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0화 (310/366)

310화 집합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리스너가 베르덴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공국의 공업 도시, 코엔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동일한 얼굴.

하지만 그것이 본연의 모습인지는 베르덴으로서도 알아차릴 수 없다.

리스너는 겉모습을 숨기는 데 능할 뿐만 아니라, 마력의 본질조차 다른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

“음, 역시 훨씬 낫군요. 자고로 대화를 나눌 때는, 이렇게 직접 마주 보는 게 가장 좋은 구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보니, 전보다 더 외모가 훤칠해지신 것 같습니다.”

리스너가 마법사인 건 분명하다.

마도사 특유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이 형질을 타고난 건가.’

아티팩트일 가능성도 높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 어찌 됐건 리스너가, 그저 평범한 방주의 연락책이 아닌 건 틀림없었다.

베르덴이 다리를 꼬며 등받이에 몸을 누였다.

가볍게 마력을 조작하자, 테이블 구석에 있던 메뉴판이 떠오르더니 리스너의 앞에 멈춰 섰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거나 골라라.”

“오, 사 주시는 겁니까? 혹시 음료 이외에 디저트도……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일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리스너가 재빠르게 메뉴를 훑었다.

그러고는 종업원을 불러 고급 차를 하나 선택하고, 다음으로 에그타르트와 초콜릿케이크, 마들렌을 주문했다.

“애셔 님은 안 드십니까?”

베르덴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입맛이 당기는 게 없었기에.

잠시 후, 종업원이 카트를 끌고 왔다.

미리 진열되어 있었던 디저트들이 탁자 위에 차례로 놓였다. 이후 뒤따라 나온 뜨거운 차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우물우물.

“음음, 생각보다 맛이 괜찮군요.”

리스너가 식사에 가까운 티타임을 즐기는 동안, 베르덴은 시선을 돌려 바깥을 응시했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리버런그의 풍경을 눈동자에 담았다.

그를 지켜보던 리스너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달라지셨군요.”

“……?”

“예전과 달리 많이 여유로워지신 느낌이 듭니다. 공국의 휴양도시, 브리엔테에서 뵈었을 때보다 말입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썩 좋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살벌하기까지 했다.

방주라는 미지의 집단에게 추적당하고 있었고,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것에 베르덴은 심한 불쾌감을 느꼈으니.

당시의 위압적인 마력을 리스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여유라…….’

베르덴이 눈이 가늘어졌다.

역천을 이루고 동대륙에 도착했을 때는, 평생 동안 육체의 한계로 감히 넘볼 수 없었던 마력과 마법을 추구하고 또 갈망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마법사 애셔로서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그렇게 이전보다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도왕의 분신, 관리자와의 사투 속에서 다시 한번 역천을 이루었다.

인간과 초월자 사이에 위치한 경지, 준초월자.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세부 경계가 나뉘지 않은 6위계는 더 이상 육체적인 성장은 바랄 수 없다.

남은 건 정신적 깨달음뿐.

그리고 관리자는 말했다.

───반드시 혼자서 이뤄야 한다는 것에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물며 마탑을 상대한다면 말이지.

───동료를…… 만들라는 말씀입니까?

───동료를 두어도 되고, 그대가 직접 집단을 이끌어도 되겠지. 둘 다 의미는 비슷하지만 말이야. 그대에게 끔찍한 삶을 안겨 준 마탑인 만큼, 그대와 비슷한 복수심을 품은 자들이 있을 테니 함께한다면 의미가 있겠지.

소멸을 앞둔 그의 충고를 기억한다.

‘그래서 조급함을 버렸다.’

초월을 이루는 것도, 아드리안과 같은 동료를 구하는 것도, 서두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였다.

베르덴이 여유를 갖게 된 건.

“이만 목도 축였으면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지.”

“아, 그렇죠.”

리스너가 예의 장치를 꺼냈다.

마법 물품, 노이즈를 발동하자 주변 공기가 일그러졌다. 이제부터 둘의 대화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서두는 축하였다.

