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88화 (288/366)

288화 카니발……? (1)

자치령 서쪽에 위치한 빈민가.

오래되어 버려진 낡은 건물에 금속으로 얼굴을 가린 검사가 있다.

거미줄이 내려앉은 구석에 앉아, 낡은 검을 품에 안은 사내. 그의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하염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드리안, 너는 언젠가 중앙 대륙 최고의 검사가 될 거다.

나이 든 스승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눈가에 자글거리는 주름이, 인자한 미소가 마음을 간질인다.

자신의 전성기를 한참 넘어, 노을처럼 저물어 가고 있음에도 언제나 한결같은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

스승에게 있어서 아드리안은 제자이자 자식이었다.

피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목숨마저 줄 수 있는 가족. 그리고 꿈이자 자랑이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스승님.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있어서 스승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아인종에게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그를 키워 준 생명의 은인. 그 은혜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다.

그래서 노력했다.

그의 꿈이자 자랑이 되고자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과 함께 살던 오두막에 그들이 찾아왔다.’

초대받지 않은 세 명의 불청객.

───그 기세. 네가 그 중앙 대륙 4강 중 하나로구나.

감각을 어지럽히는 안개로 일대가 감춰져 있는, 이 험중한 산맥까지 찾아온 걸 보면 좋은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닐 터.

정체를 감추고 있었지만 놈들의 적의만큼은 분명했다.

명성을 좇는 흔해 빠진 자들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

뭐가 됐든 간에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베어 버리면 그만이니. 상대가 혼자든 집단이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하지만 나는 졌다.’

압도적인 참패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상대는 초월자였으니까.

───천검, 아드리안 첸버스. 초월자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검사라더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부족하군. 굳이 내가 나설 것도 없었나.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

강함만으로는 마탑주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던가. 소문으로만 접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렇게나 강력한 마법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존재는 그 외에는 없었으니까.

쿨럭, 쿨럭!

목 안쪽에서 피가 솟구쳤다.

───분명…… 보헤미른 마탑과 척을 진 기억은 없는데……!

───은원 관계 따위와 같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나는 차기 실험을 위한 적합한 재료가 필요했고, 네가 그 대상으로 지목된 것일 뿐. 어느 하나 복잡할 것 없는 단순한 이유다.

실험이라니, 대체 무슨 뜻인가.

의문을 떠올릴 찰나,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안!

사냥을 나갔던 스승이 돌아왔다.

단번에 사태를 파악한 그가, 등에 멘 마수를 던져 버리고는 검을 뽑았다. 보는 것만으로 베일 것 같은 맹렬한 돌진이 정면을 향했다.

───흥, 한물간 전사 따위가.

보헤미른 마탑의 원로.

마탑주가 데려온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콰아아아아앙!

검기와 원소가 충돌한다.

오두막이 무너지고 숲이 붕괴한다. 산맥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치열한 격전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나이는 엇비슷했으나 역량의 차이는 현격했기에.

전사는 육신이 노쇠해질수록 약해지지만, 지식이 깊어질수록 강해지는 마법사는 비교적 노화에서 자유롭다.

전성기가 지난 자와 전성기에 다다라 있는 자.

심지어 후자는 두 명이다. 전투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스승은 무참하게 패배했다.

원로들에 의해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터져 나간 채로.

허공으로 날아간 검 조각이, 아드리안의 앞에 떨어졌다.

───스승님!!!!

───아드…… 리…… 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러진 도신을 집고는, 남은 기를 끌어모아 사력을 다해 힘껏 내던졌다.

원소의 장막을 꿰뚫은 일격이 원로의 머리칼을 스쳤다.

진즉에 체력이 고갈되었음에도 저 위력이다.

신체적 고통으로는 감히 억누를 수 없는, 부러지지 않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저게 바로 아드리안이 재료로 선택된 이유였다.

일련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발로크가 수염을 쓸었다.

