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31화 (331/366)

331화 초청 (2)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아드리안은 스승에게 키워졌다.

난생처음으로 검을 잡는 법을 배웠다.

사냥을 통해 식재료를 조달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여 타고난 재능을 점차 개화해 나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스승의 은신처에서 무려 10년이 넘도록…… 그렇기에 최초로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아드리안은 강자였다.

속도, 그 자체를 무기로 삼은 고유의 검술.

중앙 대륙의 지방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던 검사들과 검을 맞대어 보기도 했지만, 아드리안의 쾌검에 반응하는 이는 소수였다.

단연코 또래에 적수가 없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년기를 거치고 소년기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제외하면 외부인과 이렇다 할 접촉이 없었기에 성격의 근간이 고착화되었고, 거기에 사춘기 특유의 자아도취가 뒤섞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만과 자신감이 허세 따위가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다.

그 결과, 아드리안의 사회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감히 굽신거리지 않는 고고한 자존심.

귀족이든 왕이든 뭐든 간에 존경심은 일절 갖지 않고 존대조차 하지 않는다.

과거 면전에서 악명 높은 권력자를 비웃으며 하대했던 일화는 한때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다.

당연히 권력자는 격분하여 보복을 가했고, 당일 아드리안에게 집단째로 몰살당하여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훗날 그가 중앙 대륙 4강의 자리에 오르는 데 일조한다.

그런 아드리안이 따르는 사람은 오직 스승뿐.

현재 스승은 세상에 없다.

다만 그 빈자리는 공허하지 않았다.

같은 목표를 지닌 복수의 동지이자, 이용만 당하다 죽었을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생명의 은인인 베르덴이 있었기에.

그렇기에 스스로 검을 바쳤다.

아드리안은 그의 첫 번째 칼날이다.

결코 휘어지지 않는.

“교국에서 예의범절은 못 배웠나, 팔라딘?”

아드리안이 한 발짝 다가섰다.

체격은 팔라딘이 더 컸지만 눈높이는 비슷하다.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치자 한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팔라딘이 단호히 말했다.

“너희는 예를 갖춰야 할 대상이 아니다.”

루아스교는 불평등을 인정한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개체가 아닌 이상, 완전히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 잘난 교리에 그리 쓰여 있던가?”

“입조심하라. 여신 루아스를 숭배하는 빛의 교리는, 신의 은혜를 받는 인간이 감히 폄하할 수 있는 저열한 이치가 아니다.”

“그건 마찬가지다. 누구도 감히 주군에게 무례를 범할 수는 없지. 한낱 팔라딘 따위라면 더더욱.”

……한낱?

잠시 침묵하던 팔라딘이 콱 주먹을 쥐었다.

“그 말버릇, 교정할 필요가 있겠군.”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하는가.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하겠다만, 그래도 하겠다면 선공은 양보하겠다, 팔라딘. 어차피 스치지도 않을 테니.”

말 몇 마디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일촉즉발이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팽팽한 신경전.

여기서 아주 사소한 자극만 가해진다면, 두 사람의 공방에 이 낡은 목조 건물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통째로 무너져 버릴 것이다.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보다 못한 레이라와 레나 주교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가다간 마찰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요. 이제 그만 말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기,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당신이 저 사람의 주군이잖아요……!”

“…….”

시선을 받은 베르덴이 정면을 바라봤다.

확실히 불필요한 분란은 막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딱히 중재할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팔라딘의 어투가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베르덴의 벽안이 등 뒤로 향했다.

잠시 후, 기척이 가까워지며 두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섰다.

한 명의 팔라딘과 한 명의 노인.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찾아오셨군요, 여러분.”

자비심이 깃든 목소리다.

익숙한 건 아니지만 들어 본 적이 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마법사, 애셔.”

에스티리아의 왕도, 레티아.

에스퍼렌사 후작의 저택에서, 다크 워튼의 마탑주와 함께 삼자대면했던 조제프 대주교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 *

툭. 툭. 툭. 툭.

탁상 위에 두 개의 수배지가 놓였다.

그 안에는 대략적인 초상화와 간략한 정보가 실려 있었다.

[에스티리아 왕국 명예 백작. 잿빛 머리칼과 벽안이 특징인 20대의 남자. 호위 기사로 추정되는 남자와 동행 중. 반드시 생포.]

[핏빛검, 레이라. 미스릴 등급 모험가. 검붉은 전신 갑주를 착용하여 얼굴을 숨겼으며, 등허리까지 오는 금발이 특징인 여성. 나이 불명. 생사 불문.]

