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후보들 (1)
이 세상에는 균형이란 게 존재한다.
그건 인간과 같은 생명체에도 당연히 통용되는 말이었다.
육체와 힘이 아주 완전한 평형을 이루지는 못할지언정, 제한된 규격 안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지키는 게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지. 예를 들어 태산을 무너뜨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그 반작용을 감당하지 못해 몸이 붕괴되어 폭발하는 것처럼.”
도서관장이 미간을 좁혔다.
“이러한 참사를 방지하는 극점이 바로 한계일세. 그리고 그 상한선 아래에서 어느 한쪽에 과하게 치중되지 않은 채, 서로가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걸 조화롭다고 말하지. 그런데 라이브러리에 찾아온, 저 애셔라는 마도사는 그런 마땅한 이치를 완벽하게 거스르고 있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심각할 정도로 불균형적이네.”
그의 마력회로가 강하게 맥동한다.
더욱 밀도 높은 마력이 눈에 집중되자, 옅은 자줏빛을 띠고 있었던 눈동자에 푸른 고리가 떠올랐다.
고대의 혈통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근원의 고리’.
그 특별한 눈을 물려받은 마법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
도서관장이 사물을 넘어, 저 멀리 있는 사내를 관찰했다.
“외견과 마찬가지로 젊음이 넘치는 생명력. 오차를 감안한다고 해도 나이는 서른을 넘지 않았음이 분명하네. 그런데, 저만한 마력이라니…….”
그야말로 방대하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마력의 총량은 얼핏 봐서는 헤아리기가 어렵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바다를 보는 듯한 기분.
마력량이 6위계를 돌파했다.
“단순히 과한 걸 넘어 조화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어. 저 나이에 저만한 경지를 이룩했다는 건 인위적인 급성장을 이뤘다는 것일 터. 진즉에 그릇이, 육체가 망가져 흔적도 없이 사멸했어야 정상이네.”
“하지만 애셔 님에게서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리스너의 반문에 도서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네. 멀쩡하다 못해 오히려 자신의 힘을 능히 지배하여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그래서 문제라는 걸세. 마법적인 상식을 보란 듯이 위배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리고…….”
도서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지어 저 마력의 심연에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네. 아니,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을까.”
“그게 무슨…….”
“나로서도 알 수 없네. 너무도 깊어, 이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가 없으니. 하지만 뭐랄까…… 굳이 말하자면 기존의 마도사와 비교해 경지가 애매한 듯하네. 마도를 개척하지 못한 것 같다고나 할까? 분명 저 존재감은 마도사임이 분명할진대.”
마도사이되 마도사가 아니라니…….
마도는 깨달음의 영역이다.
5위계 이상의 마법사가 자신의 길을 개척했느냐, 개척하지 못했냐, 이 두 가지만 있을 뿐. 중간 지점이라는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계에서 마도사라는 개념이 탄생한 이후로, 그런 경우는 여태껏 관측된 적이 없었으니까.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군요.”
“이해하라고 말한 거 아닐세. 나도 내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걸세, 느낌이.”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난번의 회의를 통해, 애셔에게 고대의 시련을 부여하는 건 나도 동의한 일이지. 그리고 현명하게 도중에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성공했네.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일인데 설마 저런 존재일 줄이야.”
불가해(不可解).
도서관장이 애셔를 그렇게 정의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 참, 방주 후보를 영입하라고 했는데…… 리스너, 자네는 도대체 누굴 데려온 건가?”
두 번째 물음이었다.
리스너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렇겠지. 어쨌든 올해의 교류전은 평소와는 많이 다르겠군. 이번 신입 후보인 두 마법사. 한 명은 ‘새로운 마법 종류’를 터득한 천재이며 다른 한 명은 후보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천재이니.”
“네? 새로운 마법 말입니까?”
“못 들었나? 아, 중앙 대륙은 자네 담당이 아니었으니 모를 수도 있겠군.”
도서관장이 작게 웃었다.
“뭐, 보면 알 걸세.”
* * *
한편, 베르덴은 <비행>으로 고도를 높였다.
도서관장이 언급한 I-F-48번 층을 찾자, 완벽하게 정리 정돈 된 서적들이 그를 맞이했다.
하나같이 생소한 제목들.
슬쩍 한 권을 집어서 내용을 살펴보니, 6위계 부여 마법에 대한 이론이 적혀 있었다.
“……엄청나군.”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론만이 아니라, 각 권마다 실질적인 6위계 마법이 실려 있다. 지식의 보고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눈앞에 있는 책들을 전부 머릿속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본래 베르덴은 방주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지 않되, 오직 시련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 대신 방주의 정보망과 일원을 이용할 수 없는 계약.
‘지금처럼 아크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건, 방주 회의라는 특수성 때문일 터.’
당장 내일 방주 회의가 열린다.
오래 있을 수는 없다.
길어 봤자 하루 아니면 이틀, 짧으면 회의가 끝나자마자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걸 감안해서 실용적인 면에서 이득이 되는 마법을 찾아야 한다.
과욕은 금물.
절제력 있게 신중히 서적을 살폈다.
베르덴의 주류는 원소 마법.
부차적으로는 부여 계열에 속한 강화 마법으로, 마법사의 부족한 신체 능력을 보완하여 근접전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부여 마법의 하위에 포함된 정신 계열 마법도 쓸 수 있기는 하나, 5위계 이상의 고위계를 구사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
다른 모든 걸 전부 내팽개치고 한 몇 개월 틀어박히면 어느 정도 경지를 이룰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그건 선택지에 없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 전법을 바꾸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무엇보다 드디어 여정의 본 궤도에 올라온 상황이기도 하고. 그러니 곧장 전력이 될 수 있는 마법을 얻어야 한다.