───이거…… 좋은 발상이 떠오르는군. 첸버스만 데려가려고 했는데, 저 늙은 검사도 충분히 쓸모가 있겠어.

허공에 수놓인 마력이 내려앉는다.

신비롭게 형성된 마법진이 아드리안과 스승을 구속했고, 그와 동시에 의식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일어나 마주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옥을.

다만, 과거를 떠올려 봐도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가면 뒤에 있는 하늘색 눈동자는 여전히 공허했다. 스스로의 의지를 상실한 그는 인간답지 않았다.

그때, 바깥에서 기척이 가까워졌다.

회상을 끝낸 아드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똑똑똑똑똑!

산만한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고리가 돌아갔다.

알다미아의 광대 중 하나인 매시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이구,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되었소. 오랜만의 카니발이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 뭐람. 그래도 밤이 더 주목받기 편할 테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위치는.”

시답잖은 대화는 시간 낭비다.

여기서 이뤄야 할 목표는 정해져 있다.

자치령주,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의 지부…… 아드리안에게는 오직 마법진에 새겨진 명령만이 중요했다.

매시가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저기 자치령주의 성 보이시오? 지금 저 안에서 마탑 지부의 수뇌부들과 자치령주가 만찬을 벌이고 있다고 하오. 남들 다 잠잘 시간에, 거참. 뭐, 덕분에 당신에게는 편하게 되었소. 다른 데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오.”

“…….”

아드리안이 걸음을 옮겼다.

당장 목적지로 향하려는 그에게, 매시가 소리쳤다.

“우리가 아주 화려하게 신호를 보낼 테니, 그때 시작하면 되오! 주목은 확실하게 끌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검사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쩝, 싸늘하기 그지없구만. 어떻게 된 게 그럴듯한 대화 한번 안 하니. 산 채로 이를 뽑아도 비명 하나 안 지를 것 같소.”

“어라라, 그건 좀 궁금하네. 나중에 한번 해 볼까?”

채비를 갖춘 데보니가 다가왔다.

지방이 가득 낀 체중에 바닥이 삐걱거린다.

매시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후, 나는 죽고 싶지 않소. 무엇보다 재미도 없을 테고. 자고로 관객의 반응이 있어야 흥미가 돋고 즐거운 법이 아니겠소?”

“음음, 그건 그렇지.”

서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불필요한 생각은 뒤로하고, 이제 곧 개최될 축제를 떠올렸다. 거울을 보며 진한 분장을 다시금 확인했다.

일부 희미해진 부분을 덧칠했다.

“어떻소, 괜찮아 보이오?”

“아주 좋아. 나는 어때?”

“흠잡을 것 없소. 그럼 사전 준비도 했고, 분장도 했으니 움직일 일만 남았군. 아아아, 정말 기대되오……!”

두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를 이루는 집단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은 계급이 존재해 왔다.

늑대 무리로 예를 들자면, 서열이 가장 낮은 개체를 단체로 따돌리기도 하며 동족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배척하기도 한다.

자신의 계급을 공고히 하고 또 높이기 위한 본능이다.

그 습성은 인간 또한 다르지 않다.

특히나 돌연변이로 여겨지는 사람이 본보기의 대상이 된다.

성격이든 신체 구조든 평범함을 타고나지 못한,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에게 세상은 더없이 가혹했다.

고문에 가까운 괴롭힘.

피골이 상접해질 정도의 배고픔.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의 추위…….

도움을 받지 못한 대부분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분명 그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곧 축복이었으리라.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생명에 내재된 본성을 따라, 죽음의 공포에서 달아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은 부류.

개중에서도 극에 달한 스트레스에 인격이 뒤틀려 버리고, 본래 기형적이던 사고방식이 더욱 심화된 극소수가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인간을 증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고 있다.

고통과 살인. 아이, 성인, 노인.

전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동족만이 유일하니까.

알다미아의 광대.

그들에게 학살은 미덕이다.

“자, 카니발의 시작이오!”

