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5화 (335/366)
  • 335화 이유 (1)

    서드밀의 시장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본 적이 없기에 알 수는 없다.

    하나 그가 남긴 유언에서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도시와 시민을 위했던 진심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죽음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에 담긴 사연은 가히 셀 수도 없다.

    방금 죽은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이기심은, 세상에 만연한 흔해 빠진 변명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욕하거나 하찮게 보는 이는 없었다.

    각자마다 다른 이유로.

    조제프가 양손을 모아 겹쳤다.

    그러고는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이며 이마와 엄지를 맞대었다.

    “루아스시여, 부디 저들의 가련한 죽음을 구원하시길.”

    신성력이 피어오른다.

    빛으로 형성된 불꽃들이 날아오르며 서드밀 시장이 남긴 피와 뼈, 그리고 살덩이에 옮겨 붙었다.

    뜨겁지 않은 불이다.

    그렇기에 재가 되거나 증발하는 일은 없었다. 시장의 사해(死骸)는 미약하게 남아 있는 흑마법의 파편과 함께 서서히 소멸했다.

    방금 전까지 조제프, 베르덴과 대화를 나눴던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인간이었던 육신은 그저 주검의 영광에게 조종당했을 뿐이니.

    조제프가 눈을 떴다.

    전심을 다한 기도를 마친 그가 베르덴과 아드리안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저희는 서드밀을 떠나 벨디른 공화국으로 향할 겁니다.”

    카일리언스엔 아직 다섯 시장이 남아 있긴 하나 그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향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주검의 영광이 손을 쓰는 것이 빠를 테니까.

    막말로 놈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여도 시장들은 몰살이다.

    어쩌면…… 높은 확률로 이미 쓸모를 다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고위 저주가 가진 무서움이다.

    뭐가 됐든 간에 차라리 공화국으로 가서, 저주를 새긴 자를 처단하는 게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었다.

    “애셔, 그리고 이를 모를 분. 그대들은 어찌하겠습니까.”

    당초의 의뢰는 서드밀까지.

    주검의 영광을 토벌하지 못했다고 해도 의뢰는 끝이었다.

    그러니 다시 구두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베르덴은 주군으로서, 자신만이 아닌 아드리안의 선택권마저 가진 채 즉답했다.

    “저희 둘은 의뢰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설령 수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끼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행선지가 겹치는 바람에.”

    “겹친다…… 그래서 그자에게 공화국에 대해 물었던 겁니까.”

    조제프가 턱을 당겼다.

    “그렇다면 레이라를 조력하는 대신, 그녀에게 받기로 한 대가가 벨디른 공화국과도 관련이 있겠군요.”

    “개인적인 도움을 받기로 약속했기에, 카일리언스의 일을 마치고 공화국까지 동행할 예정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의뢰에 대해서는 따로 물어봐야겠지만요.”

    뭐,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달리 강요할 것도 없었다. 레이라가 어떻게 대답할지는 예측이 되었으니까.

    애초에 베르덴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더라도, 흔쾌히 대주교의 의뢰를 수락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얼굴에 걸린 악마의 저주 때문에 상시적으로 루아스교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있고, 명성 높은 고위 모험가인 데다가…….

    ‘그 방주의 후보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더해서 지금까지 봐 온 레이라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주검의 영광과 같은 놈들이 뭘 하든 간에 방관할 리 없어 보였다.

    아무튼 대주교와의 여정이 조금 더 이어진다는 건 분명했다.

    “세 분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향방은 어느 정도 결정되었으니, 서둘러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그런데 대주교님, 정말로 시장이 준비한 선박을 이용하실 겁니까?”

    다름 아닌 주검의 영광이 간섭한 이동 수단.

    배 자체에 무슨 짓을 해 놨을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문제였다.

    헤인강을 이용한 경로는 한정되기에 동선이 훤히 읽힐 테니…… 자진해서 놈들의 손바닥 위로 뛰어드는 꼴이 되겠지.

    “물론 그자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 또한 여러 방도를 마련해 왔으니, 공화국 입국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역시 처음부터 카일리언스 말고도 벨디른 공화국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나.

