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84화 (284/366)

284화 단서 (3)

시궁쥐, 렛츠가 이끄는 ‘하층민’ 세력은 부랑자와 빈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 신분, 가난 등 사회적인 경쟁력이 뒤떨어진 약자들의 집단.

일상에서 내몰리게 된 그들은 자치령의 지하 수로와도 같은,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그 결과 많은 숫자가 죽어 나갔으나 적응에 성공했다.

어지간한 병마는 침범하지 못할 강한 저항력을 갖게 되었으며, 생존에 특화된 사고방식은 잔혹함과 처절함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아무도 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독극물을 무기로 쓰는, 잃을 것 없는 놈들을 상대했다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힘겹게 상대한다고 한들 얻을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뒷골목의 아홉 조직.

그중 하층민 세력은 가장 끈질기고 위험한 공동체였다.

…….

그런데 그 세력이 전멸했다.

다른 어디도 아닌, 터전으로 삼고 있던 지하 수로에서. 그들 자신조차 위험해서 다가가지 않는 이 깊은 장소에서 말이다.

이건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시체를 이곳에 옮긴 건지, 아니면 여기에서 몰살당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범인은 이형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건 자명해 보였으니까.

문득 소름이 끼친다.

프랭키와 발다르가 서로를 마주 봤다.

“……튀자.”

생각이 일치했다.

두 사람이 곧장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물이 피부에 튀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뭉그적거리다간 저 시체 더미와 하나가 될지도 몰랐기에.

당장 지하 수로를 탈출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

그리고 직전에 얻은 정보를 윗분에게 보고해야만 한다.

돈이고 뭐고, 안전을 위해서.

* * *

어수선한 거리를 여러 인파가 오간다.

일을 마치고 터덜터덜 걷는 남성, 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는 여인, 막 아인종 토벌을 마친 모험가, 호위로 고용되어 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는 용병, 그리고 녹색 로브로 전신을 가린 채 걷고 있는 정체 모를 사람까지.

주변 어디를 둘러보든 사람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처음 자치령에 왔을 때보다는 조금은 활기가 도는 분위기였다.

하기야 수백이 넘는 무리가 도시 전체를 들쑤시고 다니니 당연한 변화일지도.

마차에 탄 베르덴이 그런 가도 위를 거닐었다.

뒤골목, 주점, 식당, 대장간, 마법 물품 상점 등 정처 없이, 그리고 느긋하게 떠돌았다. 자연스레 활동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함.

이윽고 해가 기울며 노을이 졌다.

허공을 응시하던 베르덴의 벽안이 창문 밖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붙은 미행은 총 다섯.’

지상에 셋, 하늘에 둘.

전자는 어딘가 서투르면서도 정형화된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면 기사로 판단되고, 후자는 마법적 은폐 능력을 보아 각각 두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로 확인된다.

나름 철저하게 모습을 감추고 적절한 거리를 두며 따라붙긴 했지만, 베르덴의 감각을 피할 수준은 못 되었다.

‘혹여 암살이라도 하러 올 줄 알았는데 과한 생각이었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일부러 사람 하나 없는 음습한 장소를 지나면서 빈틈을 드러냈는데도 여전히 습격 하나 없는 걸 보면.

참으로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그래도 마탑이 자치령주와 손을 잡았다는 건 분명해졌군.’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이 자치령주와 함께 보헤미른 마탑을 배제하려는 시도. 그러한 심증은 오늘로서 확신이 되었다.

이제 마탑과 자치령주의 지시를 받고, 실질적으로 보헤미른 마탑과 적대하고 있는 제3의 세력만 찾는다면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방법은 전혀 어렵지 않다.

약 3일 뒤에 있을 자치령주와의 대면에서, 상대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 될 터.

예를 들자면 마멘투스 상회의 이름을 들먹이며, 보헤미른 마탑에 대한 소문을 슬쩍 거론하여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나를 죽이러 오겠지.’

마멘투스 상회주를 죽인 것처럼.

특히나 자치령주로서는 보헤미른 마탑의 보복이 두려울 테니, 사전에 화근을 자르려 할 것이다.

그럼 그 기회를 이용해 제3의 세력과 접촉하면 끝.

이후 설득과 같은 대화가 쟁점이긴 하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면 될 일이다.

생각을 마친 베르덴이 말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돌렸다.

베르덴이 돌아가려는 기색을 보이자, 다섯 명의 미행자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며 끝내 전부 사라졌다.

끝까지 지켜볼 줄 알았는데 저녁이 되니 퇴근이라도 한 건가. 생각보다도 끈기가 없는 자들이었다.

