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아크 (1)
“으음……!”
리버런그의 시청.
도시국가의 최고 권력자이자 카일리언스 의원인 트로벤 시장이 이리저리 방 안을 돌아다녔다.
푹푹 내쉬는 한숨.
갉아 먹기라도 하듯 손톱을 뜯는 모습에는 초조함이 한가득 묻어나 있었다.
“하필이면 긴급 소집령에 응답한 게 그 핏빛검이라니…… 설마 낌새를 눈치챈 건 아니겠지? 아니면 벌써 들킨 걸까? 산도른,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하아, 또 지병인 불안감이 도지셨군.”
산도른 구스아브.
카일리언스가 가진 전력의 일각인, 리버런그를 담당하는 도시의 수호자. 그가 산미가 높은 포도주가 담긴 잔을 빙빙 돌렸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핏빛검은 아인종 토벌하느라 정신이 없다니까? 애초에 도시에 머문 날짜만 세면 얼마 되지도 않는 데다가 길드장이 딱 붙어 있기까지 하는데, 뭘 알아낼 시간이 있었겠어? 그리고 오늘도 아인종 토벌하러 간다고, 며칠 뒤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리버런그를 나섰잖아. 도대체 뭐가 그리 걱정인데?”
“……혹시 모험가 길드 본부에서 밀명을 받은 거라면? 솔직히 그럴 수 있잖아. 그 핏빛검이고, 그 모험가 길드니까……! 정말로 발각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그래서 꽁꽁 잘 숨겼잖아. 무슨 ‘시체 장사’ 하루 이틀 해? 그동안 잘해 왔으면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무리 이명 붙은 미스릴 등급 모험가라고 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라고. 좀 닥치고 이거나 마셔.”
탁상 위에 있던 술병을 통째로 던졌다.
엉거주춤하며 겨우 받아 내는 데 성공한 트로벤 시장이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벌렸다.
벌컥벌컥.
달콤쌉싸름한 맛이 혀끝을 자극한다.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술의 열기가 위장을 자극하며 몸을 뜨끈하게 데웠다.
“후우…….”
두근거리는 심장.
거친 호흡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제 진정이 되냐? 아니, 것보다 X발, 내가 정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X랄이야? 웅? 이거 너희 시장들끼리 합의한 거 아니야?”
“그건…… 윽……!”
트로벤 시장이 뜨끔했다.
목끝까지 차오른 말이 억눌려 가라앉았다.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그의 영혼에 새겨진 무언가가 손아귀를 뻗더니 숨통을 틀어막은 것이다.
그런 거래였다.
“뭐야, 갑자기 사레라도 들렸어?”
“아, 아니. 어쨌든 지금의 상황은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단 말일세! 아무리 투표라지만, 대부분이 다 찬성하는데 고작 한둘이 반대할 수는 없잖나? 그러다 무슨 꼴을 당하려고!”
“말은 그렇게 해도, 제 주머니는 꽉꽉 채워 넣었으면서.”
“크, 크흠!”
트로벤 시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에스티리아에서 귀족이 왔다는 거 들었나? 혹시 왕국에서 알아채고 손을 쓰러 온 거 아닐까?”
“아오, 과대망상도 그 정도면 정신병이다, 정신병! 아니, 무슨 공식적으로 사절단이 온 것도 아니고 명예 귀족이 온 거잖아! 그것도 기사 같은 놈 하나 데리고 다니는!”
“하지만 명예 백작이라잖나!”
“그게 도대체 뭐가 중요한데!”
쾅! 산도른이 팔걸이를 내리쳤다.
“또 왕국이 대체 무슨 권리로 카일리언스의 내부 사정에 참견을 하겠냐고! 로아프라라는 거대 암흑가가 버젓이 있는 나라인데! 그쪽이 우리보다 심하면 더 심했지, 절대로 덜하지는 않다고. 적어도 우리는 시체를 거리에 매달아 놓지는 않잖아?”
“그렇긴 한데…… 그럼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건가?”
“미친, 시장이라는 놈이 이제 결정을 나한테 맡기네. 그래, 내버려 둬! 우리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새끼들이니까. 여기서 주워 먹을 것도 없는데 곧 떠나겠지!”
“하지만 안 떠난다면? 만약 도중에 알아차리고, 자기들도 한몫 챙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X발, 그러면───”
도시의 수호자가 살의를 드러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려야지.”