    ‘그렇다면 아예 밑바닥부터 뒤지지 않아도 되겠군.’

    분명 공화국에도 전력을 보내 놨을 테니.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움직이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조직이 가진 힘이었다.

    ‘아직 질문이 더 있긴 하지만…….’

    굳이 여기서 답을 얻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이후에 의문을 해소해도 늦지 않으리라.

    지금은 서드밀을 나서는 게 급선무였다.

    조제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럼 이만 내려가도록 합시다.”

    조제프 대주교가 앞장서서 시장실을 나섰다.

    그 뒤에서 팔라딘, 레일버가 무장을 갖춘 채 철통같이 호위했다.

    그러다 문득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투명한 벽안이 공허함이 감도는 시장실을 응시했다.

    “…….”

    신성한 불꽃에 의해 완전히 사라진, 서드밀 시장의 흔적.

    그가 남긴 빈자리에는 산산이 깨져 버린 식기 조각들과 나이프, 포크가 나뒹굴고 있다.

    마지막 만찬을 즐겼던 식탁 위에는 기름과 소스가 묻은 그릇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군?”

    “……가지.”

    시선을 거둔 베르덴이 발걸음을 옮겼고, 아드리안이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염동력>에 의해 닫히는 문.

    쿠웅.

    정적이 내려앉았다.

    * * *

    시장이 언급했던 그 조치란 것 덕분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마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헤인강에 정박되어 있는, 텅 비어 있는 선박은 무시한 채 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리버런그에서처럼 시장 살해범으로 오해받는 일 없이, 조용히 서드밀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뭐,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시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막대한 혼선이 예상된다.

    그를 수습하고 뒤늦게 수배령을 내린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근방에 없을 테니까.

    조제프가 대체 무엇을 이동 수단으로 삼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주교가 장담했으니 믿을 만은 했다.

    다그닥, 다그닥.

    교인들이 이끄는 마차들이 흙길을 달려 숲속을 질주한다.

    도중에 도로가 사라졌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인적이 닿지 않은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베르덴, 아드리안, 조제프, 레이라 등이 같은 마차에 탑승한 채 대화를 나눴다.

    서드밀에서 얻었던 정보와 새로운 의뢰에 대해 레이라와 공유하는 걸 포함해서.

    “저도 대주교님의 의뢰를 수락할게요. 어떻게 되든 간에 그 흑마법사들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예상대로 레이라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답해 드리지요.”

    “루아스교에서는 애초부터 벨디른 공화국에 주검의 영광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요?

    ……!

    마침 베르덴이 하려고 했던 질문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레이라 또한 이야기를 듣는 도중 같은 의문을 품은 모양.

    ‘그렇다면…… 어쩌면 전부 같을지도 모르겠군.’

    두 번 묻지 않아도 되겠다.

    귀찮음을 덜었다고 생각하며, 베르덴이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조제프가 말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 있기에 자세히 말하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간단히 결과만을 말하자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흔쾌히 인정했다.

    “이미 루아스교의 몇몇이 공화국 내에서 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다가 외부에서 초빙한 특별한 조력자를 통해 놈들의 움직임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별한 조력자라면……?”

    “루아스교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아주 믿을 만한 분입니다. 특히나 이런 방면에서는 말이죠. 만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믿음을 너머 신뢰마저 느껴진다.

    ‘대주교가 저렇게 신임하는 존재라…….’

    누구인지 당최 상상이 가지 않는다.

    베르덴은 마법 지식에 능하지만, 루아스교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 왕국과 카일리언스에서 테러를 일으켰다는 주검의 영광이라는 집단…… 놈들이 원하는 게 대체 뭐죠?”

    마땅한 의문이다.

    집단이 창설되었다는 건 그 자체로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말이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이해를 벗어난, 수많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지요. 주검의 영광은 그중 하나입니다.”

    조제프가 목걸이에 손을 올렸다.

    여러 세공을 거친 특별한 형태의 정십자가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자들의 목적은 먼 과거…… 빛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사악한 흑마법이 발호했던 옛 시대의 재래입니다. 그들이 고대의 저주를 다루고, 잊힌 장소를 찾아내려 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카일리언스의 시장들에게 걸려 있는 고대의 저주.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그림 리퍼를 소환하는 데 사용했던 고대의 의식장.

