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95화 (295/366)
  • 295화 조우 (3)

    하펜의 눈동자에 무수한 검기가 비친다.

    뒷목을 섬뜩하게 만드는 살기.

    한가로이 위력 높은 마법을 연산할 시간 따위는 없다. 즉각적으로 <마력 방벽>을 둘러 전신을 보호했다.

    그로서는 제일의 대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최선일 뿐이었다.

    콰드득!

    마력을 관통하는 예기.

    방벽이 깨지며 육신이 잘려 나갔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켄드라스의 부하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중앙 대륙에 있을 때부터 켄드라스와 함께 했던 하펜은 네 등분으로 나뉘어 절명했다. 노련한 마법사의 허무한 최후였다.

    뼈와 근육을 가른 검기가 바닥과 강하게 충돌했다.

    어느새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치령주를 납치한 검사인가.’

    보헤미른 마탑이 보낸 용병.

    느닷없이 닥쳐 온 위협이었으나 당혹감은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빠르게 본능적으로 육체가 반응했고, 거의 동시에 사고가 확장되며 이성적인 판단이 뇌리를 강타했다.

    아공간에서 소환한 오리엔트.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순한 마력. 전신의 마력회로가 일시에 활성화된다.

    그에 따라 마안이 발동하며 둥그런 중력의 막이 스태프의 첨단을 감쌌다.

    베르덴이 손목과 허리를 비틀었다.

    거대한 검기가 목전에 닿는 것과 동시에 오리엔트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와해(瓦解)의 급류.

    <디스트럭션>

    콰아아아아앙!

    기예와 마법의 충돌.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며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일순간 접전이 이루어진 끝에, 6위계 중력 마법에 의해 초승달의 검기가 점차 붕괴되고 있다.

    상당한 위력을 가진 급습인 건 인정한다.

    다만 이런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베르덴은 무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안 그래도 약해져 있던 지반이 압력에 버티지 못했다.

    쿠우우웅!!

    한순간에 일부 바닥이 무너지며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웰스 타운의 지하에 감춰져 있던 자연적인 틈새였다.

    정확히 베르덴이 강하게 딛고 있던 발판이 사라졌다.

    흔들리는 중심. 곧장 <비행>을 펼쳤으나 기예의 무게감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

    검기가 베르덴을 끌어안은 채 낙하한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태가 발생하고 고작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연회장부터 켄드라스의 방까지 무려 3계층이 하나가 되었다.

    천장 위에서 자그마한 잔해가 불규칙적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난장판을 만든 장본인, 아드리안 첸버스가 바닥에 착지했다.

    “……하아.”

    그는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긴 호흡을 내쉬며 연이어 기예를 사용한 반동을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등 뒤의 기척을 느낀 건 그때였다.

    자세를 낮추고 검을 비스듬히 눕혔다. 수직으로 내리찍히던 철퇴의 궤도가 저항 없이 뒤바뀌었다.

    “흐읍!!!”

    켄드라스의 근육이 부풀었다.

    억지로 철퇴를 회수하며 그 힘과 무게를 역이용해 몸을 회전했다.

    거대한 둔기가 살벌하게 수평을 가른다.

    동시에 내재되어 있던 화염이 폭발하며 추진력을 더했다. 거리는 이미 가까워졌고 속도 또한 빠르다.

    피할 수는 없다.

    검을 가깝게 당긴 아드리안이 자리를 박찼다.

    쩌어어어어엉!

    폭발하는 화염. 나가떨어진 아드리안이 벽면과 충돌했다.

    폐에 저장되어 있던 숨결이 바깥으로 토해 냈다. 애써 호흡을 고르며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무리 충격을 분산시켰다고는 하나 적잖은 충격이었을 텐데, 바로 일어선다는 건가.’

    켄드라스가 철퇴를 어깨에 메었다.

    “연회장에서 온 것 같은데……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이지?”

    “끄응.”

    그때, 잔해와 시체 더미 속에서 세드워디가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있던 팔린도 검과 방패를 회수하고는 허리를 폈다.

    두 사람을 본 켄드라스가 말했다.

    “살아 있었군. 그보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나도…… 몰라……!”

    “연회 중에, 습격받았다.”

    지하 입구의 보안은 철저하다.

    그런데도 그걸 뚫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게다가 단신으로 연회장에 있던 놈들을 거의 전멸시키다니.’

    같은 지도자 격인 세드워디와 팔린이 있었음에도.

    전투 능력이 뒤떨어지기는 해도, 둘 또한 중앙 대륙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나눌 정도는 되는데 말이다.

