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86화 (286/366)

286화 제압 (2)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지금까지 아예 미행을 들켜 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허무하게 발각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대는 강대한 원소 마법사라고 알려져 있는 존재.

물론 단순히 마법의 위력이 강하다고 해서 마법적 감각마저 특출나다고는 단언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그런 실낱같은 가능성조차 배제하기 위해 마력조차 최대한 억제했다.

배운 것 이상으로 은밀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더군다나 제대로 행적을 쫓는 건 오늘이 처음이기도 한 터라,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를 할 만한 건덕지도 없었다.

그런데 들켰다.

아니, 그러다 못해 역으로 뒤를 밟혔다.

이례적일 정도로 감이 좋은 걸까.

소름이 끼치는 한편 미약하게 두려움이 일었다.

상대는 범죄자의 온상인 로아프라를 지배하는 악인. 잡혔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서둘러 에단하고 만나야 돼.’

지하 수로에 들어오기 전에 연락을 남기긴 했다.

곧 있으면 에단이 이쪽으로 올 터. 합류한 뒤에 추적을 피해 잠시 동안 자치령을 떠난 후, 대책을 강구하는 편이 안전하겠지.

그러기 위해선 지하 수로를 탈출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

등 뒤에서 파공음이 들려온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어둠 속에서 베르덴이 무섭게 따라붙고 있었다.

“뭣……!”

레베카를 상회하는 비행 속도.

미궁과도 같은 지형을 이용해 몇 번이나 방향을 틀었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감속을 한 적이 없었다.

‘벽에 부딪힐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는 거야? 무슨 마법사가 저래?!’

자칫하면 따라잡힌다.

그렇다고 정면 대결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승님이 준 목걸이 덕분에 상대의 마력과 존재감을 차단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본능은 당장 도망치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기에.

마력회로를 운영해 마법을 쥐어짜 냈다.

수로의 바닥에서, 연속해서 물기둥이 치솟으며 시야를 가렸다. 그러자 베르덴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너무나 손쉽게 마법의 빈틈을 통과했다.

“나 좀 내버려 둬!”

단일 마법으로도 겨냥해 봤으나 통하지 않았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홍염이 레베카의 마법만이 아니라 근방에 있던 수로의 물길을 죄다 증발시켜 버렸다.

비교를 불허하는 화력의 격차.

그러면서도 속도는 줄기는커녕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건 뭐 숫제 괴물이다.

노력이 무색하게 더욱 좁혀진 거리에 레베카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제 입구가 코앞인데……!’

이대로 가다간 지하 수로를 탈출한다고 하더라도 곧장 따라잡힌다.

그러니 어떻게든 거리를 확보해야만 한다. 상대의 감각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필요했다.

스승님에 내린 가르침.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기에 마력회로에 부담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후유증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레베카가 바닥에 내려치듯 마력을 운용했다.

<맹목의 여울>

콰아아아아!

거품이 가득 낀 격랑이 공간을 뒤덮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물과 수로의 탁수가 뒤섞였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흐읍!”

깊게 숨을 들이마신 레베카가 곧장 파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력을 운영하자 그녀의 기척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물과 하나가 되어 상대를 교란하는 특수한 마력 운용법.

지금까지 이게 통하지 않은 마법사는 본 적이 없다.

‘다행히 날 죽일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야.’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짜고짜 고위계 마법을 날렸으면 진짜로 위험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도망칠 기회를 엿보지 못했겠지.

물론 이렇게나 더러운 물속에 잠수한 건 끔찍했지만…… 참는 수밖에.

이런 곳에서 죽는 것도 싫었고, 잡혀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것도 싫었으니까.

역겨운 경험 대신에 목숨과 건강을 건진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강력한 파동이 수로를 휩쓸었다.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는 파도. 감춰져 있던 레베카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의 눈앞에 스태프의 첨단이 드리웠다.

“엣.”

───쿠웅.

오리엔트가 레베카의 목을 찍어 눌렀다.

위에서 내리꽂히는 압력과 바닥에서 솟구치는 반발력이 기도를 짓눌렀다. 단번에 틀어막히는 숨통.

“켁…… 케엑……!!”

“한번 썼던 수단이 이번에도 통할 줄 알았나?”

