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00화 (300/366)
  • 300화 아드리안 (2)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정상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폐쇄적인 환경은 본래의 기량을 한없이 약화시켰다.

    또한 갈수록 참혹해지는 스승의 모습에 몇 번이고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다른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 없다.

    지금, 벗어나야 한다.

    “으아아아아아아!”

    콰지지직!

    사력을 다해 오른팔을 구속한 마력을 찢어발겼다.

    “뭣……!”

    마법사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그를 노려보며 손날에 기를 집중하고는 팔을 휘둘러 허공을 갈랐다. 검기에 비해 보잘것없었지만 근육을 가르기에는 충분하다.

    촤아아아악!

    찢겨 나간 목에서 터져 나온 피 분수.

    기습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세 명의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놈들의 피로 물든 아드리안은, 곧장 근방에 있는 마석을 부수고 남은 팔다리의 구속 마법진마저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유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콰앙! 쾅!

    아드리안이 연신 벽을 후려쳤다.

    그 단단함에 왼손이 끝내 으스러지는 걸 느꼈으나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벽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너머로 쇠사슬에 걸려 있는 노인이 보였다.

    “스승님! 스승님……!”

    “…….”

    흔들어 봤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말라붙어 뼈가 드러난 어깨. 울분이 차올랐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제가 반드시 구해 드리겠습니다,’

    스승을 부축하고 입구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구석에 놓여 있던 아드리안의 검이 보였다. 방치되어 녹이 슬어 있는 금속이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검이다.

    오랜만에 무기를 되찾은 아드리안이 이를 악물었다.

    왼쪽 어깨로는 스승을 부축하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섰다.

    …….

    길고 복잡한 복도, 마치 미로 같았다.

    도중 마주친 마법사들을 검으로 베며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아 헤맸다.

    대처하지 못한 마법이 팔뚝을 관통했다.

    수십 개의 석편 조각이 등에 박혀 신경과 근육을 자극했다.

    “허억, 허억…….”

    흐트러진 호흡을 억지로 붙잡으며 멈추지 않고 나아갔고, 어느새 두 자릿수를 넘는 마법사를 살해했다.

    이윽고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따라간 끝에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때까지도 의심하지 못했다. 아드리안에게는 그런 행운조차 간절했었기에.

    “스승님, 곧 밖입니다. 어떻게든 제가 교회로 데려……!”

    그때였다.

    푹, 문득 작열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금속 날붙이가 옆구리를 꿰뚫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한계에 다다라 있던 아드리안이다.

    충격과 통증에 다리에 힘이 풀렸고, 스승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반사적으로 상처를 지혈하며 고개를 들자, 얇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금속 날붙이를 단단히 쥐고 있는 스승이 벽을 짚으며 일어섰다.

    “스, 스승님……?”

    “아…… 드리안…….”

    끊겨 가는 목소리.

    죽어 가는 눈동자에 미약한 빛이 돌아왔다.

    “피해, 라……!”

    후웅. 예기가 허공을 갈랐다.

    아드리안에게 닿지 않았으나 명확하게 힘이 실려 있다.

    바깥이 코앞인데, 스승이 통로를 막아섰다. 힘없이 날붙이를 휘두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의식이 멍했다.

    스승이 말했다.

    “나를…… 베어라.”

    “……!”

    “나는 이미 틀렸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불구.

    이 몸으로 마탑의 추격을 벗어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그리고 실험으로 인해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모종의 수단으로 인해 움직임이 강제당하고 있다.

    저항은 무색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본능이 이성을 장악했기에.

    “베어라……!”

    저벅…… 저벅…….

    스승이 천천히 다가온다.

    자신을 베라고 아드리안을 종용하고 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녹슨 검을 쥐고 있는 아드리안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아드리안…… 어서……!”

    그럴 수 없다. 당연했다.

    아버지와 다름없는 스승을 어떻게 벨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지옥 속에 두고 혼자 도망칠 수 있겠는가.

    그럴 바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리라.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끈.

    두통이 머리를 강타했다.

    동시에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불안한 감촉이었다.

