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후일담 (2)
보헤미른 마탑에 서서히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동력원의 수복은 요원한 일이긴 하나, 당장 필요한 기능은 마석을 연료로 삼아 활성화하고 있다.
마력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어 주는, 특수한 마법진들을 다수 사용했기에 가능한 임시 방편. 효율을 최대한 높인다고 해도 소비하는 마석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렇게 보헤미른 마탑은 조금씩 전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력원의 폭주로 대거 소멸되어 버린 실험 자료의 수복 또한.
그 필두에는 마탑주의 제자들이 있었다.
“흐흐흠.”
발로크 베시아스의 두 번째 제자, 레이셴 테일로드.
마석등 아래로 어두운 녹색 머리칼과 짙은 녹안이 미약한 빛을 발했다.
이미 40대를 훌쩍 넘은 나이였음에도 전체적으로 10대 후반에 가까운 외견. 자신이 개발한 약물로 노화를 늦춘 결과물이었다.
대신 정신 또한 외모에 걸맞게 변한다는 단점들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음,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레이셴이 고개를 기울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단단히 구속되어 있는 실험체가 몽롱한 눈빛을 보낸다. 레이셴은 대층 그의 몸을 훑어보고는 주저 없이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정확히 마력회로를 관통한 주삿바늘. 손가락에 힘을 싣자 피스톤이 앞으로 나아가며, 몸속에 뭔지 모를 하늘색 약물이 주입되었다.
“……!!……!!!!”
실험체가 발광한다.
마력회로와 연결된 심장이 세차게 울림과 동시에 희미한 냉기가 어렸다. 한기가 실험실 일부를 얼렸으나 레이셴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쓸며 흥미롭게 경과를 관찰하고 있을 뿐.
“꺽…… 꺼걱…….”
실험체의 눈동자가 터졌다. 입가에 흘러내린 검붉은 코피가 끈적거렸다.
이내 약물의 효과가 다하며 눈동자에서 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실험체는 당장 죽기라도 할 것처럼 가파른 호흡을 내쉬었다.
짝짝짝.
레이셴이 박수를 쳤다.
“오, 살았네. 이 정도면 얼추 완성에 가까워졌겠어. 동력원 폭주만 아니었다면 작년에 완성했을 걸 이제야 끝을 보네. 이건 따로 챙겨서 사형에게 보내 줘.”
“예, 레이셴 님.”
명령을 받은 연구원이 실험체를 수레에 실었다.
죽지 못한 사내는 첫 번째 제자의 실험에 용이하게 쓰일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 있는 인간은 마법사든 뭐든 간에 일개 재료에 불과했다.
레이셴이 제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며 즐겁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자, 전신을 로브로 감싼 마법사가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응? 갑자기 무슨 일이야?”
“마탑주께서 부르십니다.”
레이셴이 시선을 돌렸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이?”
* * *
보헤미른 마탑의 최상층.
까마득한 허공에 자리한, 발로크의 개인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끔찍한 위력을 가진 보안 마법진이 산재하고 있다.
레이셴이 입구에 다가서자 마력의 빛이 신체를 조사했다.
이내 인식을 마친 마법진들이 하나둘씩 일시적으로 작동을 중지했다. 눈동자를 굴려 길이 완전히 개방된 걸 확인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윽고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그와 동시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금속 문이 열린다. 안으로 발을 디디자 완벽에 가까운 넓은 공간이 시야에 비쳤다.
그런데 뭔지 모를 생소한 기류가 느껴졌다.
‘응? 혹시 누가 있었나?’
두리번거렸지만 기척은 없었다.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한 레이셴이 준비된 의석에 몸을 누였다.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던 발로크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인사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발로크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좋아하지 않았다.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느냐.”
“으음,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대략적으로 절반 정도는 복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이전에 진행 중이던 몇몇 실험들도 시제품까지 만들 수 있고요. 힘들게 생포한 블랙 아워의 포로들이 꽤 튼튼하더라구요.”
