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이해자 (3)
발로크의 강제 마법진은 행동 제약의 극치다.
육체에 단단히 마력의 뿌리를 내린 순간부터, 피시전자는 시전자의 명령에 따른 강제성을 부여받는다.
의식은 그대로지만 별 의미는 없다.
고통은 생명의 방어기제.
이러한 본능적인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 콜젼이 창조된 기원이니.
저항의 강도에 따라 통증은 다르나, 그 최대치는 영혼을 부서뜨린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보이지 않는 철심이 뼈와 근육 그리고 신경을 저미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격렬히 반항해 봤던 베르덴의 경험담이다.
하지만 단점은 분명하다.
모든 행동에 강제력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
아니, 명령 자체는 가능하나, 과부하로 인해 자아에 큰 손상을 입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툭 쓰러지고 만다.
다시 말해 주체의 완전한 상실이다.
무의식적인 호흡과 세차게 뛰는 심작의 박동, 장기의 움직임 등까지 전부 정지해 버리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시전자가 하나하나 명령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죽는 건 순식간이다.
물론 기어코 살린다고 해도 이점 따위는 없다.
능률은 이전에 비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전부였다.
보헤미른 마탑의 급격한 성장을 이룬 발로크 베시아스. 효율을 추구하는 그로서는 당연하게도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베르덴은 그러한 강제 마법진의 허점을 완벽하게 파고들어, 역천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마법진을 살폈다.
피부 위로 드러나 있는 건 이렇다 할 요소가 아니다.
이따금씩 타고난 마력 저항력이 높은 자들이 대개 그러했으니까.
어차피 외부인은 어느 누구도 마법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기에, 문신이나 어떤 표식이라 보일 법하다.
피시전자가 죽으면 자연히 소멸되기도 하고.
베르덴이 주목하는 건 다른 거였다.
‘뭔가가 숨겨져 있다.’
의문이 일자마자, 왼손을 갖다 대었다.
불쾌한 발로크의 마력을 감지함과 동시에 만신창이가 된 내부가 느껴진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마력의 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
잠시 후, 이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머리에 강제 마법진이 하나 더……?’
두개골과 상체에 새겨진 강제 마법진.
서로 공명하며 아주 미세한 마력을 몸 전체에 흘리고 있다.
오랜 시간 마탑의 비공식 실험실을 경험했지만, 이와 같은 건 단언컨대 본 적이 없다.
이 구조의 목적이 무엇일까.
베르덴의 고찰이 이어졌다.
천재적인 마법 이해력.
일순간의 직감이 무수한 지식 속에서 여러 가지 후보를 선보였고, 의식과 계산을 더해 가장 합리적인 해답을 산출해 냈다.
강제 마법진의 단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로크 베시아스의 선택은…….
“……정신 지배.”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금 구조를 바라봤다.
두개골에 있는 마법진이 뇌를 포함한 머리를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상체에 새겨진 마법진이 중추의 역할이라도 하듯 그 영향력을 몸 전체로 퍼뜨리고 있다.
저항력을 무너뜨려 정신을 조종하는 흑마법과는 비슷해 보이되 판이하게 다르다.
‘이건 그보다 더없이 최악이다.’
베르덴이 생각한바, 이 형식의 마법진을 정착시키려면 피시전자의 내면을 거의 백지처럼 만들어야 할 터.
그뿐만이 아니라 마법진이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 약간의 저항이라도 하는 순간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건 평범한 인간에게도 무리다.
말 그대로 정신을 소거하다시피 한 게 아니라면.
그런데 눈앞에 완성작이 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만한 강자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다. 어지간한 자들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음이 분명할 텐데.
“발로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베르덴의 눈빛에 경악이 서렸다.
* * *
아드리안은 시선이 지면에 고정되었다.
수십, 수백 번 되뇌었던 기억 속, 발로크가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마법진이 펼쳐져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다.
육체를 억압하며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
‘발로크.’
아드리안은 기억한다.
‘발로크 베시아스.’
잊지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죽이겠다는 다짐을.
그러나 그때의 감정은 현재에 닿지 않는다.
불필요한 감정은 전부 강제력으로 변질되어 일그러지고, 깃들어 있던 정신력만이 의식과 무의식을 관통했다.
[목격자는 전부 죽여라.]
사명이 내면을 울린다.
아드리안이 시선만을 들어 올렸다.
바로 앞에 죽여야 할 대상이 있다.
복잡한 무언가가 담겨 있는 벽안이 쳐다보고 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관계없다.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지 떠올려야 한다.
‘……마법진.’
오른쪽 눈, 분명 뭔지 모를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있다. 정확히 하늘에 떠 있는 스태프가 무지갯빛 광채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직전까지 계속되었던 전투.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아드리안은 해답을 모색했다.
기이할 정도로 빠른 마법 연산력.
분명 저 눈, 스태프와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
‘눈에 마법진이 떠오른 순간, 그 시선이 향하고 있는 위치에 마법이 발동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눈을 사용하는 데 분명 제약이 있거나 큰 부담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저 스태프의 빛은 그러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도구일 거라고.
