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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8화 (328/366)
  • 328화 수배령 (2)

    며칠 전 헤인강에 정박되어 있던 선박이 폭발했다.

    새벽을 무너뜨리는 굉음에 거리가 들썩였으며, 그와 비슷한 시각 리버런그의 시청에서도 소란이 발생했다.

    소름이 끼치는 무언가.

    이유 모를 불길함을 감지한 기사들이 곧바로 수색에 나섰고, 이내 감춰져 있던 비밀 공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서 수호자, 산도른의 시체를 발견했다.

    마치 언데드처럼 말라붙은 참혹한 몰골로 참수된 상태…… 다급히 상부에 보고하려 했지만 트로벤 시장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이건 단순한 실종이 아니다.

    수호자를 죽인 누군가에게 시장이 납치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레나 주교도 파악하고 있는 내막이다.

    왜냐하면 요청을 받고 산도른의 시신을 직접 확인한 게 그녀였으니까.

    거기서 저주의 흔적을 발견하여 기사들에게 알려 준 바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은 시민들 사이에 퍼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도시 바깥에서 출몰하는 아인종 때문에 머리가 아픈 와중에, 거리에 사악한 흑마법사가 돌아다닌다는 소문까지 퍼진다면 불안이 극에 달할 테니까…….

    새해가 밝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사건의 범인이실 줄이야! 설마…… 지금 저를 잡아서 입막음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제가 한 건 시신을 확인한 것밖에 없는데! 풀어 주세요!”

    레나 주교가 움츠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공포에 떨며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살짝 글썽거렸지만…… 베르덴과 레이라는 무덤덤했다.

    그야 목소리에서 겁에 질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어떠한 반응도 없자, 슬쩍 눈동자를 굴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쩝, 역시 다 만만치 않은 분들이라 그런지 연기가 전혀 먹히지 않네요. 바깥에 계신 시민분들이라면 통하고도 남았을 텐데…… 흠흠,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레나 주교가 남는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서, 지금 리버런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저희를 의심하지 않는 건가요?”

    “그야 의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저 두 분에 대해서는 한 번 본 게 전부라 잘 모르긴 해도, 레이라 님은 저희 루아스교와 여러모로 관계가 깊잖아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답니다. 게다가…….”

    신성력이 깃든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

    “트로벤 시장님에게 다수의 저주를 걸 분도 아니고요.”

    * * *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건 레이라가 맡았다.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나 주교가 아랫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죽은 모험가의 신체를 운반하다니…… 조금, 충격적이네요.”

    지난 몇 개월간, 리버런그에서 많은 모험가가 죽었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괴물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토벌 경험이 많은 모험가라고 해도 운이 좋지 않다면 아차 하는 사이에 목이 달아나니까…….

    죽은 사람의 끝을 달래는 게 성직자의 역할.

    레나 주교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부디 그들의 영혼이 루아스의 곁에서 안식을 취하길 바랐다.

    ‘그런데 도시에서 버젓이 시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니.’

    신성한 죽음이 더렵혀지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모험가 길드장과 시장을 비롯한 상층부에 의해서……. 아무리 리버런그에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하나 큰 죄책감이 일었다.

    무지는 면죄부가 될 수 없기에.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했어요. 그런 끔찍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건 주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다행히 교에서는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아무리 레이라 님이라고 해도 외부인에게 의뢰를 맡기는 경우는 드문데.”

    “……미안하지만 누구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괜찮아요. 그만큼 교에서 기밀을 중시하고 있다는 문제라는 거니까요.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 그럼,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 거죠?”

    베르덴이 답했다.

    “시장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야 합니다.”

    아드리안이 마검으로 저주를 훼손했으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저주의 잔해가 트로벤 시장을 좀먹고 있다.

    놈이 죽기 전에 몸을 회복시킨 뒤, 레이라에게 의뢰를 한 성직자에게 신변을 넘겨야 한다.

    그렇게 하면 베르덴 일행의 역할은 끝.

    이후는 예정대로 벨디른 공화국으로 가서, 레이라의 모험가 권한을 이용해 중앙 대륙으로 공간을 이동하면 되는 것이다.

    “저주는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지만…… 일단 어떤 건지부터 확인해 볼게요.”

    레나 주교가 성큼 다가왔다.

    손끝에 미약한 신성력을 집중시키고는, 축 늘어져 있는 트로벤 시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접촉할 때마다 시장의 몸이 강하게 들썩였다.

