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8화 (338/366)

338화 공조 (2)

보헤미른 마탑.

무력 서열 2위, 종합 서열 4위.

다크 워튼 마탑.

무력 서열 3위. 종합 서열 3위.

겉으로 드러난 전력은 밀린다고 여겨지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발로크가 이끄는 마탑을 앞선다고 평가된다.

세계가 바라보는 마탑들의 순위.

다크 워튼은 10개의 마탑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실상부한 최상위 마탑 중 하나다.

그런 다크 워튼이 다른 마탑과 차별점을 두고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칭호.’

머나먼 과거 세상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흑마법사들을 규합하여 다크 워튼을 세운 초대 마탑주, 네크로맨서.

그 위대한 이명을 후대의 마탑주들이 계승하여, 오랜 세월에도 잊히기는커녕 시대를 관통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후계자다.’

초대를 포함하여, 역대 다크 워튼의 마탑주들은 단 한 명의 제자만을 정하여 유지해 왔다.

도중에 더 나은 재목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 선택을 결코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

‘제자, 즉 마탑의 후계자가 교체되는 경우는 다크 워튼의 절대적인 규율을 위반하거나 사망하는 것뿐.’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다크 워튼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 길이 없었으니까.

단지 보헤미른 마탑에 있었을 시절, 마법계에 돌고 도는 여러 가설을 들어 본 것이 전부였다.

분명… 마탑주란 자리를 더욱 무겁게 여기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다크 워튼에서 직접 대답한 적이 없으니 그조차 분명하지 않다.

뭐, 아무튼.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마탑.

그 특수성 덕분에 내부 결속력과 지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위 흑마도사, 할디른 데이라스.

그는 현 시대의 네크로맨서인 라인델 넥스레온의 제자이자, 그 다음가는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어째서 조제프 대주교가 신뢰하고, 주검의 영광에 대한 중요한 일을 맡겼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

차후 세상에 군림할 지배자.

어쩌면 초월의 경지를 이룩할지도 모르는 존재.

흥미가 생긴다.

베르덴이 할디른과 마주하며 물었다.

“다크 워튼의 2인자가 직접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문제는 없는 건가?”

“안전한 곳에 머무르며 체신을 지키는 건 약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기에, 호위도 데리고 다니지 않는 편이고.”

칠흑의 로브 안쪽.

마법 물품 혹은 아티팩트의 효과인지, 얼굴은 인식되지 않고 시꺼먼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애셔, 너는 벨디른 공화국에 무슨 볼일이지?”

“주검의 영광 때문이다.”

“이유는.”

“내 앞길에 방해가 돼서. 반대로 묻지. 다크 워튼에서 직접 개입한 목적이 뭐지?”

“놈들은 다크 워튼이 정한 흑마법사의 규율을 위반했다. 또한 시대를 역행하는 사악한 마법사들은 토벌해야 마땅하니.”

담담한 대화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사이를 오갔다.

한 명은 에스티리아 왕국의 명예 백작, 암흑가 로아프라의 지배자.

다른 한 명은 초월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후계자, 최상위 마탑의 차기 주인.

명확한 차이가 있기는 하나, 베르덴과 할디른은 신분 같은 건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각자의 기준과 방식으로 상대를 가늠하고 있을 뿐.

적대감이나 호위 따위의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말들임에도 묘한 긴장감이 인다.

아드리안은 주군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겠다며 팔짱을 낀 채 침묵했다.

팔라딘, 레일버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이냐는 듯 베르덴을 흘겨봤다.

조제프 대주교는 흥미로워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레이라가 마차 내부를 둘러봤다.

본인을 제외한 다섯 명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압도적인 마력을 가진 마도사, 애셔.

그와 동행하고 있는, 로브와 금속 마스크로 외모를 감추고 있는 검사.

팔라딘.

7인의 대주교.

다크 워튼 마탑주의 유일한 제자.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존재들이다.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도 고위 모험가인데…….’

모험가 길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미스릴 등급.

수많은 모험가들이 우러러보고 일생의 목표로 삼는 위치지만, 이 안에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이윽고 루아스교의 거점이자 쿼레일의 최심부에 위치한 성채에 진입했다.