답은 하나다.
경로는 이미 정해졌다.
우득. 어금니를 부러질 듯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마법진이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만큼, 과거에 부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기도 했다.
시행착오는 필요 없다.
지금 여기서 해내야만 한다. 단 한 번에.
“……!”
베르덴이 이변을 느낀 찰나였다.
억압되어 있던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며, 일시에 기를 폭발시켰다.
콰지지지지직!
임프리즌이 박살 났다.
양팔을 억제하고 있던 중력 사슬도 마찬가지.
근육과 뼈가 일부 뒤틀리는 고통이 따랐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아드리안의 정신력이 그걸 가능케 했다.
안광에 깃든 살의.
아드리안이 팔을 휘둘렀고, 궤도를 읽은 베르덴이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베고자 한 것이 아니다.
───카아앙!
허공을 관통한 녹슨 검이 오리엔트를 강타했다.
자연히 <극광의 영역>이 해제되면서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직후 몸을 회전한 아드리안의 뒤차기가 베르덴의 복부에 작렬했다.
충격에 튕겨져 나가긴 했으나 피해는 없다.
타격에 있어, 아인베르의 물리 저항력은 견고하다.
곧장 <비행>으로 중심을 되찾은 베르덴.
아드리안이 맹렬히 추격하며, 떨어지는 검을 붙잡아 휘둘렀다. 동시에 되돌아온 오리엔트가 베르덴의 손에 쥐였다.
<전격 속성 부여>
무대는 무너진 숲.
검과 스태프가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금속을 통해 번개가 전해진다.
아드리안이 저릿거리는 신체를 억누르며 사력을 다했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겨우 닿았다.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카앙! 카아앙! 카가가가가각!
아드리안의 연격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이전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나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감전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상태.
부여 마법으로 육체 능력을 강화한 베르덴이 서서히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치지지직.
베르덴의 마안이 발동했다.
미세한 전류의 흐름이 정면을 향하는 순간, 아드리안이 극단적으로 자세를 낮취 피해 내는 데 성공.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반신을 활용해 검을 쳐올렸다.
노리는 것은 목이었다.
실책 중 하나였다.
마안을 피한 건 놀랍지만, 노림수가 너무도 뻔했다.
가볍게 고개를 튼 베르덴.
이어 회전력을 더하며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충전된 마력. 룬에서 방출된 충격파가 아드리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억?!”
쿠웅───쿠드드득!
팔과 다리를 세워 지면을 긁었다.
폼멜로 가슴을 강하게 쳐 막힌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런 그를 향해 마법 폭격이 낙하했다. 중력으로 강화된 수십 개의 거대한 물방울이 숲과 지면을 파괴했다.
다만 아드리안에게 제대로 적중한 건 없었다.
실수가 아닌 의도.
베르덴이 오리엔트으로 땅을 짚었다.
‘절대 죽이면 안 된다.’
상황이 달라졌다.
강제 마법진에 지배되고 있는 이상, 적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위력적인 마법은 금한다.
그렇다고 마냥 잡아 두는 것도 어렵다.
마안의 빈틈을 파악하고 반격을 행할 정도로 집요하고 감각적이다. 심지어 저 몸으로 임프리즌을 박살 내기까지 했다.
‘발로크의 마법진에 경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말인즉슨 마법진은 최선의 수단이 아니다.
하나 정신을 지배당하고 이상, 기절시키는 것도 무리다.
당장 파훼할 여유도 없다.
애초에 할 수 있는지 가능성조차 알 수 없다.
베르덴조차 역천이 아니었다면, 발로크가 직접 새긴 강제 마법진을 해제하지 못했을 테니.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강제 마법진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다.’
구조의 파악은 진즉에 마쳤다.
마력의 실로 파고들어 간섭하면 가능하나 필요한 건 약간의 시간. 그동안 상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완전히 무력화해야 한다.
‘그러니 사지를 부술 수밖에.’
치료는 나중이다.
판단을 내린 베르덴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형조작>
높이와 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장벽.
강하게 앞으로 밀어내자, 지형이 움직였다. 아드리안을 감싸기라도 하듯 휘어지며 곡선의 흐름을 그렸다.
쿠구구구구구!
대지가 닥쳐 온다.
겨우 서 있던 아드리안이 앞을 바라봤다.
‘……강하다.’
강력한 마법을 마치 숨 쉬듯 다룬다.
마력은 끝이 없는지 바닥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와 같은 마법을 연산하면서도 힘겨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초월자와는 다르다.
다른 의미로 압도적이다.
과거의 그였다고 해도 이기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체념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게 전부일까.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과거의 기억이 눈앞에서 재생되었다.
언젠가 물었다.
───스승님,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져야겠지.
흔해 빠진 질문에, 스승은 신랄하게 답했다. 스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드리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목숨이 걸려 있다고 해도요?
───대부분의 싸움은 목숨을 걸고 있단다, 아드리안. 한낱 고블린도 마찬가지다. 너에게는 아주 손쉬운 상대일지도 모르나, 고블린은 목숨을 걸고 있지. 그럼 묻자, 고블린이 어떻게 하면 너를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결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으니.