* * *
<다중 공간 이동>
온몸의 신경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이다.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특유의 감각. 곧바로 마력을 억눌러 저항력을 최대한 낮추자, 강하게 명멸하는 자색의 섬광이 베르덴의 전신을 뒤덮었다.
동시에 감각에 집중했다.
숲의 향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발아래에서는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다. 벽안을 빛낸 베르덴이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비행정?’
갑판의 넓이를 보니 소규모에 속하는 크기.
여기가 종착지는 아닐 텐데.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곁에 있던 레이라가 휘청거렸다.
“웁……!”
“레이라 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테일라가 레이라를 부축했다.
공간 이동에 의한 울렁증인가.
이전에 방주 회의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고도 했고, 고위 모험가인 만큼 공간 이동을 접한 적이 어느 정도 있을 텐데…….
그게 못내 부끄러웠는지 레이라가 베르덴을 흘기며 변명했다.
“……공간 이동은 체질적으로 맞지가 않아서요.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공간 이동에 꽤나 익숙한가 보네요.”
“뭐,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한두 번 접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마법에 의한 현상이니.
처음으로 대륙을 건너왔을 때는 속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마도왕의 실험실에서나 지금이나 어떠한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가 회의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앞으로 이 비행정을 타고 비행과 더불어 몇 차례 공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목적지가 공간 왜곡으로 보호가 되어 있는 바람에 한 번에 도착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절차가 많이 복잡합니다.”
“……복잡한 수준이 아니다만.”
공간 마법을 적극 활용해서 위치를 숨기고 있다니.
설령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상위 마탑이라고 해도 그걸 항시 유지하는 건 무척이나 버거울 텐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방주의 저력을 가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저는 피곤해서 먼저 쉬고 있을게요.”
“모시겠습니다.”
테일라와 레이라가 선루로 향했다.
두 사람을 일별한 베르덴이 리스너에게 물었다.
“며칠 정도 걸리지?”
“정확히 사흘 걸립니다. 아무래도 소규모 비행정이다 보니, 공간 이동에 필요한 마력을 충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그동안 소비할 물자는 아주 넉넉히 가져왔습니다. 지내실 공간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넓기도 하고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3일이라.
딱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뭘 하면서 지낼까.
베르덴은 깊이 고민하며, 리스너를 따라 비행정 내부로 향했다.
* * *
한편, 리버런그.
홀로 남겨진 아드리안이 대장간을 찾았다.
“어, 전에 오신 손님? 아직 약속된 날짜가 안 됐는데요?”
“제작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아, 예. 일단 검집하고 마스크는 완성을 했…….”
“먼저 가져가지.”
잔금을 지불하고 완성된 물건을 집어 들었다.
눈대중으로 크기가 맞는지 확인하고는 공간가방에 챙겨 넣었다. 다시 나가려고 하자, 대장장이가 슬그머니 그를 붙잡았다.
“혹시 따로 급하신 일이 있는 겁니까? 그런 사정이 있으시다면 더 빨리 만들어 드릴 수 있기는 합니다만…….”
대가로 비용이 추가된다.
아드리안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의 돈이 아니었기에 깊게 헤아렸다.
‘과연 주군이시라면…….’
돌아올 대답이야 뻔했다.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라며 분명 허락하셨을 터.
“단축되는 시간은.”
“음, 철야를 하면 오늘 새벽에는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오시면 되겠죠.”
예상보다 빠르다.
“그럼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근데 가능하시다면 현금을 좀…….”
고개를 끄덕인 그가 지폐를 정확히 세어 건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대장간에 들러 칼같이 장비를 챙기고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드리안이 장비를 점검했다.
마수 락시오스의 얇고 단단한 가죽을 몇 날 며칠 동안 무두질하여 제작한 상하의와 허리띠. 전체적으로 흑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상의 가죽 갑옷 세트였다.
신발은 높은 마찰력과 내구력 그리고 [경량화] 기능을 갖춘 매직 아이템.
‘그론드…… 라고 하는 자의 금고에서 가져왔다고 하셨었지.’
디자인이 썩 나쁘지 않다.
다음으로 회색의 금속 각반와 완갑을 착용했다.
마검 케덴스는, 어떠한 장식도 없는 새로운 흑색 검집에 납도하여 허리춤에 찼고, 짙은 남색의 장발은 가죽끈을 이용해 방해가 되지 않게 묶었다.
마지막으로 푸른색 로브를 두르고 후드를 눌러쓰고는, 가죽 갑옷과 동일한 색깔의 금속 마스크로 얼굴의 하관을 가렸다.