* * *

비행정을 이용했다고 해도, 거리상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여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국가를 넘나드는 것에 심적으로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르나 당연하게도 이들은 아니었다.

언제나 전력을 내보일 수 있는 평소의 상태.

따로 휴식을 취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여행하러 온 것도 아니고.

아주 다급하게 움직일 생각은 아니었으나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다.

성채의 꼭대기.

본래 공화국의 의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에 당사자들이 모였다.

회의의 시작을 알린 건 조제프 대주교였다.

“그럼 카일리언스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할디른에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흑마법에 당한 시장들.

수로를 통해 운반된 아인종과 인간의 사체.

아인종의 비정상적인 번식을 일으킨 [생명의 기둥].

서드밀에서 만난, 주검의 영광을 이끄는 간부 격의 인물과 나눈 대화까지.

일련의 상황을 전해 듣던 할디른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군. 그래서 그런 거였나…….”

무언가 앞뒤가 맞아떨어졌다는 반응이다.

이내 조제프의 설명이 끝나고, 할디른의 순서가 찾아왔다.

어쩌면 놈들을 추적할 수 있는 핵심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정보.

모두가 신경을 기울이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먼저 나는, 인적이 닿지 않은 지역을 샅샅이 확인한 결과, 놈들의 거점 중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검의 영광에 속한 흑마법사로 위장해 잠입했지.”

자칫 위험할 수 있지만 그만한 실력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던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거기서 현재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최고 의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명은 주검의 영광과 손을 잡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에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정도 예측한 부분이었으니까.

놀라운 소식은 이다음이었다.

“그리고 중상을 입었던 한 명은 저주를 시도하던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그것도 살해당해서.”

“……살해?”

“그 최고 의원의 호위대에 속한 누군가에 의해서라고 들었다. 이름은 듣지 못했으나 판금 갑옷과 거대한 양손검을 다루는 자라고 하더군.”

중갑을 두른 검사.

베르덴은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으나, 그 전에 할디른이 말을 이었다.

“호위는 주검의 영광에게 붙은 최고 의원에 의해 비밀리에 수배가 되어 추적당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너희와도 관계가 깊기도 하지.”

할디른이 품속에서 세 개의 수배서를 꺼내 보였다.

카일리언스에서 봤던 것과 흡사한 내용이나 세부적인 사항이 더해져 있었다.

[애셔 백작 - 현상금 40억 엘크]

[백작의 호위 기사 - 현상금 20억 엘크]

[핏빛검, 레이라 - 현상금 30억 엘크]

베르덴의 이름, 아드리안의 수배서 그리고 현상금이 추가되었다. 일개 개인에게 붙었다고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왜 내 현상금이 제일 낮은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아드리안과 레이라의 서로 다른 불만을 뒤로한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명목은 카일리언스에서 온 공문이고, 실상은 우리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아내기 위함인가.’

아마 이것에 큰 의미는 없을 거다.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단순히 성가시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이겠지만.

“마지막으로 놈들은 정신에 간섭하는 흑마법진을 이용해 다수의 아인종을 다루고 있다.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몇몇 개체의 강함은 유의미한 전력으로 판단된다.”

“시체를 이용한 아인종 및 인간형 언데드는 없었습니까?”

“내가 확인했던 거점에는 없었다.”

아직 카일리언스로부터 들어온 사체들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다.

할디른의 보고는 여기까지.

이제 정보를 조합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때다.

그렇게 회의는 조금 더 이어졌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긴밀히 대화를 나눈 결과, 총 세 가지 계획이 수립되었다.

‘첫째, 주검의 영광이 쫓고 있는 호위를 찾아낸다.’

잘한다면 놈들과 함께하는 최고 의원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거점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둘째, 카일리언스에서 온 선박들을 추적한다.’

주검의 영광은 고위 흑마법을 다룬다.

무려 수개월에 걸쳐 쌓인 사체들로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으나 위험하다는 건 분명하다.

사전에 막는 것이 급선무다.

‘셋째, 공화국 어딘가에 있는 다른 거점의 위치를 색출한다.’