레이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다른 마탑에서 돕겠다고 제멋대로 끼어들었으니, 그렇게 내구성 좋은 실험체를 더 구하기는 어렵겠죠. 하, 짜증 나게.”
전쟁이 진행된 지 1년이 지나고서야 나서다니.
예상은 했지만 보헤미른 마탑에게 빚을 지우려고, 중하위 마탑들이 발버둥 치는 꼴이 참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거지처럼 주워 먹을 게 있나 기웃거리는 족속들.
“그리고 그거 들으셨어요? 몇 개월 전부터, 교전을 끝내고 나서 사망자를 세어 보면 몇몇 시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는 소문이요.”
일명 시체 도둑.
보헤미른 마탑과 블랙 아워의 교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처음에는 한낱 잡스러운 이야기로 여겼지만, 그런 보고가 한둘이 아닌 터라 더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얘기는 들었다.”
“언데드 같은 이형종일까요? 흠, 저희만 아니라 블랙 아워의 시체도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교전 지역에서도 일어나는 걸 보면 보통 괴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이상할 건 없다. 세상은 더없이 넓은 만큼 괴악한 존재도 있는 법이니. 이미 원로회에 조사하라고 해 두었으니 곧 밝혀질 거다. 그러니 너는 신경 꺼라.”
“네, 그럴게요.”
레이셴이 수긍했다.
호기심이 가긴 했지만 원로들이 나섰으니 끼어들 건덕지가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 저는 왜 부르신 거예요?”
“너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거다. 최근 동대륙에 있는 미들로스 자치령과 카일리언스 부근에서 내 마탑과 연관된 자 혹은 집단이 습격을 받고 있다고.”
보헤미른 마탑은 서대륙에 세워졌다.
어떻게 중앙 대륙까지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대륙까지 손을 뻗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발로크는 미들로스 자치령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지역에 꽤 오랜 시간 투자를 해 왔다.
하지만 결실을 보기도 전에 동력원과 블랙 아워의 문제가 터져 버렸고, 심혈을 기울였던 동대륙을 2년 가까이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겨우 확보했던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사실 범인이야 뻔한 것 아닌가요? 저희를 싫어하는 마탑들이나 보헤미른 마탑의 표적에서 겨우 도망쳤던 놈들이겠죠.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예의 세력일 수도 있고요.”
“아, 그 신흥 집단 말이군.”
소사이어티(Society).
현 마탑의 체제에 반한다고 알려진 새로운 세력.
모습을 드러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동대륙에서 활동하기에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지만 대충 들어 보니 예사 놈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감히 마탑을 적대한다니, 그 정도는 되지 않으면 우습겠지.
“아마 소사이어티는 아닐 거다. 그러기에는 하는 짓이 지리멸렬하니까. 평소 내 마탑에 불만이 있는, 불온한 자들의 만행이겠지.”
“그럴 가능성이 엄청 높기는 하죠. 근데 꽤 성가시긴 하겠네요. 아무리 다른 마탑이 블랙 아워의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도, 저 멀리 동대륙에 있는 잔당들을 쓸어버릴 인력은 없잖아요?”
앗, 레이셴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설마…… 저보고 처리하라고 부르신 건 아니죠? 그건 너무 귀찮고 보람 없는데.”
“걱정 마라. 놈들을 상대하는 데 마탑의 전력을 허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외부에서 사람을 고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으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걔들이 입을 잘못 놀리면 보헤미른 마탑의 위신이 깎일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일 처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고요.”
보헤미른 마탑의 추적에서 도망친 자들.
대부분은 애써 잡을 이유가 없어서 내버려 뒀지만, 자력으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 극소수의 강자가 있다.
놈들이 규합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질 터.
“외부 세력은 잔당을 추적할 용도이자 미끼로써 사용할 거다.”
“그럼 죽이는 건 누가 하죠?”
“천검(天劍), 아드리안 첸버스.”
* * *
발로크의 실험체 중 하나.
