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7화 (337/366)

337화 공조 (1)

본래의 예정과는 상황이 달라지긴 했으나, 아무튼 베르덴 일행은 벨디른 공화국에 도착했다.

물론 밀입국이긴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임의로 국경을 넘은 비행정의 소유자는 조제프 대주교니.

루아스교는 전 대륙을 아우르는 세계 종교.

국가가 취급하는 법률 따위보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빛의 교리가 최우선이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법률을 어긴다고 한들 누구도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법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이 만든 규율 또한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니.

뭐, 아무튼.

“달리 정해 둔 거점은 있는 겁니까, 대주교님?”

주검의 영광은 흑마법사로 이루어진 강력한 집단.

카일리언스 때와 마찬가지로, 저주와 흑마법진 등으로 사람을 뜻대로 다루며 이용하고 있다.

아무리 루아스교라고 해도 정보전을 벌이거나 개개인으로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하다.

그렇기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중요한 장소를 차지하고 놈들에게 대적하는 것이 합리적일 터.

베르덴의 물음에, 조제프 대주교는 흔쾌히 대답했다.

“저희는 현재 공화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쿼레일(Quorail)을 주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를 말인가요?”

곁에 있던 레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대도시인 만큼 나름의 이점은 있겠지만 너무 넓어서 오히려 불리하지 않나요? 예의 흑마법사들이 인파 속에 숨으면 색출하기가 어려울 텐데.”

“타당한 지적입니다. 물론 그 또한 고려하여 결정한 거점입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러스트러스가 안전히 착륙할 수 있는, 도시 내에 설치된 비행정 전용 정박장을 꼽을 수 있겠군요.”

그리고.

“최고 의원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마침 공화국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으니,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공유하도록 하지요.”

서드밀 부근에서 출발한 이후로 비행정이 착륙한 적이 없는데 새로운 정보라니.

‘역시 원거리에서 통신이 가능한 수단을 갖고 있었군.’

러스트러스와 마찬가지로 대주교가 가진 특권 중 하나인가.

제약이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조제프가 말했다.

“루아스 교국에서 주검의 영광을 추적한 결과, 카일리언스과 벨디른 공화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고위 흑마법을 다루는 특성상 권력자를 노릴 거라고 예상했기에.

“안타깝게도 카일리언스는 이미 늦은 상태였으나, 당시의 공화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최고 의원 하나를 협력자로 삼아, 그들의 움직임에 대비했지요.”

다만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는 건 무리였다.

최고 의원만 다섯 명이고, 그 아래에 있는 의원들까지 합치면 수십 명이니.

그렇다고 해서 성기사의 숫자를 쪼갤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되레 당해 버리고 말 테니까. 안전과 경계를 겸한 대처였다.

“그래도 흑마법의 기운이 있는지는 종종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알다시피 얼마 전 최고 의원 중 하나가 살해당했지요. 원인은 특별 회담장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폭발 때문이라더군요.”

사고사로 치부되지는 않았다.

근거는 두 가지.

하나는 건물 내에서 폭발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는 것, 다른 하나는 최고 의원의 시신 상태였다.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지고, 겨우 인식이 가능한 머리와 하반신만이 현장에 나뒹굴고 있었기에.

그러니까 폭발 자체가 최고 의원의 옷 안이나 몸속에서 발생했다는 이야기였다.

베르덴이 물었다.

“다른 최고 의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망한 최고 의원 근처에 있던 한 명이 충격파와 뼛조각에 의해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경미한 부상에 그쳤습니다.”

최고 의원만이 입장 가능한 특별 회담장은 말 그대로 엉망이 되었다.

“그 혼란을 틈타 호위대로 위장하고 있던 성기사들이 난입. 그리고 주검의 영광에 속한 흑마법사들과 맞닥뜨렸고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물론 무리하지는 않았다.

눈앞의 적을 토벌하는 것보다는 최고 의원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 결과 루아스교의 협력자를 포함한 두 명의 최고 의원을 구출했습니다.”

“그럼 남은 둘은…….”

“중상을 입은 한 명을 포함한 두 명은 각자의 호위대가 데리고 갔다더군요.”

조제프가 미간을 좁혔다.

“그 후 두 최고 의원은 자신들의 몸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주검의 영광에게 당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겠으나 베르덴은 다르게 보았다.

‘최고 의원이 주검의 영광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저주에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루아스교의 편일 거라는 건 편향된 생각이다.

