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90화 (290/366)
  • 290화 카니발……? (3)

    인위적으로 피어난 화염이 바람을 타고 확산한다.

    몇몇 건물에 숨겨져 있던 기름통 때문에 간간이 폭발이 발생했고, 건조하고 오래된 건물은 불에 면역이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겨울밤.

    거센 열기에 추위가 물러갔지만 누구도 환영할 수가 없었다.

    집구석에서 덜덜 떨던 가난한 빈민조차도.

    우지끈.

    “무, 무너진다! 피해!”

    “아악! 도와줘!! 다리가, 다리가아아!!”

    건물이 내려앉으며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검게 탄 목조 기둥이 중년 남자의 하반신을 깔아뭉갰고, 불규칙하게 튄 불똥이 피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아빠아아아! 엄마아아아!”

    거리 한복판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애타게 부모를 찾았으나 이웃들은 도와줄 여유가 없었다. 재난은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지 않으니.

    그저 벗어나는 데 급급할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밀매상 패드렐드.

    그가 아이의 팔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바람이 동쪽으로 불고 있으니, 당장 사람들부터 서쪽으로 대피시키세요! 방해되지 않게! 그리고 프랭키, 당신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명령하지 마!”

    프랭키가 다리를 강하게 올려쳤다.

    우지직! 타다 만 나무 기둥을 박살 내고는, 그 밑에 깔려 있던 사람을 일으켜 부축했다.

    빈민을 구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끄으윽, 이거 X나 무거운데……! 마법사 있으면, 누가 염력으로 이것 좀 들어 봐!”

    “젠장, 이 친구 화상이 심해! 성직자! 성직자 없어?!”

    “치료는 나중에 하고, 일단 바깥으로 옮기기나 해!”

    뒷골목의 세력들 전부가 대처에 나섰다.

    언제나 서로를 견제하곤 하나 지금만큼은 행동을 같이했다.

    베르덴의 명령 때문이 아니었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그들은 미들로스 자치령의 주민이었기에.

    하늘에서 레베카가 소리쳤다.

    “거기! 휩쓸리기 싫으면 비켜!”

    손을 휘젓는다.

    마력회로가 맥동했다.

    트리플 캐스팅.

    <파도>

    굽이치는 물결이 건물을 뒤덮었다.

    이로써 불길을 잠재운 거리는 세 개째. 그녀 덕분에 일시적으로 인명 피해가 멈췄다.

    슬슬 지쳐 가기는 했지만 아직 마력은 남아 있다. 잠시 호흡을 고른 레베카가 다시 마법 연산에 집중했다.

    그리고 뒤늦게 모험가, 용병, 성직자, 병사 등이 합류했다.

    개중에는 소란을 듣고, 두 마탑의 지부에서 헐레벌떡 나온 하위 마법사도 있었다.

    마탑에 속해 있는, 단순히 인력으로 취급되는 자들.

    “이게 뭔…… 더 번지기 전에 막아라!”

    그래도 마법사는 마법사다.

    더군다나 배운 건 많기에 마법적 역량 또한 높은 편.

    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바람 조작 혹은 맞불을 놓거나 건물을 무너뜨려 불길을 막는 등 지대한 역할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화재가 조금씩 진화되어 간다. 사람 몇 명을 구출한 프랭키가 옆을 바라봤다.

    폭삭 주저앉은 건물 안에 타 죽은 시체가 있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다. 잠을 자던 가족이 봉변을 당한 것 같다. 바싹 타서 얼굴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누군지 알고 있었다.

    프랭키는 이곳 빈민가에서 태어났기에.

    “X발…….”

    문득 고기 타는 냄새가 코끝을 때린다.

    그것이 불쾌하고 역겨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떤 새끼야!!!!!”

    나고 자란 거리가 잿더미가 되었다.

    안면이 있던 이웃도 끔찍한 몰골로 타 죽었다.

    범인이 누구든 간에 패 죽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분노. 당장 말은 안 해도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그 범인 중 하나를 에단이 쫓고 있었다.

    * * *

    마도사는 마도를 개량하여 기존에 없던 마법을 창조한다.

    다른 마법사라고 해도 재능과 지식 그리고 노력만 있다면 전수받는 게 가능하다. 이 세계의 마법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에단도 그 수혜자 중 하나였다.

    스승에게 배운 마력 운용법.

    동문인 레베카와는 종류가 다른 것으로, 마법적 감각을 극적으로 높여 마력의 잔흔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부여 계통이다.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오직 한 곳이어야만 한다. 마법 특성상 도중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에단이 선택한 건 자신의 오른손이었다.

    손길을 따라 마력이 허공을 훑는다.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최대 5시간 전의 마력까지 감지 가능하나, 5위계 이상의 마법사는 추적할 수 없다.

    순전히 에단이 가진 능력의 한계.

    다행히 이번 상대는 마법사이며 4위계 이하인 모양.

    미세하게 남아 있던 타인의 마력이 에단의 것과 반응하며 감각을 자극했다.

