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8화 (318/366)

318화 교류전 (1)

본래 방주 회의는 네 번에 걸쳐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일방적인 상황 보고에 가깝다.

아크에 머무르며 선장들 중 유일하게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주시자.

세상을 내다보는 그녀가 주시자로서 특이 사항을 전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섯 선장은 지난 1년간 있었던,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설명한다.

누군가는 간단하며, 누군가는 복잡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주시자, 탐색자, 토벌자, 조율자, 감시자.

이처럼 방주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은 판이하게 달랐으니까. 하나 단언컨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건 없다.

인간에서 인간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계승되어 온 의무다. 그를 이행하는 과정과 결과는 어떠한 의문도 없이 명확해야만 한다.

그리고 두 번째의 주제는 방주.

말 그대로 방주와 관련된 여러 논점을 다루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회의라 부르기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과정.

아크를 비롯한 내부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논의한다.

다음 세 번째는 교류전.

방주의 후보들로 이루어진 증명의 무대.

새로 영입된 신입 후보들의 수준과 다른 후보들의 실력을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후보들의 성장과 개중에서 새로이 두각을 드러내는 자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관건.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후보에 대한 토의다.

각자에게 어떤 시련을 부여할지, 그들에게 필요한 보상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된 후보 대상자들을 영입할 것인지 등.

숫자도 그리 적지는 않은 데다가 아주 면밀한 통찰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모든 회의 과정을 통틀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차례이기도 하다.

통상의 순서는 이러하다.

이런 이유로 회의 진행 속도는 많이 더딘 편.

그뿐만 아니라 전신 갑주로 온몸을 감추고 있는 토벌자는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필기까지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에 속했다.

“첫 번째 과정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방주 회의가 중단. 아무리 구성원 모두가 만장일치를 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하나 교류전을 서둘러 보고 싶다는 게 이유라…….”

로크의 스승이자 방주의 세 장로 중 하나, 렌 발하그.

칠흑의 정복을 입고 새하얀 면장갑을 착용한,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누가 주도했는지 뻔했다.

레그리트.

그 말괄량이의 짓이다.

“그 고질적인 성격은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는군요. 남들 못지않는 자제력을 갖췄음이 분명한데도, 일정 기준만 넘어서면 말릴 새도 없이 행동에 나서 버리니.”

“타고난 본성이란 것이지.”

그와 마주 앉은 방주의 주인이 와인을 머금었다.

“가르침은 분명 유의미하나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한 천성(天性)마저 뒤바꾸려면, 삶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의 경험이 필요한 법.”

인간은 항시 갈등하는 존재다.

이성과 감정, 생각과 마음이 서로 상반되어 모순된 선택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련은 일종의 촉매와도 같다.

목숨을 걸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성장 또한 포함되어 있다.

“물론 레그리트가 특이한 부류에 속한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시련을 거듭할수록 기존의 성정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니…… 뭐, 그것 또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신경 쓰지 마라, 렌 발하그. 한때 네가 선장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장로. 그들이 주도하는 방주 회의에 간섭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방주의 주인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주제넘었습니다.”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겉으로는 경솔한 것처럼 보여도, 레그리트는 신중하고 강인한 아이다. 탐구심을 더욱 불태우면서도 지금까지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그야말로 탐색자를 계승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인재라고 단언할 수 있지. 그리고 너도 궁금하지 않나? 이번 신입 후보들, 특히 애셔에 대해서.”

그가 빈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특출난 5위계 마법사에 불과했던 사내가 마도왕의 무덤을 극복하고, 기존의 마도사와는 다른 미답의 경지를 이룩하기까지…… 나를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낸 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건, 그 압도적인 재능이 아니라 과거다.”

“과거…… 말씀이십니까?”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본다고 한들 마도왕의 무덤에 도전한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미리 우리 쪽에서 경고를 해 주었기에 애셔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툭. 툭.

손끝이 팔걸이를 두드렸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마법사가 가진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진 것에 불과한 걸까? 네가 본 애셔라는 사내는 그런 자였나?”

