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3화 (323/366)
  • 323화 워 로드 (3)

    아르나크 제국은 특수한 방법으로 기와 마력이 상충되는 반작용을 억누를 수 있다.

    물론 누구나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고,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적합자만이 시도할 수 있으며 이윽고 경지를 높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워 메이지에게도 한계는 있다.

    신체 강화와 마법을 동시에 펼칠 수는 있어도, 그 두 가지 힘을 합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했다.

    그랬다가는 기껏 억누른 반발력이 폭발하여 중상을 입거나 즉사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그렇기에 레그리트는 특별하다.

    본인이 개척한 마도로, 성질이 다른 힘을 완전히 융합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어떠한 부작용조차도 없이.

    워 로드.

    제국의 정점 중 하나.

    황금의 광채를 두른 레그리트가 진격한다.

    밀도 높은 단단한 섬의 대지에마저 각력을 이기지 못하고 족적이 새겨졌다.

    동시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처음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명뢰>

    샛노란 벼락.

    그 줄기에 맞닿은 사물을 파괴하는, 강력한 물리력을 가진 고유의 번개.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히던 도중, 상공에서 거대한 낙뢰가 떨어지며 벽을 형성했다.

    파지지지지직!

    두 마법이 상쇄된다.

    바위에 붙은 이끼가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위계에 없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별다른 연산도 하지 않고…… 저게 애셔의 마도인 건가.’

    그것도 한 속성에 국한된 게 아닌 모양.

    언뜻 봐도 다른 마도사와 현격하게 다른, 엄청난 범용성을 지닌 게 틀림없었다.

    마치 천재지변처럼 느껴진다.

    생각했던 가설이 점점 정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마도왕,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는 마도국을 세우고 왕위에 오르기 이전, 한때 천변의 마도사라 불렸다고 전해지니.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마도왕의 후계자.

    상대를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희열이 차올랐다.

    그야말로 미지로 둘러싸인 존재이니.

    <전류가속>

    파지직.

    마도를 이용해 번개의 특성을 육체와 합성했다.

    빛무리가 된 그녀가 도약하고는 벼락처럼 쇄도했다.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던 베르덴이 오리엔트로 지면을 두들겼다.

    솟구친 대지의 벽이 울렸다.

    쩌적, 갈라진 틈새를 억지로 무너트린 레그리트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도중에 <비행>까지 섞어 가며 변칙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쥐고 있던 스태프가 변형되더니 철퇴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아아아압!”

    기예, 진천振天.

    콰아아아아아아앙!

    순간 지면이 내려앉으며, 주위에 있던 대지가 불규칙하게 솟아올랐다. 스치듯 피하는 데 성공한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워 메이지는 전부 기예를 쓸 줄 아는 건가?”

    “가능한 건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는 없지.”

    철퇴가 번쩍인다.

    어느새 레그리트의 손에는 황금의 쌍검이 쥐여 있다.

    “보아하니 마도로 마법의 연산 과정을 생략하더군. 확실히 그런 상대를 마법만으로 상대하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제부터는 대응하기 힘들 거다.”

    후욱.

    벼락 소리와 함께 레그리트가 사라졌다.

    거의 아드리안과 흡사한 속도였다. 번개의 잔상을 따라가는 대신 곧장 대지를 조작하여 위치를 이동했다.

    번개의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놓쳐도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무게중심을 이용한 그녀가 극단적으로 몸을 기울였다.

    귓가를 스치는 우레 소리.

    돌진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참격.

    ‘내 감각을 넘어섰다.’

    베르덴의 행동은 즉시였다.

    마력을 끌어모아 혹한의 폭풍으로 전방위를 휩쓸었다.

    서리에 노출된 레그리트의 입김이 차갑게 얼어붙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쌍검이 변형된다.

    사람만 한 거대한 대검을 양손으로 쥐고 내리쳤다.

    섬화閃華.

    황금의 검기.

    얼음 폭풍을 반 토막 낸 그것이 베르덴을 겨냥했다. 피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하며 오리엔트를 방패로 삼았다.

    쿠드드드드득!

    “……!”

    거친 힘이다.

    밀려난 베르덴의 다리가 섬의 바닥에 긴 상흔을 넘겼다. 금속을 통해 전도된 벼락 줄기에 신경이 자극되었다.

    마력과 기로 구현된 기예.

    확실히 다채로우면서도 강력하다.

    여태까지 무수한 경험을 쌓았음에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술에, 베르덴은 놀라워하면서도 파훼법을 모색했다.

