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이해자 (2)
두 사람이 사라진 웰스 타운은 한없이 고요해졌다.
건물과 지축을 떨리게 했던 원인 모를 소란이 가라앉자 주민들이 하나둘씩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거리를 거닐다, 이내 우뚝 선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우, 우리 마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이다.
지반이 내려앉았는지 광장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으며, 그와 직선으로 이어지는 가도는 박살 나다 못해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끔씩 약한 지진이 발생하는 건 봤어도, 73년 평생 이런 재해는 겪어 본 적이 없었는데.
당황을 금할 수 없다.
도중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하니 잠시 물러나 주십시오.”
고개를 돌려 보니 흑발의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웰스 타운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
“누, 누구십니까?”
“모험가입니다.”
에단이 백금의 플레이트를 보였다.
그가 여러 지역에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신분 중 하나였다.
노인은 길드에 대해 자세한 지식은 없었지만, 저것이 고명한 모험가를 뜻하는 증표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형종으로 인해 피치 못할 피해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현재 토벌 중이니 자택으로 돌아가 계시죠.”
“이형종이라면…… 괴, 괴물을 말하시는 겁니까? 모험가 님, 제가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아인종은 여럿 봤지만 그런 건───”
쿠우우우우웅!!
그때, 거대한 파동이 대지를 휩쓸었다.
순간 중심을 잃을 정도의 진동이 다.
주춤거린 노인이 하늘을 바라보니, 뒤쪽에 있는 산맥 너머에서 날아오른 수많은 새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어…….”
등골이 싸늘하다.
살아온 세월이 말한다. 저기에 무언가 있다고.
잠시 얼어붙어 있던 노인이 자연스레 뒤를 돌았다.
“모두! 모두 당장 집으로 돌아가시오! 괴물이, 괴물이 날뛰고 있소! 거기 호핀! 자네는 어서 애들 데리고 들어가시게!”
“네, 네! 어르신!”
다급한 목소리에 주민들이 흩어졌다.
최근 미들로스 자치령에 다수의 아인종이 출몰했던 탓인지 의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면 그냥 순박한 걸 수도 있고.
다시금 조용해진 거리를 보며, 에단이 작게 한숨을 털었다.
“덕분에 주민들을 통솔하는 건 쉬워졌군요. 그나저나 이만한 사태에도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구출한 아이는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오는 길에 켄드라스 일당으로 보이는 시체 세 구를 감추기도 했고.
만약 웰스 타운 전체가 소란에 휩싸였다면 진정시키는 게 상당히 힘에 겨웠을 것이다.
“그래, 운 좋게 다치거나 죽은 주민은 없지…… 아직까지는.”
레베카는 쭉 산맥을 바라봤다.
불규칙적으로 굉음이 울리고 대기가 떨린다. 다만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에단과 레베카는 일반적인 마법사보다 훨씬 마력에 민감하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 왔기에.
그렇기에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먼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은연중에 두 사람을 시종일관 압박하고 있는 방대하고 순수한 마력을.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에단, 이게 6위계의 마력량이야? 내가 알기로 스승님도, 아니 다른 분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저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군요. 하지만…….”
바다에 들어간다 한들 깊이를 알 수 있을까.
허우적거린다고 해도 발이 닿지 않는 걸 깨달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희로서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쿠구구구구구……!!
재차 산맥이 흐느낀다.
그러한 광경을 에단과 레베카는 멀찍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세상을 파악하는 데, 시각은 특히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결코 전부는 아니다.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까지.
눈을 감는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대한다고 해도 집중만 한다면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사방을 뒤덮고 있는 마력이 인식력을 보조한다.
이곳은 베르덴의 영역이다.
<아이스 펠렛>
술렁이는 구름, 하늘에서 무수한 우박이 쏟아진다.
지면에 맞닿은 낙하물이 조각나며 한기를 내뿜자, 일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휘릭. 아드리안이 검을 역수로 잡았다.
극단적으로 앞꿈치에 실은 체중.
빗발치는 얼음 파편 사이를 흔들림 없이 질주했다. 특유의 동체 시력으로 피할 수 없는 건 물 흐르듯 옆으로 쳐 냈다.
