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06화 (306/366)
  • 306화 카일리언스 (2)

    벨디른 공화국으로부터 흐르는 헤핀강이 중심을 관통하는 도시, ‘리버런그’.

    도시 연합체, 카일리언스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강을 원천으로 삼아, 풍요로운 발전을 이룩했다.

    높은 번식력을 자랑하는 토종 물고기와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곡식은 자생력의 근간.

    그와 더해서 선박을 이용한 공화국과의 교역으로 도시 국가 특유의 고립적인 환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역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공화국으로부터 중앙 대륙의 문물이 전해졌다. 그런 이유로 도시의 풍경은 보다 시대에 걸맞게 세련되게 변화했다.

    리버런그, 다른 말로는 카일리언스, 문화의 중심지.

    일종의 관광지로 취급되어 많은 외지인이 방문하고는 한다. 지금도 선박에서는 여러 사람이 오가고 있다.

    다만 봄부터 시작된 아인종 출몰로 인해, 육로로 오는 발걸음이 거의 끊겨 버렸다.

    “하아아아아암.”

    성문을 지키는 병사 하나가 길게 하품했다.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건 지루한 노동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그가 쪼그려 앉아, 벽에 등을 기대었다.

    옆에 있던 병사가 미간을 좁혔다.

    “야, 곧 경비대장 순찰 시간이야. 그러다 걸리면 잔소리 듣는다.”

    “괜찮아, 괜찮아. 온종일 서 있는 게 아니라 자리 지키는 게 업무인데 뭐가 문제라고. 솔직히 그렇잖아? 다리 아파서 잠깐 앉아 있겠다는데 그럴 수도 있지. 경비대장이 괜히 트집 잡는 거라니까.”

    성문 경비병은 도시의 얼굴이니 뭐니…….

    체면 차리기 좋아하는 경비대장의 말버릇이었다.

    처음이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구나 생각하지, 며칠 지나면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로 변하는 건 금방이다.

    “그나저나 이 짜증 나는 아인종 토벌은 언제쯤이면 끝나는 건지……. 도대체 여기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아인종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 걸까?”

    “낸들 아냐. 저기, 모험가 양반들도 모른다고 하던데.”

    “아, 지겨워, 지겹다고. 올해도 거의 끝났는데 아직도 토벌, 토벌……! 예전에는 외지인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성문 오가는 건 매번 똑같은 사람뿐이니.”

    특히 도시에 있는 길드 창고로 운반되는 아인종 사체가 문제다.

    대부분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하는데, 아주 가끔씩 사체에서 역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당시에 독샘이 터져서 매직 아이템이 망가졌다고 했던가.

    코를 꿰뚫는 그 악취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조만간 끝나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최근에 알았는데, 불과 얼마 전에 엄청 유명한 모험가가 왔다고 하더라고?”

    “응? 그게 누군데?”

    “미스릴 등급 모험가. 여자라고 하는데, 와, 같이 토벌 나갔던 모험가한테 얘기를 들어 보니까 어마어마하대.”

    산 정상에 똬리를 뜬 거대 뱀, 머리가 잘리고도 움직이는 거대 트롤, 거기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식인 괴물까지.

    다수의 모험가가 고전을 금치 못하던 놈들을 보란 듯이 단신으로 토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선 토벌에서는, 세 명의 지휘관 중 하나로 나간다고 하더라고.”

    “와…… 말로만 들어도 대단하네. 그런데 예쁘냐?”

    “나도 몰라. 저번에 보니까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말이야. 오늘 저녁에 토벌대가 돌아온다고 하니 한번 구경하러 가든가.”

    “흐음, 그렇게까지 말하니 궁금하기는 하네. 퇴근하고 슬쩍 보러 갈까.”

    한동안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도중, 저 멀리서 낯선 마차 한 대가 홀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외지인인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마땅히 있어야 할 말이 없다. 그 대신 웬 사람 하나가 마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뭐, 뭐냐, 저거?”

    “글쎄……?”

    눈을 끔뻑이는 사이 마차가 지척에 다가와 멈췄다.

    먼저 푸른 로브를 뒤집어쓴 훤칠한 키의 남자가 마차에서 하차했다.

    이어서 잿빛 머리칼의 사내가 땅에 받을 디디며 손짓하자, 보랏빛이 흘러나오며 마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에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사내, 베르덴이 발걸음을 옮겼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경비병이 다급히 말했다.

