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9화 (329/366)

329화 수배령 (3)

지난 2년 가까이 베르덴의 삶은 격동적이었다.

대충 종류만 세어 봐도 열 손가락은 가뿐히 넘을 정도로 많은 적을 상대했고, 그만큼 남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상황에 직면해 왔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경우는 생소한 편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수십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인 적은 처음이었기에.

“가, 감히 시장님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잔혹하게……!!”

젊은 기사가 부들거렸다.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충성심에서 시작된 분노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은 아니었다.

확실히 트로벤 시장이 맞이한 죽음은 객관적으로 봐도 보기 좋지는 않았으니까.

병사 몇몇은 흔적을 보고 구역질을 해 댈 정도였다.

“당장 로브를 벗고 얼굴을 보여라! 처형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길게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투항…….”

검을 쥔 채 으르렁거리던 기사가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여인에게 닿았다.

레나 주교.

리버런그의 교회 운영을 주관하는 아름다운 성직자. 그녀가 일으키는 기적은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한다.

그런 신실하고도 친절한 사람이 시장 살해범과 같이 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악독한 흑마법사들! 리버런그를 엉망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주교님까지 납치하려 들다니! 빛이 두렵지도 않은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경악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호, 흑마법사라니…… 그 언데드를 조종하는 마법사를 말하는 건가?”

“언데드를 조종한다고? 이런 끔찍한…… 루아스시여……!”

저마다의 사람이 공포에 질린다.

흑마법사의 인식이란 게 이렇다.

아무리 흑마법사의 마탑, 다크 워튼이 오랜 세월 애쓰고 있다고 해도 사악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죽음은 인간만이 아닌 생명을 가진 모든 개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개념이니.

그런 개념을 품은 마법을 다루는 자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마치 전염되듯 동요가 번진다.

안 그래도 살벌했던 긴장감이 더욱 스산해졌다.

레나 주교가 식은땀을 흘렸다.

“뭐, 뭔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죠? 차라리 당장이라도 제가 나서서 오해를 푸는 게…….”

“그건 좋은 해결책이 아닐 거예요.”

최대한 로브를 눌러써, 정체를 감춘 레이라가 답했다.

베르덴이 동의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당장의 상황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트로벤 시장을 간접적으로 조종했다.

대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쩌면 이곳 리버런그의 상층부가 이미 놈의 손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것.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도 저주에 당한 끄나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문제고.’

아인종과 모험가의 사체 운반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도시 차원의 불법적인 사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모험가 길드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손을 대었으니.

당연히 몇몇 귀족과 기사도 동조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대화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사건에 가담한 자든 무구한 자이든 딱히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건 사절이다.

어차피 오해는 다른 사람이 풀어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레이라에게 의뢰를 했던 루아스교의 고위 성직자라든가.

그러니 그와 만나는 것이 급선무다.

당장의 목표는 변함없다.

‘……중앙 대륙으로 가는 길도 쉽지가 않군.’

벨디른 공화국에서는 최고 의원이 피살되어 공간 이동진이 가동 중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레이라와 거래를 한 건데, 이제는 시장 살해범으로 지목되어 포위된 상태다.

앞길을 막는 방해물이 한둘이 아니다.

뭐, 어쨌든.

‘일단 나가서 생각할까.’

베르덴이 시선만을 돌렸다.

시끄럽게 떠드는 기사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거리를 시야에 담으며 리버런그의 구조와 특성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추적을 완전히 따돌리고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베르덴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아드리안, 레이라 그리고 레나 주교에게 말했다.

“헤인강으로 가겠습니다.”

육로가 아닌 수로.

그게 베르덴의 선택이었다.

“엇…… 꺄앗!”

베르덴이 대지의 일부를 분리해 띄웠다.

자연스레 그 위에 레나 주교가 안착했다.

“주교는 내가 챙기겠다. 길을 뚫어라.”

“예, 주군.”

아드리안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바로 옆에 있던 레이라도 상체를 낮추며 함께했다.

직후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는 네 사람.

도주가 시작됐다.

* * *

평범한 사람에게 있어서 공권력은 그야말로 두려움이었다.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의 숫자는 수백을 가뿐하게 넘어 수천에 달하며, 개중에는 기를 깨우치거나 마법을 다루는 기사도 있다.