범위는 시전자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6위계 부여 마법.
몇 개나 되는 책장을 뒤적거리던 베르덴이 마침내 원하는 마법 세 개를 찾아냈다.
<환영>
<회로 역전>
<인텐션>
각각 이론과 실행 그리고 응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총 11권이다.
아무리 빨리 읽는다고 해도 식사와 수면을 배제한 채, 여기서 꼬박 밤을 새워야 하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염동력>으로 책을 전부 가져온 베르덴이 아래로 내려갔다.
딱히 앉을 곳은 없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충 한편에 쪼그려 앉아, 책장에 등을 기대고는 곧바로 독서에 몰두했다.
옛날, 마탑에서 몰래 책을 읽어 왔던 그때처럼.
* * *
아크에는 후보들을 위한 방이 존재한다.
어떤 예외도 없이 전부 공간 마법으로 확장되어 있기에, 입구는 좁아도 안은 어지간한 저택에 필적한다.
굳이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원한다면 식사를 가져다주는 등 내부에 갖춰진 시설만으로도 바깥에 나갈 일이 없을 만큼 편의성이 뛰어나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공간에서, 로브를 뒤집은 한 마법사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상에 하늘섬이란 게 있었다니…… 데일 교수님이 보면 뭐라고 하실까. 분명 기절할 만큼 놀라시겠지. 어쩌면 그대로 못 일어나실지도…… 음, 아마 그럴 거야.”
마법사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물론 아크나 방주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발설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약속하기도 했지만, 방주의 존재 의의 때문이기도 했다.
인류를 위하는 비밀 조직, 방주.
그저 허황된 말이 아니라,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존재하는 집단이다. 뭔가 엄청나게 멋지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뜨고 사명감이 흘러넘쳤다. 그는 자신만의 순수한 이상을 갖고 있는 나이였다.
마법사가 작게 웃다가, 문득 멈칫했다.
“드디어 내일이 방주 회의…… 교류전이 있는 날이네.”
방주의 후보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날.
모두가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와 같은 신입 후보들은 반드시 아크에 찾아와 교류전을 경험해야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마법을 보이는 건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계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이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야 하니, 자연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이다.
‘나는 천재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구나 그렇게 말했다.
교장님도, 교수님도,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급생까지. 대부분이 그를 천재라고 추켜세웠고, 마법사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타인의 질투 또한 당연하게 여겨 왔다.
‘그러고 보니 나 말고도 다른 후보가 있다고 하던데.’
들어 보니, 글러트니의 일각을 토벌했다고.
글러트니라는 집단이 방주의 배신자이며 인간을 먹는 괴물임은 알고 있다.
다만 직접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업적인지는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뭐, 대단한 건 분명해 보이지만.
‘분명 마법사라고 했었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같은 신입 후보라서 그런 걸까.
묘한 동질감 같은 게 일었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천재에 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마법사는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기묘한 물건을 꺼냈다.
밑바닥에는 무수한 선들이 마법적인 구조를 띠고 있는 평평한 황동색 금속이, 그 위로는 천장이 둥그렇고 유리처럼 투명한 막이 안팎을 차단하고 있는 특수한 매직 아이템이었다.
천천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내면에 있는 심상이 투영되었다. 그러자 내부에 푸른빛이 집결되더니, 마력으로 구성된 사나운 늑대가 형성되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
마법사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컹컹!]
늑대가 울부짖었다.
* * *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아크에는 자연적인 날씨나 빛의 변화가 거의 없기에 여전히 풍경은 그대로였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중심, 여전히 몽환적이다.
완전한 무장을 갖춘 레이라가 아크의 도시를 바라봤다.
방주의 일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여러 사람이 오가고 있었고, 그 외의 장소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인구의 밀도는 지상의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매우 낮다. 보는 그대로 텅 비어 있는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아크에 몇 번이나 왔음에도 아직도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러던 도중, 곁에 서 있던 테일라가 말했다.
“로크 님과 테온입니다.”
레이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들을 마주한 레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애셔하고 같이 온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왜 둘뿐이죠?”
“아, 그게, 방으로 찾아갔는데 없더라고요. 근처에 물어보니 애초에 온 적도 없다고 하고. 레이라 누님은 혹시 못 보셨나요?”
레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는 훈련장에서 검과 기를 단련한 뒤 들어가서 쉬었으니 마주칠 턱이 없었다. 이 근방에서 본 적도 없었고.
“우리보다 먼저 간 거 아닐까요?”
“글쎄요. 왠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어차피 그곳으로 가려면 여길 지나쳐야 하니까요.”
그렇게 20분가량이 흘렀을까.
저편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끼고는 모두가 그쪽 뱡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베르덴과 리스너.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애셔 형님! 한참 기다렸…… 응?”
달려간 로크가 눈을 깜빡거리며 리스너를 응시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어딘가 지쳐 보이는 기색이었다.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퇴근을 못 했습니다.”
베르덴이 부여 마법을 얻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리스너는 라이브러리에서 뜬눈으로 날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를 눈치챈 건, 베르덴이 목적을 이루고 나서였다.
“……고의는 아니었다.”
아무튼 전적으로 베르덴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