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5화 (325/366)
  • 325화 보상 (2)

    공간이 포괄하는 개념은 너무도 방대하다.

    아무리 마력이라는 무궁무진한 힘과 마법이라는 신비가 있다고 해도, 공간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성이 높아도 마찬가지.

    자그마한 변화만을 일으킨다면 모를까, 규모가 커질수록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과거 7위계가 아님에도, 억지로 장거리 공간 이동을 일으키려 했던 마법사 혹은 마도사는 예외 없이 불구가 되거나 사망에 이르렀다.

    ‘공간을 능히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초월자뿐.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반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마도왕의 분신인 관리자마저도 그랬다.

    공간 마법으로 인한 반작용과 마력 소모를 감당하기 어려워 자제했으니.

    만약 보다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면 끝끝내 승패를 뒤집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의 역천을 이루어 일시적으로 초월을 얻었던 상태였다고 해도…… 그것이 공간 마법이 내포하고 있는 위력이다.

    그런데 지금, 그 지식이 베르덴의 눈앞에 있다.

    공간 마법 서적과 공간의 마도.

    둘 다 손만 뻗는다면 닿는 거리에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

    ‘서적을 선택한다면 공간 마법을 배울 수 있다.’

    초석이 되는 개념과 이론을 가다듬고 더할 수 있으며, 체계적으로 저위계부터 시작해 언젠가 고위계까지 이르는 탑을 쌓을 수 있으리라.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

    이 책 한 권에 고위계 마법이 담겨 있지도 않을 테고.

    그래도 무한의 마도를 사용한다면, 후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면 위계를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 마법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 터.

    다만 섣불리 택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도서관장이 지닌 공간의 마도를 고른다면…… 초월자의 마도에서 파생된 마법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성의 이야기다.

    조금이라도 역량이 부족하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기회는 한 번뿐.

    안전과 도전.

    각각의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고 리스크는 극명하다.

    어쩌면 도서관장은, 아니 방주의 주인은 선택지를 보여 주면서 무언가를 시험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고민조차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마도를 택하겠습니다.”

    위험이 클수록 얻는 게 많다.

    그것이 베르덴이 걸어온 길이었다.

    쉐오른 장로가 승낙했다.

    “존중하지. 그럼 마도를 어떤 식으로 보여 주면 되겠나?”

    “마도를 개방할 때의 마력회로. 그리고 파생 마법을 시전할 때의 마력 흐름을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마력 흐름을 재현하겠다는 건가? 심상과 같은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마도로 대체하고 보완하면서? 자칫하면 마력회로 전체가 뒤틀릴 텐데…… 터무니없군.”

    기가 차다는 듯 실소했다.

    당연하게도 비웃음은 아니었다.

    “믿기 어렵지만 혹시나 싶은 것이……. 나도 역시 마법사인가 보네. 오랜만에 주체 못 할 호기심이 들끓는군. 그럼 내 손을 잡게.”

    장로가 왼팔을 내밀었다.

    천장을 바라보는 손바닥 위에, 베르덴이 오른손을 얹었다.

    “바로 시작하지.”

    심장이 강하게 울린다.

    그로부터 방출된 초월자의 마력이 마력회로를 세차게 질주했다.

    ……거대한 힘이다.

    개개인마다 마력의 성질이 다르듯, 다른 초월자들과 다른 미증유의 격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다만 압도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의 베르덴에겐 초월이 담겨 있기에.

    ‘느껴진다.’

    장로의 마력이 전신에 걸쳐 아주 균일하게 들어차 있다.

    가슴, 어깨, 복부, 다리, 팔, 심지어 손끝까지.

    마력회로의 모든 굴곡을 무시하고, 전신에 퍼져 있는 마력의 밀도는 어떠한 오차도 없이 동일했다.

    완전한 균형.

    변화는 곧바로 찾아왔다.

    ───!

    공명하는 파동.

    순식간에 증폭된 마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었다.

    쉐오른 장로가 오른손을 보였다.

    그의 손 위에 놓인 공간이 강하게 비틀렸다.

    “어떤가. 따라 할 수 있겠나?”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베르덴이 집중력을 극한까지 높였다.

