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6화 (336/366)
  • 336화 이유 (2)

    “그 말씀은…… 대주교가 거짓을 말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닐 거다. 아예 있지도 않은 사실로, 우리에게서 모든 걸 감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베르덴의 벽안이 명멸했다.

    “본의를 숨기려면, 거짓이 아닌 진실 속에 섞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조제프는 분명 사람을 속이는 것에 그리 능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루아스교의 근본은 빛.

    믿음과 반대되는 기만과 왜곡에 능통한 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어둠 속에서 직접 활동하는 이단 심문관 쪽이라면 또 모를까.

    ‘루아스교의 대변자인 대주교와는 어울리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의도, 그 속내를 꿰뚫어 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되지만 전부를 말하지 않는 것.

    그건 오히려 듣는 이로 하여금 피상적인 믿음을 강제하니.

    그래서 베르덴은 관점을 바꿨다.

    조제프가 했던 답을 전부이자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현 상황의 일부분으로써 참고하는 것으로.

    “주검의 영광은 과거 흑마법이 득세했던 옛 시대를 돌이키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그리 납득하지 못할 목적은 아니지. 세상에는 범인이 이해하기 힘든 욕망과 뜻을 추구하는 자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는 베르덴과 아드리안도 속해 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감히 초월자에게 복수를 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대주교는 놈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어쩌면 단순히 목적, 그 자체가 이유인 것 아닐는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언제나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흘러갈 정도로 세상은 합리적이니 않으니까. 하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베르덴은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직접 주검의 영광을 상대한 적이 있었기에.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은 죽기 직전에 이런 문구를 내뱉더군. ‘위대한 주검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위해서라. 마치 시체를 숭상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거기다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광신(狂信)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교구를 습격했던 비올라의 경우는 사뭇 다르긴 했다.

    노사와는 다르게 마지막에는 죽기 싫다면서 발악했었으니까.

    뭐, 믿음의 정도야 개인마다 다르니 그리 이상할 게 볼 것도, 생각을 할애할 정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보다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건…….”

    “주검의 영광에 속한 흑마도사를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이다.”

    그리고.

    “약 800년 전에 존재했던, 루아스교에 의해 역사 자체가 지워진 어떤 국가의 문자로 쓰인 고서이기도 하지.”

    아크에서 얻었던 정보 중 하나.

    방주에 대한 건 발설해서는 안 되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이건 예외다.

    워 로드, 레그리트에게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내용이니.

    고대 서적에 깃든 내력을 경청하고 있던 아드리안이 턱을 어루만졌다.

    “으음, 수십 년도 아니고 수백 년 전에 대륙을 절반 가까이 불태웠던 국가라니. 너무도 아득한 세월이라 뭐라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지는 않고, 지금 드러난 정보만을 서로 적당히 조합해 봤다.”

    베르덴이 고서 위에 손을 올렸다.

    “만약 대주교가 말한 옛 시대의 재래가 그 국가의 재건을 뜻하고, 놈들이 언급하는 ‘위대한 주검’이 그 국가에 속한 존재 혹은 왕을 의미한다…… 하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

    놈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연하게 버릴 수 있는 기이한 믿음을 포함해, 이 가설이라면 대다수의 것들이 어느 정도는 설명된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하나 당장 내릴 수 있는 결론 중 가장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뭐, 그런 예상과 달리 아예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 흑마도사가 우연히 이 고서를 손에 넣은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주군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고요.”

    “그래. 모든 걸 우연으로 치부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니까.”

    의심하고 밝혀라.

    마법을 추구한다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이유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술잔을 기울였다.

    도수가 높은 터라 쓴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뒤로 과실주 비슷한, 특유의 향기가 은은하게 입안을 감돌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보다 더 직접적이지.”

    다시금 잔을 채우고 대화가 이어졌다.

    * * *

    “주검의 영광은 벨디른 공화국의 최고 의원을 암살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으음…….”

    아드리안이 곰곰이 정보를 더듬었다.

    암중에 감춰진 건 알 수 없으니 애써 상상하지 않고 배제한다.

    그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고려하자면…….

    “공화국을 폐쇄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래, 현재 벨디른 공화국의 국경은 닫혔다. 한정적으로 외부에서 들어갈 수는 있어도, 안에서는 나올 수 없지.”

    한마디로 국가 전체가 놈들이 만든 무대라는 뜻.

    그것도 대놓고 대주교를 도발하며 불러들일 정도니, 어떤 함정이 있는지,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루아스교에서 대비를 해 뒀다고는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주검이 영광이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공화국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그건 두 사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니까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을 이용하려면, 놈들의 배제가 필수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공화국의 권력자 중 하나가 살해당한 마당에, 모험가 권한으로 공간 이동진을 이용하는 건 어렵다.

    최고 의원과 의원들에게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니.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잠자코 보내 줄 리가 만무하겠지.

    무엇보다 베르덴은 놈들과 타협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말인즉슨.

    “중앙 대륙으로 가려면 주검의 영광과의 마찰은 필연적이다. 이게 대주교의 의뢰를 수락한 두 번째 이유지. 납득이 되었나?”