    ‘찾았다.’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기민하게 움직였다.

    건물 사이를 건너뛰고, 골목을 지나는 등 실마리가 잡힌 이상 찾는 건 시간문제일 뿐.

    잠시 후, 건물 옥상.

    에단이 해당자를 발견했다.

    “좋군, 좋아……! 역시 데보니 말대로 이 방법이 제일이오, 암!”

    어둡고 한적한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내.

    ‘저건…….’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

    과한 몸짓과 표정. 광기가 실린 목소리와 빈민가에 일어난 학살극.

    첫눈에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알다미아의 광대?’

    인강성이 결여된 광인 집단.

    그들이 몰살시킨 마을만 여럿이며, 도시와 타운에 수차례 대규모 테러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최소 수백 명에 달한다.

    과거 국가 토벌 명단에 오른 자들이다.

    그리고 끈질긴 추격 끝에 십수 명의 단원은 그 자리에서 척살당했다.

    다만 집단을 이끄는 단장과 몇몇 측근은 끝끝내 도망쳤고, 이후 약 2년간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정말로…… 보헤미른 마탑이 관련된 건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탑의 오만과 폭거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나, 저런 정신병자들을 고용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상위 서열에 위치한 마탑이.

    ‘생각은 나중이다.’

    뭐가 됐든 잡아야 한다.

    하지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알다미아의 광대는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개인이 아닌 단체 활동으로 동대륙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럼 저 키 작은 광대 외에 다른 놈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여기서 섣불리 제압해도 되는 걸까. 어쩌면 나머지는 이곳에서 다른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뒤를 밟아 다른 광대들까지 단번에 쓸어버리는 게 정답인 것 같은데.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강렬한 기척을 느꼈다.

    “……?”

    고개를 들자, 보라색 장막을 두른 존재가 맹렬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뚱뚱한 광대를 구속한 지면을 통째로 띄운 채.

    “애셔?”

    슈화아아아악!

    베르덴이 순식간에 에단이 있던 건물을 지나쳤다.

    지면과 격돌하기까지 초읽기.

    그가 나아가는 방향에 광대, 매시가 있었다.

    “슬슬 북쪽에도 카니발이…… 응?”

    뭔지 모를 불안감에 매시가 뒤를 돌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찌푸렸다. 대각선 위에서 무언가가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

    형체는 인식했다.

    다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앙!

    충격파에 으깨진 가도.

    주변에 있던 유리창이 박살 나며 건물 벽에도 금이 갔다. 가까이 있던 매시는 고스란히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쿠웅. 콰앙. 쾅.

    물수제비처럼 지면에 몇 번이고 부딪힌 끝에 움직임이 멎었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오른 다리가 반대 방향으로 꺾인 매시가 부들부들 떨었다.

    “끄어…… 억…….”

    폭주하는 마차에 정면으로 치인 듯한 처참한 몰골.

    그러나 역시 생명에 큰 지장은 없다.

    데보니와 마찬가지로, 지면이 꿈틀거리며 매시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이걸로 화재를 일으킨 놈들은 전부 확보했다.

    에단이 다가왔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그나저나 저 광대는 어디서 잡으신 겁니까? 그리고 자치령주는…….”

    “자치령주는 놓쳤고, 광대는 오다가 잡았다. 잃어버리지 않게 잘 갖고 있도록. 잠시 집중해야 하니.”

    자치령주의 성은 쑥대밭이 되었다.

    대신 그 범인과 한패인 범인들을 붙잡았다.

    더 이상 자치령에 변수는 없는 상황.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바로 화재 진압.

    이대로 방관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니 잠재운다.’

    걸리적거리는 광대들을 애단에게 떠넘겼다.

    다음으로 베르덴이 양손으로 오리엔트를 쥐었다.

    외부의 시선이 있으니 마안을 쓸 생각은 없다.

    그건 베르덴이 가진 비장의 수단이자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니.

    소사이어티에 관련 정보가 조금이라도 넘어가는 건 원하지 않았다.

    ‘뭐, 다른 조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6위계는 세간에서 영재 혹은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의 도달점.

    그 파괴력은 가히 일대를 뒤엎을 수 있고, 단순히 숫자만 많은 군대는 감당할 수 없다.

    하고자 한다면 대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반대로 도시를 구할 수도 있다.’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한다.

    그와 동시에 기류가 거칠게 술렁였다.

    내부에 충만하게 들어찬 정순한 마력. 연산이 시작되고 수십 초가 흐른 끝에 하나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6위계 집중 마법.

    <임베르>

    오리엔트의 오브가 명멸한다.

    직후 밤하늘에 가득한 구름이 일순간 푸른빛으로 물들다, 우중충한 회색으로 되돌아갔다.

    고요한 바람이 분다.

    당연하게도 실패는 아니었다.

    투, 투둑.

    하늘에서 차가운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비……?”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본 에단이 중얼거렸다.

