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카니발……? (2)
대부분의 시민이 잠든 야밤.
일시적으로 하인들이 전부 쫓겨난 성채, 그 상층부에 위치한 밀실 홀(Hall)에서 작은 연회가 열렸다.
“오늘을 위해, 자치령을 관리하는 데 힘쓰고 계신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한 식재료를 공수해 왔습니다. 식으면 맛이 없을 테니 사양하지 말고 어서, 그리고 마음껏 드십시오!”
한껏 차려입은 자치령주가 공손히 식사를 권했다.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진귀한 음식들.
다름 아닌 자치령주의 기사단이 서빙을 대신했다. 관심 없는 척, 고고한 척 흘끔거리기만 하던 마탑의 마법사들이 슬그머니 식기를 들었다.
“하하하, 저번 이상으로 힘을 쓰신 모양입니다. 냄새도 그렇고 플레이팅도 군더더기가 없군요. 되레 먹기가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음식은 음식이지. 자,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드시구려.”
마탑에서 파견된 에즈라와 몰리가 먼저 맛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참석자, 두 마탑 지부의 수뇌부들도 차례로 식사를 시작했다.
구름이 자욱한 어두운 날이다.
다분한 기름기. 짠맛, 새콤함, 단맛, 감칠맛 등이 야식치고는 자극적이었으나, 그렇기에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우걱우걱.
벌컥, 벌컥.
쉴 새 없이 맛을 음미한다.
특히나 인기 있는 건, 쥐로 만든 요리였다.
성체가 되어도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
협소한 장소에 넣어 놓은 뒤 당도가 높은 과일만 한 달 동안 먹이고, 고급 브랜디에 반나절을 담가 비린내를 없애는 것과 더불어 진중한 달콤함을 더한다.
그리고 꼬리를 제거하는 등의 손질을 하여 오븐에 조리하면 완성.
장기와 근육, 지방에서는 농축된 과즙이 뿜어져 나온다.
또한 씹으면 씹을수록 풍미가 깊어지는 데다가, 뼈가 연한 개체라 번거로울 것 없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기까지.
맛으로 보나, 편의성으로 보나 진미.
다만 그런 평가와는 달리,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하나는 상류층이 혐오하는 쥐를 식재료로 이용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조리 과정이 매우 잔혹하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리 맛이 좋다고 한들, 아무리 깨끗하게 조리를 한들, 온갖 병을 옮기고 다니는 쥐를 통째로 씹어 먹다니…… 대외적으로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딱히 금지는 하지 않았으나, 그 무자비한 사육은 루아스교에서도 탐탁지 않아 하기도 하고.
괜히 자신의 식성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입을 나불거렸다간, 저질스러운 식탐을 가지고 있다며 불명예를 얻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은 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
“음, 음! 맛있군, 맛있어!”
“이거, 중독될 것 같군요……!”
빈 그릇이 교체되고, 따끈따끈한 음식이 다시금 차려졌다.
대화 소리는 작다. 입을 닫고 오물오물 씹는다.
게걸스럽게 잔혹한 음식을 탐하면서도, 식사 예절은 하나하나 따지며 체면만큼은 철저하게 지켰다.
마탑이 세워진 목적은 마법을 위해서다.
그러나 여기 모인 이들은 마법이 아닌 마탑에 중독되어 있다. 그 이름과 명성만을 등에 업을 뿐, 그로 인해 추잡해진 스스로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여기 모인 이들 중에 그 사실을 창피해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아니, 그게 부끄러운 건지도 모른다.
맛의 향연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배가 불러 갈 무렵, 자치령주가 슬쩍 말을 꺼냈다.
“이제 암흑가의 왕과 대면할 시간이 머지않았군요. 저열한 범죄자라지만 나름 거물이니,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됩니다. 아직 제가 미숙한가 봅니다.”
자치령주가 걱정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 로아프라보다는, 그의 뒤에 있을지 모르는 보헤미른 마탑이 걱정이다.
두 마탑 지부의 수뇌부가 모인 이 자리에서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한다. 책임에 대한 문제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논해야 뒤탈이 없는 법이니.
몰리가 피식 웃으며,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하, 몇 번이고 말했지만 참 걱정도 많이 하시는구려. 아무리 놈이 제법 재능이 있다고 해도 무의미할 뿐이오. 우리는 마탑의 일원.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개인은 개인일 뿐이지.”
“설령 보헤미른 마탑의 끄나풀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좋죠. 돈이 좀 들겠지만 그자들을 시켜 처리하면 그만이니까요. 개중에서도 켄드라스가 적임이겠죠.”
에즈라가 말을 덧붙였다.
마탑의 지부장과 그 측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치령주가 탁상 밑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만약 보헤미른 마탑에서 파견된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아니라고 해도 죽이면 그만입니다. 감히 자치령주의 뒤를 캐려고 했으니, 죽일 명분은 차고도 넘치죠. 그리고 사회의 쓰레기를 이 세상에서 없애는 셈이기도 하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뭐가 됐든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혹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뇨, 전혀 없습니다.”
