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소집 (2)
주저앉은 와이번 주점에서 일순 소리가 사라졌다.
눈치 없는 손님의 난입.
폭력적인 상황을 즐기던 무리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천천히 옮겨 간 눈동자가 한곳에 고정되었다. 방금까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던 브로디가 주점 바깥으로 모습을 감췄다.
끼익. 끼이익…….
주점의 문이 조용히 비명을 질렀다.
브로디는 돌아오지 않았다. 멍하니 입구를 바라보고 있던 대머리 발다르가 입을 달싹였다.
“……마법사?”
그래, 방금 그건 마법이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느닷없는 마법사의 등장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떠오르는 하나의 의문이 문제였다.
왜 하필이면 프랭키 패거리와 무쇠 주먹이 모인 오늘, 바로 이 주점에 마법사가 나타났을까. 그것도 자치령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법사가.
이제보니 망설임 없이 주점에 들어온 것도 계획된 걸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공교로웠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치령의 뒷골목에서는 아주 당연한 판단이었다.
스르릉.
프랭키가 짧은 시미터 두 개를 뽑아, 베르덴에게 겨냥했다.
“야, 마법사. 너 뭐 하는 놈이야? 누가 시켜서 여기 온 거니? 응?”
“추천받아서 왔다만.”
“이 새끼가 대놓고 모른 척을 하네? 우리가 X신으로 보이냐? X발, 누가 우리 담그라고 시켰냐고 묻잖아!”
프랭키가 윽박질렀다.
적의를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였다.
‘내가 청부라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베르덴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먼저 시비를 건 건 그가 아니라 저쪽이었으니까.
딱히 오해를 정정할 가치는 느끼지 못했지만, 애초에 상대는 들을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적의를 드러내는 프랭키와 발다르.
둘이 눈을 마주치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을 지속하기 이전에 불청객을 처리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었다.
서로 의견이 일치하자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저 새끼 팔 하나 부러뜨려서 내 앞에 끌고 와.”
“죽이지는 마라. 누가 사주했는지 알아내야 되니까.”
각 우두머리의 명령에 조직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을 박차며 힘껏 달려들었다. 마법사는 일반인처럼 연약한 육체를 지녔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도끼보다 위험하다는 게 그들의 인식.
말인즉슨 근접전으로 가면 쉽게 잡을 수 있을 터.
뒤에서 소란이 들려온다.
자리에서 일어선 베르덴이 종업원에게 말했다.
“다시 주문하지. 가장 잘하는 요리로 하나 가져오도록.”
“소, 손님?!”
베르덴이 등을 돌렸다.
주점 주인과 종업원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직후 회색 로브를 두른 마법사가 닥쳐오는 무리들과 충돌했다.
콰직! 콰아앙!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일격에 숨을 토한 사람들이 나가떨어졌고, 그중 일부는 브로디와 마찬가지로 바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무기들이 궤적을 그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도주하려 했던 자들은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일방적인 폭력.
그 광경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주점 주인이 입을 열었다.
“……난 가서 요리를 만들어 오마.”
“저, 저도 같이 가요, 아버지.”
두 사람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올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숙성시킨 고기가 튀겨지듯 빠르게 익어 갔지만 완성된 음식이 식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을까 마음이 조급했다.
* * *
히히히힝!
마부가 고삐를 강하게 내리치자 말이 울부짖었다.
속도가 끝에 다다른 흑색 마차가 거칠게 가도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꺄아악!”
“뭐, 뭐야?!
폭주하는 마차를 본 시민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하나 근처를 순찰하던 경비병은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어차피 멈추지도 못할 테고, 필사적으로 막다가는 괜히 죽기 십상이었으니까.
영주가 사람들을 돌보지 않기에, 그들 또한 헌신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자치령을 패드렐드가 질주했다.
지나쳐 가는 시민들에게서 욕지거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애셔 님은 이미 북쪽으로 가셨다.’
당연히 주저앉은 와이번 주점으로 갔을 테지.
패드렐드가 직접 추천한 유일한 가게였으니까. 자칫하면 프랭키와 발다르가 멋모르고 시비를 걸다가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아니……! 그런데 대체 왜 협상을 주점에서 하는 거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쥐었다.
뒷골목 어딘가에 처박혀서 조용히 대화나 나눌 것이지, 왜 바깥으로 기어 나와서는. 무슨 협상한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패드렐드로서는 짜증이 치솟다 못해 둘을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윽고 주점 앞에 도착했다.
마차를 급정거하고 뛰어 내려왔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벌어졌다.
“미친.”
무쇠 주먹과 프랭키 패거리의 일원으로 보이는 놈들이 주점 바깥에 널브러져 있다.
죽은 것도 아니고 큰 상처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대조적으로 건물 안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섬뜩함을 느낀 패드렐드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나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
벽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발다르.
바위보다 단단한 무쇠 주먹은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했다. 프랭키의 쌍검은 잡동사니처럼 바닥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둘을 포함한 수십 명의 사람이 매가리 없이 쓰러져 있다. 주점 밖으로 도망치려다가 기절한 모양새가 절반에 가까웠다.
그런데 주점은 망가진 곳이 없었다.
