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277화 (277/366)

277화 미들로스 자치령

하늘이 번쩍이며 어두컴컴한 숲을 환히 밝힌다.

수직으로 떨어진 벼락이 지표면에 닿는 순간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광!

고막을 찢을 듯 강타하는 굉음.

막대한 빛과 열기에 나무와 풀은 검게 타 재가 되어 버렸고 고여 있던 빗물이 남김없이 증발했다.

그 근방에 있던 자들은 숨을 들이켬과 동시에 절명했다.

“뭣……?!”

직전에 미증유의 마력을 감지한 몇몇 마법사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사력을 다한 집중력으로 곧장 마법을 연산해 전신을 보호했지만, 당연하게도 소용은 없었다.

최선의 방어책은 약간의 시간 벌이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게 가도의 양옆, 어느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습격자가 절명했다.

착실하게 준비해 온 화살과 마법은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채로.

그래도 전부 죽지는 않았다.

번개가 착탄한 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오엘 일행.

그들은 빗물에 전도된 잔류 번개에 휩쓸린 것에 그쳤기에, 어느 정도의 화상만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생포된 것은 총 여섯 명.

베르덴은 패드렐드의 부탁을 정확히 들어주었다.

* * *

“윽…….”

엎어져 있던 오엘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서서히 의식이 부상하자, 가장 먼저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야를 가득 메운 빛과 불규칙적인 푸른 파도.

전신이 난도질하는 것 같은 격통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오엘이 신음하며 힘겹게 근육을 움직였다.

각각 팔과 다리가 묶여 있을뿐더러, 감전으로 인해 마비된 육신이 아직 회복하지 못한 터라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다.

몇 번이고 시도한 끝에 겨우 상체를 세웠다.

시야가 흐릿했다.

“여기…… 가…… 어디…….”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바닥에서는 미약한 진동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니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오엘과 마찬가지로, 밀수꾼 호멘스에게 고용된 자들이다.

입을 벌린 채로 쓰러진 그들 또한 굵은 밧줄로 팔다리가 구속되어 있었다.

깨우려 하던 찰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생각보다 일찍 정신을 차렸군요. 애셔 님께서 손대중을 제대로 하셨나 봅니다.”

패드렐드가 왼손에 날카로운 단검을 쥐고 서 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두 명의 호위가 서늘한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오엘이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패, 패드…… 렐…….”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당신은 저를 단번에 알아본다라. 역시나 제가 표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직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이게 몇 개로 보이십니까?”

쪼그려 앉은 패드렐드가 손을 펴 보였다.

회색 반지로 장식된 중지 하나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오엘이 입을 뻐끔거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한, 개.”

“인지 능력은 얼추 돌아왔군요. 그럼 됐습니다.”

패드렐드가 태연히 팔을 뻗었다.

푹. 단검이 오엘의 얼굴에 닿았다. 칼끝이 피부를 약간 파고들자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겨울의 추위와 상반되는 뜨거움에 오엘이 움찔거렸다.

“최근 밀수꾼들이 서로 약탈을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저에게 덤벼들 줄은 몰랐습니다. 겁도 없이 감히.”

“그, 건…….”

“얼핏 시체들을 확인해 보니 수가 많더군요. 뭐, 솔직히 말해 어두운 날씨에 죽을 각오로 달려들면, 아무리 저희라고 해도 꽤 피해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들한테는 아쉽게 됐습니다. 마침 제 마차엔 아주아주 위험한 분이 타고 계셔서 말이죠.”

위험한 분? 그게 누구지?

생각하던 찰나, 백금의 로브를 두른 귀족이 갑자기 떠올랐다.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피해는 전무하지만, 저는 당신들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석 주머니까지 받았는데 역으로 호위까지 받게 되었으니.”

패드렐드가 미약하게 인상을 구기며 손끝에 힘을 가했다.

체중이 실린 단검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점에 불과했던 상처가 선이 되며, 오엘의 볼에 세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당신, 이름이 뭐죠?”

“……오엘.”

“오엘, 지금부터 당신은 이 습격에 대해 아는 걸 뱉어 내야 될 겁니다. 누가 사주했는지, 주목적이 무엇인지, 습격에 참가한 놈들이 누구인지까지 전부. 제 단검이 그 얇은 목을 갈라 버리기 전에 말이죠.”

패드렐드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를 마주한 오엘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 * *

오엘에게 정보를 캐내러 갔던 패드렐드가 돌아왔다.

호위의 말에서 뛰어내려 달리는 마차에 올라타는 능숙한 몸놀림. 마차 끝에서 빗물과 핏물로 범벅인, 싸구려 로브를 벗은 그가 내부로 걸어왔다.

“심문이 빨리 끝났군.”

“버텨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아주 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방면에 약간 조예가 있기는 합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꽤나 힘들게 살았거든요. 특히 밀수꾼의 협곡을 독차지할 때는 사경을 헤맸죠.”