자치령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책임을 지겠다.
원하던 답변은 들었다.
‘그래, 저렇게까지 말하니 마탑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리고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협조를 하면 역할은 끝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선, 곁에 있는 강자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게 메인 식사가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자치령주가 디저트를 소개했다.
“다음으로는 연합 도시국가, 카일리언스에서 공수해 온 과자입니다. 아인종을 토벌해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겨우 들여올 수 있었던 식품이죠. 오늘의 마지막을 빛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으리라 단언하겠습니다.”
짝짝.
두 번 박수를 쳤다.
이제 곧 기사 렌티하가 직접 트레이 카트를 몰고 들어오리라.
…….
그런데 약속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뭐지? 듣지 못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작게 헛기침을 한 뒤 다시금 손뼉을 마주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드르르륵…….
바퀴 소리가 가까워진다.
입구에서 나타난, 디저트가 실린 카트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응?”
운반자가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렌티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대신 손잡이 부근에는 검붉은 액체가 짙게 묻어 있었다.
마치 핏자국처럼.
직후 묵직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카트 뒤로, 금속 마스크를 쓴 낯선 사내가 자리에 멈춰 섰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태에 자치령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저게 뭔…….”
“못 보던 얼굴인데, 이번에 새로 들인 기사요?”
“아, 아니. 저는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단호하게 항변했다.
그때,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 안쪽에서 안광이 형형하게 번뜩였다.
“자치령주, 라리안 마탑과 화산섬의 마탑 지부.”
목표가 한곳에 있다.
상체를 기울이며 검에 손을 얹었다.
“……!”
“이 무슨……!!”
갑작스러운 살기에 에즈라와 몰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며 지팡이를 꺼내 들었고, 머릿속으로 상황에 걸맞은 마법을 연산했다.
<붉은 이빨>
<어스 클로>
화염의 송곳니와 대지의 갈퀴가 쇄도한다.
적절한 대응이다.
이렇듯 마탑에서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자는 특별하다.
마법 연산 속도, 상황 판단력, 한 층 정순해진 마력 등. 같은 위계의 마법사와는 그야말로 결이 달랐다.
에즈라와 몰리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극단적으로 앞발에 실린 체중.
사내, 아드리안이 허리를 비틀며 발도했다.
기예, 연광連光.
강렬한 검광이 번뜩였다.
* * *
자치령주는 마탑의 편의를 봐주고, 마탑은 자치령주를 비호한다.
상호 간의 대가를 지불하여 형성된 유착 관계. 덕분에 자치령주의 성채는 마법진으로 보호되어 공중으로는 출입이 불가하다.
그나마 개방된 장소는 성문뿐.
그러나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 동선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경비병에게 허가를 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러니 답은 하나다.
‘바로 정면 돌파.’
쿼드라 캐스팅.
<어스 스피어>
사각형으로 대열을 형성한 대지의 창이 목표를 강타했다.
각 지점에서 퍼져 나간 파동이 서로 겹치며 충격이 집중되었고, 중력의 장막을 두른 베르덴이 그대로 돌진하여 보호막을 깨뜨렸다.
무사히 성채로 진입했다.
소란이 일어날 법도 했지만 주변은 고요했다.
아래로 시선을 향하자, 바깥의 개방되어 있는 복도에 시신과 핏자국이 보였다. 그 흔적은 성의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군.’
살의를 가진 누군가가 침입했다.
시체가 쓰러진 방향을 보아, 놈이 향한 곳은 중심부.
마력감지를 사용할 시간조차 없다.
콰아앙! 콰앙! 콰아앙!
베르덴이 벽을 관통하며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네 개쯤 부쉈을까, 강렬하게 풍겨 오는 냄새에 곧장 천장을 무너뜨렸다.
위로 올라서자 호화로운 장식이 가득한 작은 집회장이 나타났다.
“……이미 늦은 건가.”
절반 이상이 깨져 있는 식기.
식탁에는 먹다 남긴 음식들이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었으며, 바닥과 벽은 마법의 흔적과 혈흔으로 가득했다.
두개골이 통째로 갈라지거나, 목이 떨어지거나, 몸이 양단된 마법사의 시체들이 피 웅덩이 속에 잠겨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곳에 있는 의자의 수와 시체 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한 명이 없다.
‘납치?’
사라진 자는 아마 자치령주로 보인다.
이유는 보헤미른 마탑에 적대하는 세력을 찾기 위함이겠지.
피는 지금 막 굳으려 하고 있다.
사체는 아직 사후경직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직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터.
찰나의 판단.
베르덴이 정신을 집중했다.
<마력감지>
아케인을 이용해 성능을 최대한 강화했다.
은밀하게 뻗어 나간 마력이, 삽시간에 성을 빠져나가며 도시를 뒤덮었다. 다양한 정보량을 받아들이면서도 흔들림 없이 목표를 추적했다.
감지 범위가 도시의 끝자락에 닿았다.
