈들이 지레 겁먹고 숨을 일은 없다.
구경이든 뭐든 찾아오겠지.
더군다나 여기엔 주검의 영광까지 관여하고 있으니.
“그러니, 게르본. 네 협조가 필요하다.”
“……!”
“생각대로만 된다면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이 거리만큼은 멀쩡할 거다. 그리고 그게 네가 원하는 거겠지.”
꿀꺽.
게르본이 침을 삼켰다.
“대답은?”
뒷목이 서늘하다.
협박처럼 들려오는 물음에,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할디른이 찾아낸 주검의 영광이 위치한 거점.
그를 토벌하기 위한 전력이 쿼레일을 벗어났다.
쿠구구구구……!
대형과 중형이 섞인, 십수 대가 넘는 마차가 일렬로 가도를 질주한다.
겉으로 보면 규모가 큰 상단의 행렬로 보였으나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대주교와 두 명의 팔라딘.
그리고 성직자들과 무려 세 개의 성기사단으로 이루어진 루아스교의 전력.
밤낮 구분 없이 빠듯하게 이동한 그들이 숲속에 있는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쿠웅───쿵.
매직 아이템과 기적으로 형성된 은폐 및 보호막.
그 안에서 천막을 펼치는 등 일사불란하게 임시 주둔 기지를 완성했다.
필요한 물자는, 마차가 아닌 공간가방에 가득히 챙겨 넣은 터라 차고도 넘쳤다.
팔라딘, 셰인.
그리고 두 명의 성기사단장이 각각 이끄는 세 개의 정찰대가 임무를 마치는 순간, 급습은 시작된다.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 예상 기한은 며칠 이내.
그동안 또 하나의 계획이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저도 이만 출발하도록 할게요.”
채비를 갖춘 레이라가 입구에 섰다.
그녀가 맡은 임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놈들의 거점을 수색하는 것.
혼자 움직이는 것이 가장 익숙하기에 동행은 거절했다.
“조심히 돌아오세요, 레이라 님……!”
레나 주교가 기도를 올리며 무운을 빌었다.
본래라면 그녀는 쿼레일에 있어야 했으나 자발적으로 거점 토벌에 참가했다.
상위 주교로서.
“그대의 실력은 알고 있으니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옆에 있던 조제프 대주교가 턱을 당겼다.
“가능한 ‘그 힘’에 의존하는 건 피하십시오. 아무리 내성이 있다고는 하나, 남용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위급 시에는 주저하지 말고 신호를 보내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주교님.”
고개를 끄덕인 레이라가 등을 돌렸다.
발끝에 힘을 준 그녀가 매직 아이템 [유구한 행로]를 기동했다.
하루에 한 번씩.
최대 24시간 동안 지속적인 육체 피로를 감소시키는 희귀품.
도중에 충격을 받으면 효과가 중단되지만, 장거리 이동 시에는 탁월한 마법 장비다.
가볍게 발을 내디딘 레이라가 숲속을 주파했다.
어느새 고위 모험가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레나 주교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레이라 님……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외면도, 내면도 훌륭한 사람이니.”
조제프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그러니 저희는, 저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열심히 임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 네! 대주교님!”
레나 주교가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 * *
서던피트의 하루는 복잡하다.
범죄와 일상이 하나가 된 거리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오늘은 사뭇 달랐다.
단 하룻밤 사이에 어떤 소식이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서던피트에 왔다.
심지어 날이 밝으면서, 서던피트의 중심부 광장 부근에 있다는, 명확한 위치까지 알려진 상태.
그 파장은 막대했다.
“이, 이거 휘말렸다간…… 어서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오늘 장사가───”
“지금 장사가 대수야?! 푼돈 때문에 목숨 버릴 거야? 닥치고 둘 다 따라와!”
평범한 사람들은 간단히 짐을 챙기고 외곽으로 벗어났다.
로아프라가 뭔지는 잘 몰라도, 수십억 엘크나 되는 현상 수배범은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한편으로 암흑가의 왕, 애셔에 대해 알고 있던 자들은 경악해 마지않았다.
“로아프라에서 대체 여기에 왜 온 거지……? 설마 서던피트를 먹으러 온 거 아니야?!”
“글쎄, 고작 둘이 온 걸 보면 아닌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이었다면 더 숫자를 채워 오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둘이 온 게 맞긴 해? 중심부에 있는 건 또 맞냐고? 아니, 대체 누가 이런 소문을 퍼뜨린 거야?”
제각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유를 떠올려 봤으나 무용했다.
일부는 소문의 진의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이 역시 수확은 없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가 볼까?”
그렇게 적지 않은 인파가 몰렸다.
그저 소문으로만 듣던 새로운 암흑가의 왕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기 위해서.
대체 무엇을 위해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기 위해서 등 이유는 여러 가지.
해가 중천에 떴다.
그들은 끼니조차 거르고 서둘러 중심부로 향하는 시가지를 내달렸다.
어느새 수백의 단위를 넘은 사람들이, 큰 건물이 있는 작은 광장을 에워쌌다.
그 중심에 두 사람이 있었다.
백금의 전신 로브를 착용한, 잿빛 머리의 사내.
그리고 짙은 푸른색을 띤 로브를 두른, 얼굴 하관에 흑색에 가까운 금속 마스크를 쓴 남자가 있었다.
전자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건물 벽에 기대고 있다.
후자는 팔짱을 낀 상태로, 사내의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지붕 뒤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작게 말했다.
“저 사람, 아니 저분이 그 애셔인가……?”
얼핏 들었던 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묻지 못했다.
그러던 그때, 한 무리가 인파를 뚫고 광장에 나타났다.
갑옷의 견갑에 공화국의 상징이 새겨진, 남녀로 이루어져 섬뜩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는 최고 의원의 직속 부대.
“고, 공화국의 처형자들이다……!!”
“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처형자의 리더로 보이는 험악한 사내가 시선을 번뜩였다.
그 끝이 목표물을 가리켰다.
“네놈이 애셔인가?”
목소리에 적의가 가득하다.
광장 전체를 휩쓴 정적 속에서 베르덴이 눈을 떴다.
벽안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광장에 있는 공화국의 처형자와 서던피트의 현상금 사냥꾼.
그리고…… 근방에서 이곳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까지.
“전부 다 왔군.”
다음은 아직 미지수다.
전부 박살 날지, 곱게 끝날지.
이후의 상황은 저들의 대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