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2화 (312/366)

312화 아크 (2)

베르덴이 탑승한 비행정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다.

멈추기에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완벽에 가까운 미세한 조종에 의해 방향을 튼 비행정이 아크의 선착장에 정확히 정박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후보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는 선박을 점검했다.

베르덴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전부 방주의 일원인가?”

“동시에 아크의 거주민이기도 합니다.”

하늘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섬의 규모나 건축물로 보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감이 안 나는군.”

계단을 내려와 하늘섬을 밟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베르덴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마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실재(實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고, 그러한 감정은 경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몰아쳤다.

미지를 마주한 마법사의 본능이자 습성이었다. 그런 탓에 베르덴은 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주의 규모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곳, 아크라는 장소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제 일정이 어떻게 되지?”

“방주 회의는 내일이니, 오늘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셔도 좋습니다. 대신 방주의 후보라는 권한으로는, 자유롭게 다니실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지만요.”

“예를 들어 도서관은…….”

“물론 가능합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부탁하지.”

“하하, 그렇게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그나저나 아크가 상당히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 레이라 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연무장으로 가려고요.”

레이라가 검자루를 톡톡 두들겼다.

비행정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터라, 검을 휘두르며 찌뿌둥한 몸을 개운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럼 이따 보도록 하죠.”

레이라가 훌쩍 떠나갔다.

그녀의 옆에는 테일라가 함께했다.

“저희도 이만 도서관으로…… 음?”

리스너가 도중에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선착장에 닿았다. 정확히는 선착장에 정박을 시도하려고 하는 비행정을 향해 말이다.

“마침 서대륙에서 마지막 비행정이 도착했군요. 시간을 보아하니…… 아마 저기에는 로크 님이 타고 계실 겁니다.”

방주의 후보, 로크.

리비안트 공국에서 베르덴과 함께 글러트니를 토벌했던 무투가이자, 방주의 장로인 렌 발하그의 제자였다.

“로크가 서대륙으로 갔나?”

“듣자 하니 서대륙에서 글러트니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로크 님이 직접 나서서 조사 중이십니다. 마침 가는 길이니 만나고 가시겠습니까?”

어째서 글러트니가 서대륙에서 나타났을까.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알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서대륙의 정황.

정확히 말하자면 신문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보헤미른 마탑에 관한 최신 정보에 대해서.

“그러는 게 좋겠군.”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드리안이 맡은 임무는 리버런그에 대한 조사.

바로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는 마수의 사체, 즉 관련 소재들이 정상적으로 유통되고 또 처분되고 있는가에 대해서였다.

모험가 길드는 당연히 수색 대상.

그리고 리버런그의 상층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길드가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

아드리안은 모험가 길드의 생리에 대해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이미 정했다.

‘먼저 모험가 길드장.’

놈을 찾는 건 간단했다.

저녁노을이 지기 전, 모험가 길드를 나서는 젊은 남자.

여러 액세서리와 고급스러운 의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있으며, 모험가로 보이는 경호원 한 명을 데리고 다니는 터라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길드장을 몰래 지키고 있는 자들이 셋.’

무슨 귀족도 아니고.

일개 길드장이 이런 식으로 호위를 두고 있다는 건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는 의미일 터. 당장 물증 따위 없어도 전혀 상관없다.

아드리안의 경험상, 이건 확신이었다.

발각되지 않게 거리를 두고 추적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약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밤 그늘이 도시를 집어삼킨 어두운 거리를 지나는 평범한 마차. 안에서 내린 길드장이 상자 하나를 가지고는 헤핀강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이번에는 호위를 전혀 대동하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즉시 기감을 넓히자,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계십니까?

───방금 전에 오셨소. 어서 들어가시오.

길드장이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건물로 들어섰다.

그를 들여보낸 남자는 가만히 바깥을 응시하고는 문을 닫았다.

잠시 후, 길드장이 건물 중심에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 기척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군.’

하지만 문제는 없다.

마법은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나 만능은 아니다.

특히나 고위계 마법이 아니라면 빈틈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마법사가 아닌 검사라고 해도, 그를 파고들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아드리안이 눈을 감았다.

정신과 호흡을 가다듬고는 기를 운용하여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사라졌던 기척 대신 소리가 느껴졌다.

마법의 틈새로, 젊은 목소리와 나이 든 사내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길드장을 하대하는 걸 보아, 어느 정도 계급이 높은 것이 틀림없었다.

‘귀족인가?’

어쩌면 도시의 관계자일 수도.

두 사람은 서로 웃음을 아끼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길드장이 가져온, 아주 값비싼 술을 나눠 마시자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된 듯했다. 쓸데없는 잡담이 대부분이었으나 도중 그만두는 일은 없었다.

아드리안은 가만히 앉아 대화를 경청했다.

그리고 인내심은 곧 결과로 찾아왔다.

단서를 잡았다.

───이번에 죽은 모험가들의 장례는 다 치렀네. 하하, 헌금도 안 했는데 성직자들이 희생을 추모한답시고 직접 나서서 기도해 주더군. 덕분에 돈 굳었지.

───그것참 잘됐습니다. 그런데 돈은…….”

───쯧쯧, 영 기다리지를 못하는군. 재촉하지 않아도 잘 처리했네. 연고 없는 모험가들의 재산을 처분하고 나니 꽤 나오더군. 여기 약속한 비율일세.

───감사합니다, 토를린 보좌관님. 한데 레나 주교는 어떻습니까?