패드렐드가 착석했다.

로브를 옆에 두고, 비교적 건조한 모포를 둘렀다.

“저희를 습격했던 건 여러 밀수꾼에게 돈을 받은 전직 용병과 범죄자 놈들이었습니다. 애셔 님이 생포해 주신 여섯 명은 호멘스라는 놈에게 고용되었고요.”

“아는 사람인가?”

“같은 업계 종사자라 이름은 들어 봤습니다. 이제 제가 찾아서 지워 버릴 거지만요. 크흠, 어쨌든 방금 제가 심문한 오엘은 자치령에 있는 제 협곡에 몰래 잠입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올 때를 노려서 급습하려고 말입니다.”

중요한 화물이라도 있었던 건가?

베르덴의 물음에 패드렐드가 볼을 긁적였다.

“그…… 사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물건이 있습니다. 마침 손에 넣을 기회가 있기도 했고, 최근 동대륙에서 관련 제품이 수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몰래 밀수해 왔습니다. 돈이 제법 깨지기는 했지만 아주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고 하더군요.”

패드렐드가 품속을 뒤적거렸다.

검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말린 종이를 꺼냈다.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연초? 그건 중앙 대륙에서도 일부 지역만 유통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예, 말씀하신 대로 연초는 중앙 대륙에서 가장 큰 거대 도시국가, ‘가르간트’에서만 생산되는 진정제이자 일종의 기호품으로, 지속적으로 연기를 흡입하면 부작용을 초래하는 금지 품목이기도 하죠.”

연초의 주재료인 ‘칼레임 잎’은 희귀한 진통제다.

연기나 즙을 섭취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진정 효과가 발현되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중간 정도의 중독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오랜 기간 복용 시 몸에 무리를 주어 장기 자체를 약화시키는 위험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어지간한 루아스교의 기적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영구적인 손상.

그 탓에 세계 종교인 루아스교가 연초의 제작과 유통이 가능한 지역을 한정했으며, 그 외의 장소에는 엄격한 금지령을 내렸다.

“그런 연초를 밀매하다니. 자칫 루아스교한테 발각되면 너뿐만 아니라 협곡 전체가 박살 날 텐데.”

“맞습니다. 괜히 마음먹고 연초를 밀매했다가 성기사한테 처단당한 밀수꾼이 한둘이 아니죠. 그리고 저는 그런 자들처럼 미련하지도 무모하지도 않습니다. 자, 보시죠.”

패드렐드가 말린 종이를 펴 보였다.

연초에 사용되는 특유의 녹색 가루가 아닌, 검은색 가루가 드러났다.

“이건 가르간트에서 만든 신제품, ‘페이버’입니다. 특수한 식물을 혼합해 만든, 이 검은 연기를 흡입하면 혈관 확장 및 혈류 속도가 증가하면서 일시적으로 감각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전사는 기의 운용을 가파르게 하고, 마법사의 마법 연산 속도를 보다 가속화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죠.”

“이게 그런 효과를?”

베르덴이 턱을 쓸었다.

검은 연초를 바라보는 시선에 흥미가 담겼다.

“일종의 강화형 포션과 비슷하군. 휴대성은 좋아 보이는데, 부작용은 뭐지?”

“소문으로 알려진 바로는 반복적으로 흡입 시 몸이 빠르게 망가지고 불규칙적인 감각 혼동 등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주기를 짧게 할수록 강도는 더 심해지까지·…·· 사실 연초보다도 심한 부작용이죠.”

하지만.

“루아스교가 금지한 연초는 엄연한 진정제입니다. 그리고 페이버는 정반대인 흥분제. 겉모습은 비슷할지언정 절───대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니 루아스교한테 걸려도 문제는 없죠.”

패드렐드가 미소 지었다.

“다시 말해 합법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루아스교가 페이버와 관련된 법을 제정하기 전까지는요.”

허점이 메워지기 전에 수익을 극대화하고 빠르게 손을 뗀다.

때를 놓치면 돈이 허공으로 날아갈 수 있지만 패드렐드는 이 근방에서 가장 솜씨 좋은 밀수꾼이었다.

그 정도 자신감과 실력은 있었다.

“그나저나 기밀을 유지한다고 하긴 했는데 눈치챘을 줄은…… 역시 정보란 건 무섭습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어느샌가 줄줄 새어 버리니.”

패드렐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블린처럼 탐욕을 드러내며, 도둑질을 하려는 놈들에게서 재산을 지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밀매도 수위 높은 범죄이긴 하지만.

“아, 혹시 페이버에 관심 있으십니까? 애셔 님이 생각만 있으시다면야 싸게 드릴 수 있는데.”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베르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페이버의 효과에 대해 놀랐을 뿐 복용할 생각은 없었다. 육체에 손상을 가하는 약은 뭐든 간에 질색이었다.

원소 마법사인 베르덴은 전문적인 연금술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연구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베르덴이 시선을 옮겼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겨울비가 그쳤다.