아무리 인간을 위하는 종교라고 해도, 그게 모든 인간이 여신을 숭배할 이유가 되지는 못하니까.

욕망과 가치관은 개인마다 다르다.

저마다의 합리(合理)는 천차만별, 그렇기에 비합리적이다.

“공화국의 현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대주교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정보로는 과감하게 움직일 수는 없으니…… 하나 곧 결정될 겁니다.”

조제프가 미소를 지었다.

“주검의 영광을 추적한 저희 측 ‘조력자’가 유력한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오고 있을 테니까요.”

‘저번에 말한 그자인가.’

단순히 돕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나 중요한 임무를, 팔라딘이나 다른 고위 전력 대신 외부인에게 맡길 줄이야.

범상치 않은 존재인 건 분명해 보인다. 뭐가 됐든 도착하고 나면 알게 되리라.

러스트러스가 상공을 질주한다.

협력자인 최고 의원이 거주하는 대도시, 쿼레일을 향해서.

* * *

벨디른 공화국 어딘가.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깊은 산속에서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목표는 단 한 명의 사내.

그를 쫓던 추격자 하나가 팔을 앞으로 내뻗으며 흑마법을 연산했다.

<비명 화살>

일렁이는 어둠이 나무에 착탄한다.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흔들리는 끔찍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숲 위에 쌓여 있던, 얼어붙은 눈이 우수수 떨어지며 형성된 눈 폭풍이 정확히 목표물을 덮쳤다.

<크랙>

퍼어어엉!

폭발하는 얼음.

산산이 흩어진 작은 결정체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지만 문제는 없다.

상대의 발이 잠시나마 묶였을 테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움직임을 멈춘 추적자들이 전면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퍼부었다.

콰아아앙! 콰앙! 우지끈───

흑마법과 원소로 이루어진 마법 폭격.

충격을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땅에 몸을 누였고, 지면 곳곳이 움푹 파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초토화된 일대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 순간,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지간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군, 주검의 영광.”

“……!”

사방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다.

생기나 마력으로 감지해 봐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주박의 사슬>

그때, 바닥에 깔려 있는 어둠 속에서 기괴한 사슬이 솟구쳤다.

“커억?!”

촤르르르륵!

단숨에 추적자의 가슴을 꿰뚫은 그것이 되감기며 먹잇감을 그림자 속으로 집어삼켰다.

피가 번지며 땅이 물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 다시 말해 저건 마도의 일부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무턱대고 정면으로 맞서는 건 불리하다.

어차피 이들의 목표는 후속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추적자의 리더를 맡은 흑마법사가 가볍게 턱짓했다.

지시를 이해한 모두가 곧장 하늘로 솟구치자 무언가가 하늘을 막았다.

“……!”

느닷없이 나타난 붉은 안개가 급속도로 낙하한다. 막아 낼 방도도 강구하지 못한 채 그대로 노출되었다.

호흡기를 타고 들어가는 저주.

어떠한 아픔도 없었으나 추적자들의 피부에 핏줄이 돋았다.

직후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단검으로 한 명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칼날을 비틀었다.

<학살의 연쇄>

누군가의 죽음이 사방으로 퍼진다.

같은 저주에 걸려 있던 추적자들의 목에, 단검으로 찔린 듯한 상처가 생겨나며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에 가까스로 저항한 건 오직 추적대를 이끌던 흑마법사 하나뿐.

하나 그 또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느샌가 다가온 사내가 흑마법사의 목을 낚아챘다.

단순한 힘이 아닌, 영혼을 붙잡힌 듯한 감각. 금속 건틀릿의 날카로운 손끝이 파고들며 피부를 찢었다.

“끄으으으윽……!!!”

“저주에 대한 저항력은 그럭저럭 괜찮군. 그런데 마도조차 이루지 못한 네놈들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압도적인 흑마법의 격차.

사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흑마법사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딴 건 상관없었다.

“루아스교와 타협한…… 변절자들 따위가……!”

변절자 혹은 배신자.

주검의 영광은, 사내가 속한 집단을 그렇게 부른다.

“당시를 산 것도 아니고, 단순히 고대의 사상을 그대로 주입받은 게 전부인 네놈들이 변절자 운운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군.”

사내가 마도를 개방했다.

“그냥 죽어라.”

생명이 별개의 힘으로 치환된다.

순식간에 피가 증발한다.

