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6화 (316/366)
  • 316화 후보들 (3)

    오우거의 배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진즉에 핏기가 완전히 가신 창백한 시체였다.

    들켰다. 들켜 버렸다.

    그 사실에 트롤린 보좌관의 관자놀이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꿀꺽. 끈적한 침이 목 뒤로 넘어갔다.

    “저, 저, 그러니까, 이건…….”

    손끝이 덜덜 떨렸다.

    무거운 침묵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시신을 응시하던 아드리안이 명령했다.

    “꺼내라.”

    “네, 네?”

    검 끝이 옷 위를 찔렀다.

    피부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에 보좌관이 기겁하여 앞으로 두 발짝 움직였다.

    오우거 앞에 다가선 그가 팔을 뻗었다.

    “우웁…… 욱……!!”

    질척거리는 내장.

    미약하게 느껴지는 온기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신 구역질을 하면서도 끝내 내용물을 게워 내는 건 참아 냈다.

    일반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육중한 무게.

    트롤린 보좌관이 안간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겨우 시체를 꺼내어 바닥에 눕혔다.

    그를 따라 아드리안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거친 손끝. 팔다리에 오래된 얕은 흉터가 있고, 육체는 약간의 단련을 거쳤다.’

    무언가를 채집하거나 작은 무언가를 상대로 싸워 온 듯한 흔적.

    ‘모험가다.’

    살아 있었을 적, 등급은 낮았을 것이다.

    최하위 계위인 백결 등급, 많이 쳐줘도 최대 동 등급이리라.

    그런데 모험가의 시체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단순히 인신매매라고 여기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이미 죽었기에 노예처럼 다루지 못할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상흔이 이상했다.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에 옆구리가 움푹 파여 있다.

    장기까지 뜯겨 나간 걸 보면 치명상. 루아스교의 기적을 받지도 못하고, 몇 분 만에 과다 출혈과 격통으로 사망했음이 분명했다.

    다시 말해 아인종과의 전투 도중에 죽은 것. 따로 납치되어 인간에게 살해당한 건 아니었다.

    ‘시체만을 거래한다라…….’

    그리고 그걸 루아스교에서 조사하려 하고 있다.

    아드리안이 알기로, 그 교집합에 해당하는 건 두 가지밖에 없었다.

    ‘먼저 악마 숭배자.’

    루아스교와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이형종, 악마를 찬양하고 또 계약하여 힘과 지식을 얻는 뒤틀린 자들.

    그들에게 인신 공양이란 삶의 일부다.

    ‘그런데 놈들의 활동 지역은 중앙 대륙일 텐데.’

    어지간해서는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알고 있다.

    루아스교가 중앙 대륙의 경계선을 감시하며 악마 숭배자의 세력이 다른 대륙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었으니까.

    물론 아예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긴 하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애초에 그랬다면, 몰래 모험가를 고용해 조사를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까.’

    당장 악마 토벌의 전문가인 이단 심문관을 파견하여 리버런그 상층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겠지.

    루아스교는 악마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피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 악마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흑마법사.’

    리버런그의 시장과 거래를 하고 있는 자들의 정체. 그게 아드리안이 내놓은 답이었다.

    도중 천장이 흔들렸다.

    끼익, 끼익.

    수십 개의 발소리에 맞춰 갑판의 바닥이 삐걱거린다. 여러 기척이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 쪽으로 이어졌다.

    ‘마침 잘됐군.’

    안 그래도 흑마법사가 가담했다는 물증이 필요했는데, 애써 찾아갈 필요도 없이 제 발로 올 줄이야.

    “억……!”

    가볍게 뒷목을 쳐 트롤린 보좌관을 기절시켰다.

    그러고는 모험가 시체와 함께 오우거 위에 대충 던진 뒤 거대한 천으로 덮었다.

    외견상으로는 문제없다.

    아드리안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직후 문이 열리며 다수의 사람이 시체 창고로 걸어 들어왔다.

    “하아암, 매번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이제 귀찮아 죽겠군. 그 빌어먹을 시장의 불안증만 아니었다면 다른 놈들한테 시켰을 텐데. 안 그러냐?”

    “죄송합니다, 각하.”

    “쯧쯧, 꼴에 기사라고 말 돌리긴.”

    하품을 하며 거들먹거리는 사내.

    그 주위에서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걸 보니, 전부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다.

    ‘기사단인가.’

    특히 그 가운데 있는 자는 현격하게 다르다.

