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91화 (291/366)

291화 선착 (1)

베르덴이 뒷골목 세력에게 요구한 건 정보.

그 질에 따라 액수는 다르나, 두루뭉술한 현물이 아닌 현금을 직접적으로 쥐여 준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대가였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최초로 돈을 지급받은 건 도둑, 티프.

패드렐드를 겨냥한 마차 습격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언급하면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세한 내막을 알아 오면, 중요도에 따라 몇 배 이상의 보수를 지불하겠다는 언질을 베르덴에게서 받아 냈다.

다른 이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본보기이기도 했지만 약속은 약속.

티프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 일에도 착수했다.

다만 생각보다 진척이 없었다.

그는 도둑질에 능하나 밀매업계 대해서는 깊게 알지 못했기에.

그래서 조력자를 구했다.

───너, 나랑 일 좀 같이하자.

───예? 저요?

그 대상은 패드렐드 본인.

자치령 내에서 그보다 관련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자가 없었으니. 과거의 앙금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상관없었다.

성과급이 걸려 있는데 그게 대수일까.

그렇게 둘이 손을 맞잡고 협업을 시작했다.

먼저 패드렐드가 가진 단서.

밀수꾼의 협곡을 경유해 미들로스 자치령으로 향하고 있던 당시, 베르덴과 함께 마차에 타고 있던 패드렐드는 가도에서 기습을 당했다.

습격을 꾸민 건, 여러 밀수꾼에게 고용된 전직 용병과 범죄자들.

전적으로 베르덴 덕분에 어떤 손해도 없이 완벽하게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을 궤멸시키고 행위자 여섯 명을 생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직후 심문을 통해 습격을 사주한 밀수꾼 중 하나가 호멘스라는 정보를 얻어 내기까지.

그리고 티프가 가진 단서.

최근 밀수꾼들이 돈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다.

이유는 이 도시가 아닌, 자치령의 자른 지역에서 온갖 물건이 비싸게 팔리기 때문.

무기, 포션, 매직 아이템만이 아니라 중앙 대륙에서만 유통이 허락된 연초까지도 암중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거…… 합치면 뭐 좀 나오겠는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뇌리가 번뜩인 두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패드렐드는 숨어 있는 호멘스를 찾아냈고.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못 찾을 줄 알았습니까? 포를 떠 버리기 전에, 제가 묻는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마, 말할게! 말할게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목숨만은!

티프는 도시 바깥에 있는 마을이나 타운에서 수소문을 했다.

습격해 오는 아인종은 사적으로 고용한 모험가를 앞세워 토벌했다. 비용이 좀 들긴 해도 따로 활동비를 받았기에 아깝지 않았다.

그 결과 조건에 들어맞는 세 사람을 찾아냈다.

공통적으로 연초 구입을 희망하는 거래상들.

그들과 거래를 통한다면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시궁쥐를 포함한 하층민 세력을 몰살시킨 자가, 연초의 중독자일 가능성을 접했기에.

그게 베르덴이 두 사람을 부른 이유였다.

자치령의 저택 지하.

패드렐드와 티프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지금 이 세 명은 각각 자치령의 북쪽과 동남쪽 그리고 북동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초만이 아니라 페이버에 대해서도 수배를 했더군요.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둘은 저를 습격하라고 사주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알다미아의 광대에게서 얻은 정보.

마탑의 적대 세력은 동쪽 혹은 남쪽에 있는 걸로 추정된다.

‘그러니 북쪽은 제외한다.’

남은 후보는 둘.

베르덴이 말했다.

“동남쪽과 북동쪽. 규모는 누가 더 크지?”

“북동쪽이 더 큽니다.”

“연초와 페이버에 대한 비용은.”

“마찬가지로 북동쪽에 있는 자가 더 비싸게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큰손, 제릭’. 듣도 보도 못한 자인데, 제가 에스티리아 왕국에 가는 사이에 적지 않은 규모의 밀거래로 유명해진 모양입니다.”

“뭐, 큰손이니 뭐니 해도, 사실 돈만 있으면 이 바닥에서 이름 알리는 것 정도야 간단한 일이긴 하지.”

티프가 말을 덧붙였다.

베르덴이 턱을 쓸며 단서를 정리했다.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은, 자치령주와 두 마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협력 혹은 상하 관계.