수배 목적은 리버런그의 시장 및 리버런그의 수호자 살해 그리고 레나 주교 납치.

그 외에는 도시 소유의 선박을 폭파하거나 절도했다는 죄목 등이 있기는 하나 그리 주목할 만한 건 아니었다.

‘아드리안의 수배서는 없군.’

하기야 리버런그의 성문을 통과할 때, 베르덴이 가진 신분으로 신원을 증명한 데다가 도시에선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았으니 당연한 건가.

레나 주교는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라 같은 수배령이 떨어지지 않았고.

곁에 있던 레이라가 물끄러미 수배지를 바라봤다.

“당신은 반드시 생포. 그리고 저는 죽여도 상관하지 않겠다라……. 이해는 가지만, 막상 보니 기분이 이상하긴 하네요. 저도 국가에서 현상금이 걸린 건 처음이라서요.”

베르덴은 명예라고 해도 귀족이다.

자칫하면 국제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기에,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는 조건부가 붙은 것이다.

처벌은 차치하고 사건의 진위부터 분명하게 가리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반면에 레이라는 비교적 가혹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미스릴 등급 모험가라는 건, 곧 힘의 증명과도 같다. 어쭙잖게 생포를 시도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물론 그간 레이라가 쌓아 온 모험가로서의 평판도 있기는 하지만…… 당장 크게 영향을 끼칠 수는 없겠지.

분명 리버런그의 모험가 길드장이 중간에 끼어들었을 테니까.

시장과 손을 잡고, 모험가와 아인종 사체를 빼돌린 그로서는, 이대로 관련자가 죽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예상대로 수배령이 떨어졌다.

다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이 수배서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소식이 여기까지 닿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단지 수배서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부터 팔라딘은 기다렸다는 듯 베르덴 일행을 맞이했다.

분명 베르덴이 움직이는 마차는 수배서가 퍼지는 것보다 빨랐음에도…… 정보의 전달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베르덴의 마땅한 의문에, 조제프 대주교가 답했다.

“그건 루아스 신께서 내려 주신 기적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력이 무궁무진한 신비를 구현하듯,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력은 그야말로 기적을 자아내니까요.”

신성력 혹은 신앙계 아티팩트로 원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는 건가.

별로 놀라운 건 아니었다.

일부 아티팩트나 마법 물품 등과 같은 마법적인 힘으로도 먼 거리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건 가능하니까.

여러 치명적인 요소들로 인해 대중화는 처참하게 실패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대주교쯤 되는 존재니 뭐든 갖고 있다고 해도 자연스러웠다.

“그나저나 이렇게 그대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레이라에게 부탁한 의뢰와 그대가 깊게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맞습니까?”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셔와 마주친 건 우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감시로 인해 의뢰 진행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작금의 카일리언스에서의 우연이라…… 이 또한 여신의 인도겠지요.”

조제프가 탁자 위에 양팔을 올렸다.

“의뢰했던 대로 리버런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레이라. 레나 주교의 오른손을 잠식하고 있는 저주를 포함해서.”

* * *

상황이 복잡하기는 해도, 보고는 번잡스럽지 않았다.

레이라는 베테랑 모험가답게 곁가지는 떼어 내고 핵심만 요약하여 설명하는 데 능했기에.

도중 레나 주교가 부연하며, 주교로서의 관점을 더했다.

“…….”

조제프가 레나 주교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상위 주교보다 더욱 신성하고 광활한 빛이 사방을 비추며 천천히 저주에 스며들었다. 간질거리는 감각에 레나 주교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윽고 신성력이 느릿하게 가라앉았다.

“신성력에 기생하여 낙인을 남긴다라…… 어떤 저주인지 예상이 가는군요.”

“저, 대주교님…… 이거 위험한 저주는 아닌 거죠?”

“신성력에 달라붙을 당시, 상위 주교에 육박하는 신성력을 품고 있지 않은 성직자였다면 뼈와 살이 녹아내려 즉사했겠지만 고비는 넘겼습니다. 시장에게 걸린 저주를 해제한 것이 레나 주교였기에 다행입니다.”

“히익……!’

죽을 뻔했다.

그 사실에 레나 주교가 딸꾹질을 했다.

상위 주교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기에 한 점 후회도 없기는 했지만 아직 죽는 건 싫었다.

