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조우 (1)
회색의 석조 통로가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일정 간격으로 천장에 설치된 마석등이 내부를 조명했다. 어둠과 노란빛이 뒤섞여 있는 분위기는 음산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횃불걸이나 여러 흔적을 보아, 이 웰스 타운의 지하는 상당히 오래전에 지어진 모양.
최소 100년은 아득히 넘었으리라.
호송 마차가 멈추고 기척이 가까워진다.
동시에 마법진의 기능을 복구하며 사방에 퍼뜨린 마력을 거두었다.
끼이익.
“도착…… 했다.”
말없이 바깥으로 나섰다.
마차는 본인의 역할을 마쳤다는 듯 홀연히 떠나갔다.
베르덴을 슬쩍 흘겨본 하펜이 옆에 있는 철문을 개방했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무언의 행동에, 베르덴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곧 문이 닫히며, 꽤나 넓은 공간이 시야에 비쳤다.
어두침침한 분위기.
정면에는 기다란 식탁이 수평으로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촛불이 일렁이는 촛대과 1인분 정도의 음식이 자리를 차지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시선을 이동했다.
식탁과 바닥을 가로지른 끝에, 커다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사내가 보인다.
그 옆 팔걸이에는 인간만 한 철퇴가 흉흉하게 기대어 있었고, 과일 같은 것을 담았으리라 생각되는 그릇들이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큰 체격, 목에 난 흉터, 그 인상착의.
‘저자가 켄드라스인가.’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
그를 이끌고 있다고 하는 지도자 중 하나.
“제릭을 협박해서 찾아왔다는 애셔가 네놈이로군. 생각했던 것보다 면상이 특이한데? 뭐, 어쨌든. 여기까지 오느라 불편한 점은 없었나?”
“절차가 상당히 귀찮더군.”
베르덴이 짧게 답했다.
말투 따위야 상관없다는 듯 켄드라스가 히죽였다.
“하기야 갑자기 갑갑한 호송 마차에 갇히면 좋은 소리야 나오지 않겠지. 그대로 물에 빠뜨려 버리면 말 그대로 산 채로 수장되는 거니까. 불 속에 집어넣으면 잘 익은 고깃덩어리가 되는 거고. 그래도 그리 섭섭하게만 생각하지는 마라. 너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활동하는 세력원이나 외부인 전부 같은 방법으로 이동하니까. 그래야 외부의 시선을 속일 수 있으니.”
그가 근육과 지방으로 덮인 어깨를 으쓱였다.
“번거롭기는 해도 효과는 상당해.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었으니까. 심지어 웰스 타운의 주민도 자신들의 발밑에 뭐가 있는지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지. 뭐, 하잘것없는 농민 따위가 뭘 알겠냐만…… 그 정도는 해야 어디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켄드라스가 대충 손짓했다.
아무 데나 앉으라는 뜻에, 베르덴은 식탁 앞에 있는 의자에 체중을 실었다.
서로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구도.
‘마음에 안 드는군.’
그래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법과 폭력보다는 대화가 우선이다.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여기까지 온 목적이었으니.
그때, 켄드라스가 말했다.
“그럼 대충 인사도 나눴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 대체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길래 여기까지 온 거지?”
“나는…….”
“아, 페이버 공급이 목적이라고는 하지 말라고. 그만한 양의 페이버를 수급한 건 확실히 놀랍기도 하고 흥미도 있지만, 단순히 거래를 하기 위해 혼자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켄드라스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안 그런가? 로아프라의 지배자?”
* * *
한편, 웰스 타운 근방.
빛이 반사되지 않는 망토를 걸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앙상한 거목에 설치된 마석등 아래에 얼굴을 비추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묵빛의 호송 마차가 은밀히 찾아왔다.
베르덴이 탑승한 것과 같은 종류.
웰스 타운의 지하 입구, 그 보안을 담당하는 릭손이 다가왔다.
“내가 알기로, 오늘은 정기 보고를 하는 날짜가 아닌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헤밀?”
헤밀은 켄드라스의 연락책.
미들로스의 자치령주와 켄드라스 사이에서, 양측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그가 작게 목례했다.
“송구합니다, 릭손 님. 다름이 아니오라, 시급히 켄드라스 님에게 전해 드려야 할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전해 드려야 할 것?”
“마탑의 마법사들이 암살당했습니다.”
릭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에서 파견된 에즈라와 몰리 그리고 각 마탑의 지부장과 측근들이 전부 살해당했으며 도시의 빈민가에서는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여기, 자치령주가 보낸 서신입니다.”