    쉐오른 장로가 그러했듯 심장에 담긴 마력을 전신에 균일하게 퍼뜨렸다.

    ‘……!!’

    마력 조작을 넘어선 워 메이지의 마력 제어.

    그 일부를 손에 넣었음에도 견디기 어려운 작업이다.

    마력 자체를 다루는 것과는 별개로, 마력회로의 넓이를 세밀하게 측정하면서 조율까지 하는 건 경험하지 못한 일.

    툭, 투둑.

    굵은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혀 떨어진다.

    눈가와 입술이 잘게 떨렸다.

    피로감이 닥쳐오며 현기증이 오는 듯했으나…… 마침내 균형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점일 뿐.’

    다음으로 모든 마력을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실수는 금물이다.

    급격한 불균형으로 인해 마력회로에 반작용이 찾아올 테니.

    물론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어떤 결과조차 얻지 못한 채 끝내는 건 싫었다.

    ‘반드시 이룬다.’

    가능성.

    그를 붙잡는 건 베르덴의 삶 그 자체였다.

    두근.

    맥동하는 심장. 무한이 담긴 심상.

    마도와 마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마력회로와 공명함과 동시에 마력이 증폭되었다.

    “큽……!”

    터져 나오는 숨을 강제로 억눌렀다.

    아주 완벽하지 않았기에 찾아온 반동이지만───

    ‘───충분하다.’

    으득.

    베르덴이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순류(順流)를 거역하는 억척같은 의지. 멈추지 않고 비어 있는 왼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쩌적…… 쩌저적……!

    좁쌀 같은, 아주 미세한 공간의 뒤틀림.

    쉐오른 장로와 비교하자면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는 크기였으나 전율이 일었다.

    마법진으로 공간 이동진을 구현한 적은 있어도, 공간 현상을 직접 일으킨 건 베르덴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재현은 성공했다.

    그래서 이걸로 만족하는가?

    ‘그럴 리가.’

    흐름은 기억했다.

    한번 경험했으니 이번에는 더 완벽할 터.

    거센 흐름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

    마력을 더욱 끌어모아 집중함과 동시에, 인위적으로 마력회로를 확장시키기까지.

    쩌저적…… 쩌저저저적!

    공간이 유리처럼 깨진다.

    미약하던 자색의 빛이 보다 강렬하게 번쩍였다.

    아직이다.

    아직 부족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마력이 소모되고 있지만 여력은 있다.

    역천으로 재구성한 육체, 그 심장에는 지금 가진 것 이상의 마력이 잠들어 있었으니까.

    분신이었던 마도왕과의 격전.

    두 번째 역천을 이루면서 단 10분간 개방할 수 있었던 초월의 경지이자, 준초월자인 현재조차도 해금되지 않은 미증유의 마력.

    전력에 전력을 다한다.

    부족하다면 만들어서라도 힘을 더하겠다.

    직감은 멈추라고 말한다.

    무시했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때다.

    쿠구구구구……!

    공간이 요동친다.

    그 여파에 의해 방에 있던 가구들이 격하게 흔들렸다.

    천장에 걸려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벽면에 자리했던 시계와 여러 장식품이 낙하했다.

    그런 소란 속에서 베르덴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격랑이 이는 내면.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마력의 바다.

    이내 한쪽으로 세계의 축이 쏠리며, 하늘까지 닿는 크기의 해일이 굽이치는 순간, 감춰져 있던 밑바닥이 드러났다.

    마력의 심연.

    그 안에는───

    “───그만!”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그를 듣는 순간 베르덴의 정신이 각성했다.

    화아아아아아악!

    집중되어 있던 마력이 터져 나갔다.

    강력한 물리력에 의해 산산조각 나는 사물들. 폐허가 되어 버린 방에는 베르덴과 쉐오른 장로만이 서 있었다.

    “……! 허억, 허억……!”

    숨이 가쁘다.

    호흡이 격하게 흐트러졌다.

    베르덴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에 탈력감이 오는 것과 더불어, 심장과 머리, 마력회로 전체가 뻐근하다 못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그 모습에 쉐오른 장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야 멈췄군. 몇 번이나 불렀음에도 듣지 못한 걸 보니 아주 훌륭한 집중력이지만…… 그대로 이어 나갔다면 화를 면치 못했을 걸세. 마력회로는 물론이고 전신에 걸쳐 심대한 타격을 입었을 테지. 공간 속성은 그리 억지로 다루는 게 아닐세.”

