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20화 (320/366)

320화 증명

베르덴이 읽어 낸, 소환 마법의 메커니즘은 총 세 단계.

디스펜서라 불리는 특수한 마법 물품.

그 안에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충분히 불어넣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어떠한 형태에 대해 선명하게 떠올린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섬세한 마력 조작 능력이다.

집중력과 시간을 상당량 소모하여, 시각적으로 마력이 보일 정도로 밀도를 극한으로 높이며 떠올린 심상을 현실로 구체화한다.

명확하게 경계를 구분 짓고, 틀 안에 마력을 가득 채우는 과정.

마지막으로 공간 속성을 활용하여 마력으로 형성된 그것을 디스펜서 바깥으로 내보내면 완성이다.

‘획기적이군.’

베르덴에게도 생소한, 유례없는 발상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여실히 느껴진다.

전용 마법 물품을 제작한 것도 그렇고.

두 개의 공간을 열어 디스펜서 내부에 있는 마수를 온전히 바깥으로 꺼낸 것도 그렇다.

그리고 제어를 벗어난 순간, 마력이 퍼져 나가며 밀도가 낮아지는 걸 이용하여 소환한 몸집을 키우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

바탕이 되는 틀을 부수지 않으려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터.

‘무엇보다…….’

투기장에 나타난 로어 울프의 아종.

겉모습은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진짜 마수는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건, 여기 있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든다.

‘어떻게 소환체에게 정신을 깃들게 한 거지?’

아카데미의 마법사와 교감을 나누고 있는 마수의 반응과 몸짓이 자연스럽다. 마치 개별적으로 의식이 나뉜 것처럼.

시체와 같은 걸 매개체로 삼아 언데드를 소환하는 흑마법과는 종류가 다르다.

오직 마력만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일이니까. 그건 불가능을 넘어 아예 마법이라는 범위 자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세상에 독립적인 생명 창조의 개념은 없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기적이 있다는 루아스교마저도 거머쥐지 못한 위업이니.

‘그 감춰진 원리를 이해하는 게 소환 마법을 푸는 열쇠가 되겠군.’

상당히 흥미가 동한다.

다만 아직 다른 마법 종류에 비해서 단점은 많아 보인다.

마법계를 뒤흔들 수는 있어도, 공간 속성이 포함된 이상 보란 듯이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하나 새롭게 탄생한 만큼 발전 가능성은 무궁하다.

지금은 마수를 소환했으니…… 언젠가는 이형종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드래곤이라든가.’

물론 당장은 허무맹랑한 소리에 불과하다.

그래도 아주 이상(理想)적인 목적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거창한 꿈을 갖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베르덴이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여인이 순서를 진행했다.

“준비를 마쳤으면,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서 교류전 상대를 지목해라. 누구도 거절하는 일은 없을 테니 자유롭게.”

“음…….”

마법사, 테오도르가 두리번거렸다.

각 후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었으나 필요한 건 증명.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다. 적당히 강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 소환 마수, 울프레드가 가진 힘을 선보이는 걸 목적으로 삼았다.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저분으로 하겠습니다.”

그가 선택한 건 핏빛검, 레이라.

방주 후보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 미스릴 등급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모험가 길드의 유망주.

그야말로 최악의 대진 상대였다.

──────쿠웅!

섬에서 낙하한 레이라가 투기장에 착지했다.

선혈처럼 붉게 빛나는 검을 뽑으며, 얼굴을 가린 투구 너머로 테오도르와 마수를 응시했다.

“언제든 시작하시죠.”

기세에 눌린 테오도르가 움찔거렸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찔러 의식을 자극한 그가 소리쳤다.

“울프레드!”

[크롸아아아아아!]

포효하며 돌진하는 거대한 늑대.

그를 마주한 레이라가 천천히 발을 떼었다.

* * *

마수의 근력은 평범한 인간과 비교를 불허한다.

로어 울프 또한 마찬가지다.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을 보일 수 있는 각력.

태생부터 지니고 있는 치악력은 능히 갑옷째로 몸통을 으스러뜨리며, 날카로운 발톱은 근육과 뼈를 간단히 베어 가른다.