렌 발하그는 애셔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리비안트 공국에서 벌어진 글러트니 토벌전.

글러트니의 위장 속에서 지치고 다쳤음에도, 그는 제 손으로 매듭을 지으려고 했다.

그 결과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이빨은 애셔에 의해 끝을 맞이했다.

고집에 가까운 의지였다.

승산에 대한 확신이 저변에 깔려 있는 눈빛이었다.

“눈앞의 빛에 현혹되어, 화염 속에 온몸을 내던지는 불나방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길에 뛰어들었지. 그렇다면 왜일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마땅히 목숨을 내던져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가능성은 한없이 높다.

“여러모로 베일에 싸인 사내다. 갑작스레 동대륙에 나타나 유례없는 성장 속도를 보이는 것과 더불어, 도저히 과거를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어쩌면 애셔라는 이름조차 가명일지도.

“그러니 같이 지켜보도록 하지. 다른 후보들은 물론이고 계승자들에게 큰 자극이 될지도 모르니.”

방주의 주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에 대해서 궁금하던 참이고.”

* * *

아크의 내부에 위치한 광활한 공간.

중심부에는 거대한 투기장을 연상시키는 무대가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작은 섬 수십 개가 허공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화아아아악.

공간을 이동한 베르덴과 마법사가 발을 디뎠다.

여러 섬 중, 서로 가깝에 붙어 있는 두 섬에 각자 위치하게 된 두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마법사가 탄성을 자아냈다.

베르덴 또한 비슷한 감상이었다.

넓이도 넓이지만 이곳 전체에 어떠한 마법이 새겨져 있다.

사방은 어두운 벽으로 꽉 막혀 있는 데다가 별다른 빛이 없음에도 사물이 훤히 보이는 걸 보니 <암시>가 걸려 있는 모양.

공간 자체에 마법을 부여하는 건, 현 마법 기술의 극치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우리가 먼저 온 건가?’

나머지 섬들은 비어 있다.

그러던 순간 근방에서 마력이 감지되었다.

고개를 돌리자, 빛과 함께 로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리번거리다가 베르덴의 존재를 눈치챈 그가 손을 흔들더니 섬과 함께 다가왔다.

“애셔 형님! 금방 보네요!

“섬은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아, 그건 교류전을 치르면 이후에 자연스레 가능해져요. 신입 후보인 형님으로서는 아직 어려운 일이죠. 그보다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새로운 마법 종류를 구사한다는 후보?”

시선을 받은 마법사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 안녕하시오. 그러니까 나는…… 저…….”

“숨기고 싶으면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걸로 신경 쓰는 사람은 여기 없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이상한 말투를 쓰는 거야? 척 보니까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 그, 그게 무슨……!”

느닷없이 지적을 받은 그가 말을 더듬었다.

감정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경험이 부족한 티가 역력했다.

로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반응이 되게 재밌네요. 테온처럼 놀리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무래도 엄청 긴장한 것 같은데, 무대 울렁증 같은 건가? 형님은 어떠세요?”

“전혀.”

베르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긴장에 의한 울렁증은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하하, 그야 그렇겠죠. 저는 처음 교류전을 치렀을 때 덜덜 떨었는데…… 다른 후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실력을 보이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때는 몇 명이 참석했지?”

“아마 절반도 안 됐을 거예요. 다음에 참석했을 때가 절반쯤 되었고요.”

로크가 깍지를 낀 양손으로 뒤통수를 받쳤다.

“리스너가 말했다시피, 이번에는 형님하고 저 재밌는 사람에 대해 알려져 있으니 평소보다 참석율이 높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디 보자, 슬슬 올 때가 된 것───”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에 있는 섬에 공간 이동진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나둘씩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대부분의 섬이 보랏빛에 휩싸였다.

직후 무수한 기척이 느껴졌다.

로크가 눈을 깜빡였다.

“……어? 거의 다 왔네?

