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96화 (296/366)
  • 296화 이해자 (1)

    딛고 있던 바닥이 무너진 후, 베르덴은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곧장 <비행>으로 자세를 유지하며 오리엔트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초승달의 검기를 옆으로 쳐 내기는 했으나, 어느새 본래 있던 장소와 꽤나 멀어진 상태.

    웰스 타운 아래에 숨겨져 있던 절벽은 상당히 깊었다.

    물론 베르덴에게는 짧은 거리였다.

    그럴 생각만 있다면 손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

    “…….”

    고개를 든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쿠웅…… 쿠웅…….

    위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마 보헤미른 마탑이 보낸 검사와 켄드라스 간의 전투가 벌어진 것일 터.

    그런데 그 충격이 미칠 때마다, 주변 지형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즉시 마력을 퍼뜨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습격자가 난동을 피운 덕분에, 설치되어 있던 마력 차단 장치가 손상된 모양.

    별 어려움 없이 웰스 타운 지하의 일부분까지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지하 구조물. 그 밑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적인 균열.

    그리고 지하를 자극하고 있는 전투의 여파까지. 심지어 대지 마법사가 있는지 마력과 함께 지형이 변형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내렸다.

    ‘자칫하면 무너진다.’

    웰스 타운이 통째로 내려앉지는 않아도 분단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그 위에 있던 건물은 모조리 지하로 떨어질 것이고,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즉사하겠지.

    정확히 언제 발생할지는 모른다.

    변수에 따라 당장이 될 수도 있고, 나중이 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위험 요소를 방치할 이유는 없었다.

    <지형조작>

    쿠구구구……!

    마력을 쏟아부어 구조 전체를 완전히 바꾸지 않아도 된다.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구역을 단단히 보강하고, 하중을 능히 견딜 수 있는 추가적인 지형을 구성하는 거면 충분하다.

    극에 다다른 마력 조작 능력, 초월의 경지를 앞둔 마력회로, 다중 마법 연산을 감당할 수 있는 두뇌.

    베르덴의 장점은 압도적인 마력량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마을이 붕괴되는 걸 막느라 늦으셨다고요?”

    “그래.”

    “…….”

    레베카는 할 말을 잃었다.

    평소였다면 헛소리로 치부하겠으나 눈앞에 그 결과물이 있다.

    ‘6위계 원소 마법사면 이런 것도 가능해지는 거야……?’

    그 근처에 다다른 적도 없으니 알 수 없다.

    스승님을 비롯한 소사이어티의 윗분들에게서, 그 경지로 보일 수 있는 위력을 자세히 전해 들은 적도 없으니…… 나중에 본부로 돌아가면 물어볼까.

    ‘……! 이럴 때가 아니지.’

    멍해 있던 레베카가 겨우 상념을 떨쳐 냈다.

    “아, 아무튼 방금 날아간 그 쓰레기가 자치령주를 납치한 검사인 거죠?”

    “쓰레기?

    “다짜고짜 마을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쓰레기죠. 그것도 소란을 듣고 나온 애한테 검기를 날렸다니까요? 완전 미친 X끼 아니에요? 저희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레베카의 눈빛에 경멸이 서렸다. 감정에 진심이 가득하다.

    미들로스 자치령에서 보아 온 에단과 레베카는 작금의 시대에 사는 마법사보다도 이타적인 면모가 강하게 느껴졌다.

    현 마탑 체제에 반하는 소사이어티, 그 근간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그나저나.’

    베르덴이 시선을 옮겼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가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달리, 얼굴이 훤히 드러난 검사가 비틀거리며 베르덴을 노려봤다.

    어깨를 들썩이며 내쉬는 가파른 숨결.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분명 직전의 충격이 그만큼 컸던 건 아닐 것이다. 수척한 걸 보니 애초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자리를 비운 몇 분 사이 켄드라스가 살해당했다.’

    웰스 타운 지하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걸 보아 격전을 벌인 건 분명하다. 다만 그에 비해서 세 구의 시체 상태가 더없이 깔끔했다.

    마치 한순간에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본실력을 숨기고 있었거나, 비장의 수가 적어도 하나는 있다는 의미였다. 둘 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간 축적된 경험에 의거한, 베르덴의 확신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강자다.