뼈에 달라붙은 피부가 이내 회색빛으로 변했다.

종국에는 육체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흑마법사가 남긴 옷가지와 지팡이가 아래로 떨어졌다.

“…….”

사내가 강탈한 생명력을 손 위에 집중시켰다.

마도로 인해 마력과 뒤섞인 그것이 칠흑 같은 어둠을 띠었다.

직후 고개를 뒤로 향했다.

추적대의 흔적을 뒤따라 온 후속대가 살기 어린 눈빛을 빛냈다.

비단 흑마법사들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르…….]

다섯 개의 뿔을 가진 거체의 아인종이 세 마리.

흑마법진이 이마 위에 새겨진 괴물들이 이빨과 손톱을 빛내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성가신 걸 데려왔군.”

혀를 찬 사내가 손목을 살폈다.

어두운 색의 장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십자가가 달려 있는 팔찌가 황금빛으로 명멸하고 있었다.

‘조제프 대주교.’

그가 공화국에 왔다는 의미다.

이전보다 빛이 강해지고 있는 걸 보아, 쿼레일로 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마침 놈들에게 쓸 만한 정보를 입수한 참인데.

“루아스교와 협력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쯧,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군.”

사내가 의식을 집중했다.

아인종까지 데려왔으니 추적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터.

그러니 여기서 전멸시킨다.

사내가 움직인다.

동시에 후속대가 달려들었다.

숲속에서 충격과 굉음 그리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쿼레일에 도착한 러스트러스가 무사히 착륙했다.

기다리고 있던 교인들에 의해 안내를 받으며, 준비된 마차를 타고 공화국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아드리안이 바깥을 구경했다.

“카일리언스 이상으로, 중앙 대륙에서 봤던 도시의 풍경과 거의 흡사하군요.”

현 동대륙 중심부는 총 네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다.

신생 국가, 리비안트 공국.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리고 있는 에스티리아 왕국.

일곱 개의 도시 국가로 구성된, 도시 연합 카일리언스.

마지막으로 벨디른 공화국까지.

그중 벨디른 공화국은 과거에 그저 그런 평범한 나라였으나,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이 영토 내에 설치된 후 가장 눈부신 변화를 맞이했다.

중앙 대륙과 대대적인 무역을 실행하고, 그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공화국은 동대륙의 국가 중, 어떤 면에서는 가장 선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은 안 해도 고향이 상당히 그리웠나 보군.’

아드리안은 과거를 떠올리며 도시의 풍경을 즐기느라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같이 바깥을 응시하고 있던 베르덴이 이내 시선을 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기에.

“왜 한 자리를 비워 두고 계신 겁니까?”

마차에 탄 사람은 베르덴, 레이라, 아드리안, 레일버, 조제프, 이렇게 총 다섯 명이다.

그런데 조제프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옆자리를 남겨 두고 있었다.

정확히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큼.

“마침 올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조제프가 소매를 걷었다.

가려져 있었던 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조금씩 강하게.

“……!”

그때, 멀리서 마력이 느껴졌다.

위치는 상공.

느껴지는 바에 의하면…… 이건 흑마법이었다.

‘습격인가?’

곧바로 대처하려던 찰나, 조제프가 웃으며 만류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분이야말로 제가 말한 그 조력자니까요.”

흑마법을 다루는 조력자.

그리고 루아스교에서 신임하는 존재 혹은 집단.

그 교집합에 속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급속도로 기척이 가까워진다.

직후 그림자에 휩싸인 마차. 이내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 한 사람이 있었다.

칠흑의 로브로 얼굴을 감추고, 곳곳에 중갑을 착용한 독특한 사내.

“예상보다 조금 늦으셨군요.”

“늦지 않았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왔을 뿐.”

대주교를 거리낌 없이 대하는 태도.

그런데도 팔라딘은 제지하지 않았다.

정체 모를 사내가 마차 안을 둘러보던 그때, 고개가 베르덴을 향해 멈췄다.

“잿빛 머리에 벽안이라면…….”

“예, 그 애셔입니다.”

“그렇군.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그자인가.”

사내가 턱을 쓸었다.

여전히 같은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 속에서 조제프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소개가 늦었습니다. 먼저 이분의 성함은 할디른 데이라스.”

조제프가 나지막이 말했다.

“다크 워튼 마탑의 차기 계승자입니다.”

조력자의 정체는 마탑의 후계자.

죽음의 이해자라 불리는 초월자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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