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85화 (285/366)

285화 제압 (1)

<투명화>는 5위계 상위에 위치한 난이도 높은 부여 마법.

과거 리비안트 공왕에게 받은 [유자의 로브]에 내장되어 있던 기능이지만, 마도왕의 분신인 관리자와의 마법전에서 로브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현재 베르덴은 5위계를 넘어선 6위계의 마도사다.

또한 에스티리아 왕국의 대도시, 라인즈의 대도서관에서 마법 서적을 빌려, 5위계 부여 마법까지 상당수 익힌 상태.

더 이상 모습과 기척을 감추는 데 외적인 도움은 필요 없다.

‘……저기 있군.’

베르덴이 도시 위를 가로질렀다.

이내 허공에 멈춰 선 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틈을 타, 지하 수로의 입구로 들어서는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오늘 하루 몇 번이나 마주한, 녹색 로브를 두른 정체불명의 인간.

‘내 행적을 쫓고 있는 건가.’

무지갯빛 여관을 불태우고, 하층민 세력을 몰살한 건 자치령주와 두 마탑.

만약 그쪽 인물이었다면 지하 수로로 들어갈 게 아니라, 곧장 윗선으로 보고하러 달려가는 게 당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미행자와는 사뭇 달랐다.

어떤 세력에 속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행동.

그와 더해서 베르덴조차 쉬이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레 뒤를 쫓는 은밀한 추적 능력까지 포함해서.

저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지체할 것 없이 지금 알아볼 생각이다.

서서히 고도를 낮춘 베르덴.

그가 다시금 지하 수로의 어둠 속으로 향했다.

* * *

지하 수로의 허공에 드리운 낯선 형체.

녹색 로브를 걸치고 있던 사람이 후드를 젖히자, 10대 중반 혹은 후반으로 보일 법한 앳된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여자, 레베카가 에메랄드빛의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표정을 찡그렸다.

“하아, 진짜…….”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눈가를 어루만진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자치령에서 지내는 건 엄청 스트레스 받았는데. 이제 하다하다 이런 하수도까지 들어가게 되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 윽?!”

안쪽으로 나아가자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강타했다.

뒤늦게 코를 강하게 부여잡았지만 소용없었다. 한번 후각을 자극한 악취의 충격은 머릿속에 그대로 새겨졌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이, 이럴 줄 알았으면 에단에게 맡기는 건데에……!”

레베카가 맡은 임무는 애셔의 감시.

예고도 없이 나타나 미들로스 자치령을 헤집는, 새로운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품고 있는 의도를 알아내고 또 경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큰 방해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레베카는 뛰어난 마법사이면서 남다른 은밀성을 갖고 있다.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스승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신체적 및 마법적 능력.

뭐라 정확한 수준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앞서 미행을 하고 있던 자치령의 기사 셋과 마탑의 마법사 두 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그 결과 지금까지 들키지 않고 추적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하 수로라니!’

레베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촉촉한 눈가를 훔쳤다.

벽면에는 수십 개의 다리를 가진 벌레들이 기어다녔고, 얕은 물살에는 오물이 둥둥 떠다녔다.

시각적으로도 최악이었다.

더러운 걸 무척이나 혐오하는 그녀였기에 충격적이다 못해 절망스러울 정도.

만약 <비행>이 없었다면…… 저 구정물에 다리를 담가야만 했다면 결코 들어오지 못했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왜 암흑가의 왕은 지하 수로에 들어간 걸까.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고, 미행을 한 것도 레베카 본인이 자처한 일이지만, 괜스레 애셔란 사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중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고민하는 대신 레베카가 왼손을 내뻗었다.

반지에 박혀 있는 새파란 보석이 빛을 발했다.

[되짚는 물결]

과거의 수류를 알아낼 수 있는 매직 아이템.

푸른빛이 탁한 물에 스며들자, 사람이 남긴 자취가 드러났다. 작은 물결이 미약하게 요동쳤다.

‘방향은 오른쪽.’

이 반지가 있고, 물길이 있는 이상 길을 헤맬 일은 없다.

작게 한숨을 내쉰 레베카가 곧장 추적을 이어 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수로의 풍경도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피로감이 쌓인 후각은 더 이상 악취를 느끼지 못했다. 간간이 위장에서 솟아오르던 신물도 가라앉았다.

아주 불쾌한 적응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십 구의 썩은 시체가 떠다니는 음습한 공간.

“뭐야, 이거…….”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삐죽 섰다.

하나 당황은 잠깐에 불과했다. 상당히 역겹기는 해도 사람 죽은 걸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니.

그런 게 당연한 세상이다.

유심히 시신을 살펴봤다.

그리고 자치령에 와서 얻은 정보를 조합하자, 이곳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하층민 세력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지갯빛 여관에 화재를 일으켰다고 추정되는 범인들.

자세히 보니, 부랑자와 빈민이 아닌 몇몇 사체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아마 그놈들이 한 짓이겠지.’

자치령주와 두 마탑의 조력을 받은 지극히 위험한 존재들.

에단과 레베카가 자치령에 머물고 있는 이유이자 목적인, 모종의 집단.

가능성은 높다.

그들은 미들로스 자치령 내, 마멘투스 상회처럼 보헤미른 마탑의 손길이 닿아 있는 자들을 제거하고 있었으니까.

무지갯빛 여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설마 실종된 세력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놀라기만 했을 뿐 딱히 이렇다 할 감흥은 없었다.

뭐가 됐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레베카와 에단이 쫓고 있는 놈들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니, 도리어 의문이 늘었다.

‘암흑가의 왕은 왜 여길 찾은 거지?’

시체들이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다가갈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답답함이 정신을 옥죄었다.