    조심스레 시선을 들자, 아드리안의 검이 스승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부위를.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왜 자신이 스승을 찔렀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눈을 부릅뜬 채 얼어붙어 있자, 날붙이를 놓은 스승이 쓰러지며 품에 안겼다.

    “저, 저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덜덜 떨고 있던 아드리안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스승이 앙상한 손을 뻗었다.

    언젠가와 같이 아드리안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 탓이 아니다, 아들아.”

    스승의 눈이 감겼다.

    “네 탓이…… 아니…….”

    생명이 사라진다.

    심장이 정지했다. 뜨겁게 흐르던 피가 조금씩 식어 간다.

    “스승…… 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걸 깨달은 아드리안은 멈춰 버렸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죽은 스승을 끌어안은 채로.

    그때, 등 뒤에서 두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은 모순적이지. 사람의 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사람의 몸을 샅샅이 해부했기 때문이고. 포션의 상용화가 가능했던 건, 수많은 피실험체를 통한 임상 실험으로 얻은 것인데. 그걸 윤리와 도덕으로 덧씌워 외면해 버리니.”

    발로크와 안젤로.

    마탑주와 마탑의 원로였다.

    “그건 결코 옳지 않다. 특히나 연구에 있어, 같잖은 인간성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시키는 법. 자고로 생명은, 인간은, 마법사는 과거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겉껍질을 떼어 버리고 잔혹함이라 치부된 행위만이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으니.”

    아드리안의 시야에 발로크가 드리웠다.

    그럼에도 어떠한 분노도 증오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겪어 보는, 공허한 상실감이 아드리안을 압도했다.

    “89번,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지?”

    발로크가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그러자 손톱에서 자그마한 손가락 수십, 수백 개가 돋아났다. 그다음 이전에 비할 수 없는 두통이 뇌를 뒤흔들었다.

    “끄…… 아악……?!”

    아드리안을 가둘 당시부터, 두개골에 새겨져 있던 강제 마법진이 발광한다.

    직접적으로 아드리안과 연결된 그것은, 아드리안의 정신이 약해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뿌리를 내려 왔다.

    몇 년에 걸쳐서.

    지금은 과실을 얻을 차례다.

    발로크가 웃었다.

    “정신력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하지 않나, 안젤로? 그만한 약물을 투여하고도 흠집을 내는 게 전부였는데, 고작 사람 하나로 이렇게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으니.”

    이윽고 빛이 사라졌다.

    강제 마법진이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마침내 성공인가. 직접 중앙 대륙에서 데려온 보람이 있군. 다른 실험체였다면 진즉에 죽었을 터인데, 정신이 거의 붕괴되고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동력원과 블랙 아워 문제로 미루어 왔던 걸 이제야 끝내는군.”

    “감축드립니다, 마탑주님. 하나 89번은 오래 살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인간은 소모품이니까. 뭐, 필요한 연구 자료는 확보했으니 만족한다. 다음 결과는 기간의 단축과 더불어 완성도가 훨씬 더 높을 테니.”

    “그럼 이대로 폐기합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좋은 쓰임새가 떠올랐다.”

    발로크가 입가를 비틀었다.

    “마침 동대륙, 미들로스 자치령에서 귀찮은 벌레들이 날뛰더군. 마탑의 전력을 보낼 여유가 없으니, 기왕이면 놈들과 함께 지워 버리는 게 좋겠지.”

    아주 효율적으로.

    “그렇지 않나, 89번?”

    아드리안이 일어섰다.

    스승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예.”

    녹슨 검을 쥔 검사.

    감정 없는 대답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 * *

    “……그리고 여기에 이르렀다.”

    어느새 아드리안의 발음은 명확해졌다.

    어눌한 기색은 사라지고 눈동자에는 총기가 담겨 있었다. 이내 하늘의 색이 담겨 있는 눈동자가 베르덴을 직시했다.

    “정신을 지배당한 이후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발로크에게 명령을 받은 것부터…… 당신이 강제 마법진에 간섭한 것까지 전부.”

    한 차례 호흡을 내쉬었다.

    “77번…… 이라고 했었나.”

    “그래.”

    “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지?”

    “너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온갖 실험을 당하고, 강제로 지식을 주입당해 보헤미른 마탑을 위한 소모품이 되었지.”