잠시 후, 저택에 도착했다.

미리 정보를 접한 것인지 패드렐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애셔 님. 마침 식사가 준비된 참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앞으로 향했다.

쇠창살로 이루어진 대문을 열고 정원으로 발을 내디딜 찰나, 근처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향하자 본 적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프랭키와 발다르.

녹색 로브를 두른 사람을 지나쳐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더러웠다. 마치 하수구에 들어갔다가 온 것처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고약한 악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표정이나 거친 숨소리나, 상당히 다급한 모습이다.

적어도 몸을 씻을 여유가 없을 만큼 급한 볼일이 있음이 분명했다.

“식사는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베르덴은 직감했다.

* * *

자치령의 지하 수로.

마석등의 불빛이 환히 공간을 비추고 있는, 예의 시체들이 가득 쌓여 있던 장소에 네 명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여, 여기입니다, 애셔 님.”

발다르가 숨을 고르며 앞을 가리켰다.

지하 수로에서 저택까지, 거의 쉬지 않고 왕복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다 하루 종일 든든하게 먹고 마시지도 못했고.

그와 줄곧 동행하던 프랭키는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했다.

“이건…….”

같이 따라온 패드렐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싸구려 단검 하나를 뽑아, 얕은 물에 떠 있는 시체 하나를 슬쩍 뒤집었다.

하얀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고깃덩어리들이 눈동자에 비친다. 그리고 살점이 사라진 뼈는 기괴한 벌레들에게 갉아먹히고 있다.

개중에는 파란색 팔찌가 끼어 있는, 뜯기듯 잘려 나간 팔도 있었다.

“확실히 하층민 세력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볼품없는 팔찌를 끼고 다니는 건 세력의 우두머리인 렛츠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들 옷차림을 보아 대부분이 부랑자로 보입니다.”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워낙 습하고 더러우며 위험한 지하 수로였으니까. 시체가 썩는 시간도 가속화되지만 그와 더해서 이리저리 갉아먹힌 탓에 훼손된 수준도 심각하다.

아마 며칠만 더 지났어도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겠지.

“…….”

아인베르에 오물이 조금도 닿지 않도록, <비행>을 사용하여 허공에 뜬 베르덴. 이미 미세한 바람을 둘러 악취를 차단한 지 오래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마력감지>

공간 전체에 마력이 내려앉는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파악한 베르덴이 구석에 있는 몇몇 잔해를 가리켰다.

“강철 흉갑을 입은 시체도 보이는데, 저것도 하층민 세력 소속인가?”

“예? 아니요, 그런 방어구는 사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프랭키, 발다르. 저 좀 도와주시죠.”

세 사람이 날붙이로 시신을 살폈다.

마석등을 비추며 어떻게든 신원을 확인하려고 애쓴 결과, 갈비뼈 사이에서 내용이 텅 빈, 썩다 만 붉은 가죽 지갑이 발견되었다.

그걸 본 프랭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잠깐만. 이놈, 달튼이잖아?”

“달튼이라면…… 무지갯빛 여관의 경비 말하는 거야? 확실해?”

“잘 봐 봐. 이거 그 새끼가 공화국에서 직수입해서 구해 온 지갑이라고 주점에서 한창 자랑했었잖아. 그래서 몇몇 놈들이 몰래 빼앗겠다고 까불다가 한 네 명쯤 죽었고.”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당시에 그런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둑들이 경비를 털다가 단칼에 목이 잘렸다고.”

세 사람이 시신을 보며 수군거렸다.

뒤에서 듣고 있던 베르덴이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무지갯빛 여관에 화재가 나기 전, 경비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화재가 났다고 들었는데…… 그 범인이 이놈들이였나.’

단언컨대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았으리라.

그리고 일을 마친 이후에 보수를 받으려 하다가 이 지하 수로에서 처분된 걸 테고. 그게 여관의 경비가 하층민 세력과 같이 죽게 된 이유일 터.

세세한 부분은 다를지 모르나 대략적인 흐름은 비슷할 것이다. 정황상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탑이나 자치령주가 대놓고 관여하지는 않았겠지.

말인즉슨 그 둘의 지시를 받은 제3의 세력이 직접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단서가 여기에 있다.’

베르덴이 염동력으로 구정물 바닥에 있는 걸 끌어 올렸다.

그러자 불에 타다 만 종이 도막, 쉽게 말하자면 연초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미하게 짙은 녹색의 단면이 남아 있는 걸 보아, 루아스교에 의해 유통이 금지된 일반적인 연초임이 분명했다.