    물론 켄드라스에 비할 바는 전혀 못 되지만.

    ‘저놈, 정체가 뭐지?’

    외견을 가린 탓에 파악하기 힘들다.

    짙은 남색의 장발과 자색의 기운…… 뭔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쨌든 우연의 일치로 여기에 도달했을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보헤미른 마탑인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렇기에 개의치 않았다.

    마탑 소속 인물이 아닌, 용병 같은 걸 보냈다는 건 마탑의 주요 구성원을 보낼 여유가 없다는 뜻이니까.

    보헤미른 마탑에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그 힘을 목도했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기에.

    마탑의 직속 부대가 아니라면 상관없다.

    과거 켄드라스는 험난한 중앙 대륙에서 이름을 날린 강자. 자신의 힘에 드높은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여유가 생기자, 무참하게 살해당한 하펜과 부하들이 보였다.

    “빌어먹을 새끼. 어떻게 쌓은 기반인데.”

    덕분에 아주 귀찮게 되었다.

    저만한 인원을 다시 채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게 될 터.

    손등의 힘줄이 불거지며, 켄드라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것이 신호였다.

    켄드라스와 세드워디, 팔린이 일제히 움직였다.

    정면에 있던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흥분과 고통의 경계선. 마스크 뒤로 공색(空色)의 눈빛이 명멸한다.

    거친 숨을 내쉬며 검자루를 말아 쥐었다.

    * * *

    웰스 타운 부근의 상공.

    소사이어티에 속한 두 사람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아, 진짜! 역시 북동쪽일 줄 알았어!”

    레베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답은 뻔했는데 괜히 마력하고 시간만 낭비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숨어 있다가 몰래 애셔, 그 인간 뒤를 쫓는 건데!”

    “그랬으면 또 들켜서 제압당했을 것 같은데요.”

    에단의 일침에 레베카가 움찔 떨었다.

    그래도 얼마 전처럼 겁먹은 모습은 없었다. 새침한 성격만큼이나 정신적인 회복 또한 남달랐다.

    “……그때는 내가 방심했어. 다음이라면 안 들켰을 거야.”

    “하하, 글쎄요. 마도사인지 마법사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6위계급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단적으로 말해 위계만큼은 스승님과 비슷한 경지가 아닙니까?”

    물론 깊이는 다를 거다. 살아온 세월의 격차란 게 있으니까.

    아무리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에 그치지 않고 노력까지 더한다고 한들. 오직 시간만으로 쌓이는 내면의 탑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뭐,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겠죠. 그를 파악했다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니까요.”

    “흥,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소사이어티에 영입하겠다는 거야? 너한테 그런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섣부른 거 같은데.”

    “그래서 이렇게 지켜보려 하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소사이어티의 윗분들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솔직히 예상 이상이지 않습니까?”

    “뭐가?”

    “알마디아의 광대의 테러를 사전에 저지하고, 자치령에 일어난 대화재를 잠재웠으며, 약속대로 저희에게 목적지를 알려 주기까지 했으니까요.”

    남동쪽에 있는 거래상은 아는 게 없었다.

    에단과 레베카는 곧장 큰손, 제릭이 있는 마을로 찾아갔고, 그곳에는 ‘웰스 타운’의 약자가 남겨져 있었다.

    약속은 지킬 줄 아는 사내란 뜻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위험한 기색도 느껴지기는 하지만요. 그건 레베카가 저보다 잘 알겠죠.”

    “시끄러워.”

    레베카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뒤쪽에는 산맥이, 앞쪽에는 넓은 밀밭이 있는 웰스 타운이 훤히 보였다. 빛이 거의 없는 깜깜한 마을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솟구쳤다.

    위치는 웰스 타운의 서쪽 어딘가. 그 방향에서 마력과 땅울림이 연이어 느껴졌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요.”

    * * *

    흙먼지가 가득한 광장.

    그 위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켄드라스가 자신의 무기를 양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철퇴 전체에 기운이 응집된다. 아드리안을 완전히 짓이길 생각으로 있는 힘껏 수직으로 내리쳤다.

    쿠우우우웅!!

    움푹 파이는 바닥. 주위로 작은 폭풍이 몰아쳤다.

    아드리안은 진즉에 자리를 벗어났기에 피해는 전무했으나, 발밑의 진동에 의해 균형이 흐트러졌고 닥쳐 오는 흙먼지에 감각이 교란되었다.

    빈틈이 보였다.

    “하아아압!”

    방패를 앞세운 팔린이 돌진했다.