    “저자는 내가 상대하지. 너는 에단하고 합류해 주민들을 살펴라.”

    큰 소란이었으나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겁을 먹고 집안에 틀어박혀 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웰스 타운의 주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거리로 나온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중년의 남성. 레베카와 에단이 구한 아이의 가족, 아마도 부모인 모양이다.

    그를 보던 레베카가 턱을 당겼다.

    “……알겠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목소리가 뒤로 저물어 간다.

    혼자가 된 베르덴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지면에 발을 디뎠다.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일단───”

    쿠웅!

    녹슨 검을 든 검사가 앞으로 쏘아졌다.

    점차 흐릿해지며 닥쳐 오는 살기. 베르덴의 동체 시력을 넘어서는 속도였다.

    ‘대화는 필요 없다는 건가.’

    문답무용.

    지금껏 베르덴이 여러 적들에게 보였던 태도를,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뜬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중력 붕괴>

    암자색의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 나가며 중력을 흐트러뜨렸다.

    베르덴은 원소에 특화된 마도사다.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다면 주변 통째로 날려 버리면 그만.

    “……!!”

    돌진해 오던 검사의 몸이 떠올랐다.

    다급히 기를 끌어올려 마법에 저항하려 하던 찰나 그림자가 발 앞에 드리웠다.

    고개를 들자, 알 수 없는 마법진이 떠오른 벽안과 마주쳤다.

    이 근방에는 수천 명이 넘는 주민들이 있다.

    게다가 놈은 아이까지 서슴없이 죽일 정도의 냉혈한. 다시 말해 웰스 타운은 전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장소를 바꾸지.”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휘둘렀다.

    <디스트럭션>

    콰과아아아앙!

    대기를 찢는 강력한 충격파.

    검사, 아드리안을 휩쓴 중력의 격류가 하늘로 솟구쳤다.

    * * *

    문득 오래된 가르침이 떠오른다.

    ───아드리안, 얼마 전 도적단 하나를 토벌했다고 들었다. 개중에 3위계 마법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느냐?

    ───전혀 없었습니다.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베어 버렸으니까요.

    마법사는 마력으로 다양한 현상을 일으키나, 감각만큼은 기를 깨우친 자와 비교해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아드리안은 남다른 기민함을 타고났다.

    17살의 그는 마법사를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흐음, 위계만 높인 미숙한 자였나. 아깝구나. 잘하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스승님?

    ───마법사는 검사에게 있어서 아주 까다로운 적이다. 특히 3위계 이상에 다다라 <비행>을 구사하는 자들이 그러하지.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마법을 쏘아 대니 말이야. 만약 그런 자를 만나면 어떻게 상대하겠느냐?

    아드리안의 고민은 짧았다.

    ───……날아가기 전에 베어 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정답이다. 무수한 정답 중 하나지. 그 외에도 마력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공간이 제한된 장소로 끌어들이거나, 검기를 날려 격추시키는 방법 등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듯, 마법사 사이에도 격이라는 게 있지.

    스승이 말을 이었다.

    ───수준에 오른 마법사는 걷는 것보다 <비행>을 더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거기에 한층 더 재능과 노력이 더해지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도 동시에 세 가지 마법을 발동하는 트리플 캐스팅마저 쓸 수 있지. 그만큼 마력회로의 할당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는 거다.

    ───…….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법 폭격.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전술이지. 만약 너라면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번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해 보는 고찰이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막막해졌다. 이길 수 있는지는 제쳐 두고 무사히 도망갈 수 있는지조차 자신할 수 없었다.

    아드리안의 경험 부족이었다.

    ───어떠냐. 머리가 복잡해졌지? 그럴 거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위험시해야 할 마법사가 있지. 바로 하늘이 아닌 지상에 머무는 자들이다.

    ───네? 그냥 눈을 속여서 접근하면…….

    ───네가 토벌한 도적처럼 실력이 부족한 미달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만이든 자신감이든, 자신의 힘에 확신을 품은 진짜들을 얘기하는 거다. 그들은 자신이 명백히 불리한 근접전조차 마법의 무대로 삼아 유리한 전장으로 바꿔 버리지.

    스승이 아드리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 대지를 거니는 마법사를 만난다면 조심하거라, 아드리안. 어쩌면 네가 감당하지 못할 괴물일 수도 있으니.