미들로스 자치령.

어둠에 휩싸인 도시가 환하게 빛났다.

* * *

회색의 베일이 밤하늘을 뒤덮고 있다.

고층운(高層雲)의 두껍고 어두운 구름 탓에, 세상은 한층 더 어두웠다.

목이 아플 만큼 건조한 날씨. 겨울의 한기는 평소보다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자정을 지나 새벽이 되었다.

자치령주와의 약속 당일이 되는 시간에, 베르덴은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뒤척이는 소리도 없이 숨결만이 방안에 감돌았다.

숙면을 방해받은 건 그때였다.

“……?”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그에 무엇인지 특정할 수 없는 없었으나, 룬의 반지로 강화된 신체의 감각이 미약하게 반응하고 있다.

눈을 뜬 베르덴이 침대를 벗어났다.

창가 앞에 다가서자, 아주 미약한 불빛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아닌, 노르스름한 색채.

마석등의 조명도 아니었다.

촤라락.

베르덴이 커튼을 걷었다.

“……뭐야, 저건.”

자치령의 서쪽 지구(地區).

소리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작은 폭발과 함께 건물 한 채가 불쏘시개 되어 버렸다. 화마는 먹이를 찾아 게걸스럽게 술렁였다.

그렇다.

자치령이 불타고 있다.

* * *

이상 사태를 알아챈 건 베르덴만이 아니었다.

소아이어티의 에단과 레베카 그리고 밀매상 패드렐드.

마침 깨어 있었던 세 사람이 보다 먼저 반응했다.

이들은 서로 말 한마디 해 본 적도 없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곧장 저택의 주인을 찾았다.

쿠웅!

패드렐드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애셔 님! 밤늦게 죄송하지만 지금 자치령에……!”

“지금 보고 있다.”

베르덴이 바깥을 응시했다.

그가 팔짱을 낀 채 나지막이 물었다.

“저쪽에는 빈민가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저렇게 큰 불길이 생길 만한 요소가 있나?”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동쪽과 달리 기름통이 쌓인 창고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건물이 노후화돼서 불이 번지기는 쉽지만 이런 규모의 화재는 처음인데…… 일단 오면서 제 부하인 메드핀에게 원인을 알아 오라 지시했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원인은 없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의도했다는 것인가.

에단이 말했다.

“필요하시다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레베카는 수류 계열 마법에 대한 수준이 높으니까요. 모든 구역을 커버하지는 못해도, 피해가 확산되는 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 나? 그, 그러니까…… 원한다면 도와줄 수 있어요.”

레베카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눈치를 보며 경직된 미소를 짓는 것과 함께.

“…….”

베르덴은 말없이 화재를 응시했다.

불을 끄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늘에 폭우를 내리게 해서 잠재워 버리면 그만이니까.

설령 유류 화재라고 해도.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말 그대로 석연치가 않았다.

여러 세력이 암중에 모여 있는 자치령.

그 위로 전조 없이, 자치령에 전례 없는 대화재가 발생했다.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다고 하지만, 왜 하필이면 이 시점일까.

벽안이 옆으로 움직였다.

시선의 끝에 영주의 거처가 놓였다. 바깥의 소란과 대비되는, 이유 모를 정적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곳에 우연은 없다.

“……에단, 그리고 레베카. 마법진을 해제할 테니, 너희는 패드렐드와 함께 화재를 잠재우고 원인을 파악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애셔 님은…….”

“나는 잠시 확인할 게 있다. 아무래도 다섯 번째 세력이 온 것 같으니.”

에단과 레베카가 멈칫했다.

그가 지칭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설마…….”

“질문은 나중이다.”

덜컥.

베르덴이 창문을 통해 저택을 나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소환한 오리엔트를 손에 쥐었다. 하늘로 솟구친 그가 도시의 중심을 향해 전속력으로 비행했다.

목적지는 자치령주의 성.

뜻하지 않게 약속 시간이 앞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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