그가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은 단순히 물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드리안이라면…… 혹시 실험에 성공하셨나요?”
“그래, 강제 마법진을 통한 세뇌의 기반이 얼추 완성되었다. 아드리안 덕분이지.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결과, 지금은 거의 이지를 상실했더군. 오래도록 버티기는 했지만 조만간 완전히 쓸모가 없어질 거다. 인간으로서도, 실험체로서도.”
발로크가 입가를 비틀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최대한 쓸 만큼 써야 하지 않겠느냐?”
외부 세력이 적대 세력을 추적하고, 아드리안은 외부 세력과 적대 세력을 남김없이 몰살시켜 버린다.
그리고 강제 마법진, 콜젼에 입력된 자살 명령으로 아드리안은 흔적도 없이 소멸.
마탑의 전력을 아끼고, 마탑에서 보수를 줘야 할 외부 세력을 없애며, 곧 죽을 실험체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까지 일석삼조.
효율은 마법학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자치령주. 그 시건방진 놈도 다른 마탑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니 같이 처리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지.”
“이야, ‘전 중앙 대륙 4강’의 마지막 무대라. 그거 꽤 좋은 그림이 나오겠네요. 그럼 저는 천검을 동대륙으로 옮겨 놓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 하면 따로 감시할 필요도 없이 제 임무를 다할 거다. 내 마법진과 세뇌는 더없이 완벽하니까.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다.”
발로크가 단장(短杖)을 꺼냈다.
짧은 지팡이의 몸체에는 난생처음 보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레이셴, 너는 중앙 대륙에서 사람 하나를 찾아와라.”
“누구요?”
“이자벨라 아가일. 육체에 강제 마법진이 새겨졌음에도 끝내 저항하고, 네 사형, ‘크로든’에게서 도주하는 데 성공한 마도사다.”
레이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콜젼에 버틴 인간이 있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거기다 사형의 추적을 뿌리치는 것까지?”
“인간이라…… 하기에는 애매하군. 하지만 내 마법진의 지배를 어느 정도 상쇄했다는 건 분명하지. 당연히 멀쩡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마탑주가 팔짱을 끼었다.
“어쨌든 결국 그 여자는 추적을 피해 자취를 감췄다. 중앙 대륙 어딘가에 있다는 것 외에 아는 바가 없었지. 하지만 이거라면 찾을 수 있을 거다.”
눈앞의 지팡이에는 새로 개발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피를 매개체로 삼아, 콜젼이 새겨진 상대의 생사와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원격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능.
다시 말해 강제 마법진이 새겨진 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컨트롤러인 셈이었다.
지금 이 지팡이에는 아드리안과 이자벨라의 피가 등록되어 있다.
“이 마법진을 발동하면 지속 시간은 1시간, 재사용하려면 정확히 5일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 이틀 만에 처리할 만큼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너라면 수색 시간을 꽤나 단축시킬 수 있을 테지.”
“음, 최선은 다하겠지만…… 그 여자를 당장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자벨라, 그 여자는 특수한 피를 복용했기에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 네 약물 실험에 있어서는 이보다 중요한 존재가 없다고 단언할 만큼.”
“죽지 않는 실험체라…….”
레이셴이 입술을 할짝였다.
“스승님께서 확언하실 정도라니, 그거 보람이 있겠네요. 실험 자료를 복구하는 것보다 훨씬. 알겠어요. 제가 회수해서 찾아오도록 하죠.”
“내가 직접 공간 마법진을 열어 주마. 출발은 이틀 뒤다. 이자벨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크론드에게 물어보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레이셴이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공간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신이 난 듯 가벼웠다. 나이에 맞지 않는 경박한 태도였지만 노화를 늦추는 대가이니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째 제자의 기척이 사라졌다.
통로에 있는 보안 마법진이 완전히 기동하는 걸 확인한 발로크가 오른손을 휘저었다.
구석에 감춰져 있던, 공간을 차단하는 봉인 마법진이 깨지며 갇혀 있던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시체 도둑’,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했지?”