    ‘……찾았다.’

    <균열의 연청>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전격의 파동.

    종류가 같으면서도 성질이 다른 푸른 벼락과 황금의 번개가 맞부딪쳤다. 예상대로 약화된 검기의 압력.

    스태프를 비틀어 옆으로 치워 버렸다.

    오리엔트를 높이 들었다.

    첨단에 박힌 오브에서 생성된 벼락이 먹구름에 스며들었다.

    우르르르릉…….

    낮게 울리는 진동.

    수많은 갈래로 쪼개진 전격의 제어권을 전부 손에 쥔 베르덴이, 깊이 호흡을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아래로 모조리 방출시켰다.

    번쩍이는 푸른 섬광.

    ───콰광! 콰과광! 콰과과과광!

    무수한, 작은 낙뢰가 일대를 강타했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빛이 터져 나왔다. 섬의 일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베르덴이 상황을 주시했다.

    ‘느낌은 있었다.’

    레그리트는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걸까, 베르덴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하려 했을까.

    아마도.

    ‘뒤를 노리겠지.’

    파지지직!

    이번엔 단창을 든 레그리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리는 것은 분명히 왼쪽 어깨.

    이미 움직임을 예상했던 베르덴이 손안에 마력을 응축시켰다.

    <아케인: 마력 융합>

    섬뜩함이 들 정도로 집중된 마력.

    피할 수 없는 위치를 짚고, 팔을 내뻗어 마력을 폭발시켰다. 대각선을 관통한 격류가 레그리트의 지척에 다다랐다.

    ‘끝났…….’

    그때였다.

    갑작스레 레그리트의 육신이 빛으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수백 개의 작은 황금 벼락들이 다시금 뭉치며 그녀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야 한 방 먹이겠군.”

    원소 융합.

    레그리트가 가진 비장의 수단 중 하나.

    “……!”

    베르덴의 뒤를 점거한 그녀가 단검을 휘둘렀다.

    파지지지지지직!

    선명하게 모여든 강렬한 벼락이 베르덴을 강타했다.

    * * *

    제대로 먹혔다.

    목적을 달성하고 멀찍이 뒤로 물러선 레그리트가 숨을 내쉬었다.

    “후우…….”

    피가 빠르게 흐른다.

    갑옷 안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런 격전을 치르는 건, 비장의 수단까지 사용한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녀와 같은 로드급의 강자와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흔치 않았으니까. 그건 다시 말해, 애셔가 최소한 그런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방주 후보, 어린 마도사와 접전을 이룬다.

    누군가 본다면 선장으로서 체면도 못 세우고, 워 로드의 위신도 손상되었다고 부르짖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레그리트는 그를 인정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케인>의 기술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선보이는 데다가, 저런 마도까지 개척하였으니.

    ‘차후의 미래에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가는군.’

    질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관심이 더욱더 깊어졌다.

    그가 펼칠 미래 또한 미지였으니까.

    레그리트는 탐색자다.

    미지를 탐구하는 것이 그녀의 낙이자 의무였다. 목 안쪽에서 제멋대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억누른 그녀가 앞을 바라봤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았다.

    열기에 검은색으로 물든 대지 위, 베르덴이 서 있었다. 아주 멀쩡하게.

    역시나.

    “그 백금의 로브. 드래곤을 소재로 만들어졌군. 설마…… 마도왕의 무덤에서 얻은, 마도왕 본인의 로브인 건가? 고대 아티팩트?”

    “…….”

    베르덴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레그리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반복해서 갸웃거리만 할 뿐이었다.

    의도적인 무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아직 교류전은 끝나지 않았으니.’

    서로를 죽이지는 않는다.

    대신 둘 중 하나가 포기를 선언하거나 전투 불능이 되면 끝. 그게 방주 후보들이 치르는 교류전의 규칙 중 하나였다.

    그러니 마무리부터 짓는다.

    ‘어지간해선 저 로브의 저항력을 뚫기는 어려울 테니…… 어쩔 수 없이 머리 쪽을 노려야겠군.’

    장기전은 불리하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상대에 마력량의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다시 한번 빈틈을 잡아내는 수밖에.

    결정을 내린 레그리트가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스태프의 형상을 바꾸며, 이번에는 넓은 날을 가진 창을 만들어 냈다. 무슨 마법이 오든 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응?”

    그런데 상대는 미동조차 없었다.