    곧이어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세찬 빗줄기가 자치령의 동쪽을 강타했고, 일렁이던 불길이 짓눌려 사라졌다.

    기름에 붙은 화염도 마찬가지.

    에단이 실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 이건 6위계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린다.

    경지가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5위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을 줄이야.

    베르덴이 오리엔트를 아공간에 수납했다.

    자신의 위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만 돌아가지.”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한 사회 재난.

    광대들의 카니발은 절반의 진행을 끝으로, 단 한 명의 마도사에 의해 종결되었다.

    * * *

    사태가 진화되고 수습이 시작되었다.

    얼마 후에, 자치령주의 성에서 일어난 참극으로 대화재 이상의 소란이 일겠지만,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화재가 발생한 동안, 그사이에 마탑 지부의 수뇌부들이 살해당하고 자치령주가 납치되었다고…… 요?”

    “정확하군.”

    “와…….”

    레베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충 말로만 들었는데도 충격적이었다. 베르덴에게서 느끼던 불편함과 어색함을 순간 잊어버릴 정도로.

    소사이어티의 특성상, 마탑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접해 왔지만…… 그 보헤미른 마탑이 외부 인력을 고용해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검사라…… 그만한 실력자라면 분명 어디서 들어 봤을 법한데 짚이는 게 없네요. 혹시 서대륙에서 온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발로크는 단신으로 공간 이동을 구사한다.

    하다못해 대륙 사이에 설치된 공간 이동진도 존재하고.

    돈과 시간이 들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 간의 기나긴 거리를 극복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알다미아의 광대라 불리는 놈들을 같이 고용한 걸 보면 동대륙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확정하기에는 애매하다.

    어디서 왔는지 유추하는 건 시간 낭비겠지. 현장에 남아 있는 검기로는, 누굴 보냈는지 추정하는 것 또한 어렵다.

    단서가 필요하다.

    그게 광대들을 살려 놓은 이유였다.

    자치령의 저택 밑에 존재하는 지하 창고.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알다미아의 광대 두 명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쇠사슬에 매달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 곁에서 숨을 돌리고 있던 에단이 두 사람을 반겼다.

    “아, 오셨군요. 마침 심문을 마친 참입니다. 후우, 나름 자신이 있는 분야인데, 워낙 정신이 나가 있는 자들이라 그런지 더럽게 힘들군요. 예전에 비슷한 놈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면 난항을 겪을 뻔했습니다.”

    “씻을래?”

    “부탁합니다.”

    레베카가 물을 구현해 뿌렸다.

    진득하게 묻어 있던 피와 땀이 쓸려 아래로 내려갔다. 간단히 세수를 마친 에단이 머리칼을 위로 쓸었다.

    “그래서 놈들의 위치는 캐낸 거야?”

    “알아내기는 했지만, 음, 솔직히 좀 애매합니다.”

    에단이 자치령 주변이 기록된 지도를 펼쳤다.

    혈흔이 묻은 장갑을 벗고는, 손가락으로 동쪽 숲을 가리켰다.

    “성을 급습한 건 금속 마스크를 쓴 남자라고 합니다.”

    베르덴이 물었다.

    “이름은?”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자가 자치령주를 납치해, 이곳에 위치한 단장에게 데려가는 게 계획의 일환입니다. 그리고 여기 데보니와 매시라 불린 광대들은, 테러를 마치고, 자치령과 연합 도시 카일리언스의 국경선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고요.”

    “……그게 끝인가?”

    “위치 정보는 이게 끝입니다.”

    확실히 애매하다.

    당장 단장이 기다렸던 장소로 가도 추적을 이어 가긴 쉽지 않을 테니. 그렇다고 국경 마을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그와 별개로 놈들은 북서쪽에서 내려오면서, 마탑의 적대 세력에 대해 알아본 모양입니다. 자치령주에게 정보를 얻지 못할 걸 대비한 거겠죠. 그런데 그럴 만한 건 하나도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거짓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무언갈 알아내는 건 제 특기거든요. 스승님에게 제대로 배우기도 했고요.”

    “응, 그건 맞긴 하지.”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믿음을 더했다.

    베르덴이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자치령에 온 이후로 얻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나열했다.

    첫째, 마탑의 적대 세력은 자치령의 동쪽 혹은 남쪽에 있다.

    둘째, 지하 수로에서 학살을 벌인 건 마탑의 적대 세력이다.

    셋째, 지하 수로에서 연초가 발견되었다. 그 소유자는 중앙 대륙 출신일 확률이 높다.

    넷째, 그 세력의 지도자 중 하나는 켄드라스다.

    다섯째, 켄드라스 일당은 중앙 대륙 출신이다.

    …….

    그러다 문득 실마리를 잡았다.

    잘하면 마탑의 적대 세력의 위치를 단번에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충분히 걸어 볼 만했다.

    “레베카.”

    “네? 왜, 왜요?”

    “가서 패드렐드하고 티프를 호출해라.”

    자치령의 뒷골목 세력.

    밀수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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