    직감을 무시한 대가였다.

    베르덴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네. 설마 유의미한 성과를 얻고도 멈추지 않을 줄이야……. 자네가 레그리트보다 더한 고집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간과한 내 잘못이지. 뭐, 어쨌든 놀랍군.”

    자줏빛 눈동자에 경악이 어렸다.

    “타인의 마도에서 파생된 마법을 재현하는 게 진짜로 가능할 줄이야. 거부감이 없는 걸 보면 공간 속성에 대한 적성도 매우 높고…… 자네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 마법에 대한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게 분명하겠지.”

    쉐오른 장로가 다가와, 베르덴의 어깨를 토닥였다.

    “무리하는 건 괜찮네. 그건 인간이 가진 습성이기도 하고, 나도 소싯적에는 무모한 삶을 살아오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인생을 살면서…… 앞만 쫓지 말고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초월자의 과거.

    거기에는 어떠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

    “뭐, 내 경우에는 그랬다는 걸세. 자네라면 다를지도 모르지. 사람마다 살아가는 인생은 다르니까. 그냥 무리를 해도 정도껏 하라는 걸세.”

    장로가 가볍게 마력을 일으켰다.

    내팽개쳐져 있던 공간 마법 서적을 잡고는, 베르덴에게 건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처음부터 뭘 선택하든 간에 둘 다 줄 생각이었네만. 하하, 오해했다면 미안하군.”

    장난스러운 노인의 웃음.

    “어쨌든 이로써 보상을 전부 전달했으니, 내 역할은 끝났군.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네. 아, 방을 옮기는 건, 리스너에게 말하면 해결해 줄 테니 걱정은 말고.”

    쉐오른 장로가 발걸음을 옮겼다.

    “꾸준히 정진(精進)하게, 애셔. 자네는 젊으니.”

    공간이 열린다.

    충고를 남긴 도서관장이 저편으로 사라졌다.

    적막이 찾아왔다.

    베르덴이 손끝으로 서적을 어루만졌다.

    최상위 속성, 공간 마법.

    ‘드디어 손에 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초월자의 마도까지 경험했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걸 넘어서 공간이 무엇인지 몸소 깨달은 것이다. 역천의 육체에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발로크 베시아스.

    이로써 놈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방주의 교류전.

    이곳 아크에서 많은 걸 얻었다.

    ‘하지만 아직 떠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용건이 남아 있다.

    하나는 리스너를 통해 전달할 생각이지만…… 나머지는 레그리트에게 주는 편이 낫겠지.

    물론 당장은 아니었다.

    털썩.

    베르덴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일단 좀 쉬어야겠다.

    * * *

    쉐오른 장로가 라이브러리로 돌아왔다.

    아크의 도서관을 지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삶. 아주 오랫동안 지켜 왔던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수많은 지식이 담긴 책들이 훤히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근심이 사라지곤 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애셔.’

    초대 마도왕의 후계자일지도 모르는 존재.

    마치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이 개척한 마도의 일부를 모방하여 단번에 공간 마법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뻤다.

    경악스러웠다.

    마도를 모방해도, 설령 가져간다고 해도 좋았다.

    그러한 인재를 성장시킬 수 있음에 더없이 만족한다. 가련한 인류를 위해 왔던 위대한 방주의 장로로서.

    하지만 별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젊은 생명력과 방대한 마력의 불균형.

    마법적인 상식을 보란 듯이 위배하는 육체.

    ‘그리고 마력 속에 감춰진 무언가까지.’

    문득 리스너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심지어 저 마력의 심연에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네. 아니,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을까.

    ───그게 무슨…….

    ───나로서도 알 수 없네. 너무도 깊어, 이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가 없으니. 하지만 뭐랄까…… 굳이 말하자면 기존의 마도사와 비교해 경지가 애매한 듯하네. 마도를 개척하지 못한 것 같다고나 할까? 분명 저 존재감은 마도사임이 분명할진대.