그런 도시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이 귀족이다.

무력으로도 재력으로도 권력으로도 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베르덴의 <비행>은 물론, 아드리안과 레이라의 속도는 일개 병사가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적당히 조절을 해도 마찬가지.

눈으로 좇는 게 전부였고 직접 추적하는 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그나마 대처할 수 있는 건 기사급의 실력자뿐.

건물의 옥상을 통해 이동하는 베르덴 일행을,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막아섰다.

“여기는 못 지나간───커억?!”

두꺼운 강철 갑옷을 강타하는 충격.

물론 죽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검을 쓰지는 않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먹질과 발길질이 전부였다.

하나 가히 위력적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버티지 못한 기사들이 나가떨어졌다.

“뭣, 프엔 경이 고작 한 수에……!”

“수호자를 죽였다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예상을 벗어난 상황.

동요가 커지던 도중, 마법사 차림을 한 두 사람이 나섰다.

“저자들은 우리가 처리하겠네.”

4위계에 위치한 두 명의 마법사.

리버런그에 소속되어 있는, 모험가 등급으로 책정하면 백금 등급에 육박하는 수준을 가진 그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담당하곤 상대방의 경로를 예측하여 마법을 흩뿌렸다.

<스톤 크랙>

<폭풍>

작은 소용돌이와 마차 크기의 암석이 쇄도한다.

‘주변 피해는 신경 안 쓰겠다는 건가.’

근방에 아직 시민들이 있다.

거기다 베르덴의 곁에는 레나 주교도 있다.

어떻게든 시장 살해범을 막겠다는 의지는 알겠으나 의도는 좋지 않아 보인다.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도 공을 세우는 걸 우선하겠다는 거니.

감정을 배제한 판단.

평균적인 마법사의 사고방식이다.

베르덴이 검지와 중지를 폈다.

두 손가락을 서로 붙이고는 마력을 집중시켜 휘둘렀다.

허공을 어지럽히는 기묘한 마력의 파동. 워 로드, 레그리트가 사용했던 워 메이지의 마력 제어 활용법 중 하나.

양쪽에서 날아오는 마법의 궤적이 비틀리며 표적을 바꾸었다.

콰앙!

“커억……!”

암석에 얻어맞은 바람 마법사가 추락한다.

그 반대편에서 <대지의 장막>을 펼쳐, 폭풍의 바람을 간신히 견뎌 낸 대지 마법사가 경악했다.

“어, 어, 어떻게 내 마법을───”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베르덴이 마력을 펼쳤다.

아티팩트, 삼원색의 중심.

바람 속성이 가진 무형(無形)과 중력 속성이 가진 물리력이 결합한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얻은 속성의 특성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충격파>가 공간을 격했다.

쿠우우우웅!

잘게 떨리는 내부.

울컥, 속을 게워 낸 대지 마법사가 낙하했다.

리버런그의 시장에 설치된, 푹신한 천막과 놈이 부딪치는 걸 본 베르덴이 가볍게 손을 풀었다.

‘아주 쓸 만하군.’

역시 공간 속성이 가진 위력과 잠재력은 상상 이상.

물론 작은 위력임에도 특유의 반동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후에 적응하면 될 일이다.

초월하지 않아도 강해질 여지가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베르덴은 충분하다 못해 흡족했다.

콰앙! 콰아앙! 퍼어어엉!

격한 소음에 도시가 진동한다.

그 안에는 병사와 기사 그리고 시민이 만들어 낸 비명도 깃들어 있었다. 물론 이렇다 할 사상자는 없지만.

“……마치 테러를 일으키는 기분이군요.”

레이라가 중얼거렸다.

이윽고 도시 중앙에 있는 헤인강에 도착했다.

이동 수단은 당연히 배였다. 리버런그에 소속되어 있는 중형급 선박을 발견한 베르덴이 마력을 퍼뜨렸다.

마력으로 감지한 바, 당장 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걸 이용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뭐랄까. 행동이 자연스러운 게, 되게 익숙해 보이시네요?”

그야 비슷한 걸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까.