    아드리안의 지척에 도달한 순간, 방패를 둘러싸고 있던 기막(氣幕)이 확장되며 허공을 격했다.

    보이지 않는 물리력에 밀려 나간 아드리안이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 제동을 걸었다.

    <어스본>

    “……!”

    세드워디의 마법.

    예리한 가시가 하반신을 향했다.

    발끝에 힘을 실은 아드리안이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여 가까스로 범위에서 벗어났다.

    아직 연계는 끝나지 않았다.

    켄드라스가 달려와 솟아오른 지면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여러 파편이 비산하며 아드리안의 경로를 관통했다.

    검을 휘둘러 대부분의 것은 쳐 냈으나, 그로 인해 세드워디가 시전한 마법에 대처하는 것이 늦었다.

    <록 페이탈>

    터엉!

    음속을 넘어선 석편.

    금속 마스크가 찌그러지며 낮게 울린다. 머리를 진동하는 울림에 아드리안이 주춤했지만 잠깐이었다.

    자연히 서로 대치했다.

    켄드라스가 침을 뱉으며 어깨를 풀었다.

    “칫, 더럽게 잽싼 놈이군. 덕분에 기껏 마련한 은신처가 완전히 엉망이 됐어.”

    웰스 타운의 지하는 전장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나 괴력을 과시하는 켄드라스와 대지 마법 사용자인 세드워디에게는.

    습격자의 기민함을 쫓아, 이렇게 바깥까지 나오게 된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보헤미른 마탑이 보낸 용병이니 만큼 한가락 한다는 건가.”

    “뭐? 보헤미른 마탑에서 나왔다고? 저놈이?”

    “정황을 따지면 뻔하지. 우릴 죽이려고 하는 건 놈들 이외에는 없으니까. 자치령에서 벌어진 일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나 보군.”

    “흠, 그렇다면…… 생포하는 게 좋겠어.”

    팔린의 의견에 나머지가 동의했다.

    보헤미른 마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을 이해시킬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변명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

    사지를 부수고 명줄만 붙여 둘 생각이다.

    “…….”

    아드리안은 가만히 서서 세 명을 응시했다.

    목표물. 제법 한 수는 있으나 고작 그뿐이다. 그런데도 빈틈을 잡혀 일격을 허용했다.

    오판이었나? 아니다.

    원인은 그보다 훨씬 단순했다.

    ‘내가 약해졌다.’

    둔중해진 움직임, 무뎌진 검격, 원활하지 않은 기의 운용.

    기량 전체가 전체적으로 대폭 낮아졌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 이건 정신의 문제였다.

    예전에 비해 집중력이 한참이나 떨어졌다.

    아드리안이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했다.

    그렇기에 어째서인지 이유를 찾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내면을 비우고 오직 일념만을 남겼다.

    마법진에 입력된 명령.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을 척살하라.]

    그러니.

    ‘더 빠르게.’

    뒤꿈치가 지면에서 떨어진다. 기류가 일변했다.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드리안이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 순간 세드워디를 지나쳤다.

    “……어?”

    촤아아악!

    뒤늦게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지팡이째로 두 동강 난 세드워디가 나동그라졌다.

    아까보다는 낫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더 빠르게.’

    옆에서 팔린이 방패로 신체를 지키며 검 끝을 향했다.

    당황하는 대신 반격을 가하는 판단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너무 느리다.

    번뜩이는 검광.

    상대가 일격을 가하는 사이, 녹슨 검날이 네 번 휘둘러졌다.

    팔린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방금, 안 보였───”

    쩌억.

    피부 위로 돋아난 혈선에서 검붉은 피가 튀었다.

    생명의 불빛이 일시에 꺼졌다. 보는 그대로 팔린은 산산조각 난 상태로 절명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이 죽었다.

    켄드라스조차 당황을 금치 못하고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눈앞에 펼쳐진 잔혹한 광경 때문이 아니었다.

    “저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뭔지 모를 불길함을 감지했으나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놈의 모습을 감춘 직후, 뒤에서 명확한 기척이 느껴졌다.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전력을 다해 철퇴를 휘둘렀다.

    아드리안은 검을 당겼다.

    기량이 올라온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더, 빠르게.’

    자색의 기운이 칼날을 감쌌다.

    기예, 난무亂舞.

    철퇴를 쥔 손가락, 두꺼운 팔목, 무릎 관절, 어깨 힘줄 등.

    십수 개의 잔상을 그린 칼날이 움직임에 있어 치명적인 부위를 단숨에 베어 갈랐다.

