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02화 (302/366)

302화 뒷걸음 (1)

발로크의 정신 지배는 대외비다.

강제 마법진의 존재나 인간을 마법 실험체로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 보헤미른 마탑의 비공식 실험에 대해 알려지는 걸, 베르덴은 원하지 않는다.

물증이 없는 소문.

오직 심증밖에 없는 진실은 번잡한 혼란을 일으킬 뿐.

동시에 보헤미른 마탑은 겉으로는 내색 않으면서도 암암리에 소란의 진원에 대해 파악하려 할 터다.

자칫하면 그림자를 밟힌다.

최악으로는 베르덴과 아드리안의 생존마저 발각될 수도 있고.

그리고 발로크가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이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는 광기의 본질과 습성, 마법적 능력에 파악하고 있다고 하나 결국 일각에 불과하다.

‘나는 발로크의 전력을 모른다.’

애초에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제자들과 마탑의 원로들조차도……. 직접 마법전을 벌였던 블랙 아워의 수장, 다히트라면 또 모를까.

사실 그조차도 확실치 않다.

‘또한 발로크가 여러 상황 속에서 어떤 판단들을 내릴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경험을 바탕으로 관점을 이해하고 추측하는 게 전부.

다시 말해 변수가 많아질수록 발로크의 행동 양상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정보의 은폐는 필수적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니 아드리안의 정체는 감춘다.

가능하면 외견도 숨기고 싶었으나, 이미 웰스 타운에서 맨 얼굴이 노출된 터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방침은 정해졌다.

그래서였다.

“……그 몸으로 잘도 살아서 움직이네?”

팔짱을 낀 레베카가 아드리안을 째려봤다.

적의 가득한 시선.

그녀로서는 마땅한 반응이다.

아드리안은 보헤미른 마탑에서 파견된 검사다.

마탑과 반하는 소사이어티와는 대립적인 관계. 심지어 자치령의 도시와 웰스 타운에서 학살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을 베려고 한 적도 있었고.

정신 지배를 받아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참작의 여지는 있으나, 앞에 있는 두 사람이 알 길이 없다.

“…….”

에단의 눈빛도 곱지 않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손등을 앞세운 오른손, 그 보이지 않는 손바닥 안쪽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정체는 모르겠으나 여차하면 발동할 심산인 모양.

어떻게 오해를 풀면 좋을까.

‘답은 간단하다.’

무시로 일관하는 것.

소사이어티, 특히 에단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려 하고 있다. 그러니 눈치껏 자세히 캐물으려 하지는 않을 터다.

때로 침묵은 현명하다.

다만 언어가 정적보다 많은 걸 함축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다.

레베카를 마주 보던 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감사를 전하지.”

“……?”

아이를 살린 것에 대한 인사였다.

진중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에단은 손을 움찔거리며 흥미를 보였고 레베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운 건 당연했다.

웰스 타운에서 검을 휘두르던 광인과 지금의 아드리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내, 내가 잘못 들었나?”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이런, 내심 많이 긴장했는데 예상했던 거와는 전혀 다르군요. 안 그렇습니까, 레베카?”

에단이 작게 웃었다.

이내 손바닥에 있던 것이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같이 머물러 있던 경계심도 직전과 달리 옅어졌다.

하나 동시에 팔찌를 장식하고 있는 투명한 보석이 아드리안을 비추었다. 음흉하게.

“……흥.”

레베카는 그대로였다.

말 몇 마디로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의심스럽게 아드리안의 검과 손을 주시했다. 노골적이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여실히 보였다.

“아마 저희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같습니다.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흔쾌히 알려 주실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러니 묻지 않겠습니다.”

에단의 실눈이 호선을 그렸다.

“다만 별개로, 잠시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화를 원한다.

외부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러지.”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원하는 바였다.

* * *

아드리안은 동굴로 돌아가 깊은 휴식을 취했다.

조각난 뼈가 온전히 붙으려면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다. 어긋난 상태로 붙었다가는 되돌리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잎이 떨어져 가지를 드러내는 나무들.

앙상한 숲에는 베르덴과 에단 그리고 레베카, 이 세 사람만이 전부였다.