베르덴이 레베카를 굽어봤다.

그는 원소 마법의 도달자이며 불가해한 마법 이해력을 타고났다.

기존 위계에 없는 원소 마법이라고 할지라도, 접하는 순간 그 원리의 일부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처음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나 똑같이 당하는 일은 없다.

꾸국.

베르덴이 조금 더 힘을 실었다.

느낌상 고분고분하게 굴 것 같지는 않으니, 먼저 기절시킨 뒤 저택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심문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큭…… 크에엑……!”

레베카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마력회로를 운용하고, 팔다리를 휘저었지만 오리엔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단단히 숨결을 옥죄는 고통에 공포심이 술렁였다.

‘에단……! 구해 줘……!’

눈시울이 붉어지며 한가득 눈물이 고였다.

꺽꺽대는 소리와 함께 뚜렷했던 레베카의 의식이 점점 꺼져 갔다. 서서히 위로 향하는, 밝은 녹색을 띠고 있는 눈동자.

몸 전체에 힘이 빠지며 축 늘어지고 있던 그때였다.

“잠시 멈춰 주시겠습니까.”

지하 수로의 입구에서 그림자가 다가왔다.

레베카와 마찬가지로 녹색 로브를 두르고 있는 사내였다.

‘이 여자의 동료인가.’

짙은 흑발과 호리호리한 체형.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모를 실눈 사이로, 청회색의 안광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중간에 둔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맞설 생각이 없다는 듯 양팔을 올린 그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벽안과 마주했다.

여인과 달리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였다.

손에 약간 힘을 풀었다.

마법사의 미약한 숨소리를 들으며 베르덴이 말했다.

“정체를 밝혀라.”

“제 이름은 에단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사로잡은 여인은 레베카. 제가 더 어른 같아 보이지만 그녀는 저의───”

“두 번 말해야 하나?”

이름 따위는 나중이다.

베르덴은 두 사람의 소속에 대해 묻고 있었다.

사내, 에단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불쌍한 자신의 사저가 무력하게 제압당해 있다. 결코 잃어선 안 되는 인질이 잡힌 이상 선택지는 강제된다.

섣불리 속이려 하는 건 하책.

주도권을 빼앗겼으니 따르는 것이 중책.

그 와중에 대화를 이어 나가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상책이다.

에단이 왼손을 뒤로 숨겼다.

그러곤 오른손을 스스로의 가슴에 얹으며 답했다.

“저희는, ‘소사이어티(Society)’의 일원입니다.”

* * *

동대륙을 활동 지역으로 삼고 있는 신흥 세력.

10개의 마탑이라는 현 체제에 반대하는 마법사 집단, 소사이어티.

‘들어 본 적이 있다.’

담대하다 못해 오만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목표.

그러는 한편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전력을 갖고 있는 탓에, 최근 몇 년 사이 마탑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악명에 가까운 소문이 퍼져 있었다.

베르덴도 마탑에서 활동하던 시절, 오다가다 한두 번 이름을 접했을 정도.

“그 소사이어티가 미들로스 자치령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저희에 대해 알고 계시는군요. 세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인데. 혹시 마탑과 관련이 있으신 분이십니까?”

“필요한 의문인가?”

“필요하다 못해 중요합니다. 무척이나. 그 질문에 제가 답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니 저희의 저항 없는 협조를 바라신다면 부디 진심으로 답해 주시길.”

에단이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은 보헤미른 마탑의 하수인입니까?”

지난 며칠 동안 에단은 자치령의 뒷골목을 조사했다.

암흑가의 왕, 애셔.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마멘투스 상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을 포함해, 자치령 전체를 파헤치기라도 하듯 조직들을 움직였다.

그 결과 자치령주와 두 마탑이 반응하기까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보헤미른 마탑의 지령을 받고 사태를 정리하러 왔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을 지닌 것이거나.

전자라고 하기엔 너무 대놓고 움직이는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알아보려 한다.

에단이 등 뒤로 감추고 있는 왼손의 팔찌.

상대의 진심을 구별할 수 있는 일회용 매직 아이템으로.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살면서 들어 본 것 중에 가장 불쾌한 말이군.”

베르덴이 눈가를 씰룩였다.