“애셔 님. 고대의 시련, 마도왕의 무덤을 극복하신 걸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진중한 목소리였다.

옅은 황동색의 눈동자가 빛났다.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자면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고작 몇 개월 사이에 마도왕의 무덤이 있는 위치를 찾는 데 성공한 건 운이 좋았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설마 망설임 없이 시련에 도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나?”

“아시다시피 방주니까요. 다만 애셔 님이 어떤 행적을 남겼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위치뿐이고, 그마저도 은폐하거나 지하로 들어가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 외의 정보는 단순히 세간을 통해 얻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니…… 방주의 숨겨진 힘 중 하나라고 보면 되겠지.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경지에 오른 지금까지도 감시를 받는다는 기분을 전혀 받은 적이 없었으니.

도대체 어떤 기능인 걸까.

“……방주에서는 애셔 님께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야 마도왕의 무덤에는 유능한 후보만이 아니라, 6위계 마도사인 선장께서도 도전하셨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으니까요.”

“역시 극복하라고 알려 준 게 아니었군.”

“알고 계셨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

베르덴이 말을 이었다.

“높은 경지를 이룩했던 강자들조차 이겨 내지 못한 고대의 시련을, 당시 4위계였던 나에게 권한 것도 그렇고. 그걸 고작 1년하고도 63일이라는 시간 안에, 직접 위치까지 찾아 해결하라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 않아.”

실패를 가정한 제안.

만약 베르덴이 시련을 찾지 못하거나 포기한다고 해도, 방주는 다시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진정으로 방주의 일원이 된다면, 이전의 시간 제약 같은 건 없이 언제든 고대의 시련에 도전할 기회를 주겠다고.

“어쩌면 다른 제안일 수도 있지만…… 뭐, 이제 와선 아무래도 좋을 일이지.”

말 그대로였다.

어떤 의도를 숨겼다고 해도, 베르덴은 개의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방주에서 고대의 시련이라는 기회를 준 건 사실이었으니까.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오셔서 다행이라는 건 진심입니다. 오히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애셔 님께서…… 시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리스너가 차를 머금으며 베르덴을 살폈다.

변화는 무수하나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이전과 달리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는 형용키 어려운 존재감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만큼 쉽지 않기도 했고 확실히 얻은 건 많다. 어째서 고대의 시련이라 분류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일단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베르덴이 물었다.

“방주 회의. 마중을 나온 건 너 혼자뿐인가?”

“각 참석자에게는 담당자가 붙습니다. 애셔 님에게는 저, 리스너가. 그리고 이 도시에 계시는 레이라 님은 다른 분이 맡고 있습니다.”

“출발은 언제지?”

“늦어도 3일 뒤에는 출발할 예정입니다. 원하신다면 그 전에 이동할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레이라 님과 동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같이 오신 뒤에야, 회의장으로 갈 수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가.

“그럼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틀 뒤, 리버런그를 나오시면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걸로 이야기도 마쳤으니───”

리스너가 포크를 재빠르게 놀렸다.

남은 디저트를 해치우고 찻잔마저 비운 그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후, 다시 뵙겠습니다.”

* * *

리스너와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주군. 돌아오시기 전까지, 리버런그에 대한 조사는 끝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아드리안의 배웅을 받고는 성문을 나섰다.

근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보였는데, 그 대다수가 모험가였다. 이른 아침부터 아인종 토벌에 나설 모양인 것 같았다.

한동안 걷자 도시와 거리가 벌어졌다.

인기척이 점차 드물어질 때쯤, 평범한 가죽 갑옷과 철검을 찬 사내가 뒤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리스너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모험가 행세인가?”

“아인종 토벌로 인해 모험가가 많이 모이기도 했으니까요. 위장의 기본은 무리에 섞여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어떻게 저를 알아보신 겁니까? 마력은 완전히 감췄는데.”

“글쎄,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굳이 말하자면 육감이라고나 할까.

세세한 논리 구조 없이, 직감적으로 사물의 본질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고 나서, 그러한 감각이 향상된 것이 실감이 났다.