“소사이어티는.”

서두는 갑작스러웠다.

자치령의 지하 수로와 저택에서의 대화.

그사이에 호의적으로 변한 에단의 태도처럼.

“마탑의 체제에 반하나, 지금껏 마탑이 이룩한 성과마저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힘과 지식이 없었다면 작금의 시대를 맞이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마탑은 세상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아인종, 이형종 등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더 많은 시민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고, 전반적으로 생활 수준 또한 풍요로워졌다.

그 외에도 차례차례 열거하면 열 손가락을 아득히 넘어간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은 언젠가 썩는 법. 현재의 마탑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방향?”

“혹시 최초의 마탑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다.

마탑의 역사를 접한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극히 드물던 머나먼 시절.

처음으로 위계라는 마법 분류를 도입했으며, 체계적인 마법사 양성을 시작한 것이 바로 최초의 마탑이었으니까.

“맞습니다. 그런 최초의 마탑이 세워진 목적은 바로 사람들을 위해서. 의기로운 마법사들이 모여, 신비로 치부되던 마법을 파헤치고 연구하여 시대의 어려움을 타파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힘과 노력 그리고 각오에 감화받은 자들이 다른 마탑을 세운 것이 마탑 체제의 시초였습니다.”

에단이 천천히 발을 떼어 근처를 거닐었다.

“하지만 유구한 세월은 잔혹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 마탑이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망각시켰으니…….”

마법사는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공리적인 향상심은 누구나 갖고 있는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마탑의 근본은 위대하다.

이기심이라는 본능을 뒤틀어 과정의 일부로 삼고, 결과적으로 이타심을 낳았기에.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마탑들은 마법사적인 마음만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이곳도 마찬가지다.

미들로스 자치령의 도시와 웰스 타운에서 발생한 마탑 간의 분쟁. 여기에 어떤 이타심이 있단 말인가.

그 과정과 목적에는 서로의 이기심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

베르덴은 에단의 연설을 경청했다.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베르덴과 아드리안은 마탑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결정체였다.

호흡을 고른 에단이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소사이어티는 시대의 개혁을 근간으로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하는 건가?”

“그건 과정의 일부일 뿐, 저희는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실에서 행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

에단이 멈춰 섰다.

“그것이야말로 마법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언어 속에 세월이 담겨 있다.

저건 찰나의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여러 사상과 지식이 겹쳐지고 어우러진 끝에 내린 하나의 결론이다.

소사이어티라는 미지의 단체.

마탑에 반한다는 특이 사항만을 주목했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건 그야말로 베르덴의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흥미가 생긴다.

마법사로서 순수한 관심이었다.

“……애셔 님께서는 저희가 어떤 말을 꺼낼지 짐작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어투는 달라도 익숙할 수밖에 없다.

베르덴은 이미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접한 적이 있었으니까.

방주의 리스너.

그와 나눈 대화와 약속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소사이어티에 입회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말투에는 진지함이 묻어나 있다.

에단과 레베카가 기대감이 담긴 시선으로, 베르덴을 응시했다. 물론 아주 약간에 불과했다.

어떤 대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거절하지.”

“아, 에단.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

“그래도 깊게 대화를 나눠 보고 싶군.”

레베카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깜빡였다.

곁에 있던 에단의 실눈 사이에서 청회색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제안을 받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긍정적인 관계의 여지를 남기는 게 바람이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의 답변이었다.

에단이 급하게 손짓했다.

곧장 레베카가 로브 안쪽에서 동전 크기의, 역삼각형과 그 안에 원이 새겨져 있는 표식을 베르덴에게 내밀었다.

“이 표식을 기동하면 내재되어 있는 마석에서 마력이 방출되고, 고유 마력 파장으로 변환되어 사방으로 퍼질 거예요. 어지간히 예민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감지하기도 어렵고, 알아챈다고 해도 어디서 파장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죠.”

“소사이어티에서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식입니다. 도시에서 기동하면 머지않아 소사이어티에서 접촉을 시도할 겁니다. 그 외에 복잡한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귀찮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언제 만날지는 알아서 정하라는 거군.”