“허, 시체 도둑이라니…… 그저 재료를 수급했을 뿐인데 너무한 명칭이 아니오이까.”
남자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어떤 표정도 없이 입만 뻐끔거리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흥. 대역을 쓰고 접근한 수상한 놈에겐 걸맞은 이름이라 생각하는데.”
발로크의 안광이 빛났다.
초월자의 통찰력은, 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고깃덩어리 너머에 있는 존재를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 그래도 너무 나쁘게만 여기지는 마시오. 10개의 마탑 중 두 번째로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자를 마주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니.”
“사족이 길군.”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보헤미른 마탑주, 당신과 손을 잡을 게 있다고 생각하여 찾아왔소.”
“난데없이 협력이라…….”
발로크가 턱을 괴었다.
지배자다운 오만한 태도로 남자를 내려다봤다.
“그 전에 네 정체를 밝히는 게 순서가 아닌가?”
“이거 실례했소.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신분’에 대해서는 발설할 수 없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말할 수 있지.”
남자의 목소리가 비틀렸다.
직후 노인의 음성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글러트니의 세 번째 송곳니, 벨도란이라 불러 주시오.”
* * *
겨울이 시작할 계절에 밀수꾼의 협곡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슬슬 자치령으로 향할 시기. 온갖 밀매품들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불법 이민자가 없기에 조금 수월하긴 했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지금은 푹 쉬어 둬야만 했다.
자치령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아무리 노하우가 쌓였다고 해도 자칫 정신 줄을 놓았다간 죽을 테니.
그런 이유로 밀매상 패드렐드는 휴식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저, 그러니까…… 미들로스 자치령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하시다고요?”
“그래.”
“아하.”
패드렐드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질끈 눈을 감았다.
‘미친, 로아프라의 지배자가 왜 여기에……!’
뒷세계의 소식은 옛적에 접했다.
지난번에 협곡에서 횡포를 부린 마법사가 그론드를 죽였다는 걸 들었을 때 경악하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암흑가에 군림하면 죽기 전까지 왕처럼 살 수 있는데 떠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럴진대 밀수꾼의 협곡을 이용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
피할 수 없는 이상 최대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패드렐드는 피곤함과 당혹스러움을 애써 떨쳐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자치령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죠.”
“고맙군.”
패드렐드가 입안을 씹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그런 감사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자치령으로 가시려면 한 2주 정도 기다리셔야 합니다.”
베르덴이 미간을 좁혔다.
“2주나?”
“그러니까…… 음, 이건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르겠군요.”
패드렐드가 협곡의 밑바닥으로 안내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거대한 통로에는 세찬 급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 협곡에는 강력한 물살이 흐릅니다. 주기적으로 강도가 서서히 약해지다가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데, 그를 따라 저희 밀수꾼들은 자치령 혹은 에스티리아 왕국을 오가죠 있죠. 위험하기는 해도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몇십 배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살이 너무 셉니다. 아무리 베테랑인 저라고 해도 까딱 잘못했다가는 단숨에 배가 뒤집혀 버릴 만큼 말입니다. 2주 정도 지나면 속도도 충분하고 안정성도 어느 정도 보장되니 그때를 이용하면 됩니다. 아무리 시간이 금이라고 하지만 목숨을 운에 맡겨서까지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베르덴이 물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패드렐드가 말한 대로 일반적인 배로는 이동하기 어려운 세기. 직후, 안전한 장소에 정박되어 있는 밀수꾼들의 선박을 확인했다.
숫자는 총 여섯 척.
크기는 중간 규모가 둘이고, 소규모가 넷이다.
계산은 빠르게 끝났다.
“이제 와서 2주나 기다릴 수는 없지.”
“……네?”
“하루를 줄 테니 준비해라.”
갑작스러운 지시였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패드렐드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아니! 잘못하면 죽는다니까요!”
필사적인 반대였다.
근처에서 듣고 있던 밀수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차갑게 식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베르덴이 장담했다.
“안심해라.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