    “시, 신분증을…….”

    스윽. 베르덴이 메달을 보였다.

    슬쩍 보니 날카로운 방패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게 뭐지?’

    병사는 메달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타국인 에스티리아 왕국의 국기인 건 자명하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야, 가서 경비대장님 좀 불러와.”

    어쭙잖게 아는 척하면 피 본다.

    언제나 책임은 넘기는 게 상책이다.

    * * *

    “드디어 도착했군.”

    무사히 리버런그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절차는 당연하다는 듯 생략. 베르덴이 보증해 준 터라, 아드리안이 임시 신분증을 발급할 필요도 없었다.

    둘이 사라지기 전까지 경비대장은 미소를 띤 채 굽신거렸다.

    여타 귀족처럼 영지를 다스리는 필수적인 의무는 없이, 명예 귀족은 작위에 걸맞은 권위만을 행사하는 게 가능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쓸데가 많다.

    실리스에게 받은 신분이 이제는 퍽 마음에 들었다.

    마차를 고용해 시내를 이동했다.

    당장 최우선으로 처리할 건 아드리안의 치료다. 리버런그의 교회에 도착하자 중년의 성직자가 환영했다.

    “못 보던 분들이시군요. 기도를 드리러 오신 거라면 제가 직접 안내를…….”

    “헌금을 하러 왔습니다.”

    헌금은 곧 기적이 필요하다는 뜻.

    치료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건 교리에 어긋나기에 생겨난 은유적인 포현이었다.

    ‘리버런그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급은 주교.’

    루아스교에게 귀족 계급은 무의미하다.

    권위 따위보다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게 합리적이다.

    베르덴이 보란 듯이 헌금통을 채웠다.

    약 수천만 엘크에 달하는 액수에, 잠시 놀란 기색을 띠고 있던 성직자가 작게 속삭였다.

    “현재 레나 주교께서는 모험가 지원을 위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오늘 저녁에 리버런그로 복귀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방을 내어드릴 테니, 여기서 기다리셔도 좋습니다만.”

    베르덴이 아드리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움직이기 불편하면 교회에서 휴식을 취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뇨,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크게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드리안이 톡톡 발끝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미들로스 자치령에 있었을 때와 달리 최소한으로 몸이 회복된 게 보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예를 펼치거나 속도를 일정 이상 높이지 않으면 단시간으로 전투도 가능하다고.

    기를 깨우친 자.

    육체의 회복 속도와 생명력은 마법사와 격이 다르다.

    “그러시군요. 으음, 당장 위급하지는 않으신 것 같으니…… 내일 점심이 지난 후에 다시 오십시오. 성함을 알려 주신다면 미리 주교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직자의 태도는 유연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은 아닌 모양. 베르덴은 애셔를, 아드리안 또한 임시로 쓸 가명을 말하고는 교회를 나섰다.

    다음은 대장간에 들를 차례였다.

    “으음, 이렇게 주군의 발목만 잡고 있으니 낯을 들 수가 없군요. 이제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으니 대장간은 저 혼자 다녀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상관은 없는데. 정말로 괜찮겠나?”

    “도중에 초월자라도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그런 경우라면 베르덴도 위험하다.

    “좋아. 그동안 나는 여관을 대여하고 시내를 둘러보고 있겠다. 각자 볼일을 마치면 중앙 광장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라.”

    먼저 아공간에서 꺼낸 건 가방이었다.

    레인디아를 얻기 전까지 사용하던 공간 가방으로, 안에는 비상시에 사용할 현금과 현물 그리고 식료품이 들어 있다.

    이대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아드리안에게 주는 게 적합할 터.

    이어서 카드를 건넸다.

    사실 이게 메인이었다.

    리버런그에는 다이나 은행이 있다.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은행에 있는 돈을 끌어다 쓰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베르덴의 계좌에는 막대한 재산이 잠들어 있다.

    “한도는 없다고 봐도 좋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원 없이 쓰도록.”

    베르덴은 부유하다.

    * * *

    아드리안은 전 중앙 대륙 4강이다.

    한마디로 유명 인사였기에, 켄드라스 때처럼, 같은 대륙 출신과 만나면 정체를 발각당할 가능성이 높다.

    몇 년의 공백이 있다고는 해도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니 모습을 숨긴다.’

    주군께 폐가 되지 않도록.