“……일단 물러날까.”

혼자 머리를 굴려 봤자 시간 낭비겠지.

자신의 사제인 에단하고 만나 상의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끔찍한 지하 수로에 더 남아 있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레베카가 판단을 내린 순간이었다.

“어……?!”

갑작스레 인기척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공간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향하자, 낯설고도 익숙한 사내가 허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정체는 <투명화>를 해제한 베르덴.

그가 레베카를 직시하며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을 빛냈다.

“넌 누구지?”

차가운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레베카는 얼어붙기라도 한 듯 미동이 없었다. 그러다 서서히 동공이 확장되더니 앙증맞은 입술이 벌어졌다.

이윽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지하 수로에 울려 퍼졌다.

* * *

레베카는 정제된 마법사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여겼다.

유전적인 요소인지, 환경적인 영향 때문인지.

이른 시기에 성장이 멈춘 탓에 어린 외모를 갖고 있기는 했으나 성인이 된 지 오래였으며, 살아온 나날만큼이나 마법적인 경험은 풍부했다.

목숨을 걸 정도의 산전수전을 겪어 오기도 했고.

그렇기에 무슨 일이 닥치든 간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레베카는 당당하게 자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아, 암흑가의 왕이 어, 어째서 여기에……?!”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정신이 흐트러지자, 순간적으로 <비행>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하마터면 시체들이 떠다니는 물속에 머리가 처박힐 뻔하기까지.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이 턱 끝에 맺혔다. 심장이 쿵쾅쿵쾅 강하게 맥동했다.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마탑 출신은 아니군.’

마탑이란 지극히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물론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기는 하나, 마탑에서 어떤 중책을 맡은 마법사는 냉정함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니까.

그에 반해 녹색 로브를 두른 여자는…… 뭐랄까, 인간성이 엿보인다.

마탑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자유로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반응과 몸짓이었다.

그렇다고 보헤미른 마탑과 적대하는 제3의 세력으로도 보이지가 않으니…….

‘즉, 네 번째 세력이라는 건가.’

예정에 없던 자들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자치령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몰래 자신의 뒤를 밟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대로 놓아 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다시 묻겠다. 너는 누구지?”

“?!”

레베카가 움찔했다.

침을 삼킨 그녀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지하 수로에 사는 하층민…… 이라고 하면 안 믿을 거지?”

“믿는 게 더 이상하겠지.”

깨끗한 피부를 가진 앳된 소녀.

어느 모로 보나 빈민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귀족이라면 또 모를까.

“……미안하지만 내가 누군지는 말할 수 없어. 그렇다고 당신과 이렇게 척을 질 생각 같은 것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 서로 만나지 않은 걸로 하고,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온종일 미행해 놓고 말이 많군.”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조용히 보내 줄 생각이 없다는 태도에 그녀가 푹 고개를 숙였다.

“하아, 역시 그렇겠지.”

레베카가 콱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나도 순순히 잡힐 생각은 없는데!”

마력과 함께 팔을 위로 쳐올렸다.

거의 고이다시피 느리게 흐르고 있던 수로의 물길이 술렁이더니, 폭발하듯 생겨난 두 개의 탁류가 상대를 덮쳤다.

베르덴이 마력으로 구성된 보호막을 둘렀다.

양쪽에서 수압이 짓눌렀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아케인으로 강화된 마력방벽은 이런 저위계 마법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니까.

물론 레베카가 그에 대해 알 길은 없었다.

“마력방벽? 아무리 로아프라의 정점이라고 해도 그렇지, 나도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네.”

레베카가 마법을 연산하며 마력을 집중했다.

보다 강력한 마법으로 단숨에 보호막을 뚫어 버리려는 심산일 터.

이대로 힘이 빠질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별다른 상처 없이 제압할 수단이 있었으니까.

베르덴이 마력을 번뜩였다.

<마력위압>

화아아아악!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준초월자에 이르며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무형의 압력. 명백한 하수로 판단되는 상대가 이겨 낼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때, 레베카의 목걸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얇고 반투명한 녹색의 막이 그녀의 전신을 둘러싸며, 사방에서 밀려드는 베르덴의 마력을 완전히 차단했다.

레베카가 히죽였다.

“나한테 그런 건 안 통해!”

트리플 캐스팅.

베르덴의 전면을 향해 두 개의 파도와 거대한 물의 창이 쇄도했다.

직후 그녀의 기척이 물속에서 여러 개로 나뉘었다. 곧장 마력을 거둔 베르덴의 주위에 붉은빛이 맺혔다.

<열화광>

번쩍!

화염의 빛이 터져 나온다.

열기와 충격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세 개의 마법들. 그와 함께 강렬한 섬광이 일순간 사방을 가득 메웠다.

신경을 곤두세운 베르덴이 즉각적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

그런데 앞이 아니라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고개를 향하니, 여인이 에메랄드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멀어지고 있었다.

베르덴이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음에도.

‘마도인가?’

느껴지는 기색으로 보아 그녀 본인의 마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위계 마법으로 개량된 마도를 배웠다는 뜻일 터. 아무래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마도사를 스승으로 둔 모양이었다.

타인의 마도에서 파생된 마법을 배운 마법사.

트리플 캐스팅을 시전할 수 있는 재능 및 노력과 더불어 외부의 영향력이 침투하는 걸 막는 특수한 마법 물품까지.

‘예사 인물은 아니군.’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저 여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조직에서 파견된 존재인지.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오리엔트를 소환했다.

가능하다면 얌전히 따라오게 하거나 상처 하나 없이 무력화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대가 가진 도주 능력이 꽤나 탁월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조금, 거칠게 제압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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