그래도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에 멈추지 않았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도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럼 달리 할 수 있는 게 있느냐? 전력에 전력을 다하는 게 전부지.
───그럼 초월자를 만나면 반드시 죽어야 되겠군요.
───초월자라…….
스승이 턱을 쓸었다.
───초월자는 종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들이지. 세상에 군림하는 그들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마치 저 하늘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않느냐.
───네?
───하늘을 베거라. 아드리안, 너라면 할 수 있다.
하늘을 가리키며 스승이 환히 웃었다.
그가 반드시 닿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자 믿음이었다.
아드리안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전부 잃었다.
‘내 잘못이다.’
초월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첫 번째 패배였고, 결국 하늘을 베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자신만이 아니라 스승마저 감당해야만 했다.
그분의 최후는 여전히 선명하다.
그럼 두 번째는 무엇을 앗아 갈 것인가.
짐작조차 가지 않기에 두렵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련다. 지지 않으면 되니까. 아직 검은 손에 쥐고 있다.
콰아아앙!
아드리안이 지면에 발자국을 남기며 돌진했다.
피하지 않는다. 더는 선택지가 없다.
죽거나 이기거나 둘 중 하나다. 전력에 전력을 더해도 부족하다면 그 이상을 쏟아붓고야 말겠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모든 기운을 긁어모았다.
콰아아아앙!
대지의 장벽과 충돌하고도 아드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둘러 일격에 장벽을 갈라 버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절기, 격화激化
지금의 기량으로는 펼칠 수 없는 기술.
그 탓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으나 감내해야 한다.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다시는 패배하지 않으리라.
자색의 잔상이 선명하게 남는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오직 속도만을 추구했기에 경로는 일직선.
그렇기에 저지하는 건 간단하다.
일대를 날려 버리거나, 저 궤도로 마법을 쏟아 내면 끝일 테니.
‘하나 그랬다간 저자는 죽는다.’
목적과 위배된다.
그래서 베르덴은 피하지 않았다. 상대의 전력을 통해, 살릴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떠올렸기에.
<원소화>
속성은 중력을 선택했다. 암자색의 기운이 몸을 감쌌다.
원소의 지배자가 된 베르덴이 오리엔트의 보석에 마력을 집약시키자, 사선으로 겹쳐 있는 두 개의 중력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같은 성질을 지닌 것들이 반발하며 척력을 자아낸다.
무한의 마도로 구현한 반중력의 묘리.
바로 직후, 서로가 서로의 범위에 들어왔다.
동시에 움직였다.
위에서 발해지는 검격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마법.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찢는 듯한 기파가 주위를 날려 버렸다.
숲 한가운데에 거대한 공터가 생기며, 막대한 충격에 의해 두 사람이 딛고 있던 일대가 움푹 가라앉았다.
이윽고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갈라졌다.
극을 넘어선 속도가 집중된 아드리안의 검기였다. 갈라진 구름 사이에서 새어 나온 푸른 달빛이 두 사람을 가리켰다.
일격은 접전이었다.
어쩌면 아드리안의 검이 마법을 뚫고 베르덴에게 닿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가 휘두른 최후의 일격은 그만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였다.
쩌저저저저적.
반중력에 의해 반사된 물리력.
아드리안이 쥐고 있던 녹슨 검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를 단단히 쥐고 있던 오른팔의 뼈가 부러졌고, 왼팔의 신경은 마비되었다.
무기를 잃었다.
양팔은 꼼짝하지 않는다.
쥐어짜 낼 기 또한 더 이상 없다.
그래도 움직여야만 한다.
[목격자는 전부 죽여라.]
아드리안이 허공에 뜬 검 조각 하나를 입에 물었다.
체중을 실어, 진심을 다해 상대의 목을 겨냥했고, 찔러 넣었다.
콰득.
당연히 닿지 않았다.
피부 위로 떠 있는 마력의 방벽이 칼날을 차단했다.
아드리안은 핏발 선 눈으로 더욱 힘을 주었다.
소용없을 거라 알면서도 집념을 보였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을 강제하는 명령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고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강제하는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베르덴이 그를 응시했다.
이내 오리엔트를 놓고는, 오른손으로 검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
다음으로 왼손에 집중한 마력.
팔을 뻗으며 일시에 강제 마법진에 침투했다.
내부는 예전부터 훤히 꿰고 있다.
정밀하게 조작된 마력사(魔力絲)가 미로와도 같은 구조를 헤집으며 위치를 찾아냈다.
마법진의 간섭. 경로를 파고들어 일시적으로 마력을 차단했다.
마법진이 정지했다.
길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얼마나 오래 실험을 당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이해할 뿐이다.
“일단 쉬어라.”
광기로 가득했던 아드리안의 눈에 서서히 빛이 돌아온다.
근육의 힘이 풀리며 물고 있던 검 조각을 놓았고, 끝내 몸이 기울며 쓰러졌다. 버틸 여력이 없었다.
천검, 아드리안 첸버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패배였다.
뒤늦게 힘없이 메아리치는 금속음이 하루의 끝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