    심려 깊은 충고였다.

    그리운 목소리가 사라진 건 그때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웰스 타운에서 튕겨져 나간 아드리안이 인적 없는 산맥과 충돌했다.

    박살 나는 나무와 큰 상흔이 남은 지면. 그대로 쭉 밀려 나가 숲의 일부를 무너뜨리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크윽…….”

    아드리안이 일어서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법에 적중당하기 직전, 전신에 기막을 둘렀으나 충격을 온전히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명치를 꿰뚫는 둔탁한 통증.

    몸통을 보호하는 갑옷마저 크게 손상되었다.

    “───!”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퍼뜩 고개를 든 아드리안을 향해, 네 개의 적색 구체가 날아왔다.

    쿼드라 캐스팅.

    <작염구>

    콰아아아아앙!

    거센 폭발이 산맥을 강타했다.

    화염이 게걸스럽게 자연을 집어삼켰다.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린 숲속의 중심에 베르덴이 착지했다.

    정면을 응시하던 벽안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화아악!

    불길을 헤친 아드리안이 옆에서 달려들었다.

    전신에 그을림이 있기는 해도 큰 타격은 없었던 모양. 대응하려던 순간, 갑작스레 지면을 박차며 가속했다.

    쿠웅! 땅울림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아드리안이 인지를 넘어선 속도로 베르덴의 뒤를 잡았다.

    ‘켄드라스가 이거에 당했군.’

    뒷목을 노리는 칼날.

    그와 함께 마안이 명멸했다.

    <열화광>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열기.

    강렬한 빛이 시야를 일시적으로 빼앗았다.

    그로 인해 아드리안의 일격이 빗나갔고, 자세를 낮춘 채 반 바퀴 회전한 베르덴이 왼팔을 휘둘렀다.

    <빙뢰의 선격>

    전격이 깃든 냉기의 발톱에 격중한 검이 울린다.

    그 위력에 버티지 못하고 밀려 나간 아드리안이 깊게 신음했다. 기를 끌어모아, 내부로 파고든 한기와 감전에 힘껏 저항했다.

    그 또한 빈틈이다.

    마력이 휘몰아치며 감각이 울린다.

    앞을 바라보는 하늘색 눈동자에, 허공에 드리운 24개의 번개 줄기가 들이닥치는 게 비쳤다.

    허용하면 안 된다.

    이를 악다문 아드리안이 안광을 빛냈다.

    기예, 난무亂舞.

    보랏빛 잔상을 남기는 현란한 검무.

    검에서 발현된 검기가 마법을 파훼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번개를 베어 버린 아드리안이 강한 살기를 드러내며 거칠게 호흡을 골랐다.

    베르덴이 상대를 주시했다.

    ‘속도 하나만큼은 압도적이군.’

    접한 적 없는 검격이다.

    강화된 감각으로도 쫓기 어려운 몸놀림과 기를 다루는 방식. 경지만 따지면 전대 로아프라의 지배자였던 그론드를 명백히 상회하고 있다.

    ‘상대는 극도의 쾌를 구사하는 검사.’

    보헤미른 마탑이 저만한 실력자와 연이 있다고는 전혀 듣지 못했다.

    애초에 발로크 베시아스는 그런 인간이다.

    마법사 우월주의, 위계를 제일로 중시하는 선천주의 등 기준에 맞지 않는 자는 배척하며, 마법사가 아닌 자를 업신여기는 오만함을 갖추고 있는 초월자다.

    그런 존재가 마법사도 마도사도 아닌, 눈앞의 검사를 신뢰할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마탑의 적대 세력을 척살하는 임무임에도, 주변에 달리 감시하는 인원도 없다는 게 특히나 마음에 걸렸다.

    의문이 드는 건 하나 더 있었다.

    ‘……대체 저건 뭐지?’

    상대에게서 기분 나쁜 무언가가 느껴진다. 마주한 이후부터 줄곧.

    마력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너무 희미해서 뭐라 판단할 수 없으나 애써 무시할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기에.

    그래서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다.

    처음부터 그럴 각오였다면 마법 폭격으로 산맥째로 초토화했을 것이다.

    초월자에 버금가는 마력량을 가진 베르덴이라면 가능한 일이었으니.

    제압 및 생포.

    방향은 이미 정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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