뭐가 됐든 마탑이 관련된 이상 돈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중에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어 버려지는 게 아닌 이상 풍족하게 지낼 수 있겠지.

‘필요하다면 연초를 구할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따지면 유력한 후보는 북동쪽.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놈이 제3의 세력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제릭이라는 밀거래상의 위치는?”

“이 산맥 사이에 있는 마을입니다. 밀거래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 근방을 거의 사유화시켜 귀족 노릇을 하고 있다더군요.”

“그렇군.”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른 밀거래상의 위치 또한 물었다. 혹여 제릭이 놈들의 관계자가 아닐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이로써 필요한 정보는 확보했다.

판단을 끝내고 결정을 내렸으니 다음은 행동할 차례.

“나는 북동쪽으로 가겠다. 너희 둘은 동남쪽으로 가도록.”

“저희도…… 아, 아니.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베르덴의 시선에 에단과 레베카가 수긍했다.

움직이는 속도도 다를뿐더러, 나뉘어 움직이는 게 더 합리적이었으니까.

이러한 두 사람의 판단은 베르덴이 6위계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애셔 님이 간 곳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을 위해 밀거래상과 만난 후, 각자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 남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 최소한의 정보 정도는.”

그 정도야 못 할 건 없다.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패드렐드와 티프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성과급은 갔다 온 뒤에 지급하도록 하겠다. 만약 내가 찾는 게 맞다면, 기존에 약속했던 것 이상으로 지불하지.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티프가 알다미아의 광대 둘을 가리켰다.

“……저 둘이 빈민가에 화재를 일으킨 범인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 살의가 실려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불태운 것에 대한 분노였다.

순간 눈가를 움찔거린 패드렐드의 눈동자에도 짙은 적개심이 어렸다.

“복수를 원한다면 신변은 넘겨주마.”

“저, 정말이십니까?!”

알다미아의 광대를 잡은 건 베르덴이다.

북쪽 지구에서 일어날 뻔한 테러를 막은 것도, 대화재를 잠재운 것도 마찬가지. 타인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대신 죽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아니라, 너희들을 위해서.”

“저희들이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미치광이의 목숨과 자신들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베르덴은 이미 충고는 했다는 듯, 그대로 걸어가 티프와 패드렐드를 지나쳤다. 그의 등을 에단과 레베카가 뒤따랐다.

“아, 그리고 페이버는 내가 챙겨 가지. 대금은 추후에 지급하겠다.”

패드렐드의 창고에 들러 검은 연초를 아공간에 전부 수납했다.

이윽고 세 명의 마법사가 도시를 벗어났다.

* * *

자치령주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제 안위와 영화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내였다.

이 세상에 영원한 동지란 없다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따라 붙잡은 손을 내치고 새로운 손을 잡아 왔다.

깊이 없는 인간관계.

제 딴에는 열심히 고려한 얄팍한 처세술.

그것들이 자치령주의 근간이었다.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의 제의를 받고, 자치령 내 보헤미른 마탑의 영향력을 없애고자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바로 그게 잘못이었다.

대륙 단위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보헤미른 마탑을 얕봐서는 안 됐다. 누굴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게 그가 살아왔던 방식이니까.

후두두두둑! 투툭!

토막 난 자치령주가 마차 밖으로 뿌려진다.

금새 피 냄새를 맡은 아인종과 마수가 달려와 게걸스럽게 인간의 잔해를 먹어 치웠다.

먹이가 사라지자 이내 자신들끼리 싸우며 서로를 잡아먹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

단장, 알다미아가 피 묻은 앞치마를 바깥으로 내던졌다.

“핫핫핫,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즐거운 시간이었군. 자치령주라는 이름에 비해 입이 좀 가벼웠다는 게 흠이었지만, 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네.”

깔끔하게 옷차림을 정리한 그가 보라색 실크햇을 눌러썼다.

“자자, 그럼 보헤미른 마탑의 적대 세력…… 음, 좀 길군. 그중에 켄드라스라는 자가 있다고 하니 그냥 그렇게 부를까?”

“그게 좋을 것 같아, 단장.”

“의견 좋았어. 그럼 켄드라스의 위치는 얼추 파악했네. 넓은 밀밭이 자랑거리라는 웰스 타운이 본거지. 대신 정확한 위치는 모르니…….”

구석에 있던 아드리안이 빤히 바라봤다.