살아온 과거보다 살아갈 나날이 더 긴 것도 있었고, 당장 루아스 신의 곁에 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하고 깨끗한 삶이라 자부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

아직 그녀는 미숙했다.

레이라가 물었다.

“그럼 무사히 해주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시간만 있다면 당장 깨끗하게 지울 수 있죠. 그러니 저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고 하시네요. 다행이에요, 주교님.”

“네에…….”

레나 주교가 작게 숨을 달랬다.

평소대로였다면 바닥에 뒹굴거리면서 울먹거리기라도 했을 테지만, 조제프 대주교의 앞이라 가볍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익숙지 않은 긴장에 체할 것 같았다.

조제프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이라도, 레나 주교도, 애셔도 그리고 이름 모를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리버런그에서 일어난 부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겉으로 드러난 뿌리마저 자를 수 있었으니. 수배령에 대해서는, 기다리시면 추후 루아스교에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이로써 레이라의 의뢰는 끝났다.

하지만 조제프의 용건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애셔,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 * *

베르덴과 조제프과 마을의 중심부를 천천히 거닐었다.

두 팔라딘과 아드리안은 방해가 되지 않은 거리에서 그들을 철저하게 호위했다.

발소리만이 감도는 와중, 조제프가 말을 꺼냈다.

“제가 어째서 그대를 따로 불렀는지 알고 계십니까?”

“주검의 영광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베르덴의 추측은 곧 정답이었다.

“역시 짐작하고 있었군요.”

미소를 짓던 조제프가 이내 웃음을 지웠다.

“작년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발생한 언데드 사태 이후로, 저희 루아스교는 비밀리에 주검의 영광을 추적했습니다. 사악한 흑마법사 집단을 방치하는 건 언젠가 수많은, 무고한 죽음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그 흔적을 쫓다 보니 이곳 카일리언스로 이어지더군요.”

“아인종 범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걸 보시죠.”

조제프가 웬 하얀 말뚝을 꺼냈다.

울퉁불퉁한 표면에다가 사람의 손으로 완전히 가려질 정도의 크기. 뭔지는 몰라도 어떤 불쾌감이 느껴졌다.

“이건 생명력을 주입하는,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말뚝입니다. 그 영향을 받으면 말 그대로 모든 생리적 활동이 기존의 몇 배 이상으로 왕성해집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번식 활동을 하는 것도 말이죠.”

처음으로 이것이 발견된 건, 고블린 마더의 육체.

고블린의 최상위종 중 하나로, 전투 능력은 보잘것없으나 고작 며칠 주기로 단번에 수십 마리의 고블린을 낳을 수 있기에 위험도는 지극히 높은 개체였다.

방치했다가는 숲이 고블린의 것이 되어 버리니.

그런 고블린 마더의 뒷목에 말뚝이 박혀 있었다.

안 그래도 모험가 길드가 위험시했던 번식 능력이 몇 배 이상으로 강해진 셈. 그 여파는 가히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발견된 이런 말뚝은 총 세 개. 그렇기에 이후 카일리언스에 나타날 아인종의 숫자는 현격하게 줄겠지만, 아직도 저 숲에는 이 말뚝이 박힌 아인종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곳에도 성기사를 파견했으니 곧 종식되긴 하겠지만요.”

베르덴이 조제프의 말을 경청했다.

어째서 주검의 영광은 아인종을 범람시켰을까, 왜 리버런그의 시장을 조종하고 아인종과 모험가 사체를 어딘가로 운반했을까……

자연스레 갖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왜 그걸 저에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대는 부외자라고 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왕국에서 주검의 영광을 몰아내는 데, 그대의 마법이 큰 공을 차지했으니. 레이라와 레나 주교를 도운 것 또한.”

그저 관계자이자 조력자이기에 말해 줬다라.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루아스교의 대주교가 그런 이유로, 말할 필요 없는 정보를 쉽게 발설할 리가 없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도 있다.

그런 베르덴의 시선을 눈치챈 조제프가 발걸음을 멈췄다.

“……레나 주교의 손에 걸려 있는 건 <주시의 낙인>이라 일컬어지는 고대의 저주입니다. 그 효과는 문자 그대로 상대방의 생명력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당장 습격당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단순한 습격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고작 이런 식으로 대주교인 저를 노렸다고 하기에는 어설프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아서 말이죠.”

그때, 조제프가 마을 바깥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의 동시에 베르덴의 감각 또한 강하게 반응했다.

“이제 곧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을 밖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언데드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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