이슬이 맺힌 마부석 너머로, 얕은 산맥 사이에 세워진 드넓은 성벽이 보였다.

마침내 미들로스 자치령에 도착했다.

* * *

미들로스 자치령은 독립적인 영토를 뜻함과 동시에 하나의 도시를 의미한다.

넓은 대로 위를 패드렐드의 운송대가 거닐었다. 개조된 마차와 수십 명이라는 인원수에 시민들의 시선이 쏠렸다.

베르덴이 마차의 틈새로 자치령의 거리를 바라봤다.

‘듣던 것보다 분위기가 더 안 좋은데.’

거리 전체에 미약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가도를 걷는 이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옆으로 지나쳐 가는 골목에는 좋지 않은 인상을 지닌 무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냥감을 찾기라도 하는 듯한 눈빛.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은 여전하다.

햇빛이 차단된 풍경은 온통 칙칙한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음울한 도시는 처음 보는군.”

“제가 없는 사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차라리 협곡이 더 아늑해 보일 정도니…….”

모포를 치운 패드렐드가 로브를 걸쳤다.

“그보다 애셔 님께서 머무실 장소를 생각해 봤는데, 무지갯빛 여관 외에는 떠오르는 데가 없더군요. 다른 여관들은 거기서 거기에다가 값에 비해 잠자리도 별로 좋지 않고요. 그래서 건물 한 채를 빌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건물 임대라.

“그건 너에게 일임하지.”

“알겠습니다. 제 할 일을 마치면서 알아보도록 하죠. 그동안 애셔 님은 제 창고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아니, 나는 잠시 따로 움직이겠다.”

베르덴은 자치령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창고로 따라가 봤자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게 전부일 테니.

“아, 그럼 호위를…….”

“필요 없다. 그리고 너도 인력이 모자랄 텐데.”

밀수품을 창고에 보관하고, 오엘을 비롯한 습격자들을 가두며, 자치령에 있는 조직을 한곳에 모은 뒤 건물을 알아보려면 사람 한 명 한 명이 절실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자치령에는 애셔 님에게 대적할 자가 없기도 하고.’

애초에 암흑가의 왕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가 아니었다.

패드렐드의 고민은 짧았다.

“배려 감사합니다. 후에 저희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뒷골목이 아니면 어디에 계시든 금방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몸을 일으켰다.

당장 바깥으로 나가려던 순간, 문득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너무 눈에 띄는군.’

언제나 찬란함을 드러내고 있는 아인베르는 이 칙칙한 미들로스 자치령과 너무도 상반되었다.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화아아악.

백금의 로브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사라졌다.

아인베르는 베르덴에게 귀속된 아티팩트.

이렇게 하면 외부적인 충격에 대한 저항력은 사라지지만, 독에 대한 면역과 환영을 꿰뚫어 보는 성능 등은 여전히 기동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바란다면 아인베르는 즉시 나타나 베르덴을 보호할 터. 괜히 마도왕의 아티팩트라 여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인베르를 감춘 베르덴은 짙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과거 리비안트 공국에서 만난, 상인 콘라드가 선물해 준 의복. 생각 외로 평상복으로 쓸 만하여 나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어 아공간에서 값싼 로브를 꺼내 어깨에 둘렀다.

일련의 광경을 목격한 패드렐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애셔 님, 방금 그건…….”

“아티팩트다.”

숨기지 않고 당당히 밝혔다.

어차피 누가 뺏을 수도 없을뿐더러 빼앗길 생각도 없었으니까.

“마, 말로만 듣던 아티팩트……!”

패드렐드가 경악 어린 감탄을 자아냈다.

확실히 격이 달라 보였는데 설마 아티팩트였을 줄이야. 평생 살아오면서 실물을 접한 건 처음이었다.

‘그럼 스태프나 저 로브를 허공에서 꺼낸 것도 아티팩트인 건가?’

그럼 아티팩트가 여러 개……?

본업이 밀수꾼인 만큼 순순한 의문이 생겨 묻고 싶었지만, 인내하며 침과 함께 말을 삼켰다.

과한 호기심은 명줄을 짧게 만드는 법이었다.

베르덴이 마차에서 내렸다.

패드렐드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직후 패드렐드가 말을 이었다.

“아, 혹시 도중에 출출하시다면 북쪽에 있는 ‘주저앉은 와이번’ 주점으로 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 주인장이 심성도 좋고 요리도 잘하거든요. 자치령에서는 그나마 사람다운 가게입니다.”

“그래. 기억해 두지.”

인사를 마친 페드렐드 일행이 떠나갔다.

후드로 얼굴을 감춘 베르덴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느긋하게 관광할 마음은 딱히 없었지만, 이 미들로스 자치령에는 꽤나 신경을 자극하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저기 있군.’

저 멀리 세워진 세 개의 첨탑 중 하나.

보헤미른의 상징이 새겨진 마탑의 지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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