───눈치챘냐고? 하,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걱정 말게. 그치는 돈만 밝힐 줄 알지, 영 순진해서 말이야. 무슨 일이 있는지는 꿈에도 모를 걸세. 그보다 아인종은 어떻게 됐나?

───아, 예. 말씀하신 사체들은 전부 배에 실어 놓았습니다. 길드 장부는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설령 감사가 나와도 들킬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저, 그래서 말인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뭔가?

───해체도 안 한 아인종 사체들을 어디다 쓰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이제까지 전달드린 거면 아주 많은 양인데.

───흠, 자네는 그 입이 문제일세. 그걸 꼭 알아야겠나? 자네는 돈을 벌고, 우리도 이득을 본다.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이 사람아, 호기심은 많은 경우에 독이 된다네. 자네 말을 시장님께서 들으시면 아주 섭섭해하실 거야.

───죄,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됐고. 잔이나 따르게.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로 이렇다 할 정보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

기를 가라앉힌 아드리안이 눈을 떴다.

‘시장의 보좌관이라.’

실마리를 잡았다.

리버런그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대체로 이해했다.

아인종 소재의 밀매.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중앙 대륙에서는 비일비재한 범죄였다.

‘그런데 소재가 아니라 사체를 옮겼다는 게 이상하군.’

하나의 의문을 상기한 채, 아드리안이 고민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처리할 건지.

‘보좌관을 미행해야 할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아인종의 사체가 어디 있는지, 또 누구와 거래하고 있는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담까지는 할 수 없다.

만약 보좌관이 저 자리를 파하고 오직 보고만 올린다면, 이번에는 리버런그의 시장을 미행해야만 할 테니까.

아드리안의 자랑은 속도지만, 섬세한 잠입에는 그리 자신이 없었다.

도시의 수호자라는 자가 시장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 몰래 납치하는 건 불가능할 터.

조용히 끝내기에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해서 조사를 하는 데 시간을 오래 들이기도 싫었다. 무엇보다 주군이 오시기 전에 일을 마치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그럼…….

───네 재량에 맡기겠다.

‘그래, 주군께서는 그리 말씀하셨지.’

눈치 따위 볼 필요 없다.

이제까지 해 왔던 대로 일을 처리하면 될 뿐이다.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

아드리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은밀성을 요한다고 해도 반드시 조용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다.

당장 겉옷을 뒤집어 둘렀다.

푸른색이 아닌, 회색의 로브로 모습을 철저하게 감추고는 호흡을 내쉬었다.

건물 안에 있는 인원은 총 일곱.

마법사 둘.

기를 깨우친 자가 셋.

길드장과 보좌관이 각각 하나씩.

‘단숨에 제압하고 정보를 캐낸다.’

정면 돌파라도 문제없다.

정체만 안 들키면 잠입이니까.

의욕으로 가득 찬 아드리안이 바닥을 박찼다.

* * *

천천히 움직이던 비행정이 멈춰 섰다.

갑판에서 계단을 내리자 두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갈색 머리의 앳된 청년과 흑색 로브를 두른 사내.

청년, 로크가 숨을 털어 냈다.

“하아, 겨우 도착했네. 오랜만에 아크에 오니 진짜로 마음이 편하네. 안 그래, 테온?”

“당연한 거 아닌가? 비교할 걸 비교해라.”

“어쭈, 말하는 거 봐라? 조수가, 방주 후보를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니야?”

“조수는 무슨. 일방적으로 네가 데리고 다니는 거잖나. 차라리 다른 임무를 받는 게 낫지, 글러트니라면 그림자도 밟고 싶지 않다고.”

“뭐, 하긴. 너는 글러트니의 배신자니까, 만약 글러트니한테 발각돼서 잡히면…… 말 그대로 뼈도 안 남겠지. 잘근잘근 씹어 먹히지 않을까?”

테온은 전 글러트니의 일원이었다.

공국의 도시, 마르테스에서 박사의 수족으로 활동하며 베르덴을 죽이려고 했었고, 나중에는 글러트니의 이식자들에게 쫓기다가 베르덴에게 사로잡힌 암살자.

그의 운명은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일개 소모품으로 살다가,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송곳니를 토벌하기 위한 방주의 앞잡이가 되어 버렸으니.

이후에는 임시로 방주에 속하게 되어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처사였다.

테온은 어릴 적에 납치되어 강제적으로 글러트니의 암살자가 되기도 했고, 놈들의 강력한 통제 수단인 글러트니의 조각에 면역이었기에 갱생의 여지가 충분했기에.

굴곡이 많은 과거를 떠올린 테온이 고개를 늘어뜨렸다.

“……내가 봐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하군.”

“너는 운이 나쁘면서도 좋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싫으면 스승님에게 말해 줄 수 있는데? 아크에서 훈련이라도 하든가.”

로크의 스승, 렌 발하그 장로.

그의 엄격한 교육을 떠올린 테온이 몸서리쳤다.

“그건 좀…….”

“그럼 궁시렁대지 말고 돕기나 해. 서대륙에서 삐걱거렸다간 둘 다 뒈질 수도 있으니까. 아, 일단 배고프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다녔더니 동행이 익숙해져 버렸다. 테온은 공간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목 안쪽을 축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웬 그림자가 앞을 막아섰다.

“……어?”

그 정체를 알아챈 로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셔 형님?!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언제 도착하신 거예요?”

“방금 전에. 보아하니 무탈한가 보군.”

베르덴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테온, 너도.”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무정한 벽안.

그를 마주한 순간 테온이 눈을 부릅떴다.

“쿨럭, 쿨럭!!!!”

사레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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