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83화 (283/366)

283화 단서 (2)

서로 다른 마탑에서 파견된 에즈라와 몰리.

자치령주의 다급한 연락을 받은 마법사들이 성에 찾아왔다.

저녁 시간이 옛적에 지난 늦은 밤이라 두 사람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기에, 자치령주가 몸소 굽신거리며 겨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겨우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하, 이렇게 된 거라니.”

몰리가 코웃음을 쳤다.

팔짱을 끼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턱을 쳐들었다.

“고작 암흑가인지 뭔지를 다스리는, 듣도 보도 못한 자 하나 때문에 우리들을 불렀다고 했소? <비가시화>까지 쓰라고 하면서? 나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구려.”

“저도 몰리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게 대체 뭐가 급하다고…… 느긋하게 내일이나 모레에 말해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굳이 깊은 밤중에, 비밀리에 연락까지 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에즈라 또한 그녀처럼 불쾌한 기색을 비쳤다.

자치령주의 기사, 렌티하보다도 더욱 안이한 사고방식.

10개의 마탑 중 하나에 소속되었다는 자부심은 귀족의 어지간한 선민의식보다도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에 자치령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기야, 뒷세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마탑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로아프라의 지배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을 텐데.

그런데도 저렇게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어째서 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데도 가볍게 보는 것인지…….’

그 이름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어찌 말해야 할까.

어떻게 설득해야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심각성이 조금이나마 전해질까.

자치령주가 눈가를 꾹꾹 눌렀다.

내심 한숨을 쉰 그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께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알겠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간단히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문에 의하면 말이죠.”

“소문?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러니까, 이번에 권좌를 찬탈한 젊은 마법사는 지하 도시, 로아프라의 태반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5위계를 훨씬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하아? 그럼 그 말은 그자가 6위계에 도달했다는 말씀이시오? 쯧쯧쯧, 자치령주, 당신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구려.”

몰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내 특별히 설명하지. 6위계는 감히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조차 넘볼 수 없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재능을 가진 소수에게만 허락된 경지지. 그 정도라면 마탑에서는 원로회나 그에 버금가는 자리에 앉을 수 있으며, 국가에서는 주요 전력으로 취급되는 수준이오.”

“이 주변을 예로 들자면, 에스티리아 왕국의 궁정 마법사단장. 6위계 상위 마도사인, 광염의 레오닐 정도가 있겠습니다. 동대륙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강자지요. 그럴진대 고작 뒷세계에서 군림하는 작자가 6위계? 그걸 곧이곧대로 믿다니 자치령주께서는 꽤나 귀가 얇으신 것 같습니다.

두 마법사가 대놓고 비웃었다.

조롱을 받은 자치령주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냈다. 노골적인 웃음소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빌어먹을 마탑 새끼들.’

강하게 반박하고 싶지만 꾹 참았다.

뭐라고 한들 제대로 듣지도 않을 테니까. 저 권위적인 의식은 자치령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곧 웃음을 그친 에즈라가 말했다.

“하나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테고, 자치령주께서도 걱정을 하시는 듯하니…… 5위계 상위 마법사, 아니면 5위계 중위 마도사라고 판단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 5위계 상위 마도사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지요.”

“에즈라, 그건 너무 과하게 잡은 거 아닌가? 우리와 동급이거나 경지가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뭐, 실질적인 능력은 저희가 우수하겠지만 경지는 다르지 않습니까. 마탑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 탁월한 재능을 품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결국 근본 없는 뒷세계 출신인 건 변함없지만요.”

에즈라가 수염을 어루만졌다.

“어쨌든 그 애셔? 라는 자가, 뒷골목에 널린 저급한 무리를 이용해 마멘투스 상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이유까지 알았으면 좋겠지만.”

“저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아직…….”

몰리가 자치령주의 말을 끊었다.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혹시 보헤미른 마탑의 끄나풀인 거 아니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 상황에, 다 망해 가는 상회의 뒤를 캔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 보헤미른 마탑이 이렇게 대놓고 뒷세계의 인물을 고용했다는 건 믿기 어렵지만…… 당장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당장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소? 물론 우리가 직접 공개적으로 나설 수는 없으니, 중앙 대륙에서 온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그자들은 보헤미른 마탑과 관련해서만 나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그렇다고 판명이 나지 않은 이상 호출하긴 번거롭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거친 자들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할 거요? 이대로 두고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흐음, 글쎄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에즈라.