    “어, 그러니까 완갑과 각반, 검집은 그렇다 치는데…… 금속 마스크를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

    “그렇다.”

    마스크로 눈 아래의 하관을 숨기고, 그 위쪽은 로브로 덮으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유의 움직임과 자색의 기운 그리고 기예를 드러내지 않는 한 말이다.

    중앙 대륙으로 향하기 전에 필요한 장비였다.

    물론 마구잡이로 결정한 건 아니었다. 이러한 모습에는 아드리안의 미적 감각, 즉 취향이 가미되어 있었다.

    “으음…… 어떤 걸 원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설명이 자세하니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그럼 바로 제작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금은 이걸로 치르지.”

    결제를 마친 뒤, 대장장이가 카드를 공손히 돌려주었다.

    최근에는 무기하고 방어구 손질 의뢰만 들어왔기에, 오늘처럼 큰돈이 되는 제작 의뢰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드리안의 시야에 신문이 들어왔다.

    앞면에 벨디른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 대장장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보고 있던 건데, 필요하시면 드릴까요?”

    “아니, 필요 없다. 최근에 벨디른 공화국에 있는 공간 이동진이 중지되었다는 게 떠올라서.”

    “아, 그렇죠. 이번에 공화국이 국경을 폐쇄하는 바람에 난리도 아닙니다.”

    국경 폐쇄?

    그건 들은 적이 없는데.

    아드리안이 슬쩍 물었다.

    “혹시 공화국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나?”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제 동생이 공화국 갔다가, 폐쇄되기 직전에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긴 했죠.”

    대장장이는 귀한 손님에게 숨길 게 없었다.

    “그러니까───”

    * * *

    “벨디른 공화국의 최고 의원이 피살되었다고 합니다.”

    “……최고 의원이?”

    벨디른 공화국은 문자 그대로 공화제.

    선거로 의원을 선출하고, 그러한 의원 중에서 결정되는 것이 다섯 명의 최고 의원이다. 공화국 권력의 최정점.

    확실히 그런 자가 죽었다면 현 사태에 대해 이해가 간다.

    ‘공간 이동진에 이어 국경까지 걸어 잠근 걸 보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가.’

    베르덴이 턱을 쓸며 말했다.

    “그나저나 제작은 얼마나 걸린다고 하지?”

    “넉넉잡아 15일 정도라고 합니다.”

    15일이라.

    ‘적당하기는 한데.’

    방주와의 약속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일.

    방주 회의에 참석한 뒤 돌아온다면, 아드리안의 치료와 제작이 얼추 마무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공화국이다.’

    국경을 폐쇄한 건 어떻게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간 이동진을 쓸 수 없다는 건 큰 문제였다. 마음대로 가동해서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앙 대륙으로 가려면 공화국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아니면 대륙을 넘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차악도 아니고 최악이었다.

    적어도 수 개월은 걸리는 데다가, 그 사이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심지어는 <비행>이 불가능한 지역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당장 고민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군. 방법은 나중에 찾도록 하고, 일단 식사라도 하지.”

    오면서 봐 둔 데가 있다.

    날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내.

    곳곳에서 마석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헤핀강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낯선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내가 진짜 봤다니까요?!”

    “그러니까 말없이 달리는 마차가 아인종 사이를 누볐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내가 바보로 보이냐?”

    “나 말고도 목격자 있거든요? 갑자기 마차가 들이닥치더니 마법으로 아인종을 몰살했다고!”

    “음, 아직 확인된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보고가 올라온 건 사실이야.”

    “봐 봐, 확인 안 됐다고 하잖아. 그냥 네가 지쳐서 아인종을 잘못 본 거겠지.”

    “아니, 진짜라니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토벌에 있던 모험가 일부가 복귀한 모양입니다.”

    “착용한 장비나 플레이트를 보면 고위 모험가…….”

    베르덴이 순간 말을 멈췄다.

    저 무리들 가장 앞에 있는 미스릴 등급 모험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등을 가린 흑색 망토.

    그 안에 감춰져 있는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얇은 갑옷, 머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검붉은 투구.

    그리고 황금빛 머리칼과 허리에 찬 붉은 검까지.

    특징은 분명하다.

    공국에서 베르덴과 함께 소울 트리를 토벌했던 모험가.

    그리고 방주의 후보 중 하나.

    핏빛검, 레이라.

    문득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내 투구 너머로 서로가 시선을 마주쳤다.

    “……애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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