    “……본인을 포함한 주변의 생명력을 강제로 빨아들이는 <생흡>. 일시적으로 이지를 상실시키고 공격성을 높이는 <광기의 전염>에다가 특정 행동을 억압하는 <구울의 저주>…… 거기다가 저주를 은폐하는 <무덤 안개>까지.”

    저주가 무려 네 개나 걸려 있다.

    이런 경우를 직접 목격한 건 레나 주교도 처음이었다.

    “하,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실력이 아니에요. 4위계와 5위계에 해당하는 저주들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집어넣다니……. 그런데 어떻게 시장님에게 저주가 걸려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거죠? <무덤 안개>로 감쪽같이 숨겨져 있어서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텐데.”

    아드리안의 감각 덕분이다.

    그 또한 통상의 경지를 벗어났으니까.

    “그보다 없애는 건 가능한가요?”

    “아, 네. 해주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네 개의 저주 중 멀쩡한 건 두 개. 나머지는 잔재뿐이다.

    저주는 흑마법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것과 종류는 달라도 결국은 마법이라는 것.

    완전히 없애 버리는 건 무리였지만, 마검 케덴스가 가진 고유 효과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

    “따로 필요한 준비는?”

    “딱히 없어요. 신성력으로 잔재를 지워 버리고, 남은 두 개의 저주를 하나씩 정화하면 끝이죠. 굳이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도 당장 치료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후우우우웅.

    베르덴이 곧장 마법진을 작성했다.

    허공에 그려진 마력의 선들이 조화를 이루며 법칙을 갖춘다. 그렇게 만들어진 총 세 개의 마법진이 마차의 내부 벽면에 내려앉았다.

    이제 여기는 밀실이다.

    내부에서 뭘 하든 간에 바깥에선 느낄 수 없다.

    ‘그리고 특별히 비싼 마차까지 빌렸으니.’

    현재 아드리안이 마부가 되어 마차를 끌고 있다.

    단언컨대 느닷없이 병사들이 조사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많든 권력이 크든 간에 상류층에게 손을 대는 건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겠지.

    “와, 부자에다가 마법진까지 쓸 줄 아세요? 저랑 나이도 비슷한데 되게 유능하시네요! 진짜 멋지다! 근데 레이라 님하고는 무슨 관계세요? 혹시……?”

    “……잡담할 시간 없어요. 부탁할게요.”

    “아, 미안해요.”

    레이라의 재촉에, 레나 주교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후우.”

    두 번의 심호흡.

    마음을 가라앉히며 신성력을 끌어모은다.

    따스한 빛이 마차 내부를 환하게 비추는 배경 속에서, 레나 주교가 트로벤 시장의 이마를 양손으로 감쌌다.

    * * *

    기에는 생명이, 마력에는 신비가, 신성력에는 신앙이 깃들어 있다.

    이들 간의 상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성력은 흑마법의 천적이 될 수 있는 걸까.

    그 또한 다른 마법처럼 마력으로 구현되었고 구성되었음이 분명할진대.

    이유는 명료하다.

    마법의 본질은 곧 다양성이다.

    어떠한 성질에 한정되지 않는 마력은 다양한 형태로 뒤바뀌고 무수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신비다.

    그리고 흑마법은 죽음이란 어두운 개념으로부터 탄생한 마력의 신비.

    그렇기에 빛의 개념을 품고 있는 신성력과 대척점을 이룬다.

    단순히 죽음을 거부하는 언데드를 부릴 줄 안다고 해서, 불길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상성 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다.

    모든 건, 이유가 있다.

    파아아아앗!

    온기를 품은 신성이 시장에게 깃든다.

    육신을 파먹고 있는 저주들이 일제히 반응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특히 5위계 이상인, 고위계로 분류되는 <광기의 전염>이 강하게 반발했다.

    “읏……!”

    주춤한 건 잠시였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정화가 시작된다.

    아무리 그녀가 저주 해제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보다 치유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상위 주교의 신성력이다.

    기술이 부족하면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

    의식이 없는 트로벤 시장이 신음했다.

    “끄으으윽……!!”

    검은색에 가까웠던 핏줄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흘러나오던 불길한 기운도 한층 더 옅어졌다……. 저주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부차적으로 절단된 오른팔의 단면 또한 치료되었다.

    스르륵…….

    아드리안에 의해 파괴된 <생흡>과 <무덤 안개>의 잔재가 사라진다.

    이윽고 <광기의 전염>이 정화되며 소멸했다. 마지막 남은 <구울의 저주>가 제법 저항했으나 시간문제였다.

    ‘지금!’