그리고 성대에서 발현되는 특유의 포효.

물리력을 가진 파동은 내부에 파고들어 장기를 터뜨리기에 치명적이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로어 울프는 크기가 클수록 강력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소환된 로어 울프의 아종이 보통의 개체와 다르다는 건 자명하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그뿐이다.

콰앙! 콰아앙! 콰드드득!

지면을 진동시키는 울림.

스쳐 지나간 발톱이 돌로 이루어진 바닥을 긁자 불꽃이 튀었다. 직후 아가리를 닫았으나 감촉은 없었다.

레이라는 이미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여유롭게.

교류전이 시작된 지 단 1분.

짧은 시간 동안 울프레드와 맞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로어 울프보다 강하기는 하네요. 그러한 마수를 단신으로 소환한 당신의 마법은 놀랍긴 하지만…… 별개로 단점이 너무 명확하네요.”

“다, 단점이요?”

그렇다.

크게 분류하자면 총 네 가지.

“우선 하나, 로어 울프와 움직임이 완전히 동일해요.”

레이라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 위로 거친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스치지도 않는 분명한 간극.

울프레드가 이리저리 재빠르게 뛰어다니며 일방적으로 사각을 노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울프레드의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무리한 움직임에 의한 반동이었다.

몸을 회전시킨 레이라가 발뒤꿈치로 마수의 몸통을 강타했다. 충격과 함께 체중이 쏠린 마수가 나가떨어졌다.

유의미한 피해는 없다.

그래도 화를 돋우기는 충분하겠지.

“둘, 로어 울프의 습성도 그대로 갖고 있고.”

[카아아아아아아아아!]

일직선으로 내지른 분노의 포효가 대기를 관통했다.

공기의 흐름이 비틀리는 걸 보고도 레이라는 애써 피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저 높이 검을 들었다.

수직으로 내려찍은 참격.

붉은 검기가 단번에 포효를 반으로 갈라 와해시켰다.

“그리고 셋, 전체적으로 흡사하긴 하지만 그 마수는 진짜가 아니죠. 결국 2위계의 마력으로 구성된 소환체. 마수의 체력까지 모방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직후 레이라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울프레드가 반응했으나, 그녀의 말대로 포효를 사용한 터라 움직임이 느릿했다.

찰나의 순간, 레이라가 테오도르의 지척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넷, 이런 상황에 대한 당신의 대처 능력 부재.”

툭.

칼등이 테오도르의 목에 닿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한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겁했다.

“마법을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방도부터 마련하는 게 좋겠네요.”

후보의 생존율은 높지 않다.

목숨을 건 시련은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위기를 극복하면 보다 성장할 수 있지만 실패에 의한 리스크는 압도적이다.

한참이나 어린 신입 후보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였다.

“네…… 그, 그러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오지랖처럼 느껴지지 않은 모양. 이내 레이라가 검을 거두었고, 테오도르 또한 울프레드의 소환을 해제했다.

고요해진 투기장.

과정은 놀라웠지만 결과는 평소와 같았다.

신입 후보가 승리를 쟁취하는 건 아주 드문 일. 이처럼 선임 후보들이 조언을 해 주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이로써 첫 번째 교류전을 마치겠다. 다음 나오도록.”

베르덴의 순서.

방주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신입 후보의 차례였다.

* * *

베르덴은 강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투기장을 거니는 그에게서, 모두가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글러트니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는 소문에 걸맞은 실력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흐음, 과연 어떨는지. 예사롭지 않은 건 인정할 수 있지만 힘을 감추고 있으니 도저히 알 길이 없군. 마법사인 너희들은 어떻지?”

“나도 마찬가지다. 마력을 완전히 숨기고 있는 터라 판별하는 게 불가능해. 심지어 마도사인지 마법사인지조차도. 마력 조작 능력이 상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를 웃도는 모양이야.”

