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5화 (315/366)

315화 후보들 (2)

방주 회의는 주로 선장들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사안에 따라서 장로나 간부 격 되는 권위자만이 참석할 수 있을 뿐.

레이라와 로크처럼 후보에 불과한, 권한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은 회의에 참여하는 건 물론이고, 대화를 듣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레이라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저번에 언급했다시피 후보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건 교류전 외에는 없어요. 애셔, 당신처럼 신입 후보에 해당되지 않는 한, 모두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의무는 없죠.”

세상은 언제나 계획처럼 되지 않는 법.

아무리 방주 회의의 날짜가 미리 정해졌다고 한들, 갑작스레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거나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방주는 후보에게 의무를 지우고 성장을 돕되 억압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강제성이 부여된 선장과는 달리, 교류전만을 치르는 후보들에게는 회의 참석이 강요되지 않는다.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후보에게는 언제나 증명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의무가 아니라면…… 굳이 교류전에 참여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죠. 교류전 자체가 사실 후보들을 위한 자리니까요. 유의미한 성장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면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보상이 뒤따르거든요.”

레이라가 허리춤을 가리켰다.

핏빛을 띠고 있는 검. 그건 증명에 대한 대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교류전은 윗분들도 지켜보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눈에 띈다면 선장에게서 직접 시련을 부여받을 수도 있죠.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요. 그 외적으로는 아크의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이유야 많긴 하죠.”

증명을 통한 보상…….

확실히 그렇다면 후보들이 참여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설령 그런 게 없다고 하더라도 아크의 도서관, 라이브러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아주 큰 메리트였다.

적어도 베르덴에게는 그러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걷던 로크가 히죽거렸다.

“그리고 다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걸 원하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해서 이런 건 보기 드물잖아요? 굳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실력을 보고 배우고 경험하러 오는 거죠.”

방주 후보들의 공통점, 강한 향상심.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보다 성장하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제자리에 멈춘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죽을 테니까.

그걸 견디는 것 또한 시련이다.

“아, 그래도 레이라 누님이나 애셔 형님처럼 엄청나게 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시련이란 게 크게 분류하자면 마을 단위도 있고, 도시 단위도 있고, 국가 단위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편차가 꽤 큰 편이죠.”

힘이란 세상의 절대적인 기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방주는 지배 세력이 아닌 인류를 위한 집단이다.

개개인의 무력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인간성, 리더십, 열망 등 여러가지 지표로 판단하여 후보를 선정한다.

그리고 당장의 실력에 걸맞은 시련을 부과한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판단하지?”

사람의 의중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도중에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단호히 예측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선장 중 한 분이 그런 부분을 담당하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내 말이 맞지, 리스너?”

“하하, 저도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지켜보고 계신다…… 는 것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세계를 들여다본다니.

‘마법의 수준을 벗어났군. 그렇다면 그런 힘을 가진 고대 아티팩트를 소유하고 있는 건가?’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당장 발을 디디고 있는 아크의 존재만 해도 경악, 그 자체니. 방주가 무엇을 숨기고 있든 간에 일일이 크게 반응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베르덴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후보들은 거의 전부 참석하는 건가?”

“저도 지금까지 세 번 정도밖에 경험한 적 없는데, 대충 보니 절반 정도는 오는 것 같더라고요. 숫자로 따지자면 적은 편이죠. 애초에 방주 후보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요.”

“생각보다 참석률이 낮군.”

리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주기가 1년이라 그런 편입니다. 특히나 과거와 현재와 비교해, 격차가 많이 날수록 큰 보상이 주어지기에, 다년간 성장한 이후, 실력을 증명하는 걸 선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묵묵히 따라오고 있던 테일라가 첨언했다.

“애셔 님을 비롯한 신입 후보 두 분께서는 상당히 이목을 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후열에 있던 테온에게 시선을 보냈다.

“……글러트니가 방주의 배신자인 건 모두가 알고 있지. 놈들이 지극히 위험한 놈들이라는 것도. 그런 와중에 박사와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이빨이 토벌되었다니 놀라울 수밖에. 그리고 그 장본인이 방주 회의에 참석한다는 게 알려졌으니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직후 베르덴이 리스너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보다 다른 신입 후보에 대해서는 못 들었는데.”

“저도 어제 알게 돼서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애셔 님께서 바깥으로 나오질 않으시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 물론 탓하는 건 아닙니다. 정말로요. 아무튼 듣자 하니 중앙 대륙에서 오신 후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새로운 마법 종류를 터득하신.”

“새로운 마법이라고?”

베르덴만이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그건 테온과 테일라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서대륙과 동대륙을 담당하고 있기에, 중앙 대륙에 대한 정보에 어두운 편이었다.

“아, 저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합니다. 궁금해서 여쭤보니 보면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게 전부였거든요. 그러니 가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요.”

손사래를 친 리스너가 길을 안내했다.

‘……새로운 마법 종류라.’

베르덴이 마탑 시절을 되짚어 봤음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동안 마탑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일 터.

중앙 대륙은 격랑의 중심지.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대되는 게 하나 더 늘어났군.’

미지의 전력인 선장도, 다른 신입 후보도.