섬뜩한 시선을 웃어넘긴 알다미아가 어깨를 움츠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않아도 되네. 켄드라스의 연락책이 어디에 머무는지는 파악했으니까. 솔직히 정보 캐는 거 자네도 다 들었지 않나?”

“…….”

“음! 사내는 과묵해야 하는 법이지! 어쨌든 그 연락책을 찾은 다음, 켄드라스의 본거지를 알아내면 우리가 받은 의뢰는 끝! 걱정은 불필요!”

한 바퀴를 돈 알다미아가 절도 있게 기립했다.

“고문과 변장. 그리고 연기는 나의 특기니까. 그렇지 않나, 모두들!”

“마, 맞아요, 단장!!”

“솔직히 연기로 따라올 사람이 없긴 하지.”

“핫핫핫! 고맙네! 데보니와 매시가 도시에서 열심히 카니발을 벌여 줬으니! 우리도 두 사람에 부끄럽지 않게 최고의 연극을 벌이세!”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속에서 아드리안은 다시 기억 속에 잠겼다.

아무리 떠올려도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 무수한 장면들을 의식 속에서 바라봤다.

행선지는 웰스 타운.

마법진에 새겨진 명령이 끝에 다다르고 있다.

* * *

큰손, 제릭은 인생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요청받은 물건을 밀거래하는 중개상 역할일 뿐인데, 거래마다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의 수수료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수년간 발에 땀 나게 달려도 쳐다도 보지 못할 자산을, 고작 몇 개월 이내에 쌓게 될 줄은…… 정말로 꿈에도 몰랐다.

‘물건을 요청하는 게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게 걸리지만.’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준비한 물건을 약속 시간에 맞춰 직접 가져간 다음, 현금이나 현물을 건네받는 게 전부인 작업.

어떤 내막이 있든 간에, 정체가 뭐든 간에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쉽고 막대한 돈벌이를 누가 내치겠나.

‘솔직히 당장 거래를 끊었다가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고…….’

이미 시작한 이상 멈추기에는 늦었다.

그래, 평생 밑바닥에서 빌어먹을 바에 크게 베팅하는 것이 훨씬 낫겠지.

자신이라고 해서 밀매상 패드렐드처럼 터줏대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이 마을을 밀수꾼의 협곡처럼 만들고 말리라.

제릭은 그렇게 다짐하며 욕조를 나왔다.

물기를 닦고 고급 가운을 입은 채 차디찬 복도를 거닐었다.

안쪽에 있는 정원 때문에 외부에 개방한 길이라 춥기는 하다만 이것 또한 사치였다.

종종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번에 새로이 장만한 푹신한 소파에 누워, 입에도 맞지 않는 와인을 즐기는 것이 그의 새로운 취미였다.

그런데 선객이 있었다.

“이제 왔군.”

잿빛 머리에 벽안.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찬란한 로브.

제릭과는 차원이 다른 외모를 가진 사내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누구…….”

“앉아라. 네가 거래하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 할 말이 있으니.”

진중하면서도 위압적인 목소리.

‘설마…… 강도?’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상황에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뒷골이 저릿해지는 걸 느끼며 제릭이 자신이 고용한 용병들을 불렀다.

“경비! 경비! 여기 강───”

그러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창문 바깥에 있는 난간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용병들이 보였기에.

“딸꾹.”

그제야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집 안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주변에 귀를 기울여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깨어 있는 건 제릭 본인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터벅, 터벅.

다가온 제릭이 의자에 앉았다.

다소곳이 다리를 모은 그의 등이 곡선으로 굽었다.

“아…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네가 연초를 거래한다고 들었다.”

베르덴이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 안에 담긴 검은 연초 뭉치를 본 제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페이버?”

“바로 알아보는군.”

“그야 제 고객…….”

텁. 제릭이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고객 정보에 대해 발설하는 건 금기였는데……!

물론 이미 주워 담기에는 늦었다.

“지금 내 수중에 꽤나 많은 양의 페이버가 있다. 듣기로는 상당히 비싸게 팔린다고 하더군.”

“예, 예. 중앙 대륙에서 온 신제품이라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베르덴이 등을 누였다.

손등으로 턱을 괸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네 고객과 거래를 트고 싶은데.”

당연히 거부권은 없다.

이건 제안이나 부탁이 아닌 협박이었으니까.

베르덴이 찾던 제3의 세력.

그들과 접촉하기까지 이제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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