충분한 속도에 다다랐다.
순식간에 방향을 뒤튼 그가 검을 바로잡은 순간이었다.
“?!”
하늘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콰과과과과과!
거대한 낙뢰가 지상을 강타했다.
일순간 감각을 빼앗아 간 번갯불. 그 열과 압력에, 근처에 있던 아드리안이 바닥을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끝에 나무 밑동에 부딪히며 몸을 움찔거렸다.
“끄아…… 악……!”
치직. 치지직.
근육과 신경이 멋대로 날뛴다.
기를 운용해 스며든 벼락을 겨우 바깥으로 밀어냈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움직임이, 전부 읽히고 있다.’
마법사에게 보일 리 없는 속도일 텐데.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경로를 파악당했단 말인가. 믿기 어려웠으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우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일어섰다.
아드리안이 힘겹게 턱을 들자, 하늘로 떠오르고 있는 스태프가 보였다.
‘무기를…… 버렸다고?’
떠오른 의문.
답은 곧 찾아왔다.
<극광의 영역>
상공에 위치한 오리엔트가 빛을 발산했다.
오브가 가진 고유 효과. 무지갯빛을 띠고 있는 오로라(Aurora)라 주위를 감싸자, 베르덴이 가진 마법적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
척수를 자극하는 섬뜩한 감각.
위험을 깨달은 아드리안이 손을 쓰려던 찰나, 베르덴이 가볍게 손목을 비틀었다.
트리플 캐스팅.
<폭풍>
화아아아아아아악!
뿌리째 뽑힌 나무가 허공을 날았다.
삼각형으로 형성된 세 개의 소용돌이가 원을 그리듯 회전하며, 주변의 겨울 숲을 황량한 대지로 만들고 있다.
자그마한 재해였다.
가까스로 범위에서 벗어난 아드리안이 단단히 검을 쥐었다.
[목격자는 전부 죽여라.]
명령에 대한 일념.
정신을 집중하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콰앙! 주위를 돌며 파훼법을 모색했다.
폭풍에 휘말려 솟아오른 흙먼지, 그리고 직전보다 짙어진 마력으로 인해 내부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예로 폭풍을 갈라서는 안 된다.
그로 인해 생긴 빈틈을 상대가 놓칠 리 없으니까.
‘그렇다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마법을 다루는 존재.
그에게 시간과 거리를 주는 건 실책이자 패착이 될 터였다.
그러다 곧 방법을 찾았다.
‘바람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틈새.’
충격은 무시한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전환되었다.
아드리안이 주저 없이 푹퐁 속으로 돌진했다.
바람의 격류가 완강히 막아서기도 전, 두 개의 검기로 빈틈을 찢어발기며 힘껏 몸을 내던졌다.
폭풍의 눈처럼 고요한 공간.
어느 정도 속도를 유지한 채 안으로 들어서자, 베르덴이 오른팔을 뻗고 있었다.
6위계 집중 마법.
<론듀어>
정면에서 닥쳐 오는 중력의 구체가, 도중 급작스레 크기를 키우며 인력을 발했다. 근처에 있던 폭풍마저 집어삼킨 그것이 아드리안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것 또한 예상한 건가.’
기형적인 판단력.
어쩌면 폭풍의 틈조차 유도한 것일지도.
어쨌든 말려들면 끝장이다.
하나 아드리안은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속삭인다.
또다시 회피하느라 거리를 벌린다면 다시는 접근할 수 없을 거라고.
지금이 기회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더, 빠르게!’
육체가 자색의 기에 휩싸인다.
신체 능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담을 도외시한 아드리안이 마법의 인력조차 이용하여, 자신의 한계 속도에 도달했다.
신월(新月).
이전보다 선명해진 자색의 초승달.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피하지 않고 정면 대결을 택했다. 그 일격이 중력의 구체를 단숨에 양단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베르덴이 발밑의 지형을 조작해 위치를 옮겼다.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이 매서운 검기를 스치듯 피해 냈다. 그사이 아드리안이 다시 베르덴의 뒤를 잡았다.
‘아니, 어쩌면 읽혔을지도 모른다.’