아드리안이 구석에 있는 전신 거울을 앞에 다가섰다.
“괜찮군.”
전체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준비는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군의 임무를 수행할 차례였다.
* * *
비행정에서의 나날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식사는 면밀히 신경 쓴 티가 났다.
이렇다 할 소음도 거의 없어 숙면을 취하기 편했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리스너와 테일라 그리고 컨디션을 회복한 레이라와 함께 카드 게임을 하기도 했던 터라 딱히 적적하지도 않았다.
다만 단점을 꼽자면…… 비행정을 운용하고 있는 방주의 일원들이, 베르덴과 레이라와 마주칠 때마다 일일이 예를 갖추는 게 과하게 느껴졌다.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곧 도착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 있던 베르덴이 바깥으로 나갔다.
마법진으로 보호받고 있는 갑판 위를 거닐며 선수(船首)에 자리를 잡았다. 사방이 구름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터라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흐릿한 경치를 응시하고 있자, 뒤에서 레이라가 다가왔다.
“방에 없어서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원래 리스너가 소개하기는 하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하도록 할게요. 그러니까…… 이제 한 5분만 기다리면 되겠네요.”
뭘 소개한다는 걸까.
베르덴은 되묻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나란히 선체에 팔을 올린 두 사람이 정면을 주시하고 있자. 곧 레이라가 가진 시계의 초침이 다섯 바퀴를 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
갑작스레 공간이 일그러졌다.
어떠한 마력의 전조도, 마법의 흔적도 없이. 이윽고 보랏빛으로 가득한 입구가 비행정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뒤를 돌아보자 틈새가 아물며 사라졌다.
‘공간 이동은 아니다.’
단번에 파악했지만, 이 현상을 뭐라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왕녀 실리스가 시전했던 마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다른 공간으로 넘어온 듯한 감각이었다.
시선을 앞으로 되돌렸다.
만연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힌다.
이내 꽉 막혀 있던 시야가 탁 트이며 광활한 공간이 나타났다.
베르덴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저건…….”
“리스너를 대신해서 말할게요.”
레이라가 앞을 가리켰다.
“위대한 방주, ‘아크(Ark)’에 오신 걸 환영해요.”
지상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상공.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하늘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론적으로 섬을 부유시키는 건 가능하다.
비행정과 같은 경우다.
적지 않은 양의 최상위 마석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동력원.
그 중심부에서 뻗어 나온 마력으로 선체 내부에 복잡하게 얽힌, <비행> 마법이 담겨 있는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 이러한 마법적 작용으로 선박은 날아오른다.
이 원리는 다른 것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다.’
특히나 섬은 비행정 비해 밀도가 아주 높다.
무게의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 한마디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작용점, 무수한 마법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성공해도 문제다.
섬을 띄우는 덴 어마어마한 마력이 소비된다.
도중에 동력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미친 듯이 마석을 쏟아부어 마력을 충전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과열은 반드시 발생한다.
섬의 추락은 필연.
아무리 작다고 해도 상공에서 떨어지면 운석과도 같다.
섬은 산산이 파괴될 것이고 지상은 뒤집힐 것이다.
근방에 도시가 있다면 충격파나 지진에 의해 한순간에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리겠지.
역사상 마법이 가장 발달된 현시대라고 해도 역부족이다.
하늘을 안식처로 삼는 건, 아직 인류의 영역에 닿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베르덴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하늘섬이 보인다.
눈대중으로 크기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광대한 면적. 더해서 근처에 떠 있는 여러 섬이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전부 크기가 가지각색이다만 무시할 수 없는 규모.
아래는 하얀 구름으로 가득하며, 위로는 우주가 펼쳐져 있다.
흑백,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풍경의 중심 속에 미지의 하늘섬이 존재하고 있다.
그 영토 위에 자리 잡은, 이전에 본 적 없는 거대한 건축물.
주변에는 주거 지역으로 보이는 정교한 건축물이 가득했으며 한쪽에는 식량을 생산하는 시설도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보안 마법진까지 도처에 깔려 있다.
“이게…… 가능한 건가?”
“이 정도는 되어야 인류를 이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리스너가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하늘섬을 바라본 채, 양쪽 팔을 벌리며 말했다.
“위대한 방주, 아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애셔 님.”
세상과 분리된 장소.
베르덴이 방주의 근간에 당도했다.
“그 말은 제가 아까 했는데요.”
레이라가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