“그게 더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베르덴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자마자, 표식이 아공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하나 의문이 있었다.

“만약 다른 대륙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되지?”

“다른 대륙이라…… 분명 소사이어티는 동대륙에서 활동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탑들도 그렇게 믿고 있죠. 하나 과연 실상은 어떨까요.”

“……!”

“세상은 비밀로 얼룩져 있습니다. 저희도, 애셔 님도.”

에단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베르덴이 인사를 건네며 떠나는 에단과 레베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비밀 조직이 한둘이 아니군.’

인류를 이끌고자 하는 방주.

구인류를 몰살하고 신인류를 만들려는 글러트니.

불멸의 세상을 바라는 흑마법사 집단, 주검의 영광.

마법 시대의 개혁을 원하는 소사이어티.

대충 세어 봐도 이렇다.

베르덴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다시금 실감했다.

그런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베르덴이 세력을 구축한다면 그것 또한 세간에서는 비밀 조직으로 치부될 터였으니.

이내 생각을 그만두고 머리칼을 쓸었다.

‘어쨌든 이걸로 하나는 처리했군.’

다만 아직 떠날 수는 없다.

슬슬 놈들이 자치령에 올 때가 되었다.

그것마저 마저 처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드리안을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향할 수 있다.

무시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랬다가는 훗날 귀찮아질 게 뻔했으니까.

마탑이란 게 그렇다.

* * *

베르덴이 미들로스 자치령에 복귀했다.

저택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컥, 정문이 열리며 패드렐드가 달려 나왔다.

“드디어 오셨군요, 애셔 님!”

반가움과 안도감이 가득하다.

특히 후자의 감정이 표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밀수품 페이버의 값이나 정보료 때문이 아니었다. 목에 칼이라도 들어온 듯, 비 오듯 흘리고 있는 식은땀이 말하고 있다.

“마탑에서 찾아온 건가?”

“예, 곧 조사관이 파견되니 관계자는 전부 자진하라고 공고문을…… 어? 아, 알고 계셨습니까?”

“그게 당연할 테니까.”

자치령주가 실종되었다.

게다가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와 자치령 지부의 수뇌부가 몰살당했다. 그것도 자치령의 성내에서.

과연 이 사태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진정될까.

‘그럴 리가 없지.’

라리안 마탑.

화산섬의 마탑.

자치령에 큰 지분을 갖고 있는 둘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진상, 그리고 켄드라스와 맺고 있던 거래가 수면으로 드러났는지 파악하기 위해 고위 마법사를 파견할 터.

조금이라도 관계된 자는 모조리 색출할 것이다.

마멘투스 상회와 무지갯빛 여관 등을 조사한 뒷골목 세력까지……. 그에 그치지 않고 명분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소탕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까딱하면 도시에 피바람이 분다.

그뿐만 아니라 끈질기게 따라붙은 끝에 베르덴에게까지 추적이 이어지겠지.

그러니 여기서 끊어야 한다.

“알다미아의 광대. 그 둘은 살아 있나?”

“……! 예, 살아 있긴 합니다.”

보복을 가했지만 죽이지 않았다.

패드렐드와 뒷골목 세력은 베르덴이 남긴 충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럼 적당히 잘 치료해 두도록. 도중에 죽으면 아까우니.”

놈들은 테러를 일삼는 학살자.

그리고 보헤미른 마탑이 보낸 용병이다.

애초부터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또한 뒤늦게 죽어 시체가 되었다고 해도 충분하기에 신변을 넘겨준 거였는데……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면 과정을 좀 더 매끄럽게 만들 수 있겠지.

베르덴이 말했다.

“두 마탑의 조사관이 미들로스 자치령에 도착하면 전해라. 원하는 걸 알고 싶다면 저택에 직접 찾아오라고.”

“그, 그 말씀은…….”

“담판은 내가 짓겠다.”

시작이 그러했듯 마무리 또한 베르덴의 몫.

놀란 눈으로 숨을 들이켠 패드렐드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애셔 님.”

살았다.

안도의 한숨이 번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