    당시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방금 그 편린을 마주했다.

    케르노든 가문의 고대 혈통, 근원의 고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쉐오른 장로의 눈동자에 정확히 비쳤다.

    검붉은, 마력의 심연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나 그로써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육체에 초월이 깃들었다.’

    마도사이되 마도사가 아닌 상태.

    달리 말하자면 초월자이되 초월자가 아닌 경지.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미 애셔의 몸은 초월에 다다랐다.

    반면에 정신적인 깨달음이 부족하기에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 말인즉슨 마도를 온전히 깨우치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런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으나 이렇게 실재한다.

    ‘절반의 초월자.’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였다.

    공간을 다루는 초월자, 쉐오른 장로는 확신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탄생하겠군. 새로운 마법의 초월자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정신적인 깨달음은 간단하고도 어려우니.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애셔가 무엇을 깨닫든…… 그것이 인류를 위하기를.

    * * *

    방주 회의는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그 대신 사고를 일으킨 레그리트의 징계가 먼저 논의되었고, 그 결과는 단 하루 만에 당사자에게 전달되었다.

    레그리트가 소파에 누워 칭얼거렸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주시자와 조율자의 의무를 도우라니…… 이거 너무한데.”

    “그 정도면 가벼운 거 아닌가?”

    “걔네들이 하는 일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부분 아크 내에서 처리하는 것들뿐이다. 탐색자인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의무지. 뭐, 그러니 징계로 내린 거겠지만.”

    그녀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맞은편에 자리한 베르덴.

    등받이에 몸을 누이고 있는 그가 말했다.

    “줄 게 있어서 찾아왔다.”

    “호오, 선물이라. 상당히 적극적이군그래.”

    레그리트가 킥킥거렸다.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긴 베르덴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그나저나 대체 뭘 주려…… 고…….”

    웃으며 말을 잇던 그녀가 순간 얼어붙었다.

    베르덴의 양손에는 각각 스태프와 지팡이가 쥐여 있었다.

    고대의 시련에 도전했던 세 사람 중 둘.

    한 명의 후보와 한 명의 선장이 남긴 유품이다.

    마도왕의 실험실, 그 관리자의 부탁을 받은 골렘 알파가 챙겨 준 물건들이었다.

    “…….”

    레그리트가 몸을 일으켰다.

    말없이 지팡이와 스태프를 건네받고는 유심히 살펴봤다.

    “이건 테렌스의…… 지팡이가 맞군. 다른 하나는 과거에 마도왕의 무덤에 도전했던 후보의 것이고. 마도왕의 무덤에서 가져온 건가?”

    “그래.”

    “그런데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네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아니지만……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어도 되고, 하다못해 판다고 해도 어딜 가든 간에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텐데.”

    “뭐, 마법사의 도리라고 해 두지.”

    베르덴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애초부터 방주에게 돌려줄 생각이기도 했고.

    “도리라…… 그런가. 그런데 혹시 다른 한 명은 없었나? 테렌스가 도전한 직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무덤에 찾아갔던 후보인데.”

    “마찬가지로 유품은 가지고 있다.”

    1차 동력실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한 마법사, 칼라드.

    그가 사후에 남긴 수첩과 같은 물건은 아공간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건 리스너에게 직접 넘겨줄 예정이지.”

    “그래…… 그 후보는 리스너가 담당했던 자이니, 그게 맞겠지. 하, 정신이 확 깨는군.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걸 받았어. 전해 줘서 고맙다, 애셔. 진심으로.”

    선장, 테렌스와 다른 후보.

    그들이 사용했던 지팡이와 스태프를 소파 옆에 놓았다.

    베르덴을 직시한 레그리트가 눈을 빛냈다.

    “역시 너라면 아깝지 않겠어.”

    “뭐?”

    “아니, 그냥 혼잣말이다. 그나저나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뭐 달리 필요한 거라도 있나?”

    필요한 거?

    “이래 봬도 나는 탐색자다. 미지를 밝히는 게 의무인 만큼 아는 게 상당히 많지. 그러니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도 좋다. 내가 개인적으로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말해 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니 막상 떠오르는 게 없는데.”