* * *

신입을 제외한 다른 후보는 최소 한 번 이상의 시련을 극복해 왔다.

물론 간혹 가다 시련에 실패하고도 살아남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고통을 딛고 기어코 다른 시련에 도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지 못한 자는 영원히 일어서지 못했고.

생사의 경계선.

이들 모두가 경험자다.

목숨을 건 상황 속에서 발달된 통찰력.

죽기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단순히 재능과 경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망치로 쇠를 두들기듯 단단히 제련된 내면은, 그렇지 않은 자들과 비교하여 결이 다르다.

그런 자들의 시선이 한데 쏠렸다.

“저 남자가 글러트니의 대적자인가. 상당히 젊군. 훨씬 더 살벌하게 생겼을 거라 생각했는데.”

“존재감이 옅을 정도로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 나이에 마력 조작이 상위 수준에 다다랐다는 얘기겠지. 듣던 것 이상으로 가히 범상치가 않아.”

“이야, 훌륭하네. 내가 저 나이 때는 아카데미 졸업하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아크에 와 보길 잘했는걸? 이렇게 후보가 많이 모인 것도 처음이고.”

“저기 로브를 뒤집어쓴 자가 예의 마법사…… 성인에 비해 왜소한 체격인 걸 보니, 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로크 다음가는 최연소 후보로군. 그것도 마법사가.”

“이번에 들어온 신입 후보들이 둘 다 마법사인 것도 모자라서 천재라니. 기를 다루는 입장으로서는 조금 아쉬운데.”

“그런데 평소보다 교류전이 빨리 시작된 이유가 뭐지? 회의 도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수십 명의 후보가 저마다 다른 감상을 보였다.

몇몇은 홀로 생각에 잠겨 있거나 조용히 중얼거렸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에 있던 다른 후보와 대화를 나누었다.

직전까지 조용했던 분위기가 파도처럼 술렁거렸다.

“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아, 저기 레이라 누님도 계시네요. 사람이 많이 와서 적잖이 당황하셨나 봐요.”

“…….”

로크가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왼쪽에 있던 아카데미의 마법사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에게 향해 오는 수맣은, 관찰력이 깃든 시선에 몸이 경직된 것처럼 보였다.

베르덴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그나저나 듣던 것보다 교류전이 빨리 시작된 것 같은데. 달리 들은 건 없나?”

“글쎄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방주 회의를 하시는 선장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 말이죠. 애초에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단 한 번도 말인가?”

“예, 단 한 번도요. 위치도 위치다 보니 도중에 마주칠 일이 없기도 하고, 아크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는 만큼 정체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고 계시거든요. 신비주의 같은 거랄까요? 어쨌든 교류전이 시작되었으니 곧 안내자가 올 거예요. 어, 저기 오는 것 같네요.”

로크가 투기장의 정중앙을 가리켰다.

다른 후보들처럼 공간을 넘어 온 사람이 있었다.

하얗고 노르스름한 백발과 선명한 금안.

그와 대조적인 구릿빛 피부가 특징인 여인이었다.

그를 보던 로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작년의 사회자와는 다르─── 우악?!”

후우우우욱!

느닷없이 작은 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이윽고 일정한 간격으로, 원형으로 정렬되어 투기장의 바깥 부분에 위치한 허공에 고정되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정적 속에서 여인이 입을 열었다.

“현재 각 선장들께서 논의하신 끝에, 잠시 방주의 회의를 중단하고 교류전을 먼저 시작하겠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리셨다. 갑작스럽겠지만 달라질 건 없다. 고작 시간을 앞당긴 정도로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할 자는 여기에 없을 테니.”

당연하다는 듯 이의는 없었다.

“기존의 관례대로 신입 후보에게 차례를 우선하도록 하겠다.”

시작은 갑작스럽게.

꾸며 낸 듯한 인사는 필요없다.

대회 따위와 같은 거창한 행사를 벌이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여긴 증명의 장이다.

여인이 베르덴과 마법사에게 시선을 던졌다.

“둘 중 아무나 먼저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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