    대주교가 언급한 주검의 영광의 목적과 딱 맞아떨어졌다.

    “잘 요약한다고는 했는데,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까요?”

    “네, 그럼요.”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되물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제프의 설명이 이해하기 쉬웠기에.

    그리고 그건 베르덴도 마찬가지였다.

    내심 품고 있던 의문 하나가…… 방금 전 조제프의 답으로 인해 확신으로 변했다.

    “달리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공화국으로 향하는 수단에 관한 건데…….”

    “아, 그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조제프가 슬쩍 바깥을 바라봤다.

    “밤이 되면 알게 될 테니까요.”

    “밤……?”

    베르덴, 레이라, 아드리안.

    위 셋 중 당장 대주교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일몰의 광경마저 지나갔다.

    마차들이 사방에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숲속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성기사와 성직자 모두가 바깥으로 나와 기립하고 있던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새까만 하늘에서 은은한 빛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상공에서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베르덴 일행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대주교가 숨겨 놓은 수단의 정체를 목격했다.

    “……비행정?”

    보란 듯이 루아스교의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야말로 신성력으로 가득한 선박.

    조제프가 소개했다.

    “오직 7인의 대주교에게만 허락된 루아스교의 비행정 중 하나, ‘러스트러스(Lustrous)’입니다.”

    그가 택한 건 육로도, 수로도 아닌 바로 공로였다.

    * * *

    러스트러스는 일반적인 비행정과 아예 종류가 다르다.

    마력이나 마법진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성력만을 연료로 삼기에.

    그렇다면 마석으로 이루어진 동력원을 무엇이 대체하고 있다는 말인가.

    답은 성물(聖物)이었다.

    문자 그대로 신성한 물건.

    이를 마법적으로 해석하면 신앙계 아티팩트라 번역된다.

    조제프 대주교의 말에 따르면, 자연적으로 신성력을 충전하여 사용 가능한 성물을 러스트러스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그렇기에 활동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나…….

    ‘달리 말하자면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것도 소모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일부만을 본다면 무한에 가깝다.

    루아스교가 왜 세계 종교 중 하나인지, 그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폐만이 아니라 신성력을 통한 공간 이동까지 가능하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점이다.

    다만 그런 만큼 단점 또한 분명하기는 했다.

    하나는 공간 이동을 사용하면 대부분의 신성력을 소모하기에 곧 활동이 정지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대륙 간은 물론이고 장거리 공간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악스럽긴 하지만…….’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방주의 근거지인 아크의 시설을 직접 보고 경험까지 했으니.

    어쨌든 공화국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됐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철컥.

    베르덴이 개인실에 들어섰다.

    밤이 깊어지고 있는 터라, 모두가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마침 개인적인 공간이 주어졌으니, 공간 마법 서적을 읽을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아공간에서 책을 꺼내 든 순간…….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익숙한 기척이기에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염동력>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 너머에 아드리안이 있었다.

    처음 보는 술병 하나를 한 손에 든 채로.

    “주군, 이곳에서 괜찮아 보이는 술을 얻어 왔는데 한잔하시겠습니까?”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처음 보는 술이기에 약간의 궁금증이 도졌다.

    “들어와라.”

    개인실의 왼쪽에 놓인 식탁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아드리안과 베르덴.

    서로 번갈아 가며 상대의 술잔을 채웠다.

    안주는 아공간에 남아 있던 최고급 육포로 대신했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그래서, 내게 묻고 싶은 게 뭐지?”

    “주검의 영광을 추적하려 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아드리안은 내색하지 않은 채 의문을 표했다.

    “놈들과 동선이 겹치기 때문이라고 했을 텐데.”

    “저는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주군의 본심을 알고 싶습니다.”

    속내를 꿰뚫어 봤다는 건가.

    하기야 그 아드리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뭐, 어차피 숨길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총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베르덴이 잔을 들었다.

    첫 번째.

    “루아스교는 주검의 영광에 대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레이라가 대주교에게 한 질문들.

    거기서 조제프는 자신이 아는 모든 걸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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