그러나 자치령주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내에 도시를 빠져나갔거나, 자신의 감지 능력을 상회하는 은페형 마법 물픔을 지니고 있거나…….
아무래도 둘 중 하나겠지.
이보다 범위를 넓히는 건 부담이다.
자제력을 발휘한 베르덴이 서서히 마력을 가라앉혔다. 들뜬 숨을 내쉰 그가 혀를 찼다.
‘상상 이상으로 과감하게 나왔군.’
설마 도시를 불태워 시선을 돌린 다음, 자치령주를 급습할 줄이야.
심지어 이곳에서 죽은 마법사들은, 착용하고 있는 마법 물품으로 판단하건대 두 마탑 지부의 수뇌부로 보인다.
‘보헤미른 마탑주가 고용한 외부 세력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누군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상흔으로 보아, 전부 일격에 즉사했다.
죄다 3위계 혹은 4위계급 이상의 마법사이며, 마탑에서 훈련을 받은 자들일 텐데.
저항은 한 것 같지만 일절 통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일단 범인은 검사다.’
단칼에 다수를 베어 버릴 수 있는 검기와 마탑의 마법사들이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검속을 구사할 줄 안다.
흔적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실력자다.
이곳에서 알아낼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단서는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었으니까.
방금 미들로스 자치령 일대에 마력을 퍼뜨렸을 때.
상당히 특이한 행색을 한…… 요사스러운 광대 분장을 하고 있는 두 명이 감지되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에 대해서.
놈들이 몰래 모종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수상하다 못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눈에 띄었다. 준초월자인 베르덴은 마력에 한없이 예민했다.
‘도시에 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인가.’
둘은 각각 서쪽과 북쪽에 위치해 있다.
서로 꽤 떨어져 있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베르덴에겐 짧은 거리였고, 뭐가 됐든 간에 놓칠 생각은 없으니까.
먼저 가장 가까이 있는 놈부터 확보한다.
베르덴이 다시금 움직였다.
* * *
자치령의 동쪽이 활활 불타오른다.
아주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면, 다급한 비명 소리와 절규가 희미하게 귓가를 스친다. 불을 끄려고 하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함성까지도.
광대, 데보니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라라라! 성공이야, 대성공! 잘했어, 매시!”
시민들의 반응, 멀리서 보이는 샛노란 빛과 향기로운 탄내.
경험상 직접 보지 않아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벌이는 학살은 너무도 순조로웠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 잘 먹힌다니깐.”
데보니와 매시는 흑마법사다.
정신에 간섭하는 각종 저주를 구사하는 광대.
사실 그들의 수준으로는 이런 참사를 벌이기는 건 불가능했지만, 특수한 물건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름하여 <저속한 전염>.
낡아 빠진 지팡이 두 개가 한 세트인 희귀한 매직 아이템이다.
각각 저주에 당한 대상 주변으로, 같은 저주를 확산시키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
해당되는 저주 마법은 최대 2위계까지.
저위계로 분류되는 하나, 사태를 야기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하루살이에 불과한 빈민의 정신력은 한없이 나약하다.
보잘것없는 저항력을 뚫고 저주를 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염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저주에 당한 관객들의 사고를 유도하여 준비를 갖춘다.
몰래 기름통을 훔쳐 큼지막한 건물에 숨겨 두고, 제각기 화재에 취약한 건물에 들어가게 하여 스스로를 불태우게 만드는 것.
말 그대로 인간 불쏘시개를 이용한, 추위를 물러가게 하는 따뜻한 학살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같은 종류의 축제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데보니가 있는 북쪽 지구야말로 오늘 새벽의 하이라이트.
“기대돼! 너무 기대돼!!”
곧 예정된 시간이 찾아오면, 그의 주변으로 참극이 벌어질 것이다.
빈민가보다는 화재 규모가 작긴 하겠지만 사상자는 꽤 되겠지. 가능하면 부모보단 자식들이 비명을 질렀으면 좋겠는데.
격한 흥분으로 떨려 오는 몸.
참다 못한 데보니가 번쩍 지팡이를 들었다.
“단장, 보이지 않겠지만 잘 보세요! 내 손으로! 내 손으로 최고의 카니발을───!”
그 순간.
콰아아앙!
갑자기 건물 일부가 무너졌다.
굉음과 충격에 반응하지 못한 데보니가 휘청거리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자욱하게 낀 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그 안에서, 황금빛 크리스탈로 장식된 금속 스태프가 쇄도했다.
“어라?”
───쩌억!
둔탁한 충격에 데보니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일격에 코가 움푹 내려앉았고 샛노란 치아의 절반이 박살 났다. 순식간에 피로 물드는 광대 분장.
의식은 단번에 날아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데보니의 뒤통수가 내리꽂히듯 바닥에 처박혔다.
물론 죽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심해 보여도 멀쩡하게 숨은 쉬고 있다. 아직 놈에게 죽음을 허락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먼지 속에서 베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히 지형을 조작해 눈앞의 광대를 철저하게 구속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르덴의 벽안이 자치령의 동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