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교류전 (2)
“둘 중 아무나 먼저 나오도록.”
여인의 목소리에 대부분이 반응했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후보들의 눈길.
과연 저 둘 중에서 누가 가장 먼저 호기롭게 자신을 증명하려 들 것인지, 깊은 관심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로크와 레이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기대감이었다.
그와 달리 베르덴은 무심하게 여인을 응시했다.
‘마법사의 경우, 진행되는 방식은 총 세 가지.’
첫째, 마력 측정.
둘째, 마법 시연.
셋째, 상대와의 교류전.
생소한 건 전혀 없다.
마력과 마법은 애초부터 베르덴을 구성하는 일부이자 중심이었고,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태까지 여러 강자를 상대해 왔으니.
마도왕의 분신, 관리자.
다크 워튼의 마탑주, 네크로맨서.
대표적으로 이러한 강대한 초월자에게 필사적으로 맞섰기에 현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과분한 힘도, 허울뿐인 경지도 아니다.
마녀의 심장으로 불완전한 초월을 이루었던 레오닐에게서 승리를 쟁취하면서 이미 스스로를 증명한 바 있었기에.
그런 베르덴에게 있어서, 교류전의 형식은 더없이 익숙할 뿐이다.
‘그나마 생소한 건 마력 측정인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두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
최초는 보헤미른 마탑에서 일꾼을 대상으로 진행한 적성 검사.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3살의 기억이기도 했다.
마법에 대한 육체적 재능이 전혀 없다고 판명된 날이니.
‘다음으로는 15살, 마탑의 연구원을 준비하던 때였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마력 측정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변함없이 1위계로,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마탑에 입성하는 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8살부터 시작한, 약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꾼으로서 쓸모를 입증해 왔었으니까. 거기다 기초적인 마법 지식도 갖추고 있었으니.
다시 말하자면 연구실의 잡일꾼으로 삼기에 적임자였겠지.
물론 단순한 지레짐작은 아니었다. 연구실 창고를 청소하던 도중 마법사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만난다면 뭐라고 할까.’
잠깐 서대륙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뭐, 아무튼.
누가 먼저 나서든 간에 교류전의 순서는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떠한 이점도 없는 데다가, 애초에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이기도 하니.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이쪽을 흘긋 보던 아카데미의 마법사와 마주쳤다.
황록색의 눈동자였다.
“저, 괜찮다면…… 차례를 야, 양보해 줄 수 있겠소……?
목소리와 함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긴장에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먼저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인가.
문제는 없으리라.
아직까지도 저 어색한 말투를 유지하려 하는 걸 보면 어처구니없게 마법 연산에 실패하는 일은 없겠지.
“원한다면.”
그렇게 선순위는 소환 마법이 차지했다.
* * *
마법사의 경지를 가늠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기본적이면서 보편적인 방식은 바로 마력량 측정이다. 주 재료는 특수하게 가공된 마석과 마력을 거의 온전히 전달하는 매개체.
과거에는 상당히 투박한 장치였다.
도저히 옮길 방도가 없을 정도로 무겁고 섬세한, 커다란 구조물을 설치하여 한정적인 장소에서만 사용이 가능했으니.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아티슨 마탑에서 고유의 기법으로 가공한, 10개의 특제 마석들이 박힌 팔찌는 마탑의 역작 중 하나였다.
그야말로 편의성을 극대화한 간이 측정 도구.
보기와는 다르게 전투 망치로 내려쳐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만큼 성능이 어느 정도 열화되는 건 불가피한 법.
감당할 수 있는 마력량은 기존의 것보다 낮은 편이었으나, 장점이 단점을 압도하기에 세간에서 주로 채택하는 방식이었다.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선이 여인이 들고 있는 팔찌에 머물렀다.
‘교류전에서도 같은 걸 사용하는 건가.’
딱히 이상할 건 없다.
리스너도 아티슨 마탑이 개발한 마법 물품, 노이즈를 사용하여 목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 왔으니.
단지 유용하기에 사용하는 거라면, 그만큼 아티슨 마탑의 위상이 높아지는 거겠지만…… 과연 실상은 어떨까.