지금과 다른 차이점을 꼽자면…… 그때는 칼리아가 주도했고 훔친 건 이런 일반적인 선박이 아닌, 하늘을 나는 비행정이었다는 걸까.

아무튼 맥락은 비슷하다.

아드리안과 레이라가 순서대로 갑판 위에 올라섰다.

선박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가 있기는 했지만, 뭐라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기절시켜서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버렸다.

다음으로 레나 주교의 차례.

아무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일 테니 당황스러울…….

“와! 저, 하늘을 나는 건 처음이에요! 마법사분들은 다 이런 식으로 날아다니는 건가요? 진짜 빠르고 재밌네요!”

이상하리만치 긍정적이다.

“뭐,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니까요. 부정적으로 생각해 봤자 좋아질 건 전혀 없잖아요? 적응 못 하고 일일이 당황하기만 할 수도 없고요. 그런 나약한 정신력으로는 주교 같은 거 못 해요!”

레나 주교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상위 주교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태도와 의지였다.

달리 보면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긴 하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당장 멈춰라!!”

도시의 추적이 다시금 이어졌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자는 기사단장인 모양.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더 이상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레나 주교가 승선했다.

직후 갑판 위에 올라선 베르덴이 마도를 개방했다.

바람도, 마력 동력도 필요 없다.

들썩이는 수면……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나아가라.’

촤아아아아아악!

베르덴의 의지로 발현된 거대한 파도가 몰아친다.

그 위에 자리한 배가 삽시간에 앞으로 질주했다.

돛을 펴지도 않은 채, 노를 건들지도 않은 채 선박이 일직선으로 전진했다. 리버런그의 중심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그것이 도시 바깥으로 향했다.

“…….”

쫓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강가에 선 리버런그의 기사단장이 멀어져 가는 배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저, 단장님. 이후는 어떻게…….”

“어떻게 하긴!!”

빨라서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을 죽인 범죄자를 놓칠 수 있을까. 이건 리버런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카일리언스의 문제였다.

“당장 놈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기사단장이 주먹을 쥐었다.

“카일리언스 전역에 놈들을 수배해라.”

수배령이 떨어졌다.

* * *

선박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레이라가 후방을 확인했다.

강의 수면이 출렁이는 것 외에는 고요하다. 방금까지 그들이 있었던 리버런그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졌다.

“설마 파도를 조종해서 배를 움직일 줄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평범한 마법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짓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해낼 줄이야. 역시 교류전을 통째로 날려 버린 괴물다웠다.

아래로 내려온 레이라가 한숨을 돌렸다.

“당장 추적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죠. 곧 있으면 저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신원도 밝혀질 테니. 분명 수배령이 떨어지겠죠.”

시장과 수호자 살해, 주교 납치.

괴랄한 범죄자로서 거액의 현상금이 걸릴 것이다.

레나 주교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부분은 얼마 안 가 괜찮아질 거예요! 사악한 흑마법사가 관여한 것이 확인되었으니 루아스교에서 소명해 줄 테니까요. 주교인 제가 장담할게요!”

“그건 그렇겠지만…….”

레이라가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 손, 괜찮아요?”

검게 변한 오른손.

레나 주교는 아프지도 않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다행히 아무런 통증도 없어요. 그런데…… 확실히 신경이 쓰이기는 해요. 간헐적으로 신성력을 자극하는 걸 보면 저주는 저주인 것 같은데. 제가 알지 못하는 거라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해주는 안 되는 겁니까?”

“계속 신성력으로 몰아내려고 해 봤는데 꿈쩍도 안 해요.”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체 모를 흑마법사…… 적당히 들어맞는 가설은 있다.

다만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근거가 필요하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 단서를 알아낼 차례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레이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물었다.

“루아스교에서 당신에게 의뢰를 한 사람, 혹시 대주교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말할 수…… 어?”

레이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반응이 답하고 있다.

“주군, 무언가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그래.”

강력한 흑마법.

시장까지 간단히 죽여 버리는, 국가 단위의 테러.

다른 누구도 아닌 7인의 대주교가 직접 개입하고 있는 사안.

이 교집합에 해당하는 집단은…… 베르덴이 알기로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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