서찰을 잡아 뺏듯 낚아챘다.
종이의 절반 이상을 채운 글귀. 자치령주의 글씨체가 분명했으며, 서로 간에 약속한 암호가 끄트머리에 적혀 있다.
자치령주 본인이 쓴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마탑이 습격을 받다니…… 설마 보헤미른 마탑이 손을 쓴 것인가?’
마탑 소속 인물을 이렇게 대놓고 죽여 버릴 정도면 그 외에는 없다. 그런 과감한 행동을 취할 이유도 충분하고 넘치기도 하고.
보헤미른 마탑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먼저 손을 쓴 건, 다른 두 마탑이었으니.
아직 블랙 아워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텐데.
머나먼 동대륙에 있는 미들로스 자치령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던 건가. 어쩌면 여력을 회복한 걸지도 모른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보복의 손길이 여기까지 미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세력의 지도자들인 켄드라스, 세드워디, 팔린에게 보고하여 적합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죽지 않으려면.
“한창 진행 중인 연회가 엉망이 되겠군……. 어서 마차에 타라.”
헤밀과 나머지 둘을 태웠다.
자리를 잡은 릭손이 고삐를 내리쳤다. 말은 조금의 신음조차 내뱉지 않고, 불빛도 사람도 없는 거리를 가로질렀다.
더없이 한적한 웰스 타운의 밤.
농부가 대다수인 주민들이 저녁이 조금 지난 시점에 잠자리에 들면, 지하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자들이 거리를 소리 없이 지배한다.
지하 입구로 향하는 호송 마차는 오직 그때만 운행한다.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
켄드라스의 연락책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이러한 절차 덕분에 외부에서 활동하는 자들 중, 지하로 향하는 길이 어디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헤릭 일행을 하차시켰다.
릭손이 지하 입구를 개방했다.
“세드워디 님과 팔린 님은 연회장에 계신다. 당장 가서 보고를 드려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켄드라스 님은 어디에…….”
“손님이 와서 현재 거처에 계신다. 그분께는 내가 직접 찾아가 말씀드릴 테니, 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그러자 헤밀이 턱을 쓸었다.
“두 명은 같은 곳에 있고, 한 명은 다른 곳에 있다라……. 뭐, 결과적으로는 이 지하에 전부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야 당연히…….”
눈가를 움찔거린 릭손이 말을 멈췄다.
방금 목소리와 말투, 익히 알고 있던 헤밀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시선을 돌리자,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너…… 는 뭐지?”
“알다미아의 광대, 단장직을 맡고 있는 알다미아일세. 만나서 반갑군.”
그리고.
“안녕히 가시게.”
쿠웅!
천장이 무너지며 쇄도하는 그림자.
수직으로 그어진 빛살이 릭손의 정수리를 관통했다. 쩍, 사람의 몸뚱이가 절반으로 갈라지며 장기와 피를 흩뿌렸다.
직후 폭풍처럼 휘몰아친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뒤늦게 근육과 뼈가 잘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릭손이 이끄는 호송대와 지하 입구를 지키는 경비들이 목이 절반쯤 잘린 채 쓰러졌다.
“끄륵…… 끅…….”
가래 끓는 소리, 미약한 신음, 절명.
시체의 틈바구니에서 검사, 아드리안이 팔을 털었다. 녹슨 검에 묻어 있던 기름과 피가 말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알디마아와 다른 두 광대가 목을 긁적였다.
보이지 않았던 겉가죽이 손끝에 걸린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헤밀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 가죽을 벗어서 내던졌다.
“으음, 화장이 조금 지워졌지만 그리 엉망으로 보이지는 않는군.
알다미아가 손거울을 꺼내 피부를 살폈다.
“그나저나 아무리 내 연기로 상대를 속였다고 하지만, 역시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야. 그 짧은 시간에 감시자들을 죄다 죽인 것도 모자라, 누구도 반응하기 전에 싹 다 베어 버릴 줄은! 이런, 이런…… 갈수록 그 가면 뒤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모두 그렇지 않나?”
“사, 살짝 벗겨 보면 아, 안 될까요?”
“나도 궁금하기는 하네.”
간절한 시선에도 아드리안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 통로를 서늘하게 응시하며 물었다.
“켄드라스, 세드워디, 팔린. 저 아래에 있나.”
“그렇다고 하더군. 두 명은 지하 아래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고, 나머지도 곧 연회장으로 간다는군. 세력원의 거의 전부가 연회에 참석하고 있는 걸로 보이네.”
강제 마법진, 콜젼에 입력된 명령.