강대한 마력과 함께 명백한 살의가 공간을 장악했다. 쩌저적. 수로의 벽면이 일부 갈라졌다.

“큭……!!”

그에 노출된 에단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염된 물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위압적인 힘을 견디며 어떻게든 왼손의 팔찌를 확인했다.

색깔은 붉은색.

상대가 보이고 있는 보헤미른 마탑에 대한 적의는 진심이었다.

베르덴이 붉게 변한 팔찌를 응시했다.

“상대의 진의(眞意)를 판단할 수 있는 마법 물품인가. 그럼 대답은 이걸로 충분한 건가?”

“예, 예…… 충분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에단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행히 상대는 보헤미른 마탑의 끄나풀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확률에 목숨을 걸고 레베카를 탈출시킬 이유가 없어진 셈.

하지만 마냥 안도할 수는 없었다.

‘……예상했던 경지를 훨씬 상회했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 보니 상궤를 벗어났다.

레베카의 추적이 고작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들킨 것도 그렇고…… 설마 자신이 마력만으로 짓눌릴 줄이야.

그리고 보헤미른에 향한 강렬한 적대감.

로아프라의 지배자라는 사내에게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의문이었다.

그때, 베르덴이 레베카의 뒷덜미를 잡아 던졌다.

에단의 품에 그녀가 안겼다.

진즉에 기절한 레베카는 눈물과 침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내 저택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겠지. 데리고 앞장서라. 여기는 길게 이야기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레베카를 업은 에단이 입구로 향했다.

도망칠 생각은 이미 버렸다. 그랬다간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았으니까. 상대가 마탑의 일원이 아닌 이상, 사생결단을 낼 필요는 없었다.

다만 졸지에 포로가 된 듯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침묵이 감도는 야밤의 귀갓길.

베르덴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소문으로만 듣던 소사이어티의 등장이라.’

미끼를 풀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잡혔다.

반마탑을 지향하는 소사이어티가 여기 있다는 건…… 어쩌면 베르덴이 찾는, 보헤미른 마탑에 적대하는 세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직접 까 봐야 알겠지만 자치령에 온 뒤, 가장 유의미한 성과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자치령주, 두 마탑, 제3의 세력, 소사이어티.

네 번째 세력이 드러났으니, 다섯 번째 세력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베르덴이 가장 경계하는 건 보헤미른 마탑주의 세 번째 대응책.

다시 말해 발로크 베시아스가,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지워 버리기 위해 외부 세력을 고용했을 가능성이다.

물론 억측일 수도 있지만 직감과 경험이 말한다.

불쏘시개가 될 법한, 다양한 세력들이 모여 있는 이 미들로스 자치령에 분명 큰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예상해 본다면…… 아주 가까운 시일일지도.

* * *

귓불까지 찢어진 입가.

섬뜩한 미소를 지은 얼굴이 새겨진, 요란스럽게 장식된 마차 한 대가 숲길을 가로질렀다.

현재 미들로스 자치령 인근에서 호위 하나 없이 움직이는 건 제 스스로 불길로 뛰어드는 꼴.

예상대로 그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놀(Gnoll) 무리가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르르륵!]

[카아아앗!]

날카로운 발톱과 흉악스러운 이빨.

시력은 좋지 않지만 피와 고기의 냄새에 민감한 후각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타다다닥. 놈들이 사족 보행으로 풀숲을 질주하며 마차의 속도를 서서히 따라잡았다. 개중에는 놀의 상위종 또한 존재했다.

두 개의 뿔을 가진 놀, 더블 호른.

그 세 마리가 각기 다른 무리를 이끌고 있었으며, 그보다 한층 더 진화한 트리플 호른 한 마리가 전체를 통솔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놀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간에 필적한 혹은 그 이상의 몸집과 신체 능력을 갖게 된 아인종. 그들은 인간의 시체에서 빼앗은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지능이 높은 괴물들이 도구를 탈취하여 직접 사용하는 순간 위험도는 격상한다. 놈들에게 모험가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먹이로 지목한 건 한낱 모험가가 아니었다.

“어라라라라라라?”

마치의 내부를 가린 커튼의 틈새.

그 사이에서 커다란 눈동자가 끔뻑였다.