    “당장 생각이 안 난다면 다음으로 미뤄도 좋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답해 주지.”

    흐음, 베르덴이 고민했다.

    나중을 기약한다고 해도, 선장인 레그리트를 언제 보게 될지 모르니…….

    “그렇다면, 미개방된 마법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보상으로 받은 [다원의 마법서]를 위해서인가. 알고는 있지만…… 그건 좀 곤란하군. 방주를 통해서 얻은 정보라, 내 마음대로 알려 주기가 어렵다.”

    “그럼 마력 제어 활용법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

    “아, 그건 아르나크 제국의 기밀이라…… 좀.”

    “되는 게 없군.”

    “흐하하핫. 이거 참, 민망하군.”

    전부 말하기 어렵다니 어쩔 수 없다.

    베르덴이 자리를 파하려던 찰나, 문득 아공간에 있는 애물단지를 떠올렸다.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맞닥뜨린 흑마법사 집단, 주검의 영광.

    교구를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자, 베르덴이 처음 마주했던 흑마도사, 백골의 비올라에게서 얻은 전리품.

    황금의 대퇴골과 읽을 수 없는 고서.

    위 두 가지를 보이자, 레그리트가 흥미를 보이며 <감정>을 사용했다.

    “흐음, ‘두개골, 갈비뼈, 대퇴골. 세 가지 황금 유골을 모으는 자에게 황금의 길이 열리리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황금의 뼈라니. 대충 그럴듯한, 거창한 의미가 새겨진 것만 봐도 딱 고대의 유물이군.”

    “이것과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나?”

    “그건 아니지만, 이런 유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인이 있다. 중앙 대륙에서 활동하는 ‘고물상’이라는 자인데, 상대를 속이고 헐값에 유물을 사서 아주 비싸게 팔아 버리는 지독한 사기꾼이지.”

    하지만 취급하는 물건만큼은 진품.

    그래서 악질적이다.

    “몇 년 전까지는 정착하지 않고 떠돌다가, 중앙 대륙에 있는 ‘이데라트 연맹국’에 자리를 잡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연맹국이라면…….”

    “다종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지. 중앙 대륙에는 인간 말고도 엘프나 수인도 살고 있으니까. 가끔가다 드워프도 보이기도 하고.”

    베르덴은 엘프를 접한 적이 있으나, 다른 종족은 그렇지 않았다.

    수인과 드워프.

    책 또는 소문으로 접한 게 전부였다.

    “고물상은, 찾겠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꽤나 요란스러운 놈이니까. 연맹국에서 대충 수소문만 해도 찾을 수 있겠지. 어때, 도움이 됐나?”

    “글쎄, 조금은.”

    얻었을 당시 사령의 기운으로 봉인되어 있던 황금의 대퇴골.

    그를 해제한 조제프 대주교를 통해, 허무맹랑한 유물이 많다고 들은 바 있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흐하핫. 그렇겠지. 유물이라는 게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대체로 실망만 커지는 법이니까. 뭐, 그중에는 아주 가끔씩 진짜도 나오기는 한다만.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레그리트가 고서를 집어 들었다.

    베르덴이 알지 못하는 고대의 언어로 가득했으나, 그녀는 읽을 수 있다는 듯 강하게 노려보다가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이거…… 어디서 봤나 했더니. 하, 아주 오랜만에 보는 문자로군.”

    잠시 후, 책을 덮었다.

    “먼저 책의 정체부터 말하자면…… 이건 동화다.”

    “동화?”

    “그 있잖나. 어떤 꿈을 가진 주인공이 산전수전 다 겪고, 이러저러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흔해 빠진 이야기. 딱 그거다. 숨겨진 게 하나도 없는 아주 평범한 책.”

    “…….”

    베르덴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설마 고대의 언어로 적힌 동화였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마법사의 피가 차게 식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애셔.”

    “……?”

    “책의 내용은 별 볼 일 없어도, 이 책에 담겨 있는 고대 문자는 다르다. 이건 아주 오래전 역사에서 ‘지워진’ 어떤 국가의 문자거든.”

    “지워졌다고?”

    “그래, 지워졌지.”

    레그리트가 말을 이었다.

    “약 800년 전, 루아스교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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