    베르덴은 여전히 자신을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지경이 되니 조금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 핏줄이 돋아난 레그리트가 고함을 지르며 벼락이 깃든 창을 내질렀다.

    “다른 데 정신 팔지 마라!”

    명치를 향한 창끝.

    드래곤의 소재로 만든 로브니 뚫리지는 않겠지만 저항력이 있다고 해도 상당한 충격이 일 터.

    그러던 그때였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군.”

    베르덴이 중얼거렸다.

    직후 그의 몸이 푸른 벼락으로 변형되었다.

    레그리트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무언가 닿는 느낌조차 없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원소 융합.

    눈을 부릅뜬 레그리트가 경악했다.

    “이건 설마 내…….”

    그게 전부가 아니다.

    후웅.

    오리엔트의 첨단에 마력이 모여든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집중되는 것을 넘어선 마력이 푸른 창을 만들어 냈다.

    마력 조작을 넘어선 마력 제어.

    제국의 워 메이지가 사용하는 기술이 베르덴에게 깃들었다.

    “어떻게……!”

    당혹감에 물든 목소리.

    사아아아악!

    오리엔트가 대기를 찢어발긴다.

    그 끝에서 터져 나온 충격이 그녀의 어깨를 강타했다.

    * * *

    베르덴의 마력 조작은 예전에 극한에 다다랐다.

    역천을 이루기 위해서, 마탑의 보물고에 있는 마탑주의 마법진을 파훼하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수 년간 마력의 실을 단련해 왔기에.

    ‘그런데 그다음이 있었다니.’

    베르덴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탑 내부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해박해도, 그 외의 경험과 지식은 보잘것없었기에 생각이 제한된 것이었다.

    그래서 놀라웠다.

    레그리트가 보여 준 기술.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여 상대의 마법을 와해하거나 궤적을 비트는 것, 기를 깨우친 자들처럼 형태를 고정하여 경화시키는 등.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던 마력은, 그 이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레그리트의 마도까지.’

    원소와 육체를 일체화하는 고도의 파생 마법.

    예상을 벗어났다.

    대책 없이 빈틈을 내주었고 정확히 마법에 적중당했다.

    마도왕의 로브 [아인베르]가 아니었다면 중상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하다. 지금조차 전신이 저릿하니.

    하지만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지근거리에서 느낀 레그리트의 마력회로.

    마력 제어를 사용할 때의 흐름과 원소와 융합된 직후의 흐름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역산하여 그 뿌리를 찾아냈다.

    베르덴의 마도 <무한>은 가능성의 집합체.

    의지를 마법으로 구현하는 것이 본의.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마도조차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물론 마도를 온전히 모방할 수는 없다.’

    마도는 곧 마도사가 이룩한 삶이자 개척한 길.

    그 기나긴 인생을 전부 경험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마도에서 파생된 마법은 가능하다.

    관리자에게서 마도왕의 마력 운용법 <아케인>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베르덴의 마법 이해력.

    그 재능은 초월자조차 탐내 왔다.

    “흐하하핫……! 설마…….”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향하자 레그리트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설마 내 원소 융합을 재현할 줄이야……! 거기다 워 메이지의 마력 제어까지…… 애셔, 네 마도는 대체 뭐지? 다른 사람의 마도를 따라 하는 건가? 원리가 무엇이지?”

    반복해서 마도를 묻는다.

    평소라면 답하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교류전.

    덕분에 배웠으니.

    “가능성이다.”

    “가능성……?”

    명확하지 않은 심상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해가 갔다.

    그야말로 처음 마주하는 형태의 마도였기에, 듣기만 해도 광활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게 아니라면 저런 불가해한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었을 터.

    “가능성이라…… 그래, 그렇군.”

    숨을 내쉰 레그리트가 내면을 가라앉혔다.

    “확실히 이대로 가면 내 승산은 희박하겠지. 아니, 아마 확정적일 거다. 마력 제어까지 얻은 데다가 내 비장의 수단마저 가져갔으니…… 하핫,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군. 이런 상황은 생전 처음이야.”

    자조하던 레그리트가 고개를 들었다.

    “진심으로 재밌었다, 애셔. 교류전은 네가 이겼다. 뭐, 가능하다면 나도 마지막 수단까지 사용해서 최대 전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말이야.”

    시간?

    의문을 느낀 순간, 섬 중앙에 마력이 물결쳤다.

    보랏빛 파동.

    공간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까지 하거라, 레그리트.”

    방주의 장로.

    그들이 찾아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