잠시 후, 눈을 뜬 그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자치령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어떤…….”

“우리는 상대의 동기도 모른다는 것, 그렇다고 뒤를 캐자니 뒷골목 벌레들이 너무 많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지금 큰 걸림돌이 아니겠습니까?”

에즈라가 자치령주를 직시했다.

“그러니까 직접 떠보도록 하시죠.”

* * *

베르덴은 제자리를 지키며 상황을 지속해서 전달받았다.

자치령의 뒷골목을 움직여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거리를 감시하는 과정은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그레이의 용병으로 활동했을 때였다면 직접 움직여야 했을 텐데.

‘비용이 좀 들긴 해도 어차피 돈은 많으니.’

아공간과 다이나 은행 계좌에는 막대한 재산이 잠들어 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할 만큼은 아니나, 이처럼 개인적으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원 없이 사용해도 문제없을 정도.

그 결과, 상황 자체를 베르덴이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크게 반응한 건 자치령주뿐.’

화산섬의 마탑과 라리안 마탑은 아직 조용하다.

사실 겉으로만 그런 것이고, 이미 자치령주와 연락이 닿았을지도 모른다. <비가시화>나 <투명화>로 모습을 감추고 이동했을 수도 있으니까.

마법사가 거의 없는 뒷거리의 세력만으로는, 그 움직임마저 깨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이미 저들은 베르덴이라는 존재를 인식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여러 반응 중 하나를 보이게 될 터.

뭐가 됐든 간에 무시로 일관하지는 못할 것이다. 거의 다 끝난 일을 헤집으려 하는 걸 좌시하기에는 너무나 거슬릴 테니.

‘어쩌면 제3의 세력으로 나를 암살하려 할지도 모르지.’

솔직히 말해 원하는 흐름이긴 하다.

더 이상의 시간을 소모할 필요 없이 목적을 이루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그 세력에게,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가치가 있다면 말이지만.

서로 방향이 맞지 않다면 그대로 자치령을 떠나 다른 자들을 찾을 생각이다.

‘만약 앞길을 방해한다면 그 자리에서 궤멸시키면 될 뿐이고.’

금력, 권력, 무력.

베르덴은 개인이지만 위 세 가지 힘을 손에 쥐고 있다. 그를 근거로 한 자신감은 무너지지 않는 요새와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패드렐드를 통해 낯선 편지가 전해졌다.

“……자치령주 본인이 보냈습니다. 혹여 뭔지 모를 독이라도 묻어 있거나 들어 있을지 모르니 확인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필요 없다.”

독에 면역이니까.

베르덴이 주저 없이 편지를 개봉했다.

그 안에는 자필로 쓰여 있는 일종의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슬쩍 내용을 살펴본 패드렐드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자치령주가 나를 자신의 성에 초대했다라.”

당장 죽이는 것보다는, 마멘투스 상회의 정보를 쫓는 이유를 알고자 함인가. 정석적이면서도 저돌적인 판단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상당히 조심스럽고 이기적인 귀족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조언을 한 건가.’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5일 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인지 꽤나 길게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대면하는 편이 좋았지만 이 정도는 양보할 수밖에.

베르덴이 편지를 고이 접어 탁상 위로 대충 던졌다.

패드렐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애셔 님. 자치령주와의 만남…… 괜찮으신 겁니까? 분명 마멘투스 상회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실 텐데요.”

베르덴은 실제로 마멘투스 상회와 무관하다.

말인즉슨 그 상회의 뒤를 캐낼 이유가 없다는 뜻. 자치령주에게 초대받은 자리에서 침묵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쩌면 의심이 깊어져 도중에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패드렐드의 걱정은 타당했다.

물론 베르덴은 진즉에 대책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미 너희들이 가져다준 정보로 마멘투스 상회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니 이유야 만들면 되겠지.”

마멘투스 상회주는 리비안트 공화국 출신.

그것도 그레이의 의뢰나 공국의 대행사로, 베르덴과 나름 친분이 있는 로든마이어 백작 영지에서 상회를 운영했었다.