“짐승 새끼들이 뒤에 따라붙었잖아? 어디 보자, 놀 무리인 것 같은데…… 더블 호른에다가 트리플 호른까지? 안 그래도 보기 힘든 상위종인데 인간의 무기까지 손에 들고 있네?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리겠는걸?”

“핫핫핫.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런 괴물들을 상대하는 건 우리 극단이 할 일이 아닌데. 우리는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은 광대들일 뿐.”

보라색 실크 햇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중년의 남자, 단장이 어깨를 들썩였다. 열심히 마차를 몰고 있는 극단의 단원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잠깐 멈추게! 여기서 저 짐승들을 처리하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으니!”

“알겠소! 단장!”

마차가 서서히 감속하다 이내 멈췄다.

그러자 삽시간에 놀들이 주위를 점거했다. 맨몸으로는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두텁고 사나운 포위망이었으나 공포는 없었다.

“자 자, 습격이 왔네! 아주 코앞까지 닥쳤지! 전부가 나선다면 못 죽일 것도 없지만, 나의 단원들이 다치면 자칫 연극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을 터!”

단장이 웃으며 옆을 바라봤다.

금속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에게 다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자네가 약조를 이행할 차례네.”

“…….”

말없이 몸을 일으킨 사내가 마차를 나섰다.

포악한 눈빛들이 향해 왔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녹슨 검의 손잡이를 잡고는 상체를 낮춰 자세를 잡았다.

촤아아아악!

한 줄기 검기.

더러운 피가 지면을 적신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리한 칼날이 근육과 뼈를 베어 갈랐다. 거칠게 달려들었던 트리플 호른의 머리가 일격에 세로로 갈라졌다.

깨개개갱!

처량한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잔인하다 못해 시원함이 느껴지는 학살.

사방이 피로 물든 광경에 단장과 마부를 포함한 다섯 광대가 모여 수군거렸다.

“여, 역시 보헤미른 마탑에서 보, 보낸 사람답네!”

“마법사도 아니고, 어디서 저런 괴물을 찾아 보낸 건지……. 단장,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핫핫. 위험한 의뢰일수록 과실은 큰 법. 심지어 그 유명한 보헤미른 마탑이네. 몇 개나 되는 의뢰를 합친 것보다 더욱 큰 보수가 뒤따르고 있단 말이지!”

단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양팔을 활짝 넓혔다.

“그리고 오랜만에 맞는 ‘카니발’이다! 얼마 만의 기회인데 이걸 놓치겠나! 절대 그럴 수 없지! 나의, 우리의 극단이라면! 또한 의뢰받은 일은 실로 간단명료!”

벌떡 일어선 그가 가볍게 회전했다.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을 하며 춤사위를 벌였다.

“자치령에 도착하자마자! 저 검사가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의 지부를 궤멸하고 자치령주를 납치하면! 이 나의 능력으로 정보를 캐낸다! 그렇게 놈들의 위치를 알아내, 저 사내를 데리고 곧장 직행!!!!”

단장의 표정이 사라졌다.

“하지만 워낙 시끄러울 테니, 관객들의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바람잡이 역할도 해야겠지.”

양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흰 장갑으로 가려진 손가락이 두 광대를 가리켰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최면술사, 매시와 데보니! 너희들이라면 미들로스 자치령의 도시 따위야 시끌벅적하게 만들 수 있겠지?!”

“물론이지!”

“필요한 시간은?”

“반나절!”

“자신 있는 대답! 아주 좋았어!!!”

단장이 얼굴을 감쌌다.

눈 아래에 그린 물방울 그림이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내가 직접 연극을 벌이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너희 둘에게 양보하겠네. 그러니 자치령에 피의 축제를 벌이게! 그리고 우리가 다시 합류했을 때! 그 감상을 들려주게!!”

“알겠소! 단장!”

“그럼, 당연하지!”

광대들이 신나게 들썩였다.

광기가 서린 웃음소리를 퍼뜨리고 있던 중, 데보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라라라라! 그런데 단장! 자치령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흠, 어디 보자…….”

촤라락.

단장이 지도를 살폈다.

대충 위치를 짚고는 도시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금으로 덧칠된 송곳니를 번뜩이며, 주먹 쥔 손에서 검지와 중지만을 펴 보였다.

“앞으로 이틀.”

손가락이 집게발처럼 여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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