‘이 시체들 중 누군가 사용한 건 아닐 테지.’

워낙 유통이 어려워 단가가 높았으니까.

하층민 세력이나 여관의 경비가 사용했다기에는 어폐가 있다. 만약 그들이 수요자였자면 진즉에 밀매상이 언급했을 정보였다.

베르덴이 패드렐드에게 물었다.

“연초를 제작하는 건 쉬운 편인가?”

“예? 아, 넵. 재료만 있다면 누구든지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사실 재료도 찾아보면 중앙 대륙만이 아니라 동대륙이나 서대륙에서도 구할 수는 있죠. 유통이 어렵긴 하지만, 하고자 한다면 어디서든 제작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연초의 주요 소비자는?”

“음, 그건…….”

패드렐드가 콧잔등을 긁적였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중앙 대륙 출신이 아닐까요? 합법적으로 사용하다가 타 대륙에 갔을 때 손도 대지 못하면 많이 답답하고 허전할 테니까요. 실제로 그럴 만한 중독성이 있기도 하고, 밀매업계에서도 새로운 손님보다 기존의 고객이 연초를 재구매하는 비율이 훨씬 높기도 합니다.”

“중앙 대륙 출신이라.”

베르덴의 그간의 정보를 조합했다.

보헤미른 마탑에게 보이는 강한 적대감.

그러면서 다른 마탑과 손을 잡는 걸 서슴지 않는 걸로 보아, 보헤미른 마탑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걸로 생각된다.

그와 더불어 중앙 대륙 출신이라는 것까지.

‘점점 윤곽이 잡히는군.’

이 순간 제3의 세력은 실존하는 걸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 정체 또한 어렴풋이나마 형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 * *

“수고했다. 이만 가서 쉬도록.”

베르덴의 돈다발이 담긴 자루를 던지듯 건넸다.

본능적으로 받아 든 프랭키가 전신을 엄습하는 묵직함을 느꼈다. 슬쩍 안쪽을 살펴보니, 돈 냄새가 가득 풍겨 왔다.

오물의 악취 따위는 단숨에 날려 버리는 듯한 지폐의 향기.

“미친, 이게 대체 얼마…… 아, 아니.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밤 되십시오.”

가볍게 손짓하자 프랭키와 발다르가 곧장 자리를 나섰다.

서로 번갈아 가며 금액의 액수를 가늠하는 모습은 단순한 기쁨보다는 안도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각오를 다지고 지하 수로를 탐험한 결과, 주점에서의 실수를 바로 잡고 확실히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이겠지.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베르덴이 마차에 올라탔다.

직전까지 사용하던 로브와 장갑, 장화를 내다 버린 패드렐드가 고삐를 잡았다.

천천히 마차를 끌며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가 배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지하게 찝찝하군요. 게다가 그 오물을 밟는 감각까지……. 으윽, 아무래도 식사를 하기 전에 제대로 한번 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애셔 님은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애초에 닿지도 않았으니까.”

마법은 다방면에서 편리하다.

더군다나 베르덴처럼 마도를 깨우쳐, 위계의 틀을 벗어난 마법을 구사하는 존재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기, 마력, 신성력 중 가장 많은 변화성을 가진 것이 바로 마력이다.

“마법이라…… 그것참, 부럽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하지만, 지하 수로를 다녀온 오늘은 더욱 그렇군요.”

패드렐드가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고삐를 조금 더 강하게 내리치자 가속화되는 속도. 밤하늘이 내려앉은 자치령의 골목을 가로지르며 저택으로 향했다.

그러던 순간, 녹색 로브를 두른 누군가가 옆을 지나쳤다.

그대로 베르덴의 마차가 왔던 길을 역행하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자면 평범한 행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여기고 금방 신경을 껐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걸로 세 번째군.’

낮에 한 번, 저녁에 저택 앞에서 한 번, 그리고 지금. 저 녹색 로브와 마주친 것이 오늘만 세 번이다.

물론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겠지.

하나 베르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까.

“……미행자는 다섯이 아니라 여섯이었나.”

“네?”

“갑자기 볼일이 생겼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 있어라.”

<투명화>

말을 마친 베르덴이 즉시 자취를 감췄다.

직후 마차의 문이 열리며 아주 희미하게나마 있던 기척마저 지워졌다. 다음으로 열려 있던 문이 저절로 다시 닫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베르덴.

틈새로 안쪽을 살피던 패드렐드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애셔 님?”

대답은 없었다.

마차 내부에 정적이 흘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