미들로스 자치령에 오기 전 뭘 했는지도 파악한 상황.

그리고 베르덴에게는 암흑가의 왕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그 둘을 적당히 잘 이용하면,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니 분쟁은 없을 거다, 아마도.”

“……부디 그러길 바라겠습니다.”

패드렐드가 고개를 숙였다.

작게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른 건 어찌저찌해서 넘어간다고 해도, 자치령주 피살 사건에 휘말리는 건 너무도 싫었으니까.

그때,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최근 발다르와 프랭키가 안 보이는군. 정확히 내가 명령을 내린 이후부터.”

설마 도망간 건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패드렐드가 부정했다.

“아뇨, 며칠 전에 저한테 찾아와서 정보 좀 찾으러 갔다 온다고 하더군요. 대신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연락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고요.”

“그런가.”

“부하들도 아무도 안 데려가고, 뭔가를 챙기는 기색도 없었으니 도주한 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제 목숨 하나는 제대로 챙기는 놈들이니까요.”

패드렐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도망갈 생각은커녕 목숨 걸고 애셔 님에게 잘 보여서,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생각일 겁니다. 그러니까 한번 기다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 * *

자치령의 서쪽 빈민가.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지하 수로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입구 쪽은 안전한 편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물이 많아지고 악취가 심해진다.

심지어 벌레의 안식처이다 못해, 벌레 형태의 이형종까지 서식하고 있는 환경. 사방이 막힌 장소에서 만나기에는, 특히나 시각적으로 끔찍한 괴물들이다.

그런 장소를 프랭키와 발다르가 나아갔다.

“미, 미친……!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냄새가, 썅……!”

“입으로 숨 쉬어라. 악취로 질식해서 죽고 싶지 않으면.”

“입이고 뭐고 뒈지기 직전인데 뭔…… 우웩.”

장갑과 장화, 마스크 등으로 나름대로 몸을 보호하고는 있지만 역겹기 짝이 없었다.

발목에서 정강이까지, 점점 깊어지는 수로의 물길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간혹 떠내려오는 벌레들의 사체는 그야말로 본능을 자극하는 듯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이미 이곳에 발을 디딘 이상 얻는 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역시 부랑자들하고 렛츠가 코빼기도 안 보여.”

지하 수로가 텅 비었다.

본래라면 입구에서부터,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며 사사건건 공격을 해 왔어야 정상이거늘.

마석등을 들어 올린 발다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지갯빛 여관에 화재가 나기 전에 부랑자들이 어슬렁거렸다고 들었는데…… 이거 잘하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X발.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네.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못 알아내면 나는 미쳐 버리고 말 테니까.”

프랭키는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으로 향했다.

이따금씩 주둥이가 길쭉한, 사람 몸통만 한 모기가 한둘씩 덮쳐 오긴 했으나, 혐오감만 불러일으킬 뿐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양손에 든 시미터는 이형종의 몸을 간단히 양단했다.

그렇게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한 식사는 평생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최악이 되리라는 건 자명했다.

물을 마셔도 마치 오물을 들이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새삼 시궁쥐와 부랑자들이 존경스러워질 정도였다.

어찌나 더럽게 살아서 저항력이 강화되었으면, 이딴 지하 수로에서 먹고 자고 싸도 병사로 죽는 놈이 거의 없으니.

‘그런 미친X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버티다 못해 자치령을 나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미약하게 흐르는 물길 사이로 검은 다발이 보였다. 시미터로 살짝 건져 올렸다.

“……머리카락?”

사람의 머리카락.

그것도 한 뭉텅이다.

프랭키와 발다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동시에 안광을 번뜩이며 머리카락이 흘러 내려왔던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하 수로의 벽에 나 있는 어떤 공간.

그 안으로 들어서자, 눈이 따가울 정도의 썩은 내가 강하게 진동했다. 저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조용히 침을 삼킨 두 사람이 천천히 마석등을 앞으로 내밀었다.

“……?!”

“이런, 미친……!”

그리고 마주했다.

얕은 물에 잠겨 썩어 가는 수십 구의 시체를.

그건 실종된 렛츠와 부랑자들의 잔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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