    신성력이 시야를 뒤덮었다.

    빛의 장막에 갇힌 시장의 혈색이 완전히 돌아왔다.

    더 이상 저주는 없다.

    “휴우, 무사히 끝났어요! 이제 시장님의 목숨은 더 이상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뒤를 돌아본 레나 주교가 턱을 치켜세웠다.

    이렇다 할 기적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성력만으로 다수의 저주를 사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건 나름 업적이라 불릴 만했다.

    “아, 그렇게 대단하단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이건 뭐랄까…… 젊은 나이에 상위 주교가 된 천재 성직자로서 아주 당연한 거랄까요? 그래도 감사 인사는 받을게요. 헤헤, 저 엄청 잘했───”

    그 순간이었다.

    “끄어어어어어억!”

    갑자기 시장이 괴성을 질렀다.

    분명히 정화되었던 기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더렵혀진다.

    “……어?”

    당혹스러움을 느낀 레나 주교가 주춤했다.

    완전히 붉게 충혈된 눈동자를 부릅 뜬 시장이 달려들었다. 신성력으로 밀어내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아니, 되레 저주가 신성을 잠식했다.

    “이, 이게 왜……?!”

    “카아아아아아악!”

    시장이 발광했다.

    레나 주교의 목을 부러뜨릴 듯이 왼손을 뻗어 왔으나 닿는 일은 없었다.

    그 사이에 끼어든 베르덴이 시장의 팔을 낚아챘다.

    부여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중력의 힘을 일으켰다. 단련되지 않은 시장의 손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크어어아아아아?!”

    고통을 줬음에도 똑같다.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상태다.

    그런데.

    “주교님!”

    “꺄아아악……!!”

    레나 주교가 손목을 쥔 채 표정을 일그뜨렸다.

    마치 트로벤 시장처럼.

    여전히 저주는 신성력과 떨어지지 않은 채 붙어 있다.

    ‘고통이 전이되는 건가?’

    통찰한 대로 바로 그렇다.

    각각 기와 마력을 다루는 레이라와 베르덴으로서는 저주를 풀 방법이 없다.

    이 저주는 레나 주교의 신성력마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니.

    ‘그럼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밖에.’

    후웅.

    베르덴이 마법진을 해제했다.

    직후 낌새를 느낀 아드리안이 마차를 부수며 들이닥쳤다.

    “주군.”

    “끊어라.”

    단 한마디로 충분했다.

    상황을 파악한 아드리안이 발도했다.

    마검 케덴스가 정체불명의 저주를 일격에 끊어 냈다. 고통에 겨워 하던 레나 주교가 안정을 되찾았다.

    후우우우욱.

    그 순간 부풀기 시작하는 시장의 몸뚱이.

    터질 듯이 확장된 육체에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레이라가 달려와, 시장을 강하게 올려 찼다.

    그 충격에 의해 시장이 마차의 지붕을 뚫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바깥으로 거무죽죽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퍼어어어어어엉!

    고막을 강타하는 파육음.

    주변 건물에 있던 유리창이 죄다 박살 나며 피와 고깃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베르덴이 마력을 넓게 펼쳐 잔해를 막아 냈다.

    당장의 위협은 사라졌다.

    다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세 개나.

    첫 번째.

    ‘방금 그 폭발. 누군가 개입했다.’

    정체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디론가 연결된 마력을 은연중에 느꼈을 뿐.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걸 보면, 아마 저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위적으로 흑마법을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사건의 흑막에게 발각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어?! 저, 저주가 왜 저한테……?!”

    레나 주교의 오른손이 검게 변했다.

    불길한 마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상위 주교의 신성력을 무시하고 저주를 남길 정도라면…… 얕볼 게 아니다.

    ‘그런 수준의 흑마법이라면───’

    한낱 추측에 불과한 가설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가로이 생각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너무 소란스러웠다.

    현재 베르덴 일행이 위치한 장소는 대낮의 거리.

    주변이 한적한 편이기는 했지만, 방금의 굉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끌렸다.

    사방에서 시선이 모여든다.

    도로를 적신 잔혹한 파편이 수십 명의 눈동자에 담겼다. 마침 근방에서 순찰을 돌던 기사와 병사들 앞으로 무언가가 천천히 굴러갔다.

    “……!!”

    끔찍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담겨 있는…… 트로벤 시장의 머리.

    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늦게 베르덴 일행과 시장이었던 것을 번갈아 본 그가 힘껏 소리쳤다.

    “시, 시장 살해범이다!!!”

    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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