뭐가 됐든 간에 주검의 영광을 뿌리 뽑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터.

전면전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럼 이제 누가 무엇을 할지 정할 차례군.”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된다.

각자에게 적합한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할당해야 한다.

가장 먼저 결정을 내린 건 할디른이었다.

“나는 두 번째를 택하겠다. 그만한 사체들을 운반했다면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확실히 그대라면 적임이겠지요.”

그는 흑마법의 달인.

다크 워튼 마탑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두 개.

“괜찮다면 세 번째는 저 혼자 맡아도 될까요?”

레이라가 작게 손을 들었다.

그녀가 내린 선택에 답한 건 할디른이었다.

“흑마법은 차치하더라도 놈들이 다루고 있는 아인종은 얕잡아 볼 게 아니다. 감당할 수 있겠나?”

“제 본업은 모험가예요.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아인종을 토벌해 왔죠. 당신들이 저보다 대단한 건 알고 있지만…….”

레이라가 단호히 말했다.

“저도 숨겨 둔 전력은 있어요. 목숨 하나는 건질 수 있는.”

허세가 아닌 분명한 확신.

그 모습에 제각기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라를 존중했다.

조제프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으나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럼 첫 번째는 우리 차지로군.”

자연스레 쫓기고 있는 호위를 찾아내는 건 베르덴과 아드리안의 몫이 되었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큰 난항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애셔. 주검의 영광만이 아닌 공화국이 고용한 자들까지 상대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현상금을 노리는 자들이 쫓아올 수도 있다.

벨디른 공화국은 중앙 대륙과 마법진으로 이어진 장소.

지금은 가동이 중지되었다고 해도, 그 전에 입국한 강자들이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없다.

어쩌면 큰 전투가 벌어질 수도…… 그러한 조제프의 우려에 베르덴이 답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기왕 맞닥뜨리게 될 거라면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편하니.”

“저도 주군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역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각 계획을 진행할 사람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조제프와 루아스교는 무엇을 하느냐.

“그동안 저희는 할디른이 발견한 거점 일대를 대대적으로 급습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토벌을 겸한, 주검의 영광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국지전이었다.

할디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각자 할 일이 정해졌으니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채비를 갖출 시간이다.

가볍게 금발을 어깨 뒤로 넘긴 레이라가 회의장을 나서려던 도중, 옆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베르덴이었다.

“애셔?”

“레이라, 하나 부탁할 게 있습니다.”

느닷없이 부탁이라고?

레이라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흑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아인종을 발견한다면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아인종을요? 산 채로요?”

“가능하다면.”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녀가 의심하는 일은 없었다.

겉으로는 이렇다 할 접점이 그리 없어 보여도, 이면에서는 같은 방주 소속이기에.

“알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확보해 보도록 할게요.”

레이라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쿼레일을 떠났다.

루아스교, 마탑, 모험가 그리고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합세한 공조가 시작되었다.

* * *

주검의 영광.

그를 이끄는 ‘하인’들 중 네 번째에 위치한, 시체와 같은 사내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아스교.’

조제프 대주교는 서드밀에 준비한 선박을 타지 않았다.

이는 예상한 바였다.

‘아마도…… 비행정을 이용해서 공화국에 들어왔을 테지.’

이동 수단을 특정하는 건 간단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현 위치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루아스교, 애셔, 다크 워튼, 모험가. 너희들이 어떤 길을 가려 하든 상관없다.

네 번째 하인이 웃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검은색 눈동자가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크르르…….]

거기에는 일곱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아인종이 있었다.

본래 자연적으로 카일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야 했을 강대한 괴물.

무려 7위계 상위에 위치한 흑마법이 새겨져 있는, 고대의 스크롤까지 사용하여 겨우 데려오는 데 성공한 특수한 개체.

그뿐만이 아니다.

산 자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대지에는 ‘초월적인 존재’가 잠들어 있다.

도중에 퍼즐의 판이 틀어져도 괜찮다.

이전에 있던 모든 조각을 그 바탕에 맞추어 바꾸면 될 테니.

결국 퍼즐은 맞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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