베르덴은 아크에 온 보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 * *

방주 회의는 아크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성채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후보들은 각자의 대기실에서 교류전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미리 설치되어 있는 공간 이동진을 통해 이동한다.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공간 마법을 여기저기서 활용하는군.’

세상의 마법이 한층 더 발전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실생활에서도 공간을 넘나든다니…… 딱히 상상이 가지를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음이 분명했기에.

베르덴의 개인적인 관점이었다.

“참고로 대기실은 오직 후보들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바깥에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실 거라면 각자 준비된 이동진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리스너가 공손히 앞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베르덴, 레이라, 로크를 위한 세 개의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다.

“그럼 이따 봐요, 애셔 형님! 레이라 누님!”

로크가 먼저 대기실로 향했다.

특유의 보랏빛이 명멸함과 동시에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며 이동진이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은 레이라 차례였다.

“또 공간 이동이라……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마음에 안 드네요.”

“언젠가는 익숙해질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으음, 저도 마법의 길을 걸었으면 조금 달랐을까…….”

그 정도로 울렁증이 싫은 건가.

직접 겪어 본 적은 있지만 저렇게나 시달린 적은 없었기에, 베르덴은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애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당신의 동료라는 사람…… 리버런그에서 잘하고 있을까요?”

베르덴은 아크에 오기 전, 레이라가 한 부탁을 아드리안에게 맡겼다. 이 사실은 이미 그녀 본인에게도 전한 바 있었다.

“분명 그럴 겁니다.”

중앙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

그가 쌓아 온 경험과 실력은 거짓이 아니다.

“……그렇게 장담해 주니 안심이 되네요. 가능하면 별일 없이 조용히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남기고 레이라가 공간 이동진 위에 섰다.

마력과 속성의 빛이 터져 나오며 그녀 또한 사라졌다.

“조용히라…… 그건 장담할 수 없는데.”

뒤늦게 말한 베르덴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찬가지로 기동하는 이동진.

마력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공간을 이동했다.

* * *

리버런그 시장의 보좌관, 트롤린 메스모어.

그는 10년이 넘도록, 간간이 불안증에 시달리는 트로벤 시장을 보필하며 여러 일을 처리해 왔다.

합법적인 건 당연하고 법의 경계선에 있거나 불법적인 일도 전혀 마다하지 않았다. 마냥 올곧은 충성심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상황을 주관하는 역할을 맡은 이상, 자신의 손에 묻는 떡고물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대충 입에 넣어도 탈이 나지 않을 만큼 꼼꼼히 처리를 해 두기까지 했으니.

그렇게 불과 몇 년 만에 입는 옷, 사는 집, 여러 사적인 생활 등이 더없이 풍족해졌다.

시장의 대리인.

그 직함을 달고 있으니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러러 보았다. 권력자의 삶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모험가 길드장과의 독대.

몇 개월에 걸친, 주기적인 만남이었다. 그때마다 아인종 사체나 사망한 모험가의 처분에 대해서 긴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부를 떠는 길드장에게 대접받으면서, 약속한 수익금을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호위로 세 명의 기사와 두 명의 마법사를 동반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모험가 또는 용병으로 보일 수 있게 위장을 시켜 놓았다.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지는 못했어도 실력은 변함없었다.

‘그, 그런데 왜 이렇게 됐지?’

데려온 호위들이 전부 제압당했다.

아니, 말 그대로 작살이 났다는 게 맞으리라. 심지어 기사 못지않은 실력을 가진 모험가 길드장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당 해버렸다.

그런데도 범인이 누군지 보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멀쩡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는 건, 등허리에 바짝 닿아 있는 날붙이와 서늘한 목소리가 전부였다.

그렇다.

트롤린 보좌관은 납치당했다.

헤인강에 떠 있는 대형 선박.

경비의 눈을 속인 트롤린 보좌관이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아인종 사체가 있는 장소인가?”

“네, 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드리안이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트롤린 보좌관을 앞세운 채, 벽에 걸려 있는 등불을 뒤로하며 천천히 안쪽을 살피자, 거대한 무언가가 천에 덮여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서 사용하는 사체 보관용 매직 아이템.

아드리안이 조심스레 천을 치웠다.

고기가 썩어 들어가는 톡 쏘는 악취와 함께 아인종의 사체가 나타났다.

‘오우거인가.’

목과 팔다리 부근에 난도질당한 검상이 있다.

단면이나 피의 흔적으로 보아, 토벌을 당하던 도중에 생긴 것임이 분명했다.

아드리안이 물었다.

“이런 아인종 사체를 누구하고 거래하지?”

“저, 저도 그건 모릅니다. 그건 시장님이 직접 거래를 하신 터라……! 제가 맡은 건 길드장과의 거래밖에 없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몸이 떨린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숨기는 게 있군.’

과연 그게 무엇일까.

아드리안이 안력을 높이며 오우거를 유심히 살폈다. 그 순간, 가슴에서부터 아랫배로 이어지는 기다랗고 미세한 선을 발견했다.

‘베어 갈랐다가 이어 붙인 흔적.’

아드리안이 주저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보좌관의 호위 역인 놈에게서 빼앗아 온 무기였다. 예리함을 띤 참격이 정확히 선을 가로지르자 질긴 피부가 쩍 갈라졌다.

아드리안이 칼끝으로 내부를 들췄다.

“…….”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의 발가벗겨진 몸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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