    어지간히 단련한 감각으로는 감히 느낄 수조차 없는 극쾌.

    “끅, 끄으윽……!”

    철퇴가 떨어지고, 켄드라스가 무릎을 꿇었다.

    몸이 마비라도 된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힘겹게 시선을 높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툭.

    때마침 금속 마스크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법에 맞은 충격과 극에 다다른 속도에 이음새가 헐거워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묶여 있던 짙은 남색의 장발이 풀렸다.

    사나운 눈매.

    왼쪽 눈가 아래에 새겨진 작은 흉터.

    전체적으로 초췌한 듯 보였으나, 그 특징과 얼굴이 더없이 익숙하다. 그리고 속도의 궤를 벗어난 움직임까지.

    문득 한 사내가 떠오른다.

    수년 전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강대한 존재.

    천검, 아드리안 첸버스.

    의심은 곧 확신이 되었다.

    “주, 중앙 대륙, 4강이 여기 왜……?!”

    그것이 켄드라스의 유언이었다.

    서걱───

    목이 떨어졌다.

    안광이 저물며 두근대던 심장도 곧 잠잠해졌다.

    마탑의 지원을 받던 세 명을 참살한 아드리안의 검에는 피와 기름은커녕 먼지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자욱하게 낀 흙먼지가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간다.

    “하아…….”

    격한 움직임 뒤에 몰려드는 피로감.

    들뜬 한숨을 털어 내며 고개를 들었다. 짙은 구름이 밤하늘을 감추고 있다.

    이로써 마법진에 새겨져 있던 명령을 대부분 완수했다.

    이제 하나만이 남았다.

    [자멸해라.]

    시체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간단한 일이다.

    응축된 기를 내부에서 폭발시키면 끝이니.

    그러던 도중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아직 흩어지지 않은 흙먼지 너머로, 아드리안의 그림자를 보며 눈을 깜빡이는 어린아이가 있다.

    ‘소란을 느끼고 나온 건가.’

    그 순간 마법진의 명령이 전환되었다.

    [목격자는 전부 죽여라.]

    멋대로 기가 꿈틀거린다. 저항은 무색했다.

    칼날에 맺힌 검기가 허공을 격하며 연약한 목을 노렸고, 예상했던 대로 피부와 뼈를 관통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건 아드리안에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었으니.

    그런데 피가 없었다.

    기이함을 알아채자, 아이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환영?”

    즉시 기감을 넓혔다.

    왼쪽 방향, 흑발의 사내가 아이를 안고 도주하고 있다. <비행>을 쓰는 걸 보면 최소 3위계 이상의 마법사.

    ‘고도를 높이기 전에 죽인다.’

    그렇게 검을 세우자, 하늘에서 급류가 들이닥쳤다. 이 또한 마법이었다.

    손쉽게 피해 낸 아드리안이 건물 지붕 위로 올라섰다.

    시선을 높이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래도 정도가 있지. 검기로 애를 죽이려고 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너, 진짜 미친 새끼구나?”

    레베카가 으르렁거렸다.

    인간성을 상실한 자에 대한 혐오가 물씬 묻어난 표정. 그러한 비난에도 아드리안은 반응하지 않았다.

    목격자가 추가되었다.

    죽여야 할 상대가 하나에서 셋이 된 것이다. 주민들이 기어 나오면 더 늘어나겠지만 상관없었다.

    누구도 명령을 피할 수는 없다.

    쿠웅!

    지붕을 부수며 허공을 격했다.

    디딜 곳이 없기에 전력의 반조차 낼 수 없었으나 그마저도 빨랐다.

    그 속도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레베카는 침착하게 마법을 연산했다.

    물의 창과 검.

    부딪치기 바로 그 직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대지가 폭발하며 아드리안을 집어삼켰다.

    그에 그치지 않고 조작된 지형이 채찍처럼 주위를 후려쳤다. 그에 적중한 아드리안이 인적 없는 가도에 처박혔다.

    근처에 있던 레베카는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콜록, 콜록! 가, 갑자기 뭐야?”

    아래를 내려다보자, 끝이 보이지 않는 원형의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 벽면에는 지하 구조물이 보이는 것들로 공간이 비어 있었다.

    순간 일대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기우였다.

    이만한 충격에도 웰스 타운은 일절 미동조차 없었다.

    ‘설마…… 마법으로 강화한 거야? 여기 전체를?’

    그제야 느껴진다.

    지하 전반에 넓게 펼쳐진 방대한 마력이.

    뻥 뚫려 있는 광장의 중심.

    그 안에서 베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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