    아드리안의 기준으로 그 정도니, 세간에서 강자로 분류되는 건 확실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뭐, 그래도 마냥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사내가 코를 씰룩였다.

    “이렇게 쥐새끼가 들어온 걸 보면.”

    순식간에 활시위가 당겨진다.

    그 위에 놓인 두 개의 화살이 쇄도하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콰직. 벽을 반쯤 꿰뚫고 나간 화살이 멈춰 섰다.

    ‘후각이 좋은 편이군.’

    평소보다 강해진 부패의 냄새를 눈치챈 모양.

    다른 화살은 오우거 사체 쪽으로 향했다.

    트롤린 보좌관을 덮치는, 미간을 관통하는 충격.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고통 따위는 없었다. 일격에 즉사한 그의 팔이 천 바깥으로 나오며 축 늘어졌다.

    일제히 검을 뽑은 기사가 다가가 천을 들췄다.

    사내가 눈썹을 씰룩였다.

    “트롤린? 모험가 길드장을 만나러 갔던 인간이 여기서 오우거를 껴안고 있는 상황은 예상 못 했는데……. 뭐, 죽었으니 어쩔 수 없나. 그보다 언제까지 거기에 숨어 있을 거지?”

    벽에 걸려 있던 마석등이 날아온다.

    은은한 불빛에 비친 아드리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천천히 걸어 나온 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로브 아래 감춰진 시선이 상대를 응시했다.

    어두운 회색빛을 띤 금속 활을 든 사내.

    시장을 언급하며 모욕을 해도 되는, 기사를 거느리고 있는 위치에 있는 자.

    “리버런그의 수호자인가?”

    “그래, 산도른 구스아브다. 흠, 당장 내가 누군지 알아본 걸 보면 우연히 여기까지 온 건 아닌 모양이야. 거참, 도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은 건지. 그래서 네놈은 누구지? 혹시 모험가 본부에서 파견된 모험가…… 아니, 아니. 됐다.”

    산도른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데려가서 심문하면 알게 될 텐데 당장 힘 뺄 필요는 없겠지. 대충 손가락만 몇 개 잘라서 데려와. 도중에 죽지 않게.”

    명령을 받은 기사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검에 살기가 가득하다. 아인종 사체에도, 그 안에 보관되어 있었던 인간의 신체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산도른을 포함한 모두가 그러했다.

    모두가 공범이었다.

    “전부 생포할 필요는 없겠군.”

    아드리안이 마검 케덴스에 손을 얹었다.

    후욱.

    미약한 바람이 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가로지른 푸른 칼날. 어느새 아드리안은 자신에게 다가오던 기사를 지나치고 있었다.

    “어…….”

    푸화아악!

    갑작스레 솟구치는 피 분수.

    갑옷째로 베인 기사가 꺽꺽거리며 쓰러졌다. 그 아래 고인 피 웅덩이가 점점 커져 가며 바닥을 적셨다.

    아드리안이 산도른을 마주했다.

    “시장에게 안내해라.”

    “미친 새끼.”

    그것이 신호였다.

    산도른이 이를 드러내며 화살을 꺼냈다.

    동시에 기사들이 대형을 갖춘 채 돌진하거나 후열에서 마법을 연산했다.

    아드리안은 동요 없이 칼날을 세웠다.

    거칠게 흔들리는 선박.

    이윽고 새벽을 울리는 폭발 소리.

    소란의 시작이었다.

    * * *

    공간을 이동하자,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방이 시야에 비쳤다.

    천장에 설치된 마법 물품들 덕분에 원활히 순환되고 있는 공기.

    방의 중심에는 기다란 세 개의 소파와 사각형의 탁자가, 구석에는 여러 간식과 음료가 다수 놓여 있다.

    ‘아무도 없나.’

    분명 방주의 신입 후보끼리는 같은 대기실을 공유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아직 오지 않은 모양.

    그렇게 여기며 베르덴이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왼쪽 구석에서 마력이 몰아쳤다.

    이내 바닥에 공간 이동진이 생기며 그림자가 드리웠다.

    로브를 푹 뒤집어쓴 사람.

    체구는 작은 편이나, 겉으로 보이는 형태로 보아 성별은 남자에 가까웠다.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법사인 건 분명하고.

    “후우, 드디어 왔네. 여기가 후보 대기실…….”

    낯선 마법사가 베르덴과 마주쳤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마법사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헛기침을 해서 목을 가다듬고, 허리를 세워 가슴을 폈다.

    “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신입 후보로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앳되면서도 긴장 가득한 목소리.