저벅, 저벅.

베르덴은 리스너를 뒤따랐다.

가도를 벗어나 얕은 숲으로 들어서자, 주위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뭐라도 숨겨 놓은 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묵묵히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오셨군요, 애셔.”

“처음뵙겠습니다, 애셔 님.”

핏빛검 레이라.

그리고 모험가 행색을 하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의 여성. 리스너가 말했던, 레이라의 담당자임이 자명했다.

“모두 모이셨으니 은폐를 시작하겠습니다, 리스너.”

“부탁 드립니다, 테일라.”

테일라가 은빛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 정수리에 솟아난 용두를 누르자, 초침 소리가 들려오더니 회중시계가 박살 났다.

동시에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를 본 베르덴이 눈을 부릅떴다.

“……공간 왜곡?”

아티팩트도 아닌 작은 시계.

그 안에 최상위 속성인 공간의 힘이 깃들어 있다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레이라가 다가왔다.

“후훗, 당신도 그런 표정을 짓기는 하는군요.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러요. 그렇지 않나요, 리스너?”

“하하, 물론이죠.”

리스너가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테일라가 들고 있던 것과 달리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직전과 동일하게 기동하자, 시계가 박살 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직후 내부에 잠들어 있던 기하학적은 마법 문양들이 떠올랐다.

위, 중간, 아래. 원형으로 이어진 그것들이 베르덴을 포함한 네 사람을 둥글게, 크게 감쌌다.

‘설마 이건…….’

베르덴이 해석을 마칠 찰나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다중 공간 이동>

화아아아악!

선명한 보랏빛이 불꽃처럼 터져 나온다.

이윽고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마력과 함께 빛이 잦아들면서, 방금까지 왜곡되어 있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숲속에는 어떠한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우르르릉───콰광!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먹구름.

강렬한 푸른빛이 연신 번쩍거리는 어둠 속을, 거대한 비행정이 나아가고 있다. 그 갑판 위에 있는 현장(舷牆)에 갈색 피부의 여인이 서 있었다.

선루에서 나온, 왼쪽 눈에 큰 흉터가 있는 사내가 한숨을 쉬며 여인을 향했다.

“레그리트, 슬슬 공간 이동을 해야하니 이만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러다가 튕겨 나가면 안 찾아 줄 겁니다.”

“흐흐…….”

“레그리트?”

“흐하하하하핫!”

여인, 레그리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기행이었으나 익숙하다.

눈가를 어루만지며,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사내가 한층 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또 왜 그러십니까. 뭐, 즐거운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흐흐…… 즐거운 일이라. 그래, 그래. 실로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는다. 안광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평소보다도 더욱 격한 반응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이상하군요. 방주 회의는 지겹다고, 매번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의는 지겨운 게 맞아.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방주 후보다.”

“후보요?”

“자세한 건 아직까지 기밀이라 너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 그 후보가 아주 특출난 남자라는 것 외에는.”

레그리트가 어깨를 들썩였다.

“아, 도대체 어떻게 5위계 마법사가 그 시련을 돌파했을까, 어떻게 살아남았고 또 무엇을 얻었을까……! 궁금하고 기대돼서 정말로 참을 수가 없어……! 안 그런가?”

“아니, 그게 누구인───”

“이럴 때가 아니지. 혹시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방주로 가 있는 게 좋겠군. 당장 공간 이동을 준비해라! 페르윅, 너도 따라오고! 흐하하하하핫!”

“억!”

레그리트가 페르윅의 뒷덜미를 잡았다.

압도적인 힘이었다.

저항하는 건 무의미했다.

곧바로 체념한 페르윅은 인형처럼 질질 끌려다니며 허공을 바라봤다.

레그리트가 이 정도로 흥분하는 건 보기 드문데.

‘방주에서 뭔 일 나겠군.’

경험에 의한 직감이었다.

빌어먹을 선장.

에휴, 페르윅이 힘없이 숨을 토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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