판단보다도 본능이 먼저였다.
검을 뻗는 것과 동시에, 또 한 번 자리를 박찼다.
잔상으로 인해 분산된 기척. 가공할 속도로 만들어 낸 속임수였다.
직후 살기가 베르덴의 앞에 드리웠다.
그 지척에 닿은 아드리안이 소리 없는 함성을 내질렀다. 녹이 슬었음에도 예기를 품고 있는 칼끝이 목을 노렸다.
집념에 깃든 확신.
‘잡았───’
우뚝.
마법사의 피부를 뚫기 직전, 갑작스레 검이 멈춰 섰다.
마치 전신을 구속당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눈을 부릅뜬 아드리안이 곧장 몸을 움직였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기를 운용해도 마찬가지.
“어떻게…….”
“간단한 이치지.”
베르덴이 손끝으로 검을 밀어냈다.
“아래를 봐라.”
화아아아악.
두 사람의 발밑에서 푸른 광채가 흘러나왔다.
지면 아래에 감춰져 있다, 모습을 드러내는 18개의 중급 마석. 직전까지 없었던 광활한 마력의 원진(圓陣)이 형형하게 빛났다.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가 창조한 마법진, 임프리즌(Imprison).
재료는 최소 10개 이상의, 중급 이상의 마석과 완벽한 술식.
이를 구성한 마력의 주인을 제외하고, 원 위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의 행동을 억압하는 최상위 구속 마법진이다.
폭풍과 마력으로 시야를 차단한 사이, 상대하고 있는 검사를 온전히 제압하기 위해 설치한 베르덴의 함정.
원소 마법만이 아니라 마법진 또한 그의 특기 중 하나였다.
이로써 전투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여기서 베르덴이 손가락만 까딱한다면 상대는 죽을 테니.
“이제 대화할 마음이 드나?”
“…….”
아드리안은 답하지 않았다.
멍하니 마법진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육체에 오는 부담을 무시한 그가 격렬히 반항하기 시작했다.
움찔.
순간 검이 움직였다.
‘저 몸으로 임프리즌에 저항할 줄이야.’
놀라움을 느끼며 베르덴이 손가락을 튕겼다.
대지에서 솟아난 두 개의 중력 사슬이 아드리안의 양팔을 옭아맸다.
마법진의 구속력과 중력으로 가중된 무게에 그가 무릎을 꿇었다.
베르덴이 다가갔다.
마법진의 죄수에게 질문을 했다.
“이름이 뭐지?”
당연하다는 듯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제압을 당한 상태이기에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아집에 가까운 정신력이군.’
자색의 기운을 다루는 검사.
리비안트 공국, 에스티리아 왕국. 여태껏 베르덴이 봐 온, 기를 깨우친 존재들 중에서도 현격한 경지에 이르렀다.
‘만약 몸이 정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승패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제압하는 건 지극히 어려웠겠지. 어쩌면 죽여야 한다는 선택지 외에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움직임이 궤를 달리했다.
‘도대체 발로크와 무슨 관계인 거지?’
대화를 거부하니 당장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잠시 심문을 뒤로하고 갑옷에 시선을 향했다. 두 번째 의문. 저 안쪽에서, 계속해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검지와 중지의 끝.
마도를 이용해 고열의 화염을 일으켰다.
치이이이익!
지그시 누르자 금속의 이음새가 점차 형태를 잃었다.
안 그래도 전투로 인해 많이 망가져 있던 터라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터엉. 이윽고 갑옷이 떨어졌다.
감춰져 있던 상체에는 비교적 얇은 옷만이 남아 있었다.
격전으로 인해 갑옷이 손상된 탓에, 안쪽에 있던 의복마저 이리저리 찢겨 나가 누더기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동시에 보였다.
외부로 드러난 상반신의 정중앙, 그 피부에 명확하게 새겨진, 마법적이고 기하하적인 문양이.
그를 목도한 베르덴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강제 마법진?”
강제 마법진, 콜젼(Coercion).
발로크 베시아스가 창조한 최악의 마법진이자.
약 9년 전, 마법만을 추구해 왔던 베르덴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 갔던 원흉이 벽안에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