‘어쩌면 그쪽에도 방주의 일원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지.’
아직 방주에 대해 알아낸 건 그다지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며, 베르덴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옆에 있었던 마법사가 투기장에 발을 디뎠다.
* * *
저벅, 저벅…….
섬에서 내려온 마법사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카데미에서 주목을 받는 건 하루의 일상이었다.
수업 도중에 마법을 학습하고 활용하는 건 물론이고, 조별 과제의 대표로서 동급생과 교수들 앞에서 마법을 선보일 때가 많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는 아예 결이 달랐다.
선망과 질투가 담긴 익숙한 눈빛이 아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겉으로 보이는 걸 넘어서 내면마저 꿰뚫어 보려고 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존재감 또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진정해, 테오도르……! 진정해, 진정해……!’
아카데미의 마법사, 테오도르.
그가 연신 자신의 이름을 되뇌며 떨림을 억눌렀다. 볼 안쪽까지 조금 아프게 깨물자 잡념이 가시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여인 앞에 당도했다.
“그럼 마력 측정부터 시작하겠다.”
“알겠…….”
문득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 잡아먹힐 것 같은, 차갑고 섬뜩한 기세.
“……스, 습니다.”
겁을 먹은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이렇게 코앞에서 대놓고 점잖은 마법사를 연기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교류전의 안내를 맡은 사람마저 이 정도라니…… 모두가 상상 이상이었다.
여인이 팔찌를 건넸다.
“측정기를 착용하고 중심에 서도록.”
고개를 끄덕인 테오도르가 지시에 따랐다.
직후 여인이 몇 발자국 멀어지자, 투기장의 중심에는 오직 테오도르만이 서 있었다. 깊게 심호흡을 하며 울렁이는 감정을 내뱉었다.
‘그래…… 평소처럼 하자, 평소처럼.’
팔찌의 형태는 더없이 익숙하다.
아카데미에서는 학기마다 치르는 마력 측정과 동일했으니. 거기다가 학생이 원한다면 매달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고.
아티슨 마탑은 아카데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는 거대 투자자 중 하나였다.
테오도르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체의 중심에 놓인 심장에 정신을 집중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회로를 타고 흐르는, 의지로 움직이는 마법사의 힘.
직후 팔찌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열 개의 마석 중 단 세 개.
마법사의 마력에 반응하여 빛이 들어온 건 그뿐이었다. 지금의 그로서는 이것이 한계.
언뜻 초라한 듯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후보 중 하나가 눈을 빛냈다.
“2위계…… 세 번째 마석의 빛이 강한 걸 보면 2위계 중위 정도로군요.”
역대 신입 후보와 비교해 낮은 마력량.
하지만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같은 후보라고 해도 당연히 각자마다 조건이 달랐으니까.
마법사의 경지는 대부분 나이에 비례한다.
그리고 나이에 비해 높은 경지에 다다르는 것을 재능의 척도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테오도르의 수준은 우수했다.
베르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유망하군.’
십 대 중반으로 저 정도인가.
한계 위계는 지금으로서 알 수가 없어도 주목받을 만한 성장임은 틀림없었다.
특히 아카데미의 재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는 더더욱.
마법사에게 경지는 전부가 될 수 없다.
3위계에 다다랐다고 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비행>을 쓰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마법은 아주 복잡한 학문이다.
기본적인 바탕이 될 위계는 필수적.
그와 더해서 마법 자체를 머리로 이해하고 연산할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마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있어야만 발현되는 신비다.
그러한 과정이 익숙해질수록 마법의 시전 속도는 빨라진다.
그리고 더 너아가 더블 캐스팅이나 트리플 캐스팅도 가능해지는 것이고. 물론 재능으로 인한 편차는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이러하다.
그렇기에 아카데미는 경지만을 우선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대받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마법을 배운 졸업생은 졸업장 하나만으로 검증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차후 성장에 대한 기대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막무가내로 마법을 배워 온 마법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건 명백하다.
“후우…….”
테오도르가 마력을 거두었다.
빛이 점멸하다가 사그라드는 걸 확인하고, 팔찌를 풀어 여인에게 건넸다.