자치령주는 알다미아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 중, 라리안 마탑과 화산섬의 마탑의 수뇌부를 몰살했다.
이제, 마무리만이 남았다.
“이걸로! 우리가 보헤미른 마탑에게 의뢰받은 일은 끝! 이제 잔금을 치를 시간이네! 특별히 그 얼굴을 보여 주면 조금 깎아 줄 수도 있는───”
그때, 한 줄기 선이 반월을 그린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이내 살갗 너머로 혈선이 새겨지며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어.”
촤아아아아악!
허공이 빨갛게 물들며, 눈을 부릅뜬 머리통 세 개가 날아갔다. 허공에 머물고 있던 알다미아의 시선이 천천히 기울었다.
서서히 꺼져 가는 눈빛에는 ‘어째서?’라는 의문이 담겨 있다.
그래서 답했다.
“알다미아의 광대. 이용 가치 소멸.”
광대는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을 추적하는 수단일 뿐. 애초부터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처리했다.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명령에 입각한 아드리안의 판단이었다.
저벅, 저벅.
입구를 닫고, 웰스 타운의 지하를 거닐었다.
연회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캐낼 필요가 없다.
이곳 지하에 있는 자들은 전부 죽일 생각이니.
극도로 높아진 기감을 최대한 넓혔다.
마력 감지와는 종류와 성능이 다른 감각이 점차 원초적인 생명 반응을 감지했다.
지하의 연회장.
그곳을 향해 아드리안이 통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베르덴이 켄드라스의 얼굴을 응시했다.
정체를 발각당한 건 예상했던 일들 중 하나였다.
애써 외모와 이름을 숨기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로아프라에서 왔다고 밝혔으니. 단서를 준 이상, 어느 정도의 정보력만 있다면 알아채는 건 쉬웠겠지.
‘그런데도 독대를 받아들였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마탑을 등에 업은 놈들이니, 로아프라라는 이름에 지레 겁먹을 리는 없다.
그리고 아주 구하기 힘든 페이버의 공급에 대해 거론한 이상 배제할 수 없었겠지.
지금의 상황과 자리는 베르덴의 의도였다.
“마탑과 손을 잡은 집단이 꽤나 척박한 곳에 자리를 잡았군.”
숨기지 않고 마탑을 거론했다.
그러자 켄드라스가 낮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 웰스 타운의 지하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 일종의 거대한 곡창이자, 위급 시 사람들이 몸을 숨기기 위한 피난소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걸 우리가 점거해서 쓰고 있는 거다.”
솔직히 살기 적합하지 않았지만, 마법과 매직 아이템으로 괜찮은 낙원을 만들었다.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의 조력이었다.
“하위 서열이라고 해도, 그 기술력은 역시 마탑이라는 소리가 나오더군. 그나저나 마탑을 입에 담은 걸 보면……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보헤미른 마탑. 이거면 대답이 되나?”
“거참, 많이도 알고 있군. 우리 쪽하고 두 마탑에서 정보가 샌 건 아닐 테고…… 그 얼간이 같은 자치령주가 실수했나? 뭐, 어쨌든.”
짝! 켄드라스가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암흑가의 왕이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보헤미른 마탑의 끄나풀은 당연히 아니겠지. 그랬다면 진즉에 미들로스 자치령은 버리고, 로아프라를 영향력의 기반으로 삼았을 테니까. 그래서 도통 이해가 안 가는데, 대체 목적이 뭐지?”
처음의 질문이 되돌아왔다.
“조사해 보니 보헤미른 마탑과 너는 악연이 깊더군, 켄드라스.”
중앙 대륙에서 활동했던 세 눈의 추종자.
나름 악명을 떨쳤다고 들었으나, 그 결과 보헤미른 마탑에게 궤멸되었다.
수장이 죽고, 잔당은 척살당하는 도중, 조직의 친위단장이었던 켄드라스 일당은 겨우 동대륙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마탑과 손을 잡아, 보헤미른 마탑을 적대하고 있다.
블랙 아워와의 전쟁을 틈타, 그들이 자치령에 뻗은 영향력을 철저하게 지우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켄드라스가 이곳 세력을 전부 이끌고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지도자 중 하나인 건 명백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보헤미른 마탑에 복수라도 하고자 하는 건가?”
떠보는 듯하나, 핵심적인 질문.
그 대답이 어떤지에 따라, 베르덴의 판단과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복수……?”
잠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고요한 흐름 속에서, 켄드라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풉. 터져 나오는 숨소리.
기가 찬, 실소에 한없이 가까운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