    “물론입니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생각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래서 궁금하군요. 말씀하신 것들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니.”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서드밀의 시장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시장실을 나가기 직전, 베르덴은 시장의 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복잡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게 아드리안이 베르덴을 찾아온 진짜 이유였다.

    “…….”

    베르덴이 술잔을 놓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세상은, 상대적이기에 항상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지.”

    약자는 당하는 자다.

    압도적인 강압에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피식자다.

    베르덴도, 아드리안도 그러했다.

    하나는 순수한 꿈을 잃었고, 다른 하나는 스승을 잃었다.

    초월자라는 절대적인 강자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의 둘은 세상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에 의해 고통받은 것과 별개로, 그러한 세상의 기준을 인정하고 있기에 강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장의 죽음은 일종의 순리에 가깝다.”

    저항할 수 없었다.

    힘없는 약자의 변명이다.

    두 사람도 비슷한 것을 겪기는 했으나, 서드밀의 시장을 측은하게 여기며 깊이 동정하는 일은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조차 모르는 자에게 마음을 베풀 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그러나 시장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별개지.”

    인간 이하로 취급한 채, 철저하게 이용하고 쓸모가 다하면 처분한다.

    주검의 영광이 벌인 짓은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의 실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놈들의 방식이 상당히 불쾌하더군.”

    세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이다.

    * * *

    러스트러스는 성물에서 방출된 신성력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대주교의 비행정.

    언데드나 악마가 침입한다면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를 테지만, 인간에게는 아늑하고 따뜻한 선내로 편안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으음…….”

    레이라가 기지개를 켜며 상체를 일으켰다.

    더없이 개운한 아침이다.

    항상 투구로 가리고 있는, 얼굴에 걸린 악마의 저주도 평소보다 미약하게 느껴진다.

    ‘이게 성물이 가진 힘…….’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혹시 루아스교에서 성물을 대여한다면…… 주기적으로 교회를 찾아가 신성력을 통해 저주를 완화시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도중 옆에 놓여 있던 작은 탁상에 손을 얹은 그때였다.

    우직.

    “아.”

    체중이 실린 부분이 일부 으깨졌다.

    주체할 수 없는 근력.

    악마의 저주가 심화되면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교회를 찾아갈 날이었지.’

    방주의 교류전에다가 주검의 영광이란 처음 듣는 조직까지.

    최근 벌어진 일들이 많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음, 아무리 성물이라고 해도 단순히 신성력을 쬐는 정도로는 부족한 걸까.’

    어쩔 수 없이 성물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은 철회해야 될 것 같다.

    애초에 모험가인 그녀에게 선뜻 성물을 임대해 줄 리 없었겠지만 말이다.

    저벅, 저벅.

    얼굴을 가리는 등 채비를 갖추고 방을 나선 레이라가 복도를 거닐었다.

    ‘조제프 대주교님이 저주가 문제 된다면 직접 찾아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아침부터 대뜸 찾아가서 다름 아닌 대주교의 방문을 두들기는 건, 그녀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식사나 다른 걸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어렵다.

    이런 상태가 되면 힘을 세밀하게 조절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아까 전의 탁상처럼 러스트러스에 놓인 기물을 파손할 수는 없었다.

    ‘역시 레나 주교에게 부탁하는 편이 낫겠지.’

    리버런그에서 만난 지 그리 얼마 되지는 않았어도 나름의 친분도 있고, 레나 주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께 기도를 드리는 게 습관이었으니.

    결정했다.

    레이라는 방향을 틀어, 레나 주교의 방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복도에 서서 창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핑크빛 머리.

    활기가 느껴지는 외모.

    레나 주교였다.

    “주교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아…… 레이라 님.”

    레나 주교가 시선을 돌렸다.

    방금까지 멍해 있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그냥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어요.”

    “……?”

    “분명 리버런그의 교회를 주관하면서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왜 여기에 있게 된 걸까…… 하고요.”

    상위 주교가 되고, 루아스교에게서 임명을 받아 카일리언스에 파견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리버런그의 시장이 폭발했다.

    뭔지 모를 저주에 걸리고 세간에서는 납치당했다고 오해를 받았다.

    조제프 대주교 은하를 만났다.

    서드밀의 시장이 사망했다.

    그리고 루아스교의 성물이 담긴 비행정에 승선하여 벨디른 공화국으로 향하고 있기까지.

    이게 고작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제가 긍정적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드물게 레나 주교가 정색했다.

    레이라는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애초에 시장에게 걸린 저주를 없애 달라고 한 게 바로 그녀였으니까.

    견디기 어려운 침묵이 이어진다.

    느닷없이 레나 주교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강하게 두드렸다.

    짝!

    경쾌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레나 주교가 미소를 띠었다.

    “고뇌하는 건 여기까지 할게요. 심각한 건 저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여신께서 어디까지 저를 인도하시는지 보도록 하죠, 뭐!”

    상위 주교로서 내뱉은 당당한 선언이었다.

    “아, 그런데 너무 세게 쳤나. 무지 아프네요…….”

    신성력이 깃든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붉게 변했던 피부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레이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은폐되어 있는 비행정 아래.

    숲과 같은 자연이 아닌,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서드밀과 국경이 가까워서 그런지 금방 오긴 했네요.”

    벨디른 공화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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