그녀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별다른 감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전보다 시선에 약간의 흥미가 더해진 게 전부.
“다음은 마법 시연이다. 물론 선택은 자유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생략하고 바로 교류전을 시작해도 좋다.”
“그럼…… 마법을 시연한 다음에 곧바로 교류전을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허락을 받았다.
고개를 끄덕인 테오도르가 품속에서 디스펜서를 꺼냈다.
아카데미 교수님과 합작하며 탄생시킨 새로운 마법 종류. 오늘은 소환 마법의 비공식적인 데뷔전이다.
실수하지 말자.
평소처럼,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가다듬은 그가 눈을 번뜩였다.
직전보다 빠르게 마력회로가 전력으로 활성화되었다.
마력이 매직 아이템으로 온전히 흘러 들어가는 걸 확인한 테오도르가 입술을 달싹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철검보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땅을 부수는 각력…… 부드럽고 질긴 회색 가죽…… 낮고 위협적인 울음소리…… 사냥감을 주시하는 사백안(四白眼)…….”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심상을 구체화한다.
그를 따라서 디스펜서 내부로 흘러 들어간 마력이 일렁이며 뭉치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 보일 정도로 밀도 높은 마력.
그것이 어느새 분명한 짐승의 형태를 갖추었다.
테오도르와 늑대가 서로를 바라봤다.
의식은 개별적이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다.
테오도르가 디스펜서를 왼손 위에 올려 둔 채, 오른팔을 쭉 뻗었다.
<소환: 울프레드(Ulfred)>
쩌저적.
두 개의 공간이 열린다.
투기장 바닥에 생겨난 커다란 틈새와 디스펜서 내부에 생겨난 작은 틈새.
변화를 인지한 늑대가 망설임 없이 입구로 뛰어들자, 곧바로 바깥으로 뛰쳐나와 투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묵직한 무게.
지면부터 어깨까지의 높이는 2미터에 가깝다.
심지어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의 길이는 무려 8미터에 다다른다. 디스펜서에 있었던 크기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거체.
거대한 늑대가 입을 쩍 벌렸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
마수가 울부짖었다.
* * *
공기를 진동시키는 특유의 울음소리.
이빨과 발톱은 선명한 예기를 띠고 있었고, 회색의 체모에는 윤기가 돌았다. 포악한 눈동자가 사방을 훑고 귀는 위협을 감지한다.
전체적으로 늑대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모험가에게는 익숙한 마수였다.
모험가 활동을 하고 있는 후보가 눈을 깜빡였다.
“저건…… 로어 울프잖아?”
첫인상은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로어 울프와는 다르다. 선명한 은빛의 털도 그렇지만…… 저 거대한 체구는 통상을 벗어났다.
미스릴 등급 모험가, 레이라가 중얼거렸다.
“……로어 울프의 아종(亞種).”
마수의 변종이다.
어지간해서는 발견되지 않는 개체 분류로, 모험가 활동을 오래했다고 한들, 운이 좋지 않다면 보기가 힘들 정도.
당연하게도 그 위험도는 같은 종의 마수를 능히 압도한다.
로어 울프의 위험도는 금 등급.
그렇다면 저 마수는 분명 더 높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렇게나 거대한 마수가 사람의 손에 의해 탄생하다니……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마수를 소환하는 마법이라니…….”
경악 어린 반응이 뒤섞인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테오도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저 대단한 사람들마저 놀랐다는 건, 소환 마법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이었으니까.
“잘했어, 울프레드.”
[크르르…….]
테오도르가 늑대를 어루만졌다.
흉악한 마수는 그 손길을 받아들이며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감았다.
놀라운 광경이다.
“호오…….”
여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확연한 열기를 띤 눈으로 울프레드와 테오도르를 바라봤다. 방금 전과는 현격한 차이.
“저, 저……!!”
그리고 특히나 마법에 조예가 깊은 마법사들의 반응이 격했다.
베르덴도 그중 하나였다.
디스펜서와 마수 그리고 공간까지.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환 마법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한 그가 말했다.
“대단하군.”
기대 이상이다.
베르덴 나름의 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