    “지식이라…… 그래서 발로크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가.”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아드리안이 느릿하게 눈꺼풀을 여닫았다.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왔지?”

    “단적으로 말하자면 죽음을 위장했지. 발로크마저 속일 수 있도록. 말하자면 길다.”

    “그런가, 나와는 다르군.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드리안이 자조했다.

    체념과 안타까움이 깃든 미소였다. 그는 자신의 삶이 종국에 다다랐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 네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다.”

    강제 마법진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건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다. 그 순간을 끊임없이 이어 나가게 할 수는 없다.

    곧 마법진에 등록된 명령대로 자멸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파훼할 수도 없다.

    이미 강제 마법진, 콜젼은 아드리안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에. 단순히 깨부순다면 단언컨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어떻게 할 거지?”

    “……뭐?”

    아드리안이 되묻자, 베르덴이 마력을 일으켰다.

    스스로의 의지를 마법으로 구현하는 무한의 마도와 극에 다다른 마력 조작.

    잠시 후, 허공 위에 아드리안의 내부 구조가 떠올랐다.

    “강제 마법진을 파훼하는 거나 신체에 이식된 마법진을 분리하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일반적인 경우와 많이 다르지.”

    상체와 두개골에 접합된 강제 마법진.

    베르덴이 손목을 비틀자, 그 전체가 자세히 비쳤다.

    “보다시피 뇌와 마법진이 마력을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정신까지도.”

    함부로 건드렸다간 여지없이 즉사.

    “그 반작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과정을 되짚는 것밖에 없다.”

    “과정…… 이라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발로크가 마법진을 이식시킨 과정의 역산이라고 할 수 있겠군.”

    베르덴이 마력을 거두었다.

    “내가 콜젼을 완전히 분리하는 동안, 너는 어떤 식으로든 내 마력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 무의식적인 본능조차도 억눌러야 하지.”

    “……그렇게 하면 살 수 있는 건가?”

    “그래.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를 거다. 강제 마법진에 저항하는 것 이상의…… 심지어 그걸 견디면서도 동시에 의식을 끊임없이 유지해야만 하지.”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열이면 열이, 백이면 백이 죽을 테니. 단순한 각오와 다짐 따위는 시작과 함께 무너질 것이다.

    아드리안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어느새 체념은 사라지고 의문이 자리했다. 천천히 입술을 떼며 물었다.

    “왜…… 왜, 나를 살리려는 거지?”

    “이유는 복합적이다. 동질감이기도 하고 측은함이기도 하지……. 그런 의미에서 하나 묻고 싶군.”

    베르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만약 살아남는다면 뭘 할 거지? 이대로 숨어 여생을 보낼 건가? 그게 아니면…… 발로크에게 복수라도 할 건가?”

    “복수……?”

    아드리안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공색의 눈동자가 직전보다 선명해졌다.

    답은 정해져 있다.

    “당연히……!”

    아드리안의 왼손이 움직였다.

    콰드드득. 구부린 손가락이 지면을 파고들었다.

    전신에서 고통이 엄습했지만 무시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끓어오르는 증오와 충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스승님의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발로크를, 놈들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나는……!!”

    한없이 목이 메었다.

    격하게 차오른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감정을 쏟아 내는 절규는 처절하고 절박했다.

    그 모습에는 오직 진심밖에 없었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하다.”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손에 마력을 집약시키며 정신을 집중했다. 밝게 명멸하는 벽안이 아드리안을 굽어봤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시작하겠다. 혹시 남길 말이 있나?”

    “───전혀.”

    유언 따위는 없다.

    절대로 죽지 않겠다는 의기를 드러내며, 아드리안이 입가를 비틀었다.

    ‘자치령에 온 보람이 있군.’

    동료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베르덴은 얕은 미소를 지었다.

    직후 아드리안의 머리와 명치에 동시에 손을 얹었다.

    화아아아아악!

    동굴을 메우는 찬란한 마력의 빛.

    두개골과 상반신에 뿌리 내린 마법진의 분리가 시작되었다. 육체 전반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격통이 뻗어 나갔다.

    “……!……!!”

    영겁과도 같은 인고의 시간.

    아드리안은 단 한 번의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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