“최소 5위계 하위 마법사. 최대로 치면 5위계 상위 마도사 수준이라고 예상하면 되는 건가. 전자도 놀랍기는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한계 위계만 높다면, 나이로 따졌을 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재능이지. 훗날에 어떤 경지에 올라설지 가히 상상하기가 어려워. 어쩌면 수십 년 뒤에 초월의 격을 거머쥐게 될지도 모르겠어.”

“우리 중 누가 저자를 상대하게 될까. 자칫하면 망신을 당할지도.”

“그런데 저 로브…… 대체 뭐지?”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각자의 추측과 예측이 난무했다.

“진짜 엄청난 주목도네요.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공국에서 만났을 때도 이식자들을 때려잡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레이라 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워요. 현재 애셔가 가진 마법은커녕 마력조차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확신할 수 있는 건…… 후보들 중에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결코 많지 않다는 것뿐이죠.”

레이라와 로크도 베르덴을 줄곧 응시했다.

소환 마법으로 마력의 대부분을 소모한 테오로드가 휴식을 취하며 투기장을 바라봤다.

‘저 사람이 그렇게나 엄청난 걸까?’

대단한 건 알겠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야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누었을 때는, 아카데미의 교수나 교관에게서 느낄 법한 압박감 같은 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 또한 유심히 상황을 지켜봤다.

투기장의 중심.

베르덴이 여인과 마주 섰다.

“직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팔찌를 착용한 뒤 마력을 측정하면 된다. 경지를 숨기고 싶다면 얼마든 그렇게 해도 좋고. 모든 건 네 선택에 맡기겠다.”

“…….”

베르덴이 팔찌를 착용했다.

이리저리 손목을 움직이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되물었다.

“모든 게 제 선택이라면…… 저만의 방식으로 진행해도 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베르덴이 측정 도구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 * *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아무리 성능이 열화되었다고 해도, 팔찌 형태의 측정 도구는 아티슨 마탑의 특제품이다.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는 건 5위계.

일부 기능이 망가지는 걸 감안한다고 한다면 무려 6위계까지 측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부족할 것 같다고?

“만용인가, 오만인가.”

다수의 후보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방주의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그들이었기에, 도를 지나친 자만심을 기피하는 성향이 매우 강한 것이 이유였다.

겸허하게,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러나 소수의 후보들은 달랐다.

“……자신이 있다는 건가.”

후천적으로 발달한 특유의 직관력.

육감이 가진 특유의 직관력이 반응했다. 아무래도 허세가 아닌 진심으로 느껴진다. 레이라도 그중 하나였다.

뭔지 모를 긴장감에 본능적으로 혈류가 가속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교류전을 안내하던 여인이 머리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미약한 웃음소리가 허공을 감돈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소가 번져 있었다.

“흐하핫……! 그래,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교류전을 앞당긴 보람이 있지……!”

그 시선에 열망이 깃들었다.

“좋아,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그러니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 보도록. 다른 후보들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뭘 하든 간에 상관하지 않겠다. 단, 말을 내뱉은 이상 반드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협박에 가까운 충고였다.

위협을 흘려 넘긴 베르덴이 중심에 섰다.

방주 회의, 후보들의 교류전.

베르덴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오직 방주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다른 후보들의 경우와는 달랐다. 스스로를 증명하여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교류전 자체는 관심 없다.’

애초에 증명이란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강제하는 것이다.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그게 베르덴의 가치관이다.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방주의 전력.’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지.

오히려 증명해야 하는 건 저들이다.

방대한 마력이 의지에 따라 술렁인다.

심장의 맥동에 따라 전신이 반응한다. 마도왕의 마력 운용법 <아케인>으로 마력을 한계까지 가속시키며, 전력으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팔찌에 박힌 총 10개의 마석.

순식간에 빛이 차오르는 것과 동시에 임계점을 넘어가면서 폭발했다. 측정 도구의 잔해들이 떨어졌지만 베르덴은 멈추지 않았다.

화아아아악!

거대한 마력의 해일이 투기장을 잠식했다.

이어져 오는 수많은 경악 속에서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

준초월자로서의 경지.

그를 거머쥔 이후로, 처음으로 펼치는 최대 전력.

<마력 위압>

전율하는 공간.

실망시키지 마라.

그건 베르덴이 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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