테이블 하나 부서지지 않았으며 오래된 벽면에 난 흠집은 이전에 본 그대로였다.
저번에 봤던 <낙뢰>와 같은 강력한 마법을 쓰지도 않고…… 나름 뒷골목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두 세력을 간단히 제압했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근접전에서.
패드렐드가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곳에 베르덴이 있었다.
주점 주인과 종업원을 앞에 둔 채, 바의 구석에 자리한 벽안의 마법사는 이미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
“네가 말한 대로 맛이 썩 괜찮더군, 패드렐드.”
베르덴이 와인잔을 비웠다.
지폐 몇 장을 꺼내 값을 지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점 주인과 종업원이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베르덴을 보며 패드렐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마음에 드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건…….”
“빈자리에 앉았더니 갑자기 시비를 걸더군. 간단히 제압해 뒀으니 나중에 깨어나겠지.”
죽이지는 않았다.
베르덴은 학살자가 아니었다.
“그보다 내가 맡긴 일은 어떻게 됐지?”
“아, 예. 대부분 문제없이 처리했습니다. 애셔 님이 머무실, 자치령에서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저택을 임대했고 이용하실 마차 또한 구해 왔습니다.”
한차례 침을 삼킨 패드렐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뒷골목의 아홉 조직 중 여섯이, 제가 요청한 이틀 뒤의 소집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셋이 문제였는데…… 그중 둘은 방금 해결되었습니다.”
“둘이라면…….”
베르덴이 기절한 조직원들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패드렐드가 발다르와 프랭키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여기 이 두 사람이, 그 조직들의 우두머리입니다.”
“…….”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 * *
베르덴은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이루기 위한 단계를 정했으며, 아래서부터 하나씩 이루어 가기 위해 준비하고 또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방주와의 약속이 있었다.
고대의 시련인 마도왕의 무덤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면, 베르덴은 방주에 제한적으로 속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방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됨과 동시에 시련을 부여받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예외적인 조건.
다만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하나는 방주의 회의에 한 번 참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가 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그들을 구하는 것이다.
사실상 후자는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런 상황이 쉽사리 벌어질 리가 없으니까.
베르덴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건 바로 전자였다.
‘방주의 회의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남짓.’
방주가 어떻게 접근하려는지는 아직 모른다. 저 회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아예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비행정을 타고 외딴 장소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무시할 수는 없다.
이건 약속이었으니까, 덕분에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도 했고.
‘그래서 그 안에 보헤미른 마탑을 적대하는 조직과 접촉하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자치령의 수준이었다.
여태까지 베르덴은 각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가진 인재들을 만났고 그리고 함께했다.
리비안트 공국의 페일은 베르덴이 원하는 정보를 판매했으며, 여러 의뢰를 주선하여 갖가지 경험 및 재산을 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페일의 후배인, 에스티리아 왕국의 페르네.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 돌이켜 봐도 첫인상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이후에는 오직 베르덴만을 위한 정보상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위 두 사람은 누가 뭐래도 베르덴을 보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력자였다.
‘물론 정보상인 페일하고 페르네와 비교하는 건 맞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로베르트의 정보와 패드렐드의 언급으로는, 나름 쓸 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상상 이하였다.
적어도 로아프라의 권력자나 패드렐드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들로스 자치령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세력이 고작 무뢰배 수준이라니.”
전투 능력은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 인성도 딱히 필요 없었다.
어차피 베르덴에게 필요한 건 자치령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조직에 대한 장악력과 조직원의 수준이었다.
자신들이 유리했을 때는 각각 프랭키와 발다르의 명령을 따랐지만, 막상 불리해지니 삽시간에 와해가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모래알과도 같다.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비교가 가능할 정도.
그런 자들이 구해 오는 정보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어느 정도나 될까. 그리고 이를 수집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당연히 실망스러울 정도겠지.
자치령의 저택.
베르덴의 눈치를 보던 패드렐드가 다급히 수습했다.
“그, 그래도 발다르와 프랭키는 자치령의 토박이로, 듣는 귀가 밝습니다. 한 번쯤은 기회를 줘 보는 것이…….”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이용하긴 할 생각이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이로울 것 같군.”
무정한 목소리였다.
침을 삼킨 패드렐드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애셔 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패드렐드가 물러나며 저택을 나섰다.
그가 향하는 곳은 프랭키와 발다르가 있는 장소였다.
이 두 머저리들이 오늘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해 줘야만 했다.
물론 패드렐드의 생각처럼, 베르덴은 자신에게 덤빈 것에 분노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주점에서 시비가 걸린 건 나름 신선했기에 불쾌감은 없었다.
“…….”
베르덴은 바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계획의 방향을 수정하기로 판단을 내렸다.
상대는 어둠 속에 모습을 숨겼다.
그를 찾으려 하는 베르덴에겐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없으며, 시간 또한 많지 않다.
‘그러니 바깥으로 끌어내는 수밖에.’
정보상을 이용했을 때와 같은 고도의 은밀성은 포기한다.
그 대신 대대적으로 움직여 정확성이 낮은, 다량의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정보에 대한 판단부터 시작해 행동까지.
이 과정 전체에 베르덴이 직접 개입하여 과감하게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자치령의 세력들이 한곳에 소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