    어른스러움을 티 내려는 듯한 어색한 말투.

    로브 바깥으로 드러난 손은 희고 깨끗했지만, 일반적으로 펜대를 잡는 손가락 부위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다.

    명확한 특징이다.

    ‘아카데미 학생이군.’

    * * *

    중앙 대륙의 초거대 도시, 가르간트.

    개인, 집단, 마탑, 국가 등 모두가 눈독 들이며 발을 걸치고 있는 장소. 그곳에 위치한 아카데미는 가르침으로써 무수한 인재를 양성해 왔다.

    베르덴은 중앙 대륙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다. 보헤미른 마탑에 견학을 온 학생들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마탑의 말단 연구원으로서 안내를 맡은 적도 있었고.’

    비공식 실험체가 되기 이전의 일이었다.

    아무튼 마탑의 일꾼부터 시작해, 10년이 훌쩍 넘도록 견학생들을 보고 접해 왔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려 하는 목소리.

    그러면서도 마탑의 마법사처럼 늙은이 같은 고상한 말투를 쓰거나 당당히 오만함, 자만심을 드러내지는 못하는 태도.

    거기다가.

    “흠흠, 혼자서 마법의 신비를 연구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이렇게 뜻을 함께한 이와 같이 있는 것도 차, 참 좋다고 생각하오. 아, 여기 과자하고 음료가 맛있는데 괜찮다면 드시겠소?”

    과일 주스와 과자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까지.

    누가 봐도 나이 지긋한 마법사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니 꽤 새롭군.’

    동대륙으로 온 이후로 마주치기 힘든 부류다.

    물론 비슷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마법에 대한 학구열을 갖고 있던 아카데미 졸업생 출신이자, 베르덴에게 부여 마법을 가르쳤던 모험가 이리스처럼.

    베르덴은 굳이 상대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면서 그가 권한 과자와 음료를 건네받았다.

    “고맙군.”

    “벼, 별말씀을.”

    마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턱 끝을 긁적인 그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 그래. 당신은 혹시 교류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들으셨소? 우리 같은 신입 후보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데…….”

    대기실에 오기 전, 리스너에게 들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나 대화를 주도하며 이어 가고 싶어 하는데 뚝 끊어 버리기는 뭐하니.

    당장 시간을 보낼 만한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베르덴은 눈앞의 마법사에게 흥미가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치고는 높은 위계와 마력량.

    그리고 새로운 마법 종류를 구사한다는 비밀까지 전부 말이다.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마법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모른다면 내가 말해 주겠소. 먼저 기를 깨우친 자는 기를 다루는 수준에 대해서 보인다고 하더군.”

    전사의 기본은 기를 통한 신체 강화.

    그리고 무구에 기를 덧씌워 내구력 혹은 파괴력을 높이는 게 다음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검기가 그에 속한다.

    이후에는 그러한 검기의 형태를 유지한 채 날려 보낼 수 있느냐, 기를 변형하여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둔다.

    “물론 전력을 보일 필요는 없소. 여기는 어디까지나 증명을 위한 자리니까. 어디까지 드러낼 거냐 따지는 건 본인의 판단이지. 이후에 다른 후보와 교류전을 펼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리스너와 똑같은 설명이었다.

    그 또한 방주의 일원에게 전해 들었으리라.

    베르덴이 물었다.

    “그럼 마법사는 어떻게 진행되지?”

    “전체적인 순서는 비슷하오. 다른 점이 있다면 마법사는 첫 번째로 마력 측정이 준비되어 있다는 거지.”

    마력 측정기.

    불어 넣은 마력만큼 위계가 측정된다.

    이 또한 본인의 역량이었다. 경지를 숨기고 싶다면 숨겨도 전혀 상관없었다.

    “나는…… 위계에 그리 자신이 없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까 거, 걱정이오. 다른 건 자신 있는데.”

    마지막 문장은 소년의 그것이었다.

    “과한 걱정이군.”

    마법사는 어리다.

    성장기 도중의 학생이다.

    그런 그의 미숙한 경지를 비웃을 자가 과연 있을까. 세간이라면 몰라도, 방주에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위축될 필요는 없다. 너도 말했다시피 여긴 어디까지나 증명을 위한 자리니까.”

    “아…….”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 여긴 증명을 위한 자리니.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소.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있는 거요?”

    마력 측정이라.

    “당연하지.”

    그야말로 방대한 마력량.

    그건 베르덴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였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다.

    그러는